< 낭만필드 - 337 >
“무티뉴의 패스가 왼쪽으로 연결됩니다. 호날두, 무티뉴의 패스를 받아 침투를 준비합니다.”
포르투갈의 공격은 역시 호날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호날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 자신들의 약점이라는 것은 포르투갈도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진하다는 비판을 받았었지만, 8강 진출이 걸린 네덜란드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결정적인 두 골을 터뜨리며 부활했죠? 주의 기량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부담스러운 선수인 건 분명해요.”
조별리그 초반 두 경기에서 침묵하며 비난을 받았던 호날두는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비난을 찬사로 바꿔놓았다.
네덜란드에게 2-1로 승리했는데, 만약 승리하지 못했으면 세 팀이 1승 2패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호날두의 골은 영양가도 풍부했다.
“호날두와 주, 양 팀의 기둥인 두 선수가 붙었습니다. 이 측면에서 벌어지는 대결의 결과가 오늘 경기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호날두와 포르투갈에서의 호날두는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인 호날두의 롤을 바꾸는 것보다 다른 선수들을 호날두에게 맞추는 게 편했고, 포르투갈도 그런 전술을 활용하긴 했지만, 같은 팀이 아닌 이상 조금의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네 몸으로 돌파를 시도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느꼈을 텐데.’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서 호날두의 플레이는 레알 마드리드에서보다 직접 돌파하는 빈도가 조금 더 높았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성배를 앞에 두고 돌파를 시도했다가 간단하게 막혀버린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호날두도 신중한 모습이었다.
“천천히 전진하는 호날두, 무리하지 않고 따라붙습니다.”
호날두가 신중한 것처럼 성배 역시 신중하게 따라붙었다.
아무리 전과 같은 스피드와 테크닉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호날두는 호날두였다.
‘깊숙이 들어가서 너한테 좋을 게 있을까.’
성배의 수비에서 틈이 보이지 않으니 호날두는 점점 더 벨기에 진영 깊숙한 곳까지 밀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호날두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성배는 호날두를 코너플래그 근처로 몰아넣고 있었다.
“호날두, 스텝 오버! 왼발 크로스! 를 시도했지만, 주가 허벅지로 막아냅니다. 곧바로 중원의 시몬스에게 연결.”
결국, 성배가 몰아간 대로 코너플래그 근처에 갇혀버린 호날두는 되든 안 되든 크로스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성배를 흔들어보고자 스텝 오버, 흔히 말하는 헛다리 짚기 페인트를 섞었지만, 이미 공간이 너무 없는 상황이었다.
“돌파한다는 선택지는 이제 지우는 게 어때? 아, 화내지 말고.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크리스.”
“웃기지 마. 한 번 막은 거로 나를 막은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말은 맞는 말이었다.
공격수는 경기 내내 한 번만 수비수를 뚫어내도 칭찬받는 포지션이었고, 수비수는 한 번만 뚫려도 욕을 먹을 수 있는 포지션이었다.
다만, 성배가 경기 중에 하는 모든 발언은 상대 선수를 흔드는 것이 목적이었고, 이번에도 어느 정도는 통한 것 같았다.
***
“아자르의 돌파! 페레이라가 따라붙습니다! 반대편으로 꺾어서 나오려고 하지만, 이번에는 벨로수에게 막힙니다!”
벨기에의 수비진은 포르투갈 공격진을 효율적으로 잘 막아내는 중이었고, 미드필드진 역시 대등하게 상대하고 있었다.
아쉬운 부분은 역시 공격진이었다.
“아자르의 부진이 길어지네요. 이번 시즌 리그에서만 20-20을 기록했던 공격력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어요.”
역시 아자르의 부진이 길어지는 게 아쉬웠다.
조별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루카쿠는 만만치 않은 피지컬과 기량을 보유한 페페, 상당히 좋은 수비수인 브루노 알베스를 만나 고전하는 중이었다.
메르텐스는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무래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벨로수, 앞으로 전개합니다. 무티뉴에게 연결되고, 데푸르와 충돌! 넘어지면서 왼쪽으로! 호날두, 받아내지 못합니다.”
벨기에와 포르투갈의 공격이 모두 답답하게 진행되었고, 중원에서는 처절한 주도권 다툼이 펼쳐지는 중이었으니 양 팀 모두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이게 뭐야!”
벨로수가 볼을 빼내면서 역습을 시작한 상황이었는데, 볼을 건네받은 무티뉴는 데푸르와의 충돌로 정확한 패스를 전개하지 못했다.
충돌 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흐르는 볼에 몸을 날려 호날두 쪽으로 패스하긴 했지만, 정확할 수가 없는 패스였고, 사이드라인을 그대로 넘어가 버렸다.
“아, 호날두. 무티뉴를 째려보면서 짜증 내는 모습이 나오네요. 무티뉴의 패스가 부정확하긴 했지만, 그래도 팀 동료에게 저런 식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건 좋지 않아요.”
답답한 전개에 다혈질의 호날두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슬슬 짜증이 늘어가고 표정이 구겨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별로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호날두가 흥분하면서 흔들리는 사이, 뭔가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호날두의 흥분은 벨기에에게 기회였다.
호날두에게 극단적으로 의지하는 포르투갈 공격의 특성상 호날두가 흔들리면 포르투갈의 공격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호날두 개인의 감정 상태마저도 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그래. 조금 더, 조금 더 흥분하라고. 점점 승률이 올라가는구나.’
호날두가 흥분할수록 성배의 머리도 빠르게 굴러갔다.
어떻게 하면 호날두를 조금 더 흥분하게 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는 것이었다.
“포르투갈의 코너킥으로 경기 재개됩니다. 오른쪽에서 준비하는 루이스 나니. 나머지 선수들은 박스 안에서 자리 싸움을 펼치고 있습니다.”
세트피스 상황이 되었다.
포르투갈의 주득점원이자 헤딩 능력치도 나쁘지 않은 호날두는 당연히 페널티박스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성배 역시 그런 호날두의 옆에서 편하게 자리 잡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중이었다.
‘자, 좀 더 흥분하라고. 짜증도 좀 내고.’
세트피스를 내준다는 것은 위기이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자리다툼을 통해 영리한 수비수들이 활동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자리다툼 상황에서는 주심 역시 휘슬을 부는 데 관대했다.
‘읏차, 유니폼이 너무 잘 늘어나. 잡을 데도 없고.’
포르투갈의 유니폼은 몸에 완전히 딱 달라붙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벨기에의 유니폼도 타이트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호날두의 상체에서 가장 도드라진 두 돌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정도로 유니폼이 타이트했다.
일단 잡는 것 자체가 힘들고, 잘 늘어나는 재질과 결합 되어 심판들 몰래 잡아당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잡아당기기 힘들면... 긁거나 치면 되지.’
워낙 이미지메이킹을 잘해놓아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사실이지만, 성배는 꽤 치사한 플레이를 구사하는 선수였다.
마치 아르헨티나나 이탈리아의 수비수들과 흡사했다.
손톱은 항상 단정하지만 짧지 않게 손질되어 있었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이 손톱은 꽤 큰 역할을 해주었다.
“윽! 악!”
‘좀 아플 거다.’
잡아당기는 것을 포기한 성배는 그때부터 손톱과 손바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손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어깨나 배, 팔, 가슴 등을 잡아채는 척하면서 손바닥을 활용해 가격하거나 손톱으로 긁어버렸다.
호날두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는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억눌린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발도 좀 차주고.’
이런 상황에서 발을 사용해 상대의 발목이나 아킬레스건 쪽을 가볍게 툭툭 쳐주는 건 수비수들의 성명절기였다.
많은 수비수가 이러한 방식으로 공격수들을 괴롭혀주었고, 성배 역시 자리싸움을 위해 발을 옮기는 척하면서 호날두의 발목을 걷어찼다.
“아, 징그러운 새끼!”
‘지금인가.’
계속된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호날두는 성배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팔을 크게 휘둘러 성배를 떨쳐내려 했다.
그리고 이 순간을 노렸던 성배는 호날두를 괴롭히던 손과 발을 재빠르게 수습하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렇지. 그대로 넘어지라고.’
팔을 크게 휘둘렀는데, 느껴지는 반발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크게 부족하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중심을 잃게 될 수밖에 없었다.
호날두의 피지컬이 아무리 인간의 한계치를 보여준다고 해도, 그도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주심! 주심! PK, PK!”
“자리다툼 중에 넘어집니다! 호날두, 양팔을 옆으로 뻗으며 주심에게 어필합니다!”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 호날두는 곧바로 주심을 돌아보며 PK를 요구했다.
주심 역시 페널티 박스 안으로 빠르게 달려와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금 카드 꺼냈는데, 누군가요? 아! 호날두에게 카드가 주어집니다! 시뮬레이션 액션이라는 판정입니다!”
주심이 카드를 꺼내 보인 선수는 바로 호날두였다.
페널티킥을 얻어내기 위한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판단, 호날두에게 카드를 준 것이었다.
“아니, 지금 누구한테... 뭐야!?”
억울한 마음에 벌떡 일어나 성배를 찾은 호날두의 어이가 빠르게 가출했다.
호날두의 시선을 따라가니 오른쪽 볼 부분을 부여잡고 쓰러져있는 성배의 모습이 보였다.
“아, 호날두가 휘두른 팔에 얼굴을 맞은 것 같습니다. 주, 큰 부상이 아니어야 할 텐데 걱정이 됩니다.”
“호날두가 꽤 크게 팔을 휘둘렀거든요? 많이 고통스러워 보이는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호날두가 팔을 크게 휘두른 순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던 성배는 팔이 휘둘러지는 궤도 쪽으로 얼굴을 살짝 들이밀었다.
그리고 호날두의 팔이 닿는 순간, 화려한 액션을 섞어서 고개를 홱 꺾어버렸다.
예상하고 있었기에 충격이 크진 않았지만, 액션은 굉장히 화려했고,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일 정도의 명연기가 이뤄졌다.
‘아오, 아파라...’
주심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는 호날두의 팔과 접촉이 있어야 했다.
호날두가 팔을 크게 휘둘렀기 때문에 아무리 덜 아픈 팔뚝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어도 부딪힌 것이 확실한 이상 어느 정도의 충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 부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고개를 몇 번 흔들어보면서 점검하는 모습인데, 크게 이상이 생긴 것 같지는 않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주는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선수거든요?”
정신을 추스린 성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벤치와 동료들에게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통증은 있었지만, 애초에 푹신한 팔뚝에 부딪혀서 부상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저거 시뮬레이션이라니까! 당한 건 나라고! 여기저기 다 맞고 긁히고 밟히고 난리였는데, 왜 내가 카드야!”
자리에서 일어난 성배는 호날두를 살폈다.
잠시 가출했던 어이가 돌아온 호날두는 주심을 향해 격렬히 항의하는 중이었다.
이러다 경고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동료 선수들이 급하게 호날두를 뜯어말려 주심에게서 떼어놓았다.
동료들마저 호날두가 휘두른 팔에 성배가 맞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억울해진 호날두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래, 그렇게 계속 흥분하라고.’
성배는 분을 참지 못하는 호날두의 모습을 보면서 그냥 씨익 웃고 말았다.
< 낭만필드 - 33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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