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66 >
“5-1!! 5-1!! 5-1!! 5-1!! 5-1!!”
“꺼져라!! 꺼져버려!! 여기가 어디라고!!”
“하하, 또 쳐 발리러 왔나 봐!!”
똑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길로 빨간 버스가 지나가는 중이었다.
버스의 주인은 아스날 선수단이었고, 양옆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토트넘 서포터즈였다.
“이거나 먹어라!! 어때! 기분 좋아?”
“기분 좋겠지! 우리 스퍼스가 선물하는 건데!”
“집에 가서 잘 때 입고 추우면 목에 두르라고!! 하하하!!”
거리를 가득 메운 토트넘 서포터들은 아스날의 구단 버스를 향해 물건들을 집어던졌다.
토트넘에서 특별 제작해 판매한 물품들로, 머플러, 티셔츠, 컵, 모자, 유니폼 등이었다.
단순한 물건들은 아니었다.
지난 시즌 칼링컵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5-1의 대승을 거둔 이후 특별 제작한 물품들이었다.
모든 물품에 5-1이라는 스코어가 대문짝만하게 프린팅되어 있었고, 토트넘 팬들은 이것을 아스날 선수단을 향해 선물하는 중이었다.
“오늘은 몇 골 줄 거냐! 매일 다섯 골밖에 안 주니까 답답하잖아! 오늘은 한 여섯 골만 달라고!”
“두 경기 연속 다섯 골인데, 오늘도 그냥 다섯 골만 주면 돼!”
토트넘 팬들이 집어 던지는 물건들에 아스날 구단 버스의 유리창에 쩍쩍 금이 가고 있었다.
바깥에서 아스날 선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모를 위험 때문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것이었다.
‘쌤통이다, 자식들.’
마침 식사를 위해 근처에 나와 있었던 성배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통쾌해 하는 중이었다.
저런 수난은 토트넘 역시 겪었다.
사실 토트넘 선수단이 먼저 겪었던 일들이었다.
아스날과 토트넘의 관계에서 항상 당하는 쪽은 토트넘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명만 살짝 긁혀서 부상으로 못 나왔으면 좋겠네.’
두 클럽 간의 불화가 시작된 2부 리그 강등 사건.
토트넘의 주장이자 잉글랜드 대표 센터백이었던 솔 캠벨의 아스날 자유 이적 사건.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라자냐를 먹었다가 단체로 식중독에 걸려 4위 자리를 아스날에게 내줘야 했던 라자냐 사건.
이외에도 많은 사건 등에서 토트넘은 피해자 포지션에 있었다.
원정 경기에서 패배하고도 버스를 향해 날아오는 돌멩이, 맥주병 등을 피하느라 신변의 위협을 느꼈던 것도 토트넘이 먼저였다.
그런 토트넘 팬들이었기에 아스날에게 거둔 2연승의 의미는 남달랐다.
‘거리도 얼마 안 되는데 참 대단해.’
아스날과 토트넘.
두 클럽의 경기는 ‘북런던 더비’라고 불렸다.
그리 크지 않은 런던에서도 북부에 함께 붙어있다는 뜻이었다.
아스날 구역과 토트넘 구역의 거리는 겨우 수 킬로미터에 불과했다.
상대의 경기장을 찾거나 다시 돌아갈 때 필요한 운행 거리가 10km도 채 안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 짧은 거리를 움직이면서도 도착 후 버스를 보면 폐차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박살이 나 있었다.
그 정도로 치열한 더비였다.
‘내일도 이겨야겠지.’
원정을 오는 상대 팀의 부담도 부담이었지만, 홈팀의 부담 역시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승리를 염원하는 팬들 앞에서 지기라도 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몰랐다.
‘지난번에 아스날... 난리도 아니었지.’
1-4로 뒤지다가 5-4로 역전했던 지난 전반기의 원정 경기.
토트넘 팬들은 그 날 축제를 벌였지만,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아스날 팬들이 시위를 벌였다.
굉장히 살벌한 분위기였다.
‘무섭군.’
더비 매치의 부담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리그에서 두 경기 연속 무승부로 순위가 5위까지 떨어진 아스날이나 이제 막 부진을 끝내고 스토크와 볼턴을 잡아내 10위에 재진입한 토트넘.
안 그래도 양 팀 모두 승리가 간절한 상황인데, 더비까지 겹쳤으니 그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할 텐데.’
아스날만큼은 아니지만, 토트넘 역시 주전 스쿼드의 평균 연령이 어린 편이었다.
이런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없었다.
***
“지루한 경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양 팀 선수들, 아직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양 팀 모두에게 중요한 경기거든요? 북런던 더비라는 라이벌전의 압박과 중요한 시기라는 압박이 이중으로 겹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네요.”
성배의 예상대로 두 팀의 경기는 기대만큼 치열하지 않았다.
아니, 분위기 자체는 치열했는데, 경기력은 그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아스날도, 토트넘도 자신들의 기량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고, 좋은 경기력을 보일 때와 비교하면 거의 반타작 수준이었다.
‘공격이 무뎌.’
특히나 아스날 공격진의 부진이 심각했다.
안 그래도 이번 시즌 공격이 무뎌졌다고 평가받는 아스날이었다.
아데바요르와 반 페르시의 투톱은 건재했지만, 두 선수 모두 24라운드까지 두 자릿수 득점을 찍지 못했을 정도로 부진했다.
게다가 공격 전개의 핵심인 파브레가스가 부상으로 이탈했고, 월콧과 아르샤빈마저도 이탈한 상황이었다.
“에보우에, 다시 한 번 막힙니다! 주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아르샤빈과 월콧의 부상은 아스날의 오른쪽 날개가 완전히 꺾여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들을 대신해 이 자리를 채운 선수는 라이트백 에보우에.
당연히 성배의 수비를 뚫어내지 못했다.
‘이번엔 좀 통해야 할 텐데.’
아스날의 약점이라면 역시 피지컬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벵거 감독의 철학인 아름다운 축구를 위한 선수를 모으다 보니 선수들 대부분이 스피드와 테크닉이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선수들을 모았으니 필연적으로 피지컬과 신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피지컬을 앞세운 스토크 시티에게 유별나게 약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주, 전방으로 길게 연결합니다!”
에보우에에게서 볼을 빼앗아낸 성배는 지체하지 않고 볼을 올려주었다.
데포와 로비 킨을 재영입한 이후부터 투톱으로 돌아간 토트넘의 투톱 중 한 자리는 파블류첸코가 고정되어 있었다.
20경기에 나서서 고작 네 골을 넣은 파블류첸코가 고정이었다.
“파블류첸코의 머리에! 하지만 갈라스가 걷어냅니다!”
그 이유는 토트넘 공격진 중 장신 선수가 파블류첸코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벤트와 로비 킨은 170cm대, 데포는 169cm였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저 빌어먹을 허우대. 도대체 왜 자꾸 내보내는 건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20경기 4골은 너무했다.
데포는 포츠머스 시절의 득점까지 더해서 열 골을 넣었고, 파블류첸코 때문에 후보로 밀린 벤트는 선발 출전 경기가 열세 경기에 불과함에도 벌써 아홉 골을 넣고 있었다.
리버풀 이적 이후 폼이 급격히 죽었다는 로비 킨 역시 벌써 일곱 골을 득점한 상황.
성배는 파블류첸코의 기용을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할 시점이 이미 지났다고 생각했다.
‘무슨 비디오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물론, 투톱의 정석은 타겟맨 역할을 해줄 장신 선수와 돌파를 주로 해줄 단신 선수의 빅&스몰 조합이었다.
하지만 그 빅&스몰 조합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파블류첸코를 굳이 투입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지금 상황이라면 차라리 높이를 포기하고 민첩한 공격수 두 명을 투입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송, 왼쪽의 나스리에게 연결!”
파블류첸코의 힘없는 헤딩은 갈라스에게 걸리고 말았다.
골도 못 넣는데 타겟맨의 역할마저도 미숙한 파블류첸코의 플레이에 토트넘 팬들 사이에서 작은 야유가 시작되었다.
아스날 팬들은 물론 환호를 보냈다.
‘일단 경기 끝나고 해리랑 면담하든지 해야겠어.’
아직 경기가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생각은 일단 뒤로 미뤘다.
하지만 분명 이야기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
“다시 한 번 나스리 쪽으로 공격을 시도하는 아스날! 나스리, 촐루카와 마주합니다!”
에보우에를 활용한 공격에서 얻어낸 것이 전무했던 아스날은 전반 중반 이후 왼쪽의 나스리에게 공격 작업을 일임했다.
전멸한 아스날 선수단 사이에서 홀로 분전하며 2인분 이상을 해주고 있는 나스리였지만, 전반전도 후반에 접어들면서 나스리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파브레가스의 이탈로 플레이 메이커의 역할을 해야 했고, 완전히 꺾여버린 오른쪽 날개의 부진을 만회해야 했다.
그리고 본업인 왼쪽 날개로서의 역할까지 해주어야 했다.
지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촐루카를 제치고 돌파, 중앙으로 크로스! 아, 크로스가 반대편으로 길게 넘어갑니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플레이의 섬세함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만치 않은 수비수인 촐루카를 지친 몸으로 상대해 돌파하면서 그 속도에 크로스까지 시도하려니 정확도가 급락했다.
억지로 쏘아 올린 크로스는 지나치게 길었고, 반대편의 성배를 향한 롱패스처럼 되고 말았다.
‘기회다!’
아스날 선수들이 나스리를 따라 올라와 있었다.
성배를 향한 롱패스처럼 되었지만, 이 볼을 빼앗으면 다시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에 에보우에는 전력을 다해 뛰어오고 있었다.
‘간다.’
상황을 파악한 성배는 볼을 컨트롤함과 동시에 에보우에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빠르게 달려오는 선수를 제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옆으로 볼 빼냅니다! 주, 빠르게 올라갑니다! 역습 찬스!”
에보우에는 라이트백 출신이라 공격력이 좋지 않아 성배에게 꽁꽁 막혀있었지만, 수비력이 좋아 성배의 돌파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성배는 에보우에의 발을 피해 측면 쪽으로 볼을 툭 차 놓았고, 그대로 볼을 따라 달려갔다.
달려와 급제동한 에보우에는 성배를 따라올 수 없었다.
“토트넘, 일제히 올라갑니다! 왼쪽에 베일, 오른쪽에 레넌, 중앙에 킨!”
비록 평소보다 반 박자 늦은 움직임이었지만, 절대적인 스피드가 뛰어났기 때문에 위협적인 역습이 이뤄졌다.
베일과 레넌, 킨, 그리고 볼을 몰고 올라가는 성배까지.
토트넘의 위협적인 역습에 아스날 수비수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식이...’
중앙에 있던 송이 성배를 향해 내려왔다.
그리고 섣부르게 태클하지 않고 몸을 들이밀었다.
성배와 동갑으로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인지 아프리카 흑형치고는 피지컬이 그렇게까지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압도적인 바디 밸런스를 가지고 있는 송의 압박은 성배에게 부담이 되었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성배는 돌파를 멈췄다.
송은 갑자기 멈춘 성배의 움직임에 두 발자국 정도 튕겨 나갔지만, 곧바로 돌아왔다.
“베일에게 연결!”
하지만 이미 성배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베일에게 볼을 넘긴 후였다.
볼의 밑둥을 가볍게 차올려 송의 발 위로 볼을 넘긴 성배는 볼을 넘기자마자 다시 측면을 타고 침투하기 시작했다.
‘비켜, 자식아.’
갑자기 멈췄다가 다시 갑자기 출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추진력을 얻기 위해 송의 유니폼을 주심의 눈에 보이지 않게 잡아당겼다.
송의 몸이 반대 방향으로 쏠리며 성배를 따라오기 힘들게 된 것은 당연했다.
“베일, 다시 주에게!”
그리고 베일은 성배에게 다시 볼을 돌려주었다.
2대1 패스로 송을 가볍게 따돌린 두 선수의 호흡이 인상적이었다.
‘그렇지, 그거야.’
위치 선정 능력과 침투 능력에 있어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베일이었다.
지금도 베일은 성배에게 볼을 돌려준 이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임을 가져갔다.
심지어 그 사냐의 중심을 빼앗은 뒤, 중앙으로 움직였다.
< 낭만필드 - 16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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