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19화 (94/356)

< 낭만필드 - 119 >

[주성배, 1골 1어시스트 기록하며 팀의 대승 이끌어.]

[또 어시스트 추가한 주성배, 리그 8어시스트. 지난 시즌 기록 넘어서.]

[브레이크 없는 질주, 주성배 완벽 분석.]

[아약스 팬들이 꼽은 ‘전반기 최고의 선수’, 주성배 선정.]

버크만에게 이적을 알아봐 달라고는 했지만, 모든 일을 버크만 혼자서 할 수 없었다.

성배도 거기서 할 일은 있었고, 성배가 할 일은 최대한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것이었다.

전반기에만 프리킥 골 네 골을 포함해 다섯 골을 넣고 여덟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성배의 활약은 에레디비지에를 씹어먹는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지난 시즌 3골 14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순수하게 리그에서 뽑아낸 어시스트는 여덟 개였다.

고작 열일곱 경기, 정확히 시즌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지난 시즌과 동률을 이룬 것이었다.

게다가 이런 공격 지표들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제는 그렇게 말하기도 애매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평가에 따르면 성배의 진짜 장점은 노련한 플레이와 안정적인 수비에 있었다.

시즌 동안 헤이팅아를 도와 수비라인을 조율한 것도 성배였다.

베르마엘렌과 베르통헨으로 이루어진 경험이 적은 센터백 조합을 이끌며 총체적 난국에 빠진 아약스가 어찌 되었든 3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 1등 공신이기도 했다.

[토트넘, 약점 보강 위해 아약스 주성배 노린다!]

[페레이라의 대체자 원하는 첼시, 주성배 위해 10M 장전.]

[반덴 보레로 실패한 피오렌티나, 주성배로 만회 노려.]

[주성배 주가 폭등! 예상 이적료, 900만 유로까지 치솟아.]

성배가 맹활약을 펼치는 동안 버크만도 일을 제대로 해주고 있었다.

겨울 이적시장이 다가오면서 취약 포지션을 보강하기 위한 팀들의 움직임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버크만은 그중 레프트백, 적어도 풀백이 필요한 모든 클럽들을 상대로 세일즈를 벌이고 있었다.

겨울 이적시장에는 상대적으로 매물이 적기 때문에 성배는 앨런 허튼, 이바노비치 등을 제치고 시장에 나온 풀백 매물 중 최대어로 꼽히고 있었다.

안 그래도 수가 적은 레프트백이라는 포지션에 구하는 팀은 많으니 몸값이 치솟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단 대충 추려는 놨습니다만, 혹시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 건네받은 계약서를 모두 가져왔습니다.”

아직 이적시장이 열리기까지는 열흘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이미 아약스 측과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었다.

아약스도 이적시장에서 중개 무역으로 재미를 보는 클럽이었기 때문에 성배가 이적을 결심한 이상 잡을 방법이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아약스가 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

조금이라도 더 비싼 값에 성배를 이적시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적은 것 같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예상보다 적은 계약서였다.

“아약스가 중간에서 배짱을 좀 튕겼습니다. 그래서 몇몇 클럽들은 떨어져 나갔고, 다섯 개 클럽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워낙 성배를 원하는 클럽이 많았기 때문에 아약스가 배짱을 튕길 수 있는 판이 만들어졌다.

포르투나 세비야만큼은 아니지만, 아약스도 만만치 않은 거상이었다.

게다가 겨울 이적시장에서 갑은 선수를 파는 클럽일 수밖에 없었고, 을의 입장에 선 상대 클럽들은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이적료가 어느 정도라고 했었죠? 도저히 감이 안 잡히는데.”

그 과정에서 지난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600만 유로 수준이었던 성배의 이적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성배의 적정 이적료를 750만 유로 수준으로 추산했고, 겨울 이적시장의 거품을 감안해도 최대 900만 유로 수준이라 예상했지만, 그것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아약스의 상술은 한계를 몰랐다.

“제가 알기로 이적료는 최대 900만 파운드, 최소 950만 유로입니다. 유로로 따지면 최대 1,100만 유로까지 올라간 겁니다. 아약스도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지난 여름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로 뛰어버린 이적료였다.

프리킥을 장착한 성배의 가치가 높아졌고, 플레이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선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겨울 이적시장의 특수성과 영입에 뛰어든 팀들이 많았다는 점, 그리고 아약스의 상술까지 더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와우, 대단합니다. 자, 그럼 그 험난한 과정을 모두 통과하고 저에게 계약을 제시한 클럽들이란 말인데... 기본적으로 빅클럽이겠군요.”

성배는 자신의 앞에 놓인 다섯 장의 계약서를 바라보았다.

언뜻 보이는 엠블럼만으로도 유명한 클럽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약스가 배짱을 튕겨준 덕분에 쭉정이들은 전부 다 걸러졌다고 보면 됩니다. 아, 다른 클럽들이 쭉정이라는 건 아니고, 우리 입장에서 이적할 가치가 있는 클럽만 남았다는 뜻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적료를 받아내려는 아약스의 배짱에 이적을 제의한 클럽의 숫자가 많이 줄었지만, 덕분에 진짜로 성배의 영입이 급한 클럽만 남았다.

굳이 이쪽에서 할 일을 줄여주었으니 고마운 일이었다.

“EPL이 두 팀, 세리에가 두 팀, 라리가가 한 팀... 4대 리그 중 세 곳에서 제안이 왔다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모든 리그에서 리그 특징에 상관없이 주성배 선수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본다는 뜻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누구라도 지금의 활약을 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성배는 미소를 지으며 계약서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빅클럽들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높고 화려한 시기를 보낼 클럽일지도 몰랐다.

신중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첼시, 토트넘, 피오렌티나, AC 밀란, 그리고 세비야라...”

전부 풀백들이 급한 클럽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바르셀로나 등도 계약을 제의했지만, 현재 주전 풀백들의 장기적인 대체자를 구하는 중이었기에 중간에 포기했다고 합니다.”

장기적인 대체자를 구하기에 1,000만 유로는 너무 큰 돈이었다.

게다가 성배가 주전이 아닌 장기적 대체자 자리에 만족할 리도 없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알아서 빠진 것이었다.

“여기는 레프트백이 아니라 라이트백을 구하는 거 아닙니까?”

성배가 하나의 계약서를 들어 보였다.

“맞습니다. 아무래도 왼쪽에는 프리미어리그 최고라는 풀백이 버티고 있으니까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레프트백을 보유했지만, 그의 파트너인 라이트백은 노쇠화를 보이기 시작한 클럽.

바로 첼시였다.

애슐리 콜의 왼쪽이 아닌 페레이라의 오른쪽을 보강하려 하고 있었고, 라이트백으로도 레프트백 못지않은 활약을 보여준 성배를 노렸다.

“그렇다면 일단 이건 제외하죠.”

하지만 성배는 라이트백으로 뛸 생각이 없었다.

다른 대안이 없다면 모를까, 대안이 있는 상황에서는 고려할 가치도 없는 제안이었다.

“세리에A도 제외하죠. 이탈리아 축구는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괜찮은 선택입니다. 폐쇄적인 세리에를 선택하는 건 분명 위험성이 큽니다.”

폐쇄적이고 타 인종에게 엄격한 이탈리아 축구도 배제했다.

피오렌티나와 AC 밀란이 걸러졌고, 남은 것은 두 팀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군요. 이곳으로 하겠습니다. 계약 진행해주세요.”

성배가 한 장의 계약서를 버크만 앞으로 내밀었다.

***

“결국, 윈터브레이크 전까지 무승 행진을 끊지 못한 아약스입니다. VVV와 2-2 무승부를 거두며 네 경기 연속 승리를 추가하지 못합니다.”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기 전의 마지막 경기, VVV-벤로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아약스는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아무리 약팀과의 경기라지만, 한 경기 정도는 무승부에 그칠 수 있었다.

문제는 벌써 네 경기 째 승리를 추가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번 휴식 기간이 아약스에게는 굉장히 중요할 것 같네요. 회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아약스라도 장담할 수 없어요.”

케이테 감독의 경질 이후, 아약스는 끝없는 부진에 빠져 있었다.

코스터 임시 감독 체제에서 치른 열한 경기에서 5승 3무 3패, 리그만 따지면 4승 3무 3패에 그쳤다.

다른 클럽이었다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겠지만, 분명 아약스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선수들의 기량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어떻게 버텼지만, 그것 때문에 선수들의 체력 저하도 같이 나타나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시즌 막판에 힘이 달릴 수밖에 없죠.”

4승도 선수들의 개인 기량 덕분에 거둘 수 있었던 성적이었다.

하지만 팀 전술에 비해 개인 전술은 체력 저하가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면 언제든 방전될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에 와서는 다행이지만...”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에서 슬라비아 프라하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고 탈락한 아약스는 이어진 UEFA 컵 1라운드에서도 디나모 자그레브에게 일격을 당했다.

유럽 대항전에서 완전히 탈락해버린 것이었다.

아약스가 10월이 지나기도 전에 유럽 대항전에서 물러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약스 입장에서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선수를 영입하고 전술을 가다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그게 유일한 방법이거든요?”

“하지만 이번 겨울에 주가 팀을 떠날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훈텔라르, 수아레즈와 함께 팀을 억지로 끌고 가던 주의 이탈은 큰 타격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겨울 이적시장이 더욱 중요하죠. 주성배 선수의 예상 이적료는 1,000만 유로 정도로 뛰었는데, 그 돈이면 쏠쏠하게 활약해줄 수 있는 선수 두 명 정도를 영입할 수 있어요.”

갈 길이 바쁜 아약스에게 성배의 이탈은 치명적이었다.

팬들에 의해 전반기 최고의 선수로 뽑힌 성배였기에 심각한 타격이었다.

“하지만 주성배 선수가 이적한다고 하더라도 아약스의 선수단은 여전히 에레디비지에 최고거든요? 영입도 영입인데, 그것보다는 팀을 정비하는 것이 우선이죠. 정비만 되면 언제든 다시 반등할 수 있는 팀이거든요?”

여하튼 아약스의 전반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윈터 브레이크를 맞이한 아약스가 과연 반등할 수 있을지, 네덜란드 축구 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

“역시 이적할 거면 최대한 빠른 날짜에 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고 몇 시간 뒤, 성배는 암스테르담 공항으로 향했다.

바로 전날 경기를 치르고 동료 선수들과 정식 송별회 전에 간단하게 송별회를 가졌던 성배는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옆에서 버크만이 애써 이 상황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당연합니다. 어차피 이적할 거라면 최대한 빨리 합류하는 게 좋은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신경 쓰지 마세요.”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찍부터 아약스와 협상한 것이었다.

성배의 요구대로 아약스는 12월부터 이미 다른 클럽들과 협상을 시작했고, 이적료 협상이 마무리되어 성배에게 개별 계약서가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중 한 팀과 계약을 진행해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출국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버크만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신 비행기에서는 좀 자겠습니다. 너무 피곤해서요. 죄송합니다.”

성배의 얼굴에서 피곤이 뚝뚝 떨어졌다.

이적도 좋지만, 일단 지금은 자고 싶었다.

고작 한 시간 반 정도의 비행시간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쉬웠다.

< 낭만필드 - 119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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