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113화 (88/356)

< 낭만필드 - 113 >

[주성배, 암흑기를 빛내주는 별이 될 것인가.]

[암흑기의 유일한 희망, 아시아산 보석(Bijou).]

[유로 예선 맹활약, 주성배에 대한 빅클럽 관심 폭주.]

이번 유로 예선 두 경기에서 보여준 성배의 활약은 벨기에 언론과 팬들, 그리고 빅클럽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게 했다.

폴란드전과 포르투갈과의 2연전, 그리고 핀란드전까지.

최근 유로 예선 네 경기에서 1무 3패에 그친 벨기에 대표팀의 성적은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팬들을 또 한 번 실망시켰다.

그런 팬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어린 선수들, 새로운 선수들의 분전이었다.

ㄴ 주가 저렇게까지 잘했었나? 엄청난데? 안더레흐트에 있을 때는 주필러 리그라서 그런 줄 알았고, 아약스에서는 에레디비지에 수준까지 성장한 줄 알았는데, A매치 보니까 세계 수준인 것 같기도 하고... 도저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을 할 수가 없다.

ㄴ 진짜 주가 대단하긴 대단해. 어떤 경기를 봐도 주가 못한 경기는 거의 없어. 비슷한 나이의 베르마엘렌이나 펠라이니, 심지어 콤파니마저도 가끔 정줄을 놓을 때가 있는데, 얘는 그런 게 없어. 그 나이에 이런 안정감이라니. 이건 정말 대단한 거야.

ㄴ 난 그동안 이 친구가 엄청 잘하는 친구라는 걸 알고 있었지. 그런데 아쉬웠던 점은 안정감 그 이상이 없다는 거였어. 그런데 이번 두 경기에서 그 알을 깨뜨린 것 같아서 앞으로가 더 기대돼.

ㄴ 주도 주인데, 베르통헨도 엄청 잘하지 않았어? 데뷔전이라기에 봤는데, 꽤 잘하던데?

ㄴ 주 - 베르마엘렌 - 베르통헨. 이 아약스 트로이카가 앞으로 붉은 악마 수비진의 핵심이 될 거야. 주가 오른쪽도 소화할 수 있으니까 양쪽에 주랑 베형제 중 한 명 놓고, 중앙에 나머지 한 명에 콤파니까지. 키야, 생각만 해도 배부르다.

원래도 벨기에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성배지만, 이번 두 경기를 통해 그 기대감의 크기가 확 커졌다.

그동안은 성배에게 안정적인 공수 밸런스를 기대했다면, 이제는 측면을 지배해주길 바라기 시작한 것이었다.

포르투갈전에서 완벽히 측면을 분쇄한 덕분이었다.

[아스날, 라이트백으로 주성배에 관심.]

[첼시, 페레이라 후계자로 주성배 노린다.]

[레프트백 고민에 빠진 뮌헨, 그 대안은 주성배?]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이적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일부는 버크만의 작품이었고, 일부는 버크만이 모르는 정보이거나 찌라시였다.

벨기에 언론은 물론이고, 황색으로 유명한 잉글랜드를 비롯해 빅리그가 있는 국가의 언론에서까지 이런 이적설들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번 두 경기에서 성배가 얼마나 임팩트있는 활약을 펼쳤는지 알 수 있는 현상이었다.

[어떤 식으로 대처합니까?]

그리고 당연히 성배와 버크만도 이번 이적시장 계획을 새로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이적설 중 상당수는 찌라시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관심을 표현한 경우도 그에 못지않게 많았다.

버크만은 이러한 변화에 따라 이적시장에서의 태도를 수정할지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변할 건 없어요. 이런저런 작업들은 알랭이 알아서 해주면 됩니다. 중요한 건 이번 이적시장에서는 이적하지 않는다는 것, 그거 하나입니다.”

성배는 아직 이적할 마음이 없었다.

아약스에 합류하고 나서 한 시즌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도 걸렸고, 아직 빅리그에 도전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부분도 걸렸다.

[솔직히 지금보다 더 높은 몸값을 받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몸값을 생각하면 지금이 최고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의 기량도 충분히 빅리그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 올라온 것 같고요.]

하지만 버크만은 생각이 다른듯했다.

확실히 성배의 몸값은 지금 최고점을 찍고 있었다.

A매치에서의 맹활약과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 안더레흐트와 아약스를 거치며 수준에 상관없이 매번 소속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는 성장 속도까지.

유망주로서 갖춰야 할 것 중 대부분을 갖춘 선수가 성배였다.

“솔직히 지금 바로 건너가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자신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돼요. 아직 피지컬이 부족합니다. 다행히 1년 1년이 다를 나이라서 내년만 되어도 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약점이었던 피지컬이 많이 좋아졌음은 성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욕심이 났다.

1년 만에 이 정도 발전이 있었는데, 1년이 더 지나면 어느 정도까지 개선될지 기대되어 잠도 설칠 정도였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습니다.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인데.]

성배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까지 뜨겁게 달아오른 상황에서 이적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하지만 성배는 앞으로 더 높은 몸값을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정 그렇게 아쉬우면 저랑 내기 한 번 하시겠습니까?”

[내기 말입니까? 일단 들어보겠습니다.]

자꾸 지금의 몸값이 최고점일 것이라 확신하는 버크만의 말에 발끈한 성배는 내기를 제시했다.

“지금의 추정 몸값보다 더 높은 몸값을 받고 이적하면 제가 이기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알랭이 이기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자신은 앞으로 조금씩 더 발전할 것이었다.

그리고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바닥.

다시 말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질 것이라는 말과 같았다.

지금의 활약을 다시 보여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호오, 뭐 걸고 하는 겁니까?]

어느 나라든 남자라는 동물들은 내기에 환장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쪽에게 시계 하나 사주는 것. 어떻습니까? 가격대는 서로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마음을 표현하는 정도로 하죠.”

[좋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네요.]

성배의 의사가 확고한 이상, 이번 이적시장에 이적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버크만을 달래고 재미도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 내기를 선택한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꽤 영리한 결정이었다.

‘시계. 사줄 마음은 없지만. 미리 모델부터 골라볼까.’

현재 성배의 추정 몸값은 350만 유로 수준이었고, 예상 이적료는 600만 유로 근처였다.

98/99시즌의 반 브롱코스트나 얼마 전 이적에 합의한 레이튼 베인스, 도메니코 크리시토와 비슷한 수준의 이적료였다.

상당히 높은 몸값이었지만, 성배는 자신이 있었다.

“나중에 다른 말 하기 없습니다. 지기 싫다고 제 몸값 올리는 작업에 소홀한 것도 안됩니다. 정정당당하게. 동의하십니까?”

[당연합니다. 내기도 중요하게 시계도 가지고 싶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에이전트로서의 자존심입니다. 당연히 정정당당할 겁니다.]

매년 성장하겠다는 선수의 자존심과 항상 정확하게 시장을 파악하고 예측해야 하는 에이전트의 자존심이 충돌했다.

“이대로 딜하겠습니다.”

[딜! 다음 이적시장에서 한 번 보겠습니다.]

***

“그래도 이번에는 좀 살만했어요. 작년처럼 무식하게 운동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래? 잘했네. 축구도 좋지만,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마.]

성배는 어머니 혜진과 전화통화를 나누었다.

올해도 혜진은 유빈이와 함께 네덜란드로 날아와 휴가를 보냈다.

국가대표팀 경기와 그에 이은 인터뷰, 그리고 광고 촬영과 스폰서 계약 등이 겹치는 바람에 성배가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해외여행의 맛을 알게 된 탓도 있었다.

“힘들게는 안 해요. 그래도 다른 선수들 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해야죠.”

축구에 관해서 만큼은 항상 진지한 성배였다.

자신의 재능이 부족함을 처절하게 깨달았던 지난 생에서부터 이어온 습관이었다.

[그건 뭐... 네가 알아서 하겠지. 그래서 준비는 잘했어?]

“네. 아마 이번 시즌에는 영상에서 제 모습이 조금 더 많이 나올 거예요.”

한국에서 에레디비지에를 볼 수 있는 방법은 해외 사이트를 통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그래서 성배는 에이전시인 Avec Ascension에 동영상 편집과 전송을 의뢰했고, 아버지 메일로 매 경기 편집본이 보내지고 있었다.

[그래.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한 10분만 나와봐.]

“어머니, 10분이면 엄청 많이 나오는 거예요. 한 경기 10분 정도 나오려면 카카 정도는 되어야 할 걸요?”

90분 경기에서 10분이라니.

앵글에 코나 팔 정도만 살짝 걸치는 것까지 포함해야 겨우 채울 수 있을 것이었다.

“유빈이는 어때요?”

[여행할 때는 좋다고 난리 치더니, 지금은 여행 때문에 손이 굳었다고 난리야. 요것을 그냥... 이제 수험생도 아니니까 좀 굴려줘야겠어.]

작년 예고 입시에서 합격한 유빈이는 이제 어엿한 고등학생, 그것도 예술 고등학교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수두룩한 곳에 들어가 자극을 받는 모양이었다.

“맞아요. 스트레스는 좀 받겠지만, 그렇다고 특별 취급해주면 더 안 좋아요.”

어디서.

세계를 무대로 하면서 받을 스트레스와 비교하면 배부른 투정이었다.

곧 유학까지 올 녀석이 그 정도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면 나중에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예고가 힘들다고는 해도 충청북도에서 좀 한다는 애들이 모인 것도 견디지 못하면 다른 나라의 재능들과 겨뤄야 하는 유학생활을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위로도 좀 해주고 그래. 너무 강하게 키우지 말고. 아버지도 안 그러는데 어떻게 네가 더 그러니.]

아무래도 자신의 딸이라서 그런 것인지 혜진은 유빈이가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내가 너무 냉정한 건가?’

유빈이에게만큼은 너무 무르다고 생각했는데, 좀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최소한 이 부분에서만큼은 엄격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직접 자신을 깎아가며 살아와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하하, 위로는 어머니랑 아버지께서 많이 해주실 텐데요, 뭐. 그리고 걔는 제가 좀 얄밉게 해줘야 더 힘을 받아요.”

남매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놀림받지 않기 위해 더 힘을 내는 그런 존재.

사이가 좋든 나쁘든 서로를 놀릴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관계였다.

[그래. 뭐,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너는 어때? 올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번에 휴가를 보내면서 혜진과 유빈은 성배의 달라진 위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고작 1년에 불과한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네덜란드는 물론이고 독일에서까지 성배를 알아보는 축구팬들이 적지 않았다.

대다수가 벨기에나 네덜란드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작년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올해도 자신 있어요. 작년처럼 먹을 거 가지고 고문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했거든요.”

이번 오프시즌에는 신장과 체중, 근육량의 변화로 인해 미묘하게 틀어진 신체 밸런스를 바로잡고 유연성을 기르는데 중점을 두었다.

결과 역시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이번 시즌이 빨리 개막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또 이사 가려고요. 그러려면 무조건 잘해야죠.”

처음 아약스에 합류할 때 마지노선으로 정해두었던 2년.

이번이 그 2년째 시즌이었다.

슬슬 빅리그를 향한 준비를 시작할 때였다.

< 낭만필드 - 113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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