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95 >
“케이타, 차비에게 연결합니다. 배리의 압박을 간단히 피해내는 차비! 한 번 더! 그리고 전진!”
경기 초반, 맨체스터 시티가 경기 주도권을 잡아내며 선취 골까지 기록하기는 했지만, 바르셀로나도 쉽게 물러서진 않았다.
세계 최강의 팀에 가장 가까운 팀이라 평가받는 바르셀로나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 리 없었다.
“멈추면서 투레 벗겨내고 다시 전진! 오른쪽으로 한 번에!”
바르셀로나가 위기에 빠지자, 중원의 사령관 차비가 힘을 내기 시작했다.
특유의 탈압박 능력을 앞세워 배리와 실바, 투레의 압박을 모두 벗어났고, 오른쪽의 페드로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해주었다.
‘볼을 잡고 있으니 걱정은 좀 덜었네.’
작년에 맞붙었을 때와는 반대로 오늘 바르셀로나의 공격진은 왼쪽에 비야, 오른쪽에 페드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성배와 부딪히게 된 페드로는 어떻게 보면 성배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윙어였다.
‘볼을 잡고 있으면 크게 부담스럽진 않지.’
다른 정상급 윙어들처럼 화려한 돌파나 개인기를 보유한 선수가 아니었고, 영리한 플레이가 뛰어난 선수였다.
프리롤, 위치선정, 공간침투, 연계 등 오프 더 볼 무브가 장점인 페드로였기에 성배도 쉽게 상대할 수 없었다.
영리한 플레이는 성배의 장점이기도 했지만, 페드로 역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영리한 선수였다.
“스텝 오버! 그리고 측면 돌파!”
돌파가 주된 플레이 스타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윙어이기 때문에 측면 돌파를 적잖이 시도하는 편이었다.
‘확실히 돌파 감각은 별로네.’
피지컬과 몸싸움의 빈도와 강도가 낮은 라 리가에서도 피지컬이 약하다는 약점을 자주 지적받는 페드로였다.
성배 역시 비슷한 지적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프리미어리그에서 큰 문제 없이 버틸 정도는 되었다.
“절묘한 태클! 오른발로 정확히 볼만 빼앗아냅니다. 바로 일어나면서 앞으로 전개. 배리에게 이어줍니다.”
왼쪽 측면에서 페드로의 돌파를 따라가던 성배는 안쪽의 왼발이 아닌 바깥쪽의 오른발로 태클을 시도했다.
발등을 꺾어 갈고리처럼 만든 뒤, 볼을 그사이에 정확히 끼워 넣은 것이었다.
볼은 태클 후 자연스럽게 일어난 성배의 발밑에 있었다.
“배리, 투레에게, 다시 돌려받고, 바로 보아텡에게!”
배리에서 투레, 다시 배리를 거친 볼은 보아텡에게 흘러왔다.
그리고 보아텡은 볼이 도착하기도 전에 달려들면서 다시 한 번 공격진으로 볼을 투입해주었다.
“제코가 떨어뜨려 준 볼이 아게로에게! 왼쪽으로!”
보아텡과 성배의 롱패스는 꾸준히 바르셀로나 수비진 뒷공간을 노렸다.
제코가 깊숙이 박혀 있었기에 두 선수의 롱패스는 항상 안정적으로 공급되었다.
“실바, 왼쪽 측면에서 알베스와 일대일!”
계속해서 털리다 보니 공격 상황에서도 수비진이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특히 센터백 듀오가 불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양쪽 풀백이 쉽게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고, 이는 바르셀로나의 공격력 약화에 한몫하며 맨시티가 주도권을 잡는 결과로 이어졌다.
“박스 안으로 볼 투입! 마스체라노, 적절한 태클로 끊어냅니다!”
본업이 중앙 수비수는 아니었지만, 수비능력과 태클능력만큼은 수비수들보다도 뛰어난 마스체라노였다.
제공권과 호흡에 문제가 있을 뿐, 개인 기량만큼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바르셀로나, 조금씩 밀고 올라옵니다. 수비라인에서 천천히 볼을 돌리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입니다.”
맨시티의 롱패스에 고전하다 보니 바르셀로나의 움직임도 점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뒷문이 불안한 지금 시점에서는 더욱 그래야 했다.
“케이타에게 볼 받아주는 알베스, 그리고 다시 케이타에게.”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르셀로나는 수비-미들-공격진의 간격을 최소한으로 좁혀놓고 패스 플레이를 통해 게임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볼을 돌리면서 수비라인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노리는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때문에 바르샤가 올라오기 전에는 맨시티도 적극적으로 달라붙지 않았다.
‘지금이다.’
횡패스와 백패스로 상황을 관조하던 케이타의 이번 선택은 전진 패스.
돌아선 채 대기하던 이니에스타에게 볼이 연결되었고, 그 뒤에서 투레가 황소처럼 돌진하고 있었다.
“이니에스타, 투레! 투레가 끊어냅니다! 바로 왼쪽으로!”
투레가 볼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그 순간, 최전방의 제코는 오른쪽으로 돌아서 들어갔고, 아게로는 왼쪽으로 침투했다.
그리고 실바는 왼쪽 측면에서 빠르게 침투를 시작했다.
“실바에게 연결됩니다! 맨시티, 순식간에 역습 전환! 가슴으로 떨어뜨리고, 멈추지 않습니다!”
성배도 뒤에서 따라 들어가 주고는 있었지만, 이번 플레이는 실바와 아게로, 제코 선에서 끝나야 하는 플레이였다.
실바가 페널티박스 안까지 진입하면서 슬슬 수비수들이 실바에게 붙고 있었고, 제코는 안쪽으로 계속 침투, 그리고 아게로는 수비수들의 등 뒤, 시야 바깥에서 몰래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반대편으로 밀어주고, 아게로! 왼발! 골! 골입니다! 아게로의 왼발 슈팅이 반대편 골망을 가릅니다! 맨체스터 시티, 완벽한 역습! 추가 골까지 기록하면서 완벽한 리드를 잡아나갑니다!”
제코와 실바, 두 선수에게 신경이 쏠린 탓에 아게로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놓여 있었다.
실바가 반대편의 아게로를 향해 볼을 밀어줄 때, 제코는 자신의 주변에 있던 바르셀로나 수비수 두 명을 모두 방해해주었다.
그 결과, 아게로는 완벽히 자유로운 상황에서 슈팅을 시도할 수 있었다.
“실바와 제코, 아게로의 호흡이 정말 완벽했네요. 실바가 원래 뛰는 것보다는 패스하는 것을 즐기는 선수지만, 그렇다고 스피드가 느린 선수는 아니거든요? 뛸 때는 또 뛴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었고, 제코는 최전방에서 흔히 비벼준다 하죠? 상대 수비수들을 잘 괴롭혀줬어요. 상황이 그렇게 되니 아게로가 기회를 놓칠 리 없죠.”
역습 상황에서는 수비하는 팀만큼이나 공격하는 팀도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맨시티의 공격수들이 완벽한 역할 분담을 보여준 것은 일단 각자의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역습 전술을 심혈을 기울여 갈고 닦았던 덕분이기도 했다.
“이번 시즌의 맨시티는 분명 강합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홈에서 펼쳐지는 경기이기 때문에 어쩌면 맨시티가 이길 수도 있겠다,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줄은 몰랐습니다.”
수비가 먼저 안정되어야 공격도 잘 이뤄진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아무리 바르셀로나라고 할지라도 컨디션이 최고조로 올라온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최후방 수비라인이 불안한 상태로는 우세를 잡을 수 없었다.
“차비와 이니에스타, 메시가 뭐라도 해주려고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네요. 만치니 감독의 승리예요. 과르디올라 감독도 요즘 가장 뜨거운 감독이긴 하지만, 맨시티의 맞춤 전술이 좋았네요.”
자신의 껍질을 깨고 과감하게 공격적인 전술을 선택해 허를 찌른 만치니의 승리였다.
이런 전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과르디올라와 바르셀로나는 맨시티의 맞춤 전술에 손도 쓰지 못한 채 무너졌다.
“메시, 압박을 피해 뒤로 물러납니다.”
경기 막판, 바르셀로나는 이미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한 골이라도 만회하겠다는 듯 거세게 몰아붙였다.
메시에게 볼이 연결되었고, 메시는 맨시티 선수들의 거센 압박을 피해 반대방향으로 등을 돌려 빠져나갔다.
‘호오, 그건가?’
페드로는 성배의 등 뒤로 돌아 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초조한 상황이어서 그런 것인지 성배의 시야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어쨌든 성배에게 들켰다.
그리고 메시와 페드로가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시선을 맞춘 것도 성배의 시야에 잡혔다.
“메시, 페드로에게 찍어주지만, 주! 간단하게 가슴으로 받고 멀리 걷어냅니다!”
이미 메시의 패스를 예상하고 있던 성배였다.
메시가 페드로에게 내준 패스를 제자리에서 가슴으로 받아낸 성배는 여유롭게 멀리 걷어냈다.
‘너도 가끔은 이런 뻔한 패스를 하는구나.’
메시의 패싱이 창조적이고 뛰어나긴 했지만, 예상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메시의 패스를 제자리에서 기다리며 막아버린 상징적인 장면을 끝으로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렸다.
“맨체스터 시티, 일단은 리벤지에 성공합니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두 번의 0-2 패배를 안긴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이번엔 2-0 승리를 거뒀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초반 페이스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고,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났을 때보다 경기력이 침체되어 있었지만, 바르셀로나는 바르셀로나였다.
조별리그 경기이긴 했지만, 어쨌든 2-0의 승리를 거두며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풀어낼 수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력을 보니까 지난 시즌처럼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네요. 더 높은 곳에서 이 두 팀이 만날 수도 있어요. 바르샤는 홈경기에서 맨시티 상대 전술을 수립할 필요가 있겠죠? 오늘은 맨시티가 들고나온 맞춤 전술에 너무 고전했어요.”
프리미어리그의 강팀 중에서도 피지컬적으로 가장 뛰어난 클럽이 바로 맨시티였다.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전 유럽에서 가장 선수들의 피지컬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바르셀로나도 막지 못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 누가 막습니까?”
챔피언스리그의 디펜딩 챔피언까지 잡아낸 맨체스터 시티는 파죽지세로 2011/12시즌 초반 경기들을 치러내고 있었다.
***
“아자르, 힐 찹! 반대로 돌면서 오른발 크로스! 루카쿠, 헤더!! 골! 골입니다! 로멜루 루카쿠! 후반 추가 시간에 쐐기 골을 터뜨립니다! 3-0! 벨기에, 사실상 승리를 결정지었습니다!”
유로 2012 예선도 어느새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블랙번과의 리그 7라운드 경기에서 4-0으로 승리하면서 무실점 행진을 9경기로 늘려놓은 성배는 루카쿠, 콤파니와 함께 벨기에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경기력이 굉장히 좋아요. 4년 전 유로 2008 예선에서 탈락했을 때, 탈락하긴 했지만, 막판의 경기력은 좋았었죠? 그리고 2년 전 2010 월드컵 예선 때는 플레이오프에서 연장 끝에 정말 아쉽게 탈락했었고. 이번에야말로 메이저 대회에 복귀할 기회예요.”
메르텐스와 뎀벨레, 루카쿠가 한 골씩을 기록한 벨기에는 최약체 안도라를 상대로 핵심 선수들을 아끼면서도 3-0의 대승을 거두었다.
이제 어지간한 강팀이 아니고서는 벨기에를 괴롭힐 수 없었다.
“아일랜드와 러시아의 경기가 방금 무승부로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벨기에, 이대로만 가면 단독 1위입니다!”
몇 분 먼저 끝난 경기에서 아일랜드와 러시아는 무승부에 그쳤고, 5승 3무 1패의 러시아가 2위, 5승 2무 2패의 아일랜드가 3위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6승 2무 1패의 벨기에가 1위였다.
순위는 그대로였지만, 승점 차이가 2점씩 벌어졌다.
“벨기에, 최고의 기회입니다. 다음 경기에서 무승부만 거두어도 1위로 유로 2012 본선 티켓을 따낼 수 있습니다! 남은 경기는 전패의 안도라에게만 승리를 거둔 마케도니아! 그 어느 때보다 좋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나흘 뒤, 마케도니아와의 경기가 마지막이었다.
승점은 2점 차, 상대 전적에서 러시아에게 앞서는 벨기에는 무승부만 거두어도 자력으로 유로 2012 티켓을 따내는 상황이었다.
< 낭만필드 - 29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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