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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70화 (45/356)

< 낭만필드 - 070 >

“초콜릿!! 초콜릿 사러 가자. 나 초콜릿 먹으러 벨기에 옴. 벨기에는 초콜릿 말고 볼 거 없지 않음?”

“매일 초콜릿이냐? 그렇게 많이 사는데 어떻게 하루 지나면 다 없어져? 너도 진짜 대단하다.”

초콜릿 먹으러 벨기에에 왔다는 말대로 유빈이는 벨기에에 도착하자마자 초콜릿을 뱃속으로 들이붓고 있었다.

벨기에 초콜릿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배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몸을 만들어야 하는 성배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기도 하고.

“그래. 초콜릿 사자. 이게 스트레스가 확 풀리네. 뭔가 고급스러운 단맛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혜진도 신나게 초콜릿을 집어 먹고 있었다.

유빈이 뿐만 아니라 혜진까지도 그러는 것을 보니 확실히 여자들이 단 것을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았다.

‘자스민도 그랬었지.’

자스민도 초콜릿을 비롯한 단 것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좋아. 그러면 먼저 초콜릿 사러 갔다가, 벨기에 왔으니까 와플 사 먹고 출발하죠.”

역시 ‘벨기에’ 하면 프렌치프라이와 초콜릿, 그 전에 와플이었다.

휴가 일정이 얼마 되지 않는데, 벌써 하루가 지나가 마음은 급했지만, 여행은 역시 먹는 것이 남는 것이었기에 유명한 와플 가게로 직행했다.

***

“너는 안 먹니?”

“네. 저는 안 먹어요. 유빈이랑 많이 드세요.”

브뤼셀을 대표하는 와플 가게였기 때문에 혜진과 유빈은 만족하면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휴가철이라 사람들이 많아서 성배가 이십여 분을 줄까지 서가며 주문했는데, 정작 성배는 먹지 않고 있었다.

“응? 오빠는 왜 안 먹어?”

볼 터지겠다.

확실히 공항에서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유빈이는 조신함과 거리가 멀었다.

“몸 만드는 중이라. 유럽에서 이 몸으로 뛰다가는 툭 밀면 픽 하고 쓰러지거든.”

성배는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두 사람이 먹는 것을 보니 여기서 식사가 해결될 것 같아 자신도 도시락을 까먹기로 한 것이었다.

“응? 오빠 몸 지금 완전 좋은데? 예전에는 멸치였는데, 요즘은 몸짱이야, 완전.”

유빈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이제 막 몸짱 열풍이 불기 시작한 시점이라 연예인 중에서도 식스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때였다.

헬스 근육이 아니라 운동을 위해 제대로 몸을 만든 성배 정도의 몸은 쉽게 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큰물에서 놀아보려고 하니까 이것도 너무 부족해.”

성배가 도시락 뚜껑을 열자, 아무런 간이 되어있지 않은 스테이크 조각들이 보였다.

우선 그 어마어마한 양이 유빈이를 질리게 했다.

“그걸 한 끼에 다 먹는다고?”

“이 정도는 먹어야 근육을 만들지.”

성배도 자신의 한 끼 식사를 볼 때마다 한숨부터 나왔다.

벌써 보름이 넘게 유지하고 있는 식단이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럼 앞으로 은퇴할 때까지 계속 그렇게 먹는 거니?”

“아뇨. 지금은 몸을 만들려고 하는 거니까 이렇게 먹는 거고, 한 번 몸이 만들어지면 식단 관리만 하면 돼요.”

한숨을 쉬면서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더럽게 맛없었다.

혼자 고기 먹는다고 한 조각을 빼앗아 먹은 유빈이가 인상을 구겼다.

“웩!! 진짜 맛없어. 밍밍해. 으으...”

“염분은 몸 관리의 적이니라...”

간이라도 되어있었으면 헛구역질까지 해가면서 먹진 않았겠지.

먹는 즐거움을 빼앗기면서 날카로워졌는데, 때마침 가족들이 와줘서 다행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진짜 발광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후 유빈이는 성배의 도시락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앞에 놓인 와플만 맛있게 먹었다.

혜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몇 번 쳐다보기는 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

“우와, 진짜 예쁘다.”

유빈이는 벨기에가 보존하고 있는 과거 중세시대 건축물들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냥 좀 멋지네, 라고 생각했던 자신과는 다른 반응이었는데, 확실히 미술을 전공해서 그런 것인지 미적인 부분에서 확실한 반응을 보였다.

“이게 성 미쉘 성당인데, 벨기에 수호성인인 성 미쉘을 기려 만든 성당이래. 1226년에 착공해서 400년이 넘어서야 지금 모습으로 완공되었다는데? 호오, 그렇구나.”

성배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벨기에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고는 하지만, 전생에서는 안트베르펀에 살았기 때문에 브뤼셀 쪽은 잘 몰랐다.

그리고 관광지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에이, 뭐야. 오빠도 이번에 안 거야? 그럴 거면 왜 벨기에에서 살아?”

“야. 너는 숭례문의 역사나 명동성당의 역사, 이런 거 바로 말할 수 있어? 안 알아보고?”

유빈이는 바로 딴짓을 시작했다.

까불기는.

옆에서 살아도 관심이 없으면 역사까지는 모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미술하는 애들은 이런 거 보면 무슨 생각해?”

“와... 진짜 예쁘다. 뭐 이 정도?”

“뭐야, 별거 없네? 한번 그려보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 해?”

“그런 생각도 하긴 하지. 사진으로 보고 그리는 거랑은 또 다르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성배도 예술하는 사람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뭔가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유빈이는 일반인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이 예술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큰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거나 유빈이의 적성이 부족한 듯했다.

“저기 저분들처럼 너도 한 번 자리 잡고 그려볼래?”

이미 광장에는 수많은 거리의 화가들이 자리를 잡고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유빈이도 간단한 미술용품들을 챙겨왔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려고만 하면 충분히 그릴 수 있었다.

“그러고 싶기는 한데... 그러면 적어도 한 시간은 여기 있어야 하는데 오빠랑 엄마는 뭐하게?”

그림은 그리고 싶어도 자기 때문에 성배와 혜진이 심심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너 그리는 거 구경도 하고,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하는 거지 뭐. 어때요, 어머니?”

“좋지. 이렇게 멋있는 걸 봤으면 그림 한 번 그려봐야지. 그래야 좋은 화가가 되지.”

혜진도 찬성이었다.

두 사람의 허락에 신이 난 유빈이는 바로 차로 달려가 도구들을 챙겨왔다.

“아아, 평화롭네요.”

“그러게. 편안한 느낌이네. 햇빛도 좋고, 그늘도 좋고...”

유빈이는 다른 관광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 성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성배와 혜진은 거기서 조금 떨어져 있는 그늘에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앉아 휴식을 취했다.

“한국은 어때요? 아직까지는 별일 없죠?”

미래를 위해 귀화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아직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없을 수는 없었다.

“뭐, 아직은 아무 일도 없어. 네가 우리 가족인 걸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아직 네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많던데?”

예상대로 자신은 아직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듯했다.

유명해지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고, 유명해지지는 않았지만, 목표를 향해서 순항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는 말에 안심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도 직장에서 별일 없으시죠?”

외교관인데 아들이 귀화를 선택했으니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싶어서 사실 아버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그다지? 직장 동료 중에서도 아들이 해외 국적 딴 사람이 워낙 많아서 아무 일도 없다고 하더라.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당황했다고 하시던데?”

하, 그정도인가...

아버지가 외교관이라고 걱정했던 자신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네가 걱정하는 것만큼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이슈가 되고 있지도 않으니까.”

“음... 그것참 안심이 되면서 슬픈 말이네요.”

처음부터 한국시장에 대한 생각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타격이 있을 뻔했다.

해외리그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프리미어리그 한정이었다.

“그래도 앞으로 유명해지면 뒷말이 좀 나올 거예요.”

아직은 유명하지 않아서 괜찮다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나도 걱정돼서 좀 알아봤는데, 병역법 위반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국적 바꾼 선수도 그때 잠깐 욕먹고 끝났더라. 가족들도 부산에서 잘만 살고 있고. 아마 별문제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성배의 계획대로 된다면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던 그 선수와 달리 팬들의 관심도가 가장 높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럴 수도 있죠. 그래도 고등학교 때 잠깐 유명했던 그 선수랑 다르게 진짜로 유명해지면 문제가 생길 거예요. 혹시 그렇게 되면 유럽에 이민 오실 생각은 없으세요?”

“글쎄? 나중에 늙어서라면 모를까, 지금은 내가 여기 와도 할 게 없잖아. 아직은 일도 하고 싶은데.”

아직 40대 중후반에 불과한 혜진은 아직 좀 더 일하고 싶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천직이라거나 이거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직 쉬고 싶지는 않았다.

“게스트하우스나 민박 같은 거 하시면 괜찮지 않을까요? 앞으로 점점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아질 텐데요. 아버지야 외무부에서 일하시면서 쌓인 인맥이 있으니 유럽 진출을 노리는 기업들에서 모셔가려고 달려들 테니 걱정 없고요.”

아버지는 걱정 없었다.

벨기에 공관에서 일하시면서 벨기에는 물론이고 프랑스와 네덜란드에도 인맥을 쌓아놓으셨고, 평가도 굉장히 좋았다.

EU라는 매력적인 시장을 가만히 놔둘 리 없으니 한국의 대기업들이 어떻게든 모셔 가려 할 것이었다.

“뭐... 그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네. 혹시 나중에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지, 뭐.”

“유빈이 유학 건도 있으니까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순수 미술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각 디자인이나 패션 디자인 등을 하려고 해도 역시 유학하는 것이 좋았다.

일단 예술 쪽은 무조건 유명한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답이었다.

“일단 유빈이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유학 보내려고. 다만, 거기에 우리가 따라오느냐, 아니면 우린 한국에 남느냐가 문제인데...”

아들과 딸이 모두 유럽에 있으니 부모님도 오시고 싶으실 것이었다.

돈이 문제여서 일을 그만두면 안 되는 거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었고 아버지의 경우에는 대기업에 입사하시는 것이 공무원 연봉보다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저 돈 잘 벌잖아요. 어차피 학비도 없으니까 유빈이 유학은 물론이고 나중에 유빈이가 화가 되겠다고 하면 개인전도 열어줄 수 있어요. 돈 걱정은 하지 마시고, 그냥 어머니 생각만 하세요.”

그리고 돈은 자신이 잘 벌고 있었다.

연봉도 연봉이지만 200% 대박이 날 수밖에 없는 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돈 걱정은 절대 할 필요 없었다.

“저도 그렇고 유빈이도 그렇고 부모님이랑 따로 지내는 거 별로예요.”

“알았어. 한 번 긍정적으로 생각은 해볼게. 아버지랑도 한 번 이야기해보고.”

아무런 대비도 없이 도망치듯 나오는 건 절대 반대였지만, 자신과 유빈이 모두 유럽으로 나오는 것이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왕 그럴 거면 가족 모두가 나오는 것이 나았다.

가족들만 유럽으로 건너와 자리를 잡는다면 전혀 걱정할 일도 없을 것이었다.

< 낭만필드 - 070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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