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309 >
맨시티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판틸리몬 완전 영입을 제외하면 그 어떤 선수도 영입하지 않았다.
맨체스터 시티 답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만수르가 구단을 인수한 뒤,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선수들을 끌어모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1군급 스쿼드 두 개로 이미 더블 스쿼드를 완성했고, 두 개의 스쿼드로도 자리가 모자라 백업의 백업으로 밀린 선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선수들의 몸값이 높은 겨울 이적시장에 영입을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질주는 후반기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도저히 멈출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겨울 이적시장을 조용히 보낸 맨체스터 시티는 후반기에도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전반기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하던 사람들은 30라운드에 가까워질수록 무패 우승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 리그 28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어요.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최다 연승 기록은 아쉽게 깨졌지만, 최다 승점, 최다 득점, 최다승 등 노릴만한 기록은 여전히 많아요.”
이번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는 프리미어리그의 모든 역사를 따져봐도 역대급이었다.
28라운드까지 23승 5무로 무패 기록을 지켜나가고 있었고, 열 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승점 74점으로 기존 최다 승점이었던 2004/05시즌 첼시가 기록한 95점에 21점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81득점에 16실점으로 EPL 출범 이후 최다 골인 2009/10시즌 첼시가 기록한 103골에 22골 차이로 따라 붙었고, 최다승인 29승에는 6승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수많은 기록들이 깨질 것으로 보입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가 너무 좋습니다. 반면, 지금 맨체스터 시티가 경신을 노리는 모든 기록의 주인인 첼시는 맨체스터 시티를 맞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끌려다닙니다.”
이 모든 기록들은 첼시가 2004/05시즌과 2009/10시즌에 세운 것들이었다.
그 정도로 강력했던 첼시였는데, 이번 시즌의 첼시는 그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무너져 있었다.
14승 7무 7패로 리그 5위.
맨시티와는 이미 승점 차이가 25점까지 벌어진 상황이었다.
“어딘가에서 들었는데, 아시아의 속담 중 이런 게 있다고 하더군요. ‘열흘 붉은 꽃은 없다.’고. 첼시도 부진할 때가 있어야죠.”
슬슬 무리뉴 감독과 함께 전성기를 이끌었던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 디디에 드록바 등 핵심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지는 시점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10년 전 첼시의 포지션을 계승한 맨시티가 당시 첼시보다 더욱 강력한 포스를 내뿜고 있었다.
“하미레즈, 오랜만에 측면 돌파를 시도하지만! 역시 역부족! 전문 윙어도 아닌 하미레즈가 주의 수비를 뚫어내는 건 무리입니다!”
첼시와의 맞대결도 맨시티에겐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아게로와 투레의 연속 골로 두 골 차 리드를 잡은 맨시티는 여유롭게 경기를 운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득점 욕심을 버린 건 아니었다.
‘에딘, 좋아.’
왼쪽 측면으로 살짝 빠져있던 제코가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첼시의 센터백 다비드 루이즈는 제코의 움직임을 놓쳤고, 성배는 놓치지 않았다.
“한 번에 길게! 제코, 뒤로 흘려주고!”
이번 시즌 들어 확실히 각성한 제코는 어지간한 롱패스를 모두 따내주고 있었다.
이번에도 성배의 롱패스에 먼저 머리를 갖다 댄 제코는 백헤딩으로 뒤로 흘려주었고, 이번 시즌 함께 호흡을 맞추며 리그 최강의 투톱을 완성한 아게로에게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아게로, 그대로 슈팅! 골! 골! 골! 또 한 번 골망을 가릅니다! 세르히오 아게로, 25호 골! EPL 데뷔 시즌에 득점왕까지 차지하는 겁니까?”
아게로의 기세는 시즌 초반부터 지금까지 꺾이지 않았다.
29라운드까지 26경기 출전, 25골로 리그 득점 1위 반 페르시에게 한 골 차로 따라붙으며 득점왕을 정조준했다.
20골의 제코와 15골의 산체스, 9골의 루카쿠까지 여러 선수들이 고른 득점을 보이고 있음에도 리그 1위를 달린다는 것은 그만큼 아게로의 결정력이 물이 올라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맨체스터 시티, 언제까지 이런 기세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중원이면 중원, 어디 하나 약점이 없어요!”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는 멈출 기세도 없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쭉쭉 뻗어 나갔다.
그리고 이제 맨체스터 시티가 진정한 유럽 챔피언이 될 수 있는가를 시험할 시점이 오고 있었다.
***
“라키티치, 코너킥! 루카쿠, 헤더!! 골! 골입니다! 로멜루 루카쿠! 10호 골! 시즌 10호 골을 기록하면서 동점을 만듭니다.”
스토크 시티와의 리그 30라운드, 맨체스터 시티는 1.5군, 엄밀히 1.7군 정도의 라인업으로 경기에 나섰다.
이미 2위 맨유와의 승점 차이를 7점까지 벌려놓았기 때문에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대비해 주력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해준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30라운드까지 무패 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죠? 확실히 무섭네요. 2진급 선수들로 기어이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어요.”
백업 선수들이라고는 해도 기량과 경험이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물론, 시즌이 진행되면서 백업 선수들의 출전 기회가 줄어들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적잖은 기회를 부여받으며 경기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오늘 경기는 운이 따르지 않아 경기 종반까지 리드를 내주고 끌려갔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동점을 만들어내며 저력을 보였다.
“맨시티, 정말 패배하는 모습이 상상도 안 되네요. 아무리 경기 막판까지 리드를 빼앗기고 끌려가도 왠지 질 것 같지가 않아요. 리그에서뿐 아니라 이번 시즌 참가한 모든 대회를 통틀어서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어요.”
맨체스터 시티가 이번 시즌 최고의 클럽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경기를 무승부로 끝낸다고 해도 리그 24승 6무 무패, 챔피언스리그 6승 2무 무패, FA컵 4승 무패, 칼링컵 3승 2무 무패, 커뮤니티 쉴드를 포함해도 무패였다.
“비록 칼링컵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패배하지는 않았습니다. 홈과 원정에서 모두 무승부였고, 원정 다득점 원칙 때문에 밀린 것이니까 무패 행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칼링컵 준결승에서 리버풀을 만나 2무를 기록, 원정 다득점 원칙 때문에 탈락하긴 했지만, FA컵에서는 첫 경기로 맨유를 배정한 것에 대해 FA컵에게 사과를 받는 듯 연달아 하부리그 팀들을 만나며 준결승까지 진출한 상황이었다.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도 러시아의 강자, 제니트를 상대로 2전 전승, 총합 5-0으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해 있었다.
“전력상 한 수 위라고 평가받긴 했지만, 러시아 원정을 가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제니트가 쉬운 상대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 제니트마저도 너무 손쉽게 2연승으로 잡아버렸죠. 확실히 쉽게 꺾일 기세가 아니에요.”
잠깐의 폭주라고 생각했던 맨시티의 질주는 시즌이 진행되어도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다음 경기는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슬슬 챔피언스리그 우승, 유럽 챔피언을 노리는 맨체스터 시티의 목표가 위협받을 시점이 된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레알 마드리드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역시 리그 25승 3무 2패로 바르셀로나에 6점 앞서며 선두를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좋은 승부가 되겠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챔피언스리그 디펜딩 챔피언이자 지난 시즌 라 리가 챔피언인 바르셀로나와 지난 시즌 리그앙 챔피언 LOSC 릴, 분데스리가 챔피언 도르트문트를 모두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 맨체스터 시티.
불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6강 상대는 지난 시즌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이자 이번 시즌에도 리그에서 독주하고 있는, 지옥의 러시아 원정을 치러야 할 제니트였고, 8강 상대는 ‘유럽 최고의 클럽’, ‘클럽, 그 이상의 클럽’, 레알 마드리드였다.
이번 시즌 라 리가 선두를 달리는 클럽이기도 했다.
“맨체스터 시티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죠. 이번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챔피언스리그 대진은 그야말로 역대급 최악이에요. 하지만 그런 만큼 이런 대진을 뚫고 우승을 차지한다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유럽 챔피언이 될 수 있죠. 그래서 위기이자 기회라 말하고 싶네요.”
분명 힘든 대진이긴 했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기회라고 볼 수도 있었다.
대진운은 누가 봐도 최악이었다.
즉, 극복해낼 수만 있다면 맨시티가 세계 최강이라는 것에 아무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이번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행보는 분명 흥미롭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래도 지켜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까지의 모습만 살펴보면 이번 시즌의 주인공은 맨체스터 시티였다.
페이크 주인공이 될지, 아니면 진짜 주인공이 될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맨시티의 경기력이 인상적이라는데 이견을 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
“레알 마드리드와 또 한 번 만나게 된 기분이라... 좋습니다. 지난 시즌에도 이번 시즌과 똑같은 위치에서 만났고, 우리가 이겼었죠. 이미 우리가 이겼던 클럽과 만나게 되었으니, 자신 있을 수밖에 없고,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을 앞두고 성배에게 여러 언론사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지난 시즌 8강에서 붙었을 때도 레알 마드리드의 에이스와 감독을 건드리며 심리전을 시도했던 성배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아, 크리스 말씀하시는 겁니까? 크리스라... 분명 그가 저보다 위에 있었던 시절이 있었죠. 그를 막아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작년에 극복했습니다. 작년에는 분명 제가 승리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이미 완성된 선수고, 저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할 나이니까요.”
지난 시즌, 2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시티의 머리채를 끌고 4강에 올려놓았던 성배였다.
그리고 호날두는 그런 성배에게 철저히 막히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성배의 해트트릭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호날두의 성격상 모르긴 몰라도 이를 갈고 있을 것이었다.
“무리뉴 감독이 팀을 잘 이끌고 있다는 건 동의합니다. 지난 시즌에 비해 레알의 경기력과 성적은 꽤 좋은 편이죠.”
실제로 레알 마드리드는 세 시즌 연속으로 우승 트로피를 놓쳤다가 4년 만에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우승컵을 가져다 달라고 데려온 무리뉴가 본인의 역할을 다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리뉴의 우승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어릴 때 보고 자라던 레알 마드리드의 모습은 아닌 것 같던데요.”
성배는 무리뉴의 유일한 약점을 건드렸다.
코파 델 레이에서 바르셀로나에게 패배하며 탈락하긴 했지만, 챔피언스리그와 리그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성적으로는 비판받지 않았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답지 않은 수비적인 경기 운영은 지난 시즌부터 계속해서 팬들의 불만을 끌어내고 있었다.
지금은 성적이 좋아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성적이 조금만 떨어지면 팬들의 비난이 가해질 것이었다.
“우리는 파괴적인 공격과 철벽의 수비, 탄탄한 중원 등 약점이 없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라고 하더라도 우릴 이기긴 어려울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패배하면 뭔가 좀 민망하겠지만, 심리전이란 원래 그런 위험을 안고 진행하는 것이었고, 자신도 있었다.
아직까지 약점이 드러나지 않은 맨체스터 시티였기에, 전문가와 팬들도 이번에는 맨시티의 승률을 아주 미세하게나마 높게 평가했다.
'후우, 확실히 내 얼굴에 금칠하려니 좀 민망하긴 하네.'
이 정도 민망함 쯤이야 예상했고, 각오도 했다지만, 확실히 민망하긴 엄청 민망했다.
< 낭만필드 - 30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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