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22 >
“아직까지는 충분히 챔피언스리그 진출의 가능성이 있는 아스톤 빌라입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맨체스터 시티를 잡아내면서 우승 트로피까지 얻어내는 그림을 바라고 있을 겁니다.”
중원에서 볼을 잡은 스틸리안 페트로프가 밀너에게 볼을 넘겨주었다.
예상대로 아스톤 빌라는 분위기가 좋은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쉽게 밀리지 않으며 팽팽한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이런. 놓쳤다.’
밀너가 볼을 잡고 이제 막 하프라인을 넘은 시점에서 애쉴리 영이 중앙 쪽으로 움직임을 가져갔다.
스피드가 워낙 빠른 선수인 데다가 양 사이드뿐만 아니라 중앙까지, 활동 반경도 넓은 선수였기에 성배도 수싸움에서 매번 승리할 수는 없었다.
‘까다로워.’
다행히 성배의 스피드 역시 영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았다.
한 번 놓치긴 했지만, 수비를 하면서 한 번도 상대 선수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배가 좋은 수비수라는 이야기를 듣는 건, 전생과는 달리 아직 살아있는 스피드 덕분에 한 번 놓친 선수를 따라가는 능력 역시 좋았기 때문이었다.
“밀너, 침투 패스! 영에게 이어지지만, 주가 태클로 끊어냅니다!”
밀너의 패스는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 여러 명의 사이를 뚫고 영에게 연결되었다.
절묘한 패스였다.
성배의 태클이 아니었다면 영에게 기븐과의 일대일 찬스를 내줬을 수도 있었을 정도로.
“아스톤 빌라, 아쉽겠습니다! 밀너의 패스가 정말 좋았는데 주에게 막혀 버립니다!”
태클을 통해 막아낸 선수는 성배였지만, 콤파니와 투레도 영의 근처로 잘 따라붙어 주었고, 거리를 잘 좁혀주었다.
볼을 빼앗는 건 어려웠겠지만, 최소한 슈팅 코스를 크게 좁힐 수 있었던 움직임이었다.
“패스는 정말 좋았어요. 맨체스터 시티 수비수들 역시 허를 찔린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해주었고요. 결정적으로 주는 영을 놓치지 않았네요.”
아스톤 빌라가 팽팽한 경기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선 수비 후 역습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팀이었다.
역습이 위협을 주지 못하면 경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맨체스터 시티 수비수들이 지금까지처럼 아스톤 빌라의 역습을 손쉽게 막아내고, 그에 따라 공격수들이 수비에 믿음을 가져 더 적극적으로 공격에 임하게 된다면, 아스톤 빌라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었다.
***
“맨체스터 시티의 차례입니다. 주, 천천히 볼을 몰고 전방으로 움직입니다.”
아스톤 빌라 공격의 스피드는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맨체스터 시티 수비진은 전부 다 동포지션에서 평균 이상의 스피드를 갖춘 선수들이었다.
정확히는 콤파니는 평균 이상, 성배와 투레는 정상급, 리차즈는 TOP이었다.
“주와 반대편의 리차즈가 적극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하죠? 콤파니와 투레도 라인을 내리지 않네요. 스피드에 자신이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라인을 내리지 않아도 아스톤 빌라의 역습을 막아낼 자신이 있다는 거죠!”
아스톤 빌라가 경기를 자신들의 분위기로 만들어갈 때는 상대가 평소보다 수비 라인을 내리는 움직임이 먼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 평소와 같은 라인 높이를 가져갔고, 아스톤 빌라 입장에서는 아쉬운 움직임이었다.
“주, 배리에게 패스. 배리, 데 용, 그리고 다시 받아옵니다.”
아스톤 빌라 공격의 장점을 계속 언급했지만, 그 이유는 아스톤 빌라 쪽이 언더독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지, 아스톤 빌라가 더 강해서가 아니었다.
아스톤 빌라의 공격도 강력했지만, 테베즈, 아데바요르, 벨라미, 존슨, 성배, 리차즈 등을 앞세운 맨체스터 시티 만큼은 아니었다.
“배리, 왼쪽 측면의 벨라미에게!”
그래서인지 아스톤 빌라의 수비가 타이트했다.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볼을 돌리면 우르르 볼을 건네받은 선수를 향해 즉각적인 압박에 들어갔다.
라인을 올리는 맨시티 수비 전술에 어울리지 않아 팀을 떠났지만, 라인을 내리는 선 수비 전술에서는 엄청난 장악력을 자랑하는 던이 중심이었다.
‘받아줘야겠는데.’
배리에게 볼을 투입한 이후, 역습에 대비해 공격에서 한 발자국 빠져 있었던 성배였다.
하지만 아스톤 빌라의 타이트한 압박 수비에 벨라미가 고전하자, 볼을 받아주기 위해 위로 올라갔다.
‘거기까지.’
그리고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중앙에서 내려오던 테베즈를 멈춰 세웠다.
테베즈가 볼을 받아주러 측면으로 빠지면 볼을 건네받아도 득점을 노리기 힘들었다.
테베즈는 중앙에서 상대에게 위협을 주어야 했다.
“벨라미, 주에게 빼줍니다.”
벨라미에게 볼을 건네받은 성배는 아스톤 빌라의 압박에 고전하기 전에 빠르게 움직였다.
볼을 받자마자 움직여준 덕분에 압박 타이밍이 살짝 늦었고, 시야가 넓은 성배에게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주는 다시 테베즈에게! 아! 슈팅!! 골!! 골입니다!! 테베즈, 엄청난 중거리 슈팅!! 일직선으로, 전혀 떨어지지 않고 일직선 궤적을 유지하며 엄청난 스피드로 빨려 들어갑니다!!”
성배는 그저 뭔가 만들어보라며 평범하게 넘겨준 것에 불과했지만, 테베즈는 그 패스를 어시스트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패스 자체를 다음 플레이로 편하게 이어나갈 수 있게 준 것은 맞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테베즈가 어시스트를 만들어준 것이었다.
“정말 벼락같다는 말이 어울리는 골이네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벼락처럼 내리꽂힌 중거리 슈팅이 아스톤 빌라의 골망을 갈랐어요!”
테베즈의 선취 골이 맨체스터 시티를 칼링컵 우승 트로피로 한 발자국 다가서게 만들었다.
웸블리 스타디움의 절반을 차지한 5만 시티즌들은 벌써 열광하고 있었다.
***
“아데바요르의 헤더!! 프리델 골키퍼의 가슴에 안깁니다! 프리델, 빠르게 골킥으로 전개! 너무 멀리 찼습니다!”
경기 분위기는 어느새 맨체스터 시티 쪽으로 완벽히 넘어온 상황이었다.
밀리고 밀리던 아스톤 빌라는 어느새 최전방의 아그본라허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가 자신들의 진영까지 밀려 내려왔다.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은 최후방 포백 라인이 하프라인 바로 밑에 형성될 정도가지 올라와 있었다.
“아, 아그본라허가 달립니다! 이거 애매합니다!”
그래서 아데바요르의 슈팅을 프리델 골키퍼가 막아냈을 때, 맨시티의 최후방 라인과 아그본라허의 위치는 맨시티 골대와 굉장히 많이 떨어져 있었다.
맨시티 진영의 90% 이상이 빈 공간이었다.
전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앞으로 때려준 프리델의 골킥은 선수들 사이를 통과해 그 빈 공간으로 날아갔다.
“아그본라허! 아그본라허! 아그본라허!”
콤파니와 투레가 열심히 쫓아갔지만, 기븐 골키퍼까지도 골대를 버리고 뛰쳐나왔지만, 아그본라허의 스피드는 상상을 초월했다.
뒤에서 출발한 아그본라허는 어느새 콤파니, 투레와 같은 선상에서 달리고 있었다.
“아! 아그본라허가 먼저! 투레가 태클로 끊어냈지만, 걸려 넘어집니다! 주심의 휘슬!”
아그본라허의 믿을 수 없는 스피드가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콤파니와 투레의 움직임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동선 낭비도 없었고, 열심히 잘 달려주었다.
달려야 하는 거리가 너무 길었을 뿐이었다.
“페널티킥 선언됩니다. 아스톤 빌라, 동점 골 기회를 잡았습니다.”
결국, 투레의 태클의 파울 판정을 받았다.
페널티 킥.
초반에 몇 차례 기회를 잡은 이후 별다른 기회를 잡지 못했던 아스톤 빌라가 동점 골 찬스를 잡았다.
“밀너, 페널티 킥을 준비합니다. 도움닫기 후 슈팅!! 골! 골입니다! 제임스 밀너, 아그본라허의 질주가 만들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들어냅니다.”
밀너의 페널티 킥이 맨체스터 시티의 골망을 갈랐다.
경기를 압도하고 있었지만, 한 골밖에 따내지 못했던 아쉬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동점이라지만 변할 건 없어. 숫자만 같아진 거지, 경기 주도권은 아직 우리한테 있으니까.”
아그본라허에게 뒷공간을 헌납해버린 콤파니와 투레의 분위기가 처져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까도 말했듯, 제대로 수비 라인이 정비되기 전이었고, 달려야 할 거리가 너무 길었으며, 프리델의 골킥 타이밍에 허를 찔렸을 뿐이었다.
“알았어. 다시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할 테니까 한 골만 만들어 줘.”
운이 좋지 않아 동점을 허용했을 뿐, 특별히 달라질 건 없었다.
하던 대로만 하면 추가 골은 충분히 뽑아낼 수 있었다.
‘수비가 단단하다지만, 측면은 충분히 노려볼 수 있어.’
스테판 워녹과 카를로스 쿠엘라는 노려볼 만했다.
왼쪽의 워녹은 좀 부담스럽지만, 오른쪽의 쿠엘라는 본업이 센터백인 선수라 발이 느려 벨라미와 함께라면 충분히 뚫어낼 수 있었고, 오늘도 종종 재미를 보고 있었다.
“자, 자!! 다시 한 골만 만들어 보자고!”
실점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팀 분위기는 살짝 가라앉았다.
주장인 투레, 그리고 성배는 박수와 함께 소리를 지르면서 팀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
“존슨, 중앙으로 볼 투입! 아데바요르, 밑으로 내려와 볼 받아줍니다. 페트로프 발에 맞고 밑으로, 벨라미에게 연결됩니다!”
성배의 예상대로 동점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경기 분위기는 여전히 맨체스터 시티가 잡아나가고 있었다.
아스톤 빌라는 다시 라인을 쭉 내리고 수비에 집중하며 역습 찬스를 노렸다.
하지만 아그본라허의 믿을 수 없는 스피드를 앞세운 아스톤 빌라의 역습에 한 번 크게 덴 맨체스터 시티 수비진은 전보다 조금 더 라인을 내리고 있었기에 아스톤 빌라 역습의 힘은 떨어졌다.
“벨라미 돌파 이후 슈팅! 쿠엘라가 몸을 날려 막아내고, 테베즈, 크로스! 콜린스 발 맞고 흐르는 볼! 주!!”
페널티 박스 안쪽에서 혼잡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데바요르의 패스와 벨라미의 슈팅, 테베즈의 크로스까지 모두 아스톤 빌라 수비수들의 발에 걸렸지만, 운이 좋게도, 아스톤 빌라 입장에서는 불운하게도 모두 맨시티 선수들에게 다시 흘러갔다.
‘잡으면 안 된다.’
이번에는 성배의 차례였다.
벨라미의 뒤를 받쳐주기 위해 박스 안에 자리잡고 있었던 성배를 향해 볼이 흘러왔다.
옆에서 페트로프가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논스톱으로 처리하기 위해 볼을 잡기 전에 미리 동료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다시 한 번 올려주는 주의 크로스!”
“걸렸어요! 이거!!”
성배는 발목의 힘만을 이용해 볼에 스핀을 주었다.
상당한 회전이 걸린 볼은 반대편으로 빠르지 않게, 하지만 정확하게 날아갔다.
그리고 반대편 골포스트 부근에서 아데바요르가 성배의 크로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데바요르!! 골! 골입니다! 아데바요르, 팀의 두 번째 골을 머리로 기록합니다! 맨체스터 시티에게 다시 리드를 선물하는 아데바요르의 득점!”
왼쪽에서 계속 볼이 돌고 있었기 때문에 아스톤 빌라 수비수들도 왼쪽으로 쏠려 있었다.
골 포스트 반대편, 박스 오른쪽에서 대기하던 아데바요르를 놓친 것이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 헤더를 시도한 아데바요르가 기회를 놓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 우승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섰어요! 34년 만의 우승 트로피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네요!”
아스톤 빌라의 수비가 정비되지 못한 틈을 타 반대편으로 올려준 성배의 크로스가 일품이었다.
아데바요르의 득점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한 맨체스터 시티는 우승 트로피를 향해 손을 뻗었다.
< 낭만필드 - 22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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