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47 >
“파투에게 연결됩니다! 과감한 돌파 시도, 하지만 여기까지! 베르통헨이 막아냅니다!”
이제 겨우 올림픽 첫 경기를 치르는 상황이긴 했지만, 브라질의 공격력이 심상치 않았다.
에이스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AC 밀란 소속의 ‘천재’, 알렉산드르 파투는 성인 대표팀과 연령대별 대표팀, 심지어 소속팀에서까지 노예처럼 구른 영향 때문인지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왼쪽으로 크게 열어주는 안데르송! 하지만 주가 한발 앞서서 끊어냅니다!”
왼쪽의 호나우지뉴는 성배의 수비에 고전하면서도 간혹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혼자서 경기를 가져갈 수 있었던 옛날 모습은 이미 아니었다.
디에구의 플레이가 그나마 괜찮았지만, 펠라이니와 시몬스, 파이터형과 지능형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활용하는 벨기에를 맞이해 특별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오른쪽의 에르나네스는 본래 중앙 미드필더 자원이었고, 큰 기대를 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겠어.’
역대 브라질 연령별 대표팀 중 가장 이름값이 초라한 팀이라는 평가와는 다르게 실속은 있는 팀이었다.
벨기에의 공격진이 침묵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수비진은 어느 팀과 붙어도 통한다.’
그러나.
벨기에의 수비진은 벨기에 연령별 대표팀 역사에서 압도적으로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브라질의 어린 선수들이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수비라인은 아니었다.
“벨기에, 빠르게 공격진영으로 넘어갑니다. 주가 시몬스, 시몬스가 펠라이니에게!”
벨기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중앙 미드필더가 시몬스와 펠라이니, 공격이나 패싱보다는 수비에 재능이 있는 선수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공격진이 빈약한 것은 이제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 플레이 메이커의 빈자리는 너무 아쉬웠다.
지난 시즌 주필러 리그 최우수 선수로 뽑히며 스탕다르의 우승을 이끌었던 데푸르의 부상 공백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펠라이니, 오른쪽의 마르텐스에게! 마르텐스, 돌파 시도!”
성배에게 강하게 한 대 얻어맞은 마르셀루는 이후 소극적인 플레이로 일관하고 있었다.
호나우지뉴의 떨어지는 돌파력을 보완해주어야 하는 마르셀루가 위축되면서 성배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마르텐스의 크로스! 브레누, 걷어냅니다!”
게다가 수비에 집중한다고 해서 부족한 수비력이 없던 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르셀루가 수비에 집중할수록 본인의 장점을 잃어갔고, 벨기에의 플레이는 편해졌다.
제공권이 조금만 더 강력했다면 추가 골을 넣었을 것이었다.
‘안전하게만 지키면 될 것도 같은데.’
성배는 이쯤에서 잠그고 수비에 집중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남은 시간은 대략 30여 분.
좀 많은 시간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현재 벨기에의 장점을 살리려면 그것이 맞는 것 같았다.
‘아니면 좀 세트피스를 얻어오던지.’
프리킥과 코너킥이라면 또 자신 있었다.
펠라이니와 콤파니, 베르통헨이라면 브라질을 제공권으로 찍어누를 수 있을 것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확실한 것은 지금 벨기에가 보여주는 공격력으로는 브라질의 마지막 수비를 뚫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쟤가 왜 저기 있지?’
무난하게 경기가 흘러가던 중, 성배의 눈에 뭔가 이상한 모습이 포착되었다.
펠라이니가 본인의 위치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올라간 것이었다.
거의 브라질 포백 라인 바로 앞이었다.
‘지금은 저기 있을 때가 아닌데.’
지난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성배의 요구대로 전진해서 큰 재미를 봤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탈리아 수비수인 칸나바로가 제공권에 확실한 약점을 보였을 때였고, 윙어없이 중원에만 다섯 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했을 때였다.
투톱과 윙어를 모두 기용해 중원에는 시몬스와 펠라이니, 단 두 명밖에 없는 오늘 활용할 전술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실수인 이유가 또 한 가지 있었다.
“베르마엘렌이 전방으로 길게 넘겨줍니다!”
바로 지금 볼을 잡고 있는 선수는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펠라이니가 전방으로 올라가면서 중원의 빈틈이 지나치게 커졌고, 이번에 볼을 따내지 못하면 바로 역습에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베르마엘렌의 평범한 롱패스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브레누가 먼저 걷어냅니다! 안데르송에게!”
브라질의 브레누는 바이에른 뮌헨이 훔멜스를 포기하면서까지 붙잡았던 센터백 유망주였다.
비록 얼마 뒤,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선수생활이 끝나기는 하겠지만, 그 재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89년생으로 열여덟 살에 불과한 선수가 브라질 올림픽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는 것만 봐도 무시무시한 재능임을 알 수 있었다.
“안데르송, 빠르게 전방으로! 디에구에게 연결합니다!”
‘제길. 최악이다.’
브레누가 헤딩으로 클리어한 볼을 받은 안데르송은 지체하지 않고 디에구에게 연결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전력 외 판정을 받으며 고생하고 있었지만, 최고의 유망주에게 수여하는 유로피언 골든보이 위너의 센스는 어디 가지 않았다.
“디에구, 빠르게 드리블해 들어갑니다! 시몬스가 따라붙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디에구와 파투, 호나우지뉴, 루카스와 교체되어 들어온 하미레즈까지.
브라질 선수들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순식간에 치고 들어왔다.
“디에구, 줄듯 말듯, 주지 않고 돌파합니다!”
아무리 벨기에 수비수들의 재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이번 역습은 매우 아팠다.
어느새 디에구를 비롯한 브라질 선수들은 위험지역까지 파고 들어왔고, 이젠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제발 하나만 막자.’
벨기에의 공격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실점한다면 무승부까지는 몰라도 승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시몬스의 태클! 아! 디에구, 크게 넘어집니다!”
-삐-익!
그때, 디에구를 놓쳤던 시몬스가 다시 돌아와 강력한 태클을 시도했다.
디에구의 돌파까지는 막을 수 있었지만, 볼이 아닌 디에구의 발목을 걷어차고 말았고, 주심의 휘슬이 이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알 감디 주심, 시몬스에게 옐로우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경고가 주어지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아까 그 상황에서 또 한 번 전진을 허용하면 정말 위험했거든요?”
결국, 시몬스는 주심에게 경고를 받고 말았다.
그래도 남은 일정이 중국, 뉴질랜드라는 비교적 쉬운 팀과의 경기였기 때문에 경고와 실점 위기를 맞바꾼 것은 나름 수지가 맞는 장사였다.
“마루앙. 지금은 그렇게 올라갈 상황이 아니었어.”
“아, 미안. 뛰다 보니까 흥분해서.”
경기가 잠시 중단된 틈을 타서 성배는 펠라이니에게 다가가 이번 플레이의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상대 공격수들까지 전부 밑으로 내려가거나 내가 볼을 잡고 있을 때. 이 두 가지 경우가 아니면 올라가지 마. A대표팀이랑은 달라. 중원이 얇은 전술이라고.”
“알았어. 미안하다니까.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엄마.”
성배도 펠라이니의 제공권이 탐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장점은 제공권이 아니라 중원장악력이었다.
한물갔다고는 해도 그 가투소와 팽팽하게 맞붙었던 선수가 펠라이니였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면 제공권을 포기하는 쪽이 옳은 선택이었다.
“호나우지뉴가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몇 차례 번뜩이는 장면을 만들어낸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호나우지뉴인데요, 그래도 호나우지뉴는 호나우지뉴죠. 이런 데드볼 상황에서의 킥은 아직 살아있어요. 조심해야 합니다.”
브라질의 키커는 호나우지뉴였다.
사실, 지금의 호나우지뉴는 지워져 있다가 잊혀질 때쯤 한 건 해주면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 이상의 활약은 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존재감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몇 차례 날카로운 패스를 날려주었다.
‘킥 감각은 살아 있어.’
몇 차례 호나우지뉴의 테크닉에 속아 크로스를 허용했던 성배는 오늘 호나우지뉴의 킥 감각이 좋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위험하긴 한데...’
하지만 그걸 눈치채고 있다고 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프리킥이 빗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호나우지뉴, 도움닫기! 그대로 슈팅!!”
‘들어갔네.’
호나우지뉴가 달려들어 볼을 걷어찬 그 순간, 성배는 실점을 확신했다.
지금의 킥을 완성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볼을 걷어찼던 성배였다.
임팩트 순간과 첫 궤적만 봐도 좋은 킥인지 아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 여기서 실점합니다. 77분, 호나우지뉴의 프리킥에 의해 실점하면서 경기가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성배의 예상대로 호나우지뉴의 프리킥은 벨기에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깔끔하게 날아갔다.
경기 종료까지 15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허용한 동점 골에 벨기에의 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
“마르셀루, 엄청난 돌파! 주도 속수무책!”
호나우지뉴의 동점 골 이후 브라질은 무서운 기세로 막판 뒷심을 과시했다.
삼바의 나라, 축제의 나라답게 분위기에 따라 경기력이 달라지는 브라질이었고, 뜨겁게 타오른 브라질의 파상공세에 벨기에는 수비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마르셀루, 중앙으로 크로스! 콤파니가 걷어냅니다!”
축 처져서 고전하던 마르셀루 역시 제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소한 마지막 15분은 마르셀루가 성배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앞선 75분은 성배의 KO승이었지만.
“경기 종료 휘슬! 벨기에, 축구왕국 브라질을 맞아 1-1 무승부를 거두면서 나쁘지 않은 시작을 알립니다.”
콤파니가 볼을 걷어낸 순간,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후반 막판에 동점 골을 허용했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결과네요. 브라질을 상대로 무승부라면 충분히 잘해준 거죠.”
최근 부진했던 브라질은 과거 전성기 시절 벌어놓았던 포인트가 사라지며 FIFA 랭킹 6위까지 떨어졌지만, 벨기에보다는 한참 위에 있었다.
과거 전성기 시절에 벌어놓았던 포인트를 이미 다 까먹은 벨기에는 이탈리아를 꺾고 조금 올라갔다가 남은 포인트를 까먹으며 현재 42위였다.
무승부만 해도 팬들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결과였다.
“이제 남은 두 경기는 중국과 뉴질랜드인데, 이 두 팀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들이거든요? 최소한 8강 진출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조 편성이 좋습니다. 다음 중국과의 경기를 기대하며 오늘 중계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
-삐-익!
“뭐라고! 이게 파울이라고?”
주심이 파울을 선언하며 휘슬을 불었다.
하지만 성배는 그를 인정할 수 없었다.
어지간해서는 흥분하지 않는 성배였지만, 지금은 순간적으로나마 속에서 욱하고 올라왔다.
‘예상은 했지만...’
사실 중국의 이러한 행위는 예전부터 유명했다.
중국에서 펼쳐지는 경기에서 중국과 한 조에 속했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겪어보니 기분이 참 더러웠다.
‘마냥 쉽지만은 않겠어.’
중국의 전력은 솔직히 긴장할 가치조차 없었다.
정상적인 경기였다면 다시는 벨기에의 붉은 유니폼이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두드려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연령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13억 인구 중에 열한 명을 뽑았는데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편파 판정은 작지 않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였다.
< 낭만필드 - 14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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