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21 >
빌모츠 감독은 이번 친선 경기에 소집된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성배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콤파니와 베르마엘렌 등 주장직과 가까웠던 두 선수에게는 성배에게 주장을 맡긴 이유를 설명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빌모츠 감독과 나눈 대화에서 성배는 반 바이텐이나 시몬스가 2주장으로 자신을 돕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콤파니와 베르마엘렌 둘 중 한 명에게만 직함을 주기는 애매했고, 그렇다고 둘 다 안 주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결국, 2주장은 베르마엘렌, 3주장은 콤파니가 맡게 되었다.
“여어, 주 주장! 하하, 앞으로 골치깨나 썩겠네.”
잉글랜드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콤파니가 성배를 놀렸다.
콤파니는 성배의 주장 선임에 대해 불만이 전혀 없었다.
베르마엘렌도 마찬가지였다.
팀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 모두 주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동의했고, 그 전에 성배가 가진 영향력과 장악력이 주장에 어울린다는 것에도 동의한 두 선수였다.
“골치라. 뭐 별것 있나. 지금까지도 거의 주장처럼 했는데. 앞으로는 베테랑들한테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게 다른 점이지만, 어차피 그쪽은 다니엘이나 티미가 도와줄 테니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지만, 두 선수의 영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두 선수 모두 아직 뛰어난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국가대표팀의 핵심으로 활동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의 기량이 떨어져 국가대표팀에서 빠질 때쯤에는 성배의 영향력이 팀 전체를 아우를 것이었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지. 거의 국가대표팀 합류하자마자 선수들 모아놓고 장악하던 사람인데, 잘하겠지.”
성배의 주장직 수행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대외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고, 선수단 관계자들만 알고 있었지만, 같은 선수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다 너희 덕분이지. 각자 자기 집단 리더들이 나를 밀어줬는데 그 정도 장악력도 못 보여줄까.”
베테랑들의 리더 반 바이텐.
프랑스계의 리더 콤파니.
네덜란드계의 리더 베르마엘렌.
집단별 장악력도, 각 집단의 지지도 성배 못지않았다.
하지만 성배는 리더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것이 빌모츠 감독으로부터 주장 완장을 건네받은 이유였다.
“뭐, 그것도 그렇지. 나나 토마스야 널 지지해줬다기보다는 네가 끌어들인 거지만. 다니엘의 힘은 확실히 컸지.”
성배와 비슷한 역할을 맡았던 반 바이텐이 그 역할을 성배에게 넘겨주었던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일찌감치 선수들 사이에 벨기에를 한 팀으로 묶어줄 선수라는 인식이 심어졌고, 기량까지 급성장해 에이스가 되면서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리더 자리를 차지했다.
반 바이텐의 초반 푸쉬와 성배의 성장.
두 가지 요소가 성배에게 주장 완장을 가져다 주었다.
“됐어. 그건 다음에 다시 소집되면 이야기하고.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당장 앞에 있다고.”
벨기에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음 소집,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성배가 주장직을 수행하기까지는 두 달여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지.”
잉글랜드로 복귀하자마자 이들은 굉장히 중요한 경기를 치러야 했다.
바로 아스톤 빌라와의 칼링컵 결승전이었다.
“76년이 마지막 우승이니까 34년 동안 우승이 없다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이쪽이지.”
1976년 풋볼 리그컵, 스폰서가 붙기 전 대회를 마지막으로 메이저대회 우승이 없는 맨체스터 시티였다.
벌써 34년째였다.
만수르 부임 2년, 본격적으로 만수르가 자신의 힘을 보여준 첫 시즌에 결승까지 오르면서 팬들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우승해야지. 맨체스터 시티도 슬슬 우승 트로피들 끌어모을 때가 됐어.”
현재 맨체스터 시티와 한 경기 이내의 차이로 순위 경쟁을 하고 있는 아스톤 빌라였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은 결승 상대가 빅4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승을 확신하고 있었다.
“우승... 해야지. 지난 시즌에 쉬어서 이번 시즌부터는 좀 빡세게 모을 필요가 있어.”
한 시즌 우승 트로피 한 개.
지난 시즌 칼링컵 결승전에서 패배하면서 그 공식이 깨졌지만, 이번 시즌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다.
‘첫 우승의 의미는 크지. 지금 멤버 중 전성기를 함께 할 멤버도 별로 없으니까. 첫 우승을 이번 시즌에 하면 몇 안 남을 우승 멤버들의 의미가 달라지겠지.’
지금 멤버들 중 앞으로 맨체스터 시티의 전성기를 함께 할 선수들은 거의 없었다.
공격진에는 그나마 어느 정도 함께 할 테베즈를 제외하면 없었고, 미드필드에서는 배리, 수비진에서는 콤파니, 사발레타 정도가 전부였다.
좀 넉넉하게 봐줘도 투레, 리차즈, 레스콧, 존슨 정도.
34년 만의 첫 우승을 이끌고 전성기로 접어들면 이 첫 우승 멤버들의 의미가 커질 것이었다.
‘앞으로 엄청난 스타들이 합류할 텐데, 그 전에 입지를 완벽하게 다져놔야지.’
이번 칼링컵 결승전은 성배에게 다른 의미로 중요했다.
맨체스터 시티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이게 언제까지고 이어질 거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지지를 보내줄 이유들을 계속해서 쌓아나가야 했다.
***
“아스톤 빌라와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시티와 아스톤 빌라의 칼링컵 결승전이 펼쳐지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인사드립니다.”
잉글랜드로 복귀한 성배는 바로 칼링컵 결승전에 출전했다.
비록 잉글랜드의 메이저 우승 트로피 중 가장 작은 위상을 차지하는 대회였지만, 만수르와 함께 하는 새로운 맨체스터 시티의 시작을 알리는 무대로는 손색이 없었다.
“1976년 이후 34년 만의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노리는 맨체스터 시티와 그 정도는 아니지만, 1996년 이후 14년 만의 우승 트로피를 노리는 아스톤 빌라. 두 팀의 격돌입니다.”
지금은 중위권 클럽 정도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스톤 빌라는 맨체스터 시티 정도는 저 밑으로 내려다볼 정도로 역사가 화려한 클럽이었다.
맨유, 리버풀, 아스날, 에버튼에 이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경험이 다섯 번째로 많았고, 잉글랜드에서 맨유, 리버풀, 노팅엄 포레스트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네 개의 클럽 중 하나였다.
연고지 역시 맨체스터를 제치고 영국 제2의 도시로 올라선 버밍엄.
한국에서의 인식과는 달리 이적시장에서도 적지만은 않은 돈을 지출하는 빅클럽이었다.
“현재 리그 순위는 맨체스터 시티가 4위, 아스톤 빌라가 6위입니다. 승점 차이가 한 경기 안쪽에 있기에 리그 순위로는 두 팀이 비슷하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리그 1위에서 3위 팀들이 결승전에 올라오지 못했지만, 맨체스터 시티와 아스톤 빌라도 이번 시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팀들이었다.
중립 팬들의 입장에서는 흔히 봐왔던 결승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기대되는 경기였다.
“맨체스터 시티가 과연 본격적으로 출항한 첫 시즌부터 우승 트로피를 차지할 수 있겠느냐, 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아스톤 빌라도 절대 만만한 팀이 아닙니다.”
아스톤 빌라의 스쿼드는 굉장히 탄탄했다.
맨체스터 시티처럼 거액의 돈을 들여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는 클럽은 아니었지만, 지난 몇 년의 꾸준한 투자로 양질의 스쿼드를 완성했다.
잉글랜드 대표팀 출신만 해도 애쉴리 영, 스튜어트 다우닝, 제임스 밀너, 가브리엘 아그본라허, 에밀 헤스키, 스테판 워녹 등이 있었고, 이 중 영과 다우닝, 밀너는 최근 잉글랜드 대표팀에 연달아 소집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직력에서는 아스톤 빌라가,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서는 맨체스터 시티가 앞선다는 평가죠?”
물론, 그렇다고 해도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에게 개인 기량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럽 각지에서 대표급 선수들을 모아놓은 클럽이 맨체스터 시티였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맨체스터 시티가 앞설 수밖에 없었고, 브리지의 비극 이후 팀이 하나로 똘똘 뭉치면서 조직력마저도 굉장히 좋아졌기에 맨체스터 시티 쪽으로 조금이나마 무게 추가 기울고 있었다.
“두 팀 모두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노리고 있고, 유로파 리그 출전권은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획득이 유력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두 팀 모두 유로파 리그 출전권보다는 우승 트로피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가능성 측면에서 보자면 상상을 초월하는 자금력으로 무장한 맨체스터 시티 쪽이 아스톤 빌라보다는 우승을 차지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을 보면 34년 동안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맨체스터 시티가 더 급했다.
“영, 다우닝, 아그본라허를 앞세운 아스톤 빌라의 스피드가 위일지, 아니면 테베즈, 벨라미, 존슨을 앞세운 맨체스터 시티의 파괴력이 위일지 기대가 됩니다.”
“지난 시즌까지 상대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리차드 던과 가레스 배리의 활약도 관전 포인트죠. 특히 던은 맨체스터 시티에서 주장까지 했던 선수기도 하고요.”
빅4가 없는 결승전이었지만, 화제성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맨체스터 시티도 마찬가지였지만, 오히려 워낙 많이 노출되어 식상해진 클럽들의 스토리보다는 상대적으로 조명이 덜 될 수밖에 없는 아스톤 빌라의 스토리가 결승전에 조미료를 쳐주었다.
***
“아스톤 빌라의 역습! 아그본라허, 빠릅니다!”
아스톤 빌라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스피드 스타들을 활용한 공격에 있었다.
이번 시즌, 아스톤 빌라는 좋은 성적과 함께 빅4 킬러라는 이름까지 얻어냈다.
빅4를 상대로 3전 전승을 달린 이후 2연패, 그리고 2연속 무승부를 거두며 킬러라는 이름은 무색해졌지만, 그래도 3승 2무 2패면 나쁜 성적이 아니었다.
“아그본라허가 먼저! 드리블 후 슈팅! 멀리 빗나갑니다!”
강팀에게 강한 아스톤 빌라를 이끈 선수들 역시 공격수들이었다.
던을 중심으로 한 수비진의 위력도 분명 훌륭하지만, 역시 아스톤 빌라는 공격이었다.
지금도 밀너의 패스가 맨시티의 뒷공간을 헤집고 파고든 아그본라허에게 이어지며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쟤들 빠르니까 뒷공간 신경 써. 너희도 빠른 편이라는 건 아는데, 저 친구가 상상을 초월하니까.”
콤파니와 투레도 센터백 치고는 빠른 발을 가진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물이 오른 아그본라허의 스피드와 침투가 가진 위력이 상당했다.
“오케이, 알았어. 라인까지는 안 내려도 될 것 같고, 신경은 쓴다.”
콤파니와 투레의 스피드라면 라인까지 내릴 필요는 없었다.
라인의 높이는 공격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함부로 내리지 않는 것이 좋았다.
또, 두 선수는 자신의 스피드와 상대의 스피드를 계산할 능력과 경험이 충분한 선수들이었다.
“좋아. 뒷공간 조심하고, 헤스키는 높이랑 파워 조심하고. 아그본라허만 막아줘. 우리가 측면을 막으면 헤스키는 아무것도 못 할 테니까.”
하지만 리차즈와 투레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진은 만만치 않았다.
아직 호흡이 완벽하지 않은 콤파니-투레의 조합이지만, 콤파니의 개인 기량이 점점 정점을 향해 가는 중이고, 투레의 경험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아스톤 빌라는 측면만 무력화시키면 파괴력의 절반은 죽일 수 있어. 알지? 잘 막아줘.”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 수비의 최대 장점은 정반대 성향의 풀백, 성배와 리차즈가 맡은 양쪽 측면에 있었다.
아스톤 빌라 공격의 핵심인 양쪽 측면 윙어들도 대단한 선수들이지만, 이 풀백 조합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터였다.
“오케이. 분위기가 워낙 좋아서 확신은 못 하겠지만, 최선을 다해보지.”
분위기라는 것, 흐름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기량을 무시하는 마력이 있었다.
아스톤 빌라의 측면 윙어들이 그랬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그리고 왼쪽의 다우닝보다 성배와 맞붙을 오른쪽의 영이 분위기가 더 좋았다.
애쉴리 콜과의 맞대결을 통해 최고의 자리를 향해 내디딘 한 발자국을 자칫하면 다시 되돌리게 될지도 몰랐다.
‘우승컵도, 이 자리도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마지막 대결에서는 호날두도 막아냈던 자신이었다.
분위기를 탄 애쉴리 영은 분명 까다로운 상대였지만, 막아내지 못할 상대는 아니었다.
< 낭만필드 - 22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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