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57 >
“으음...”
맨체스터 시티의 마크 휴즈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경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맨체스터 시티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팀이었다.
호비뉴, 조, 숀 라이트-필립스, 파블로 사발레타, 뱅상 콤파니 등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긴 했지만, 그만큼 많은 선수들을 방출해서 조직력의 문제가 분명 있었다.
“역시 수비진이 흔들리네요. 파블로가 모드리치를 막아내지 못하는군요.”
“그렇군.”
수비의 중심인 리차드 던의 수비력은 괜찮았고, 잉글랜드 최고의 수비수 유망주 마이카 리차즈나 콤파니, 사발레타 등 유망주들도 많았지만, 아직은 유망주에 불과했다.
불안한 수비력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지금도 사발레타가 모드리치의 테크닉에 농락당하면서 돌파당해 벤트에게 동점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만수르 부임 하루 전날에 맨시티로 합류한 사발레타의 2008/09시즌은 리차즈에 밀려 중용 받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믿음직한 풀백 한 명만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휴즈 감독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당연히 성배를 향한 시선이었다.
“구단주께서 어떻게든 영입하겠다고 하셨으니 한 번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요? 전과는 다르니까요.”
사실 탁신 구단주도 이전의 구단주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많은 돈을 써서 괜찮은 선수들을 영입해주었다.
하지만 만수르는 그야말로 수준이 달랐다.
호비뉴는 이전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선수였고, 그런 선수를 영입해준 만수르에게 코칭스태프들이 가진 신뢰는 상당했다.
“와주기만 한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쉬울지는 잘 모르겠군. 토트넘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라.”
던과 리차즈가 지키는 중앙 수비는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리차즈와 콤파니가 성장해주기만 한다면 중앙 수비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이들과 비슷한 나이에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성배가 합류해주기만 한다면, 본격적으로 비상을 노릴 한두 시즌 뒤,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는 걱정이 없을 것이었다.
“구단주의 지갑을 한 번 믿어봐야겠군.”
휴즈 감독은 계속해서 자신의 팀과 성배의 플레이에 집중했다.
이적설이 돌기 시작한 이후부터 계속해서 성배의 플레이를 분석했다.
안 그래도 풀백이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러 풀백들을 관찰했지만, 성배만큼 마음에 드는 선수는 없었다.
“우리 구단주께서 영입하지 못하면 그 어느 팀도 영입할 수 없죠. 뭐하면 바이아웃으로 지르신다고 하니까 한 번 믿어봐야죠.”
“그것참 믿음직스럽군.”
나이도, 기량도, 스타일까지도.
맨체스터 시티를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진 선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합했다.
***
“언제까지 그렇게 벤치나 지키고 있으려고?”
“시끄러워. 아직 적응하고 있는 것뿐이다.”
경기는 토트넘의 2-1 승리로 끝이 났다.
볼턴과 아스날, 리버풀에 이어 무려 리그 4연승째.
어느새 4승 3무 5패로 승패의 균형을 맞춰가고 있었다.
3무 5패로 최하위에 처져있던 순위도 어느새 수직 상승, 10위까지 올라오며 리그에 소속된 절반의 클럽들을 제쳤다.
“적응이 뭐 이렇게 오래 걸려? 벌써 두 시즌이나 헤매고 있다고, 너.”
“아아, 알아, 안다고. 그런데 정말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최근 들어서 조금씩 몸이 올라오는 게 느껴질 정도니까. 몸이 올라와서 느낀 건데, 나도 많이 컸더라. 기대해도 좋아.”
“네가 그렇게까지 확신하니까 믿을 수밖에 없네. 누가 뭐래도 벨기에 최고의 재능이니까.”
오늘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콤파니 역시 교체 명단에 포함되어 벤치에 앉아있었다.
성배는 경기 종료 후 오랜만에 만난 콤파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최고 재능은 무슨. 이제 그것도 다 옛말이지. 누가 뭐래도 지금은 네가 한발 앞서 있으니까.”
콤파니는 담담하게 위상의 역전을 이야기했다.
분명 지금은 콤파니보다 성배의 위상이 높아져 있었다.
아무리 벨기에 최고의 재능으로 오랫동안 군림해 온 콤파니라고 해도 2년이라는 시간은 유망주에게 절대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2년 동안 성배는 눈부신 성장을 보여주었다.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역시 국민들이 마음으로부터 응원하는 건 너지. 지금은 몰라도 조금만 더 지나면 맨체스터 시티가 토트넘보다 클 것 같고. 이래저래 너한테 유리한데 거기에 재능까지 네가 한 수 위인데. 내가 잠시 맡아주는 거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배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콤파니보다 나은 선수라 생각한 적 없었다.
미래를 알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콤파니의 재능을 바로 앞에서 지켜봤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콤파니를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예언자’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그럴 것 같은데? 역시, ‘예언자’.”
“좋은 별명이긴 한데... 부끄러우니까 너무 막 그렇게 부르지는 마라.”
이런 반응을 의도한 발언이었고,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반응이 나와서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면전에서 직접 들으면 오글거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어쨌든 이 기믹 덕분에 인지도 하나는 확실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럼 우리 이제 같이 뛰는 건가?”
“왜? 기대되나 봐?”
지난 시즌까지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하던 음펜자 동생, 에밀 음펜자는 플리머스로 이적한 상황.
콤파니의 적응을 도와줄 만한 선수가 없었다.
그리고 콤파니는 가장 먼저 성배의 가치를 알아보고 높이 평가했던 선수이기도 했다.
함께 뛰는 것을 기대하는 것도 당연했다.
“당연하지. 안더레흐트랑 벨기에에서 호흡도 맞춰봤으니 편하겠다, 친하겠다, 결정적으로 실력이 좋으니까. 같이 뛰면 이래저래 좋겠지.”
“뭐, 나도 너랑 같이 뛰는 건 환영인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 뭐, 같이 뛰고 싶기는 하네.”
“그럼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고. 우리가 같이 뛰면 수비라인은 굳이 걱정할 필요 없을 테니.”
“자신감이 대단한데?”
콤파니의 존재는 분명 큰 메리트였다.
물론 그가 없어도 맨체스터 시티는 엄청난 메리트를 가진 클럽이었지만.
***
맨체스터 시티를 잡으면서 UEFA컵 포함 5연승을 거둔 토트넘의 다음 일정은 리버풀과의 칼링컵 4라운드, 16강 경기였다.
첼시와 함께 공동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리버풀은 칼링컵에 선발을 한 명도 내보내지 않은 유망주와 후보 위주의 선발 라인업을 들고 나왔고, 토트넘 역시 지난 시즌과 달리 백업 위주로 나타났다.
지난 시즌에는 막판이었기 때문에 주전 라인업을 끝까지 고수했지만, 이번 시즌은 아직 16강에 불과했고, 주전 라인업을 밀어 넣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경기는 의외로 싱거웠다.
벤트에 밀려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파블류첸코와 프레이저 캠벨이 나란히 두 골씩을 기록하며 4-2 승리를 이끈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윙어로 선발 출전한 베일 역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걸로 모든 대회를 포함해 6연승, 그리고 리그 1위 리버풀을 리그와 컵 대회에서 두 번이나 잡아내면서 레드냅 감독 체제는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베일, 중앙으로 몰고 들어가다가 측면으로! 주의 오버래핑! 한 번 접고, 다시 베일에게! 슈팅! 골! 골입니다! 두 선수가 다시 한 번 골을 만들어냅니다!”
토트넘 상승세의 주역은 레프트백 성배와 레프트 윙어 베일이었다.
뜬금없이 윙어로 포지션을 전향한 베일은 나타나자마자 특유의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팀들의 오른쪽 측면을 털어버렸고, 성배는 아직 투박한 베일의 뒤를 탄탄히 받쳐주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역할 역시 훌륭하게 수행해주고 있었다.
“이 두 선수를 어떻게 막나요! 베일과 주성배, 어마어마한 조합입니다! 완벽해요!”
이들의 조합은 그 어느 팀들도 막아내지 못했다.
분명 베일은 아직까지 투박한 면이 많았다.
윙어가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그 기준에 못 미치는 부분도 많았다.
그리고 성배는 굉장히 좋은 선수였고, 여러 장점이 있는 선수였지만, 킥을 제외하면 압도적인 장점은 없었다.
스피드도 뛰어나지만 압도적이지는 않았고, 돌파력, 공간 활용 능력 등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해주고 있어요. 훌륭한 선수지만, 파괴력이 부족한 주의 단점을 파괴력 그 자체인 베일이, 파괴력이 대단하지만, 아직 어설프고 투박한 베일의 단점을 축구 지능과 영리함 그 자체인 주가 채워주고 있는 모습이죠.”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보완해주는 이 두 명의 조합은 이제 몇 경기 선보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리그 최고 경쟁에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두 선수의 호흡은 완벽했고, 왼쪽 측면이 살아나자 중앙의 모드리치 역시 자신의 역량을 한껏 발휘했다.
중앙이 살아나자 경기 전체가 살아났다.
오른쪽의 레넌 역시 자신의 기량을 뽐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 토트넘의 상승세는 주와 베일, 모드리치. 이 세 선수가 이끌고 있다고 해야겠죠. 언제나 믿음직한 건강한 킹과 건강한 우드게이트 역시 자신의 몫을 다해주고 있고요.”
“한 선수만 딱 꼽으라면 누굴 꼽을 수 있습니까?”
“굳이 한 선수만 꼽으라고 한다면...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역시 베일이죠. 베일의 파괴력은 분명 대단하니까요. 그의 스피드와 돌파는 지켜보는 팬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죠.”
지금 토트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역시 베일이었다.
베르바토프의 이탈 이후 프리미어리그 최강의 공격진을 가졌던 토트넘의 창이 무뎌진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눈에 띄는 공격수였다.
언젠가 막히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선수를 꼽아야 한다면 저는 주를 꼽고 싶네요.”
“주를 말입니까?”
예상과 달리 해설자의 선택은 성배였다.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베일이지만, 그가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 지금 베일이 보여주는 모습은 어디까지나 주가 있기에 가능한 거거든요? 주는 베일이 없을 때도, 말브랑크와 함께 뛸 때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오히려 지금은 베일의 뒤를 받쳐주기 위해 자제하는 모습이죠. 지난 시즌 후반기에 주가 나타났을 때는 지금의 베일 이상으로 센세이셔널했으니까요.”
실제로 베일이 윙어로 나서기 시작한 이후부터 성배는 공격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굳이 자신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극적인 돌파 플레이는 베일에게 맡겨두고 성배는 측면에서의 크로스와 베일이 조금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집중했다.
실제로 성배 자신은 이런 플레이를 더 편하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베일은 주가 없으면 지금과 같은 플레이를 보여주기 힘들 거예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투박하고 윙어 자리에 익숙하지도 않으니까요.”
실제로 지난 [위클리 플레이어]에서 베일은 성배에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윙어로 처음 출전한 경기에서 자신에게 해준 격려와 뒤를 받쳐준 플레이에 대한 감사였다.
그도 자신의 활약이 성배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1, 2년 안에 토트넘의 에이스가 되겠지만, 지금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주면서 팀이 부드럽게 돌아갈 수 있도록 희생해주는 주를 토트넘의 핵심 선수로 꼽고 싶네요.”
일반 팬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축구를 잘 아는 사람들, 특히 전문가들은 성배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최소한 자신의 몫은 해주는 선수,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수, 어느 전술에도 어울려 활용도가 높은 선수.
팬들보다는 감독이나 동료들이 높게 평가하는 선수가 바로 성배였다.
< 낭만필드 - 15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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