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26화 (214/356)

< 낭만필드 - 326 >

66,000여 명이 운집한 알리안츠 아레나는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기온이 몇 도는 올라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의 서포터는 물론이고 알리안츠 아레나 주변에 사는 바이에른 뮌헨의 서포터와 그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직관하고 싶어서 찾아온 일반 축구팬들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신나게 소리를 질러대는 중이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맨체스터 시티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매번 이변을 일으켰던 첼시답게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선수가 많아 주전 선수 중 무려 네 명이나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유럽 축구의 최강을 가리는 큰 경기지만, 첼시는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첼시가 결승까지 올라올 거라 생각한 전문가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첼시의 전력은 별로 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변과 기적을 연달아 일으키며 여기까지 왔고, 그 치열한 과정에서 네 명이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것이었다.

“첼시는 결승 진출을 대가로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었어요. 주전 라이트백인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주전 미드필더 하미레즈와 하울 메이렐레스에 무엇보다 큰 타격은 수비진의 핵심이자 주장, 그리고 첼시의 정신과도 같은 존 테리의 이탈이죠.”

존 테리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든 빈자리를 땜빵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바노비치의 백업으로는 조제 보싱와가 있었고, 메이렐레스의 백업으로는 존 오비 미켈이 있었다.

이번 시즌 윙어로 활약 중인 하미레즈는 살로몬 칼루나 플로랑 말루다로 대체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존 테리의 빈자리를 루이즈나 케이힐이 채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반면, 맨체스터 시티는 지난 4강전에서도 1차전 2-0 승리를 앞세워 비교적 쉽게 올라왔기 때문에 선수 이탈이 그리 크지 않아요.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한 선수는 가레스 배리 정도인데, 거의 타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맨체스터 시티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 2차전 경기에서 경고 누적 위험이 있는 선수들을 모두 아끼며 결승전을 준비했다.

그런 여유가 있었고, 그 덕에 배리를 제외한 선수들은 무난히 결승전에 나설 수 있었다.

“사실, 첼시와의 결승 대진이 정해졌을 때, 배리보다는 라키티치의 선발 출전이 더 효과적일 거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즉, 맨체스터 시티에게 배리의 이탈은 그리 큰 타격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양 팀이 베스트 멤버로 붙었어도 맨시티가 유리하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고, 심지어 맨체스터 시티가 주전 네 명을 잃고 첼시가 선수를 잃지 않았어도 맨시티가 유리하다고 했을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첼시만 일방적으로 타격을 입었으니, 맨시티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 경기가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아, 다시 한 번 맨체스터 시티에게 볼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첼시, 경기 시작 후 20분이 다 된 상황인데도 하프라인을 제대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경기는 모두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리를 라키티치로 대체하며 나머지 포지션은 전부 베스트 라인업을 가동, 현재 스쿼드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보일 수 있는 라인업을 들고나온 맨시티였다.

안 그래도 전력 차이가 심한 상황에 베스트 멤버도 가동할 수 없었던 첼시가 이 공격력을 버티기엔 무리가 있었다.

“라키티치, 오른쪽으로 벌려주는 패스! 산체스에게 연결됩니다. 산체스와 애쉴리 콜의 맞대결!”

결국, 첼시는 텐백 축구를 꺼내 들었다.

전가의 보도, 4강전에서 바르셀로나를 꺾을 수 있게 해주었던 그 보검을 꺼내 든 것이었다.

“산체스, 돌파 시도! 애슐리 콜! 밀리지 않습니다! 다시 뒤로 물러나면서 리차즈에게 돌려줍니다.”

그래도 아직은 텐백 수비가 통하는 모습이었다.

개리 케이힐과 다비드 루이즈의 조합은 뛰어난 커맨더인 테리가 없으면 막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라인을 한껏 내리고 수비에만 집중할 경우에는 나쁘지 않았다.

두 선수 모두 수비력만큼은 첼시에 어울리는 선수들이었다.

왼쪽의 콜은 말할 필요도 없는 월드클래스였다.

“리차즈가 다시 돌파를 시도할 때, 버트란드의 태클! 라이언 버트란드, 디 마테오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좋은 수비를 보여줍니다!”

하미레즈의 이탈로 비어버린 왼쪽 윙어 자리에는 라이언 버트란드라는 신예 선수가 이름을 올렸다.

모두의 예상을 깨는 용병술이었는데, 버트란드의 경험이 적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원래 포지션이 레프트백이기 때문이었다.

왼쪽 측면에 두 명의 수비수를 배치한 디 마테오 감독의 의도대로 맨시티의 오른쪽 공격은 아직 큰 위력을 보이지 못했다.

“이번 시즌 리그에서만 20골을 기록한 산체스와 공격력이 뛰어난 풀백 리차즈의 조합은 파괴력이 엄청나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잘 막아내고 있는 모습이네요.”

물론, 첼시의 수비가 나쁘지는 않다고 해도 이렇게 해서는 골을 넣을 수 없었다.

역습을 노리기에는 수비력을 우선시해 버트란드와 칼루를 투입한 양쪽 윙어의 공격력이 부족했고, 역습을 위해 라인을 끌어올리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계속 이렇게 흘러가면 결국 맨시티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그림입니다. 첼시, 단단한 수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뭔가 다른 것도 필요합니다.”

첼시가 지금처럼 수비에만 집중하면 시간은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 맨시티가 승리할 확률이 높았다.

디 마테오 감독에게 선택지가 별로 없었던 것은 사실이고, 전력상 많이 밀리는 선수단으로 좋은 경기를 펼쳐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계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 왼쪽에서 코너킥! 제코, 헤더! 체흐의 선방! 케이힐, 바깥으로 걷어냅니다!”

다른 사람들은 결국 맨체스터 시티가 승리할 거라 예상하지만, 막상 첼시를 상대하는 맨시티 선수들은 여유롭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유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어도, 계속해서 몰아붙이는 데 정작 골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선수들이 답답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케이힐, 멀리 걷어내지 못합니다! 페널티박스 바깥으로 흐른 볼! 주, 잡아서 슈팅 찬스!”

첼시의 수비가 단단하게 버틸수록 맨시티 선수들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라는 세계 최고의 무대는 선수들의 인내심을 갉아먹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빨리 선취 골을 넣어야 해.’

페널티 박스 바깥으로 흘러나온 볼을 잡아낸 성배는 우르르 밀고 나오는 첼시 수비수들을 피하며 중앙으로 치고 들어갔다.

그렇게 슈팅 찬스를 만들어낸 성배는 선취 골을 노리며 반대편 골포스트 방향으로 감아 차는 오른발 슈팅을 시도했다.

“반대편으로, 슈팅! 아! 애쉴리 콜! 엄청난 수비를 보여줍니다! 몸을 날려 주의 위협적인 슈팅을 막아냅니다!”

“한 골을 막았어요! 이건 그냥 한 골을 막은 거예요! 애쉴리 콜, 엄청난 것을 하나 해줬네요! 이게 들어갔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성배의 슈팅은 완벽하게 반대편 골대 구석으로 날아갔다.

드디어 선취 골이 나왔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때, 갑자기 나타난 애쉴리 콜은 성배의 슈팅을 몸으로 막아냈다.

지금 상황에서 선취 골이 나왔다면 맨시티가 조금 더 편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었고, 첼시가 승리하기는 훨씬 더 힘들어졌을 텐데 그것을 막아낸 것이었다.

“이건 정말 큽니다. 이것 하나로 첼시가 유리해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맨시티의 전의를 조금이나마 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슈팅 몇 개 막아낸다고 첼시가 전력 차를 극복하고 유리해지는 일은 절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수비가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젠장. 아직 너무 어린 건가. 경험도 너무 적고.’

애쉴리 콜에게 슈팅이 막힌 뒤, 성배는 득점 기회를 잃었다는 것에 짜증을 내지도 못하고 동료들의 표정부터 확인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표정들이 상당히 구겨져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역시 챔스 결승전 무대가 크긴 크네.’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을 통해 큰 경기 경험이 적잖이 쌓인 맨시티였지만, 그래도 아직 선수들은 젊고 경험이 적은 편이었다.

두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로 나름 경험을 쌓았지만, 4강과 결승의 무게 차이는 작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분위기가 중요했다.

‘첼시도 결승 무대 경험이 없는 건 똑같지만... 그래도 저쪽은 수비만 침착하게 수비만 하면 되니까.’

일단 분위기를 타는 게 가장 중요했다.

기세가 오른 맨시티를 막을 클럽은 없었고, 아무리 텐백으로 버스를 세운다고 해도 기세만 오르면 충분히 뚫어낼 수 있었다.

‘선방 기회를 주는 건 안 되고, 넣지는 못해도 멋진 장면 몇 번 만들어줘야 하는데.’

당장 골을 넣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분위기를 끌어올릴 필요는 있었다.

첼시의 수비가 아무리 두텁다고 하더라도 기세를 탄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은 막을 수 없었다.

“투레, 오른쪽으로 빼줍니다. 오버래핑 올라온 마이카 리차즈! 라키티치가 올라오면서 다시 받아줍니다.”

골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점점 조급함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경기의 주도권은 여전히 맨체스터 시티가 쥐고 놓지 않았다.

공격의 9할 이상이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이었다.

두드리다 보면 열릴 것이라는 믿음으로 신나게 두드리는 중이었다.

“라키티치, 오른쪽 뒷공간으로! 산체스의 침투! 논스톱 크로스! 발 맞고 높게 뜹니다!”

산체스가 뒷공간을 절묘하게 파고들었지만, 오늘 컨디션 최고이 최고인 콜은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어떻게든 크로스까지는 올렸는데, 콜이 일차적으로 발을 가져다 대면서 방해했다.

“중앙으로, 제코! 제코!!”

그런데 콜이 발로 건드린 것이 오히려 맨시티에게 도움이 되었다.

제코에게 앞을 내주는 바람에 루이즈가 뒤에서 수비하고 있었는데, 제코보다 앞쪽에 볼이 떨어진 것이었다.

편하게 헤딩할 수 없도록 방해하던 루이즈는 순간적으로 무력화되었고, 제코보다 앞에 있던 케이힐은 제코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제코, 헤더! 아! 골대 맞춥니다! 제코의 결정적인 헤딩 슈팅이 골대에 맞고 골라인 아웃! 결정적인 기회가 날아갑니다!”

아쉽게도 너무 완벽하게 구석을 노리려던 제코의 슈팅은 골대를 맞추고 말았다.

선수들이 부담을 가져서 그런지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슈팅할 때 생각이 너무 많아진 것이었다.

“아, 아쉽네요. 지금 장면에서는 골이 나와줘야 했거든요? 너무 아쉽게 되었네요. 충분히 넣을 수 있었던 장면이었는데요.”

흐름 상 지금 딱 골이 들어갔다면 편하게 경기를 치러나갈 수 있었다.

이번 슈팅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었다.

“나이스! 좋았어! 이렇게만 하면 그냥 이기겠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일단은 경기에서 승리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했다.

성배는 박수와 함께 크게 소리를 질러가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그래! 지금 완전 좋았어! 이렇게만 하자고!”

그 조용한 실바마저도 나서서 소리를 질러주었다.

두 사람을 시작으로 조금씩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맨체스터 시티는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성배와 실바, 여러 선수의 노력 덕분에 느리게나마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 낭만필드 - 326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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