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12화 (318/356)

< 낭만필드 - 212 >

“휘슬 울립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파울이 선언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프리킥이 주어집니다.”

오늘 경기 일정이 나온 뒤, 맨시티 선수들과 팬들은 한 가지를 걱정했다.

경기의 주심이 그 유명한 하워드 웹 주심이었던 것이었다.

‘뭔가 그런 생각을 자꾸 해서 그런 건지, 계속 미심쩍네.’

계속 의식해서 흔들리면 좋을 게 없었기 때문에 성배는 애써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주변에서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저게 왜 파울이야!”

지난 리그에서의 맞대결 경험도 있고 해서 동료들 모두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있었다.

혹시 의심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굳이 반응하지 않기로 이미 이야기가 끝났다.

다만, 경험이 적은 보야타가 살짝 흥분한 모습이었다.

“데드릭. 진정해. 지금 주장이랑 다른 친구들도 다 조용히 있는데 네가 이렇게 흥분하면 안 되지.”

보야타의 멘탈을 케어하는 역할은 콤파니의 몫이었다.

투레가 출전하지 않아 주장 완장은 테베즈에게 가 있었다.

물론 리더십 때문은 아니고 팀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었다.

어쨌든 주장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다른 동료 선수들, 그리고 파울이 선언된 당사자까지 가만히 있었으니 조용히 넘어가는 게 맨시티에게 좋았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다 보면 매일 겪을 일인데 하나하나 흔들리지 마라. 그런 것까지 다 실력이니까.”

성배와 콤파니의 전담 마크에 보야타의 멘탈은 흔들릴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경험이 있다고 지난 경기와 달리 판정 하나하나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나름 잘 버티고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점점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플레처와 박인진이 특유의 활동량으로 조금씩 분위기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경기 분위기에까지 영향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워드 웹 주심이 애매한 상황에서 맨유에게 미묘하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기 시작하니 맨시티 선수들의 플레이는 살짝 위축되었다.

“박인진, 볼 잡고 중앙 선택! 비에라에게 걸려 넘어집니다!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지난 몇 번의 맞대결에서 성배에게 꽁꽁 막혔던 박인진은 오늘 거의 측면을 버리다시피 하고 중앙 지원에 올인했다.

안 그래도 지난 1차전과 달리 세 명의 미드필더를 투입한 맨유의 전술에 중앙 쪽에서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펼치던 맨시티는 중앙 미드필더처럼 움직이는 박인진의 가세에 고전했다.

“오늘 가장 눈에 띄네요. 주인공 역할은 아니지만, 주인공 역할의 선수들보다 훨씬 눈에 띕니다.”

지난 1차전도 그렇고 오늘 2차전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중원의 주도권을 가져간 클럽이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오늘 퍼거슨 감독의 히든카드, 박인진 특유의 활발한 움직임과 하워드 웹의 맨유 우호적인 콜이 더해지자, 좋은 위치에서의 프리킥을 많이 얻어냈다.

“라이언 긱스의 왼발이 위협적인 위치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여기서 슬슬 동점 골이 나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스코어는 1-0으로 맨시티가 앞서나가는 상황이었다.

후반전이 시작된 지도 벌써 10분이나 지났기 때문에, 최소한 연장전으로 가려고 해도 두 골이 필요했다.

분위기는 내고 있지만, 이제 골이 필요한 시간대였다.

‘이쪽 측면으로 내줄 리는 없고.’

오늘도 자신의 측면을 완벽히 마크해내고 있는 성배였지만, 맨유의 오른쪽 윙어 박인진이 거의 상대를 해주지 않아 하는 일이 많지도 않았다.

하파엘이 아무리 부족한 부분이 많은 어린 선수라고 해도 공격력은 무시할 수 없어서 박인진을 따라갈 수도 없었다.

동료들을 믿고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킥 하나는 여전해서 위협적인데.’

긱스가 비록 노쇠화로 인해 기량이 좀 떨어졌지만, 떨어진 피지컬을 노련미와 경험으로 잘 메우면서 여전히 위협적인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전성기 때부터 알아줬던 킥은 보다 더 정확해져 있었다.

“라이언 긱스, 도움닫기 후 옆으로 빼줍니다!!”

그래서 긱스가 달려드는 순간, 맨시티 수비벽은 온 힘을 다해 몸을 띄웠다.

그리고 긱스는 그걸 노려 스콜스에게 볼을 빼주었다.

“스콜스, 멀리서 중거리 슈팅!! 골! 골입니다! 스콜스의 전매특허, 때려 박는 중거리 슈팅이 작렬합니다! 후반 10분에 터진 스콜스의 동점 골로 맨유가 따라갑니다!”

여러 장점이 있지만, 다른 장점들이 전문가들의 시선을 끈다면, 스콜스의 중거리 슈팅은 경기를 보는 모두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시원했다.

정말 그물이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강력한 스콜스의 슈팅이 맨체스터 시티의 골망을 흔들었다.

“후반 10분이면 적절한 시간이네요. 적절한 시간에 한 골을 따라붙었어요. 한 골의 여유가 있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맨체스터 시티도 불안해요.”

맨체스터 시티 입장에서는 너무 빠르게 한 골을 내준 것이 아쉬웠다.

이제 한 골만 더 허용하면 올드 트래포드에서 연장전을 치러야 했다.

올드 트래포드라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주심이 하워드 웹이라는 건 더 부담스러웠다.

“루니에게 볼 빼내고 콤파니, 비에라에게. 비에라는 왼쪽으로 벌려줍니다. 주가 올라갑니다.”

분위기를 내주고 동점 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밀리는 건 아니었다.

맨시티 역시 맨유에게 뒤지지 않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고 분위기는 올라왔을 뿐, 아직 뒤지고 있는 맨유 역시 추가 골을 넣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이 사람이...’

볼을 잡고 올라가려는 성배를 향해 스콜스의 태클이 들어왔다.

그런데 스콜스는 사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태클을 못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퍼거슨 감독에게 “저렇게 센스가 좋은 선수가 왜 태클만 형편없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이건 싸우자는 건데...’

하지만 성배에게도 그런 언론 플레이가 통할 리 없었다.

누구보다 거친 플레이를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성배였다.

태클의 속도와 자세, 들어오는 과정만 봐도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상대를 잘못 선택했어.’

그리고 성배는 스콜스보다 더 교묘하게 파울을 활용하는 선수였다.

같은 선수들도 성배가 고의적으로 한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스콜스가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상대를 잘못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스콜스의 태클! 주, 점프하면서 피하고, 아! 다행입니다. 조금만 잘못 떨어졌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태클을 피한 뒤, 성배는 몸을 띄웠다가 스콜스의 머리 바로 옆을 강하게 찍으며 떨어졌다.

고의가 아니라는 듯, 땅을 찍자마자 중심을 잃고 구르는 연기 역시 잊지 않았다.

“조심해. 다음번엔 그냥 안 넘어가니까.”

그라운드 위에 누운 스콜스를 일으켜 세워주면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성배는 그냥 위협하는 거로 끝내지 않고 스터드 끄트머리로 두피를 살짝 긁으며 떨어졌다.

그래서 스콜스도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판정이 좀 유리하지? 그런데 내가 티 안 나게 못 할 것 같아?”

스콜스가 간혹 보여주는 거친 플레이들은 맨유가 분위기를 가져가는 데 꽤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배는 지금 자신의 퍼포먼스로 스콜스의 플레이가 좀 위축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긱스의 크로스! 루니가 파고들면서 오른발로 마무리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두 번째 골! 2-1을 만들어냅니다!”

성배의 의도가 어느 정도 먹히긴 했지만, 스콜스의 주특기는 터프한 플레이가 아니었다.

뒤쪽에 자리 잡고 후방 플레이메이킹에 집중한 스콜스는 경기를 부드럽게 조율했다.

그리고 함께 회춘한 동년배 긱스와 탑클래스 레프트백으로 성장한 에브라의 왼쪽을 밀어주며 경기를 조립해나갔다.

“이번 득점으로 경기는 완전히 동률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칼링컵 4강전! 결승 가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여러분.”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2-1로 맨유를 꺾었던 이득은 이제 없어졌다.

경기 분위기도, 경기가 펼쳐지는 장소도, 그리고 무엇 하나도 맨체스터 시티에게 유리한 것이 없었다.

*   *   *

“페널티킥! 페널티킥이 선언됩니다! 데 용의 거친 태클! 박인진이 페널티킥을 얻어냅니다!”

맨시티가 잡고 있던 스코어 상의 우위를 잃은 순간, 맨시티 선수들에게서 초조함이 보였다..

특히 원래 플레이가 거친 데 용은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고, 결국, 끊임없이 귀찮게 굴던 박인진에게 거친 태클을 시도하면서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다.

“아, 맨체스터 시티! 이건 치명적인데요? 만약 지금 실점하게 되면 정말 어려워져요.”

슬슬 전광판 시계가 80분을 향해 가는 타이밍이었다.

사실 이대로 경기가 끝나서 연장전에 돌입해도 맨체스터 시티에게 좋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실점해버리면 그냥 끝이었다.

‘기븐신이라고 하던가? 한 번 믿어볼 수밖에.’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기븐신’, 셰이 기븐의 선방이었다.

뉴캐슬 시절, 악명 높은 3B가 만든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엄청난 레벨업을 거친 기븐이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한 번 기대해볼 만했다.

“루니가 페널티킥을 준비합니다. 맨체스터 시티 입장에서는 기븐의 선방에 기대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기븐이라면 기대를 걸어볼 만하죠.”

루니와 기븐만을 남겨두고 양 팀 선수들 모두 페널티박스 바깥으로 나갔다.

루니는 혹시나 슈팅 코스를 읽힐까 기븐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고, 기븐은 좌우로 몸을 흔들며 대비했다.

“루니, 도움닫기 후 슈팅!”

루니가 볼을 터치한 순간, 박스 바깥에서 대기하던 선수들이 혹시나 볼이 튀어나올 것을 대비해 박스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기븐, 슈퍼 세이브! 슈퍼 세이브로 맨체스터 시티를 살리는 셰이 기븐!”

루니의 슈팅은 기븐의 세이브에 막혀 골라인을 벗어났다.

‘마침 타이밍이 좋은데.’

그리고 박스 안으로 들어오던 성배는 페널티킥을 놓치고 얼굴을 감싸 쥐며 돌아선 루니와 겹치는 경로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성배의 눈이 반짝였다.

“아, 미안, 미안.”

충분히 피해가거나 멈출 수 있었지만, 루니는 성배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걸 노려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성배는 그대로 루니에게 몸을 부딪쳤다.

안 그래도 페널티킥을 놓쳐 짜증이 치솟은 루니를 더 건드리기 위해서였다.

다혈질로 유명한 루니를 건드려서 나쁠 건 없었다.

“이 자식이!”

‘그래, 그거야.’

사실 성배는 절대 약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스피드로 몸을 부딪쳤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차오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혈질 루니는 순간적으로 오른 그 감정을 참아내지 못했다.

“으악!”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에 성배의 가슴팍을 밀친 루니였고, 순간적으로 힘을 뺀 성배는 뒤로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살짝 뒤로 점프하기도 했다.

“아! 루니와 주가 충돌했습니다! 루니가 주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쳤고, 주는 뒤로 날아갔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루니, 이미 경고 한 장이 있거든요? 위험한 행동인데요? 이거 변수가 될 수도 있겠어요!”

루니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댈 정도로 짜증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기대는 했었다.

그리고 성배의 기대대로 루니는 성배의 몸에 손을 댔고, 주심이 빠르게 달려왔다.

‘고맙다. 다혈질.’

다시 한 번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 낭만필드 - 212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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