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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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민은 좀 뜬금없는 상황에 당황했지만, 조민호의 자신감에 혹시나 하는 기대하면서 과연 자기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지켜봤다.
조민호는 별다른 언급이 없이 고령의 김미숙을 진맥했지만 이미 각혈을 동반한 만성 기관지염이라는 증상을 들어서 등 위쪽에 있는 폐유혈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안 좋네.’
김미숙 환자는 이미 발작 상태가 심각했고, 혈괴를 계속해서 토하면서 쉽게 피로한 터라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다.
고령에 면역 저하까지 같이 겹쳤다.
단순히 질병만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인 노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터라 사실 현대 의학으로는 이 환자를 도저히 완치할 수가 없다.
그는 지난번과는 달리 힐끗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최영민과 도대체 만성 기관지염 환자를 어떻게 마사지로 치료할지 긴가민가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최영준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최영민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제 어머님을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어렵습니다.”
최영준 차장도 처음 보인 부정적인 조민호 행동에 깜짝 놀랐다.
“설마 인제 와서 치료하기 힘들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 분은 고령입니다. 그러니 같은 젊은 환자에 비해서는 그 치료가 몹시 어려운 것이 또한 사실입니다.”
“그 말씀은.......”
“하지만 치료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점을 잘 유념해주셔야 합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치료 끝나면 이게 그냥 간단하게 치료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예 대놓고 생색을 낸 조민호 행동에 두 사람은 그저 눈치만 봤는데, 왜 조민호가 저런 말을 굳이 대놓고 하는 지 이해했다.
조민호는 그 모습에 꽤 만족해서 천천히 환자 폐유혈을 지압했다. 그는 물론 이전 다른 환자와는 달리 혼원기 길이를 2cm, 3cm 번갈아 가면서 다른 자극을 주었다.
심지어 대추혈은 혼원기를 4cm 길이로 깊이 눌러서 경혈 깊숙이 스며들도록 했으며, 공최혈은 혼원기를 무려 5cm 가까이 처방했다.
각 조직 손상에 따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혼원기를 달리한 것이다.
혼원기 시침 자체는 눈으로 보이지 않았고, 경혈 속으로 스며들면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망가진 혈을 부추기면서 죽어가는 경혈 일부에 생명을 조금씩 불어넣었다.
아니 심지어 그 혼원기를 아예 경혈에 박아 넣어서 마침 시간이 흘러도 일정 기간 손상 된 조직에 생명력을 불어넣도록 했는데, 노화로 인해서 사라진 선천지기 일부를 메꾼 것이었다.
조민호는 백만 스탯의 그 막강한 정신 덕분에 특별한 어려움 없이 이 작업을 진행했다.
‘체력과 내공만 바탕이 되었다면 수명이 제법 더 늘어났을 테지만 여기까지만 하자.’
페유, 대추, 공최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 혼원기는 김미숙 환자의 원기를 복 돋으면서 염증이 생긴 조직으로 파고들었다.
이 신비로운 인체 치유 과정을 아는 이라면 경의를 느꼈을 것이다.
담 검사나 헤모글로빈 반응에서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았던 김미숙. 그녀는 놀랍게도 잦은 기침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고령의 김미숙은 반쯤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뒤늦게 맑게 정신이 깨어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방 안을 둘러봤다.
최영민은 이제까지 김미숙 옆에서 계속 간호를 한 터라 불과 아침 전과는 전혀 다른 어머니 모습에 말을 더듬었다.
“어, 어머니, 서, 설마......”
조민호는 그런 분위기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혼원기가 더 경혈 깊이 파고들도록 계속 지압하면서 추가로 염증이 생긴 기관지염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김미숙은 그제야 한결 목이 편해지자 조금씩 입을 열었다.
“여, 영민아, 이,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어찌 내 목소리가 나오는 거야? 기침도 없어.”
“어, 어머니, 크흑.......”
그동안에 자기 직업 때문에 마음고생 한 김미숙을 최영민은 결국 목 놓아서 흐느끼면서 어머니 손을 꼭 움켜잡았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은 좋았지만, 막상 정신 차리고 보니, 벌써 나이는 들었고, 자기 어머님은 고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얼싸안은 채 눈물을 흘리는 모자를 보면서 조민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최영준 차장이 경이로운 시선으로 힐끗힐끗 자신을 쳐다만 보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 일이 보람도 있어. 그리고 최영민의 선천지기 흐름만 봐도 괜찮아. 바른 삶을 살아왔으니, 믿을 만해. 앞으로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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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민는 확실히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약속한 대로 조민호를 소개해준 최석준 회장을 위해서 그와 관련된 테이프를 다 없앴다.
심지어 최석준 회장과 엮여 있는 오성 그룹 관련 테이프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289개나 되는 녹취록이 있었지만, 이 중에 20% 가까이 사라졌다.
검찰이 압수 수색을 시작한 것은 딱 이 뒤처리가 끝난 시점이었다.
[......검찰은 현재 과거 국정원 미림팀장 최영민씨 자택을 압수 수색을 했습니다. 120분짜리 테이프 233개와, 녹취 보고서는 과거 최영민이 따로 숨기거나, 국정원에 반납 와중에 의도적으로 빼돌렸습니다. 수사관들이 총출동해서 자택 전체를 압수 수색했고, 이 자료를 분석할 예정입니다.]
이 뉴스에서는 기존 오성 그룹이나 중아일보 관련된 찌라시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까칠한 박진민은 구내식당 TV를 보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역시 떡검이야.”
김영탁 역시 완전히 바보는 아니었다.
“증거가 되는 핵심 자료는 어디다 버린 건지 없잖아. 저게 기소가 되냐?”
“적당히 수사하다가 무혐의로 처리하겠지. 개새끼들 정말 너무하네. 대기업이면 아예 프리 검찰 영역이야. 해도 해도 너무한다.”
“대선 때 분명히 여론 조작한 것도 있을 거야. 거기에 정치 비자금 넘긴 것과 관련한 것도 빼놓을 수가 없을 테고.”
두 사람은 먹던 점심도 내려놓은 채 주거니 받거니 열나게 떡검을 씹으면서 조용히 침묵한 조민호를 걸고넘어졌다.
“민호야, 너는 왜 조용해?”
“기억 상실.”
박진민은 오늘은 흥분해서인지 툴툴거렸다.
“지랄하네.”
조민호는 새삼 얼마 전 일을 떠올렸다.
“솔직히 우리 같은 서민과 관련이 없잖아.”
“하긴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떠들어 봐야 입만 아프지.”
그도 물끄러미 TV 뉴스를 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을 떠올렸지만, 이번 환자 치료를 통해서 현금 1억와 정보 조작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얻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기분도 꿀꿀한데, 오늘 저녁 술은 내가 낸다.”
“오오!”
두 사람은 불과 1분도 안 되어서 조민호에게 투덜 되는 모습과는 달리 열렬한 신자처럼 조민호에게 찬사를 터트렸다.
조민호 역시 뭐 기분 좋은 미소를 한 채 오늘 강의 시간표를 확인했다.
‘오늘은 라게르 함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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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테이프와 관련된 X파일 사건은 TV에서 잠깐 언급된 후에 사라질 것처럼 보였지만 오후 1시 이후에는 대학 내 시위로 이어졌다.
대학생은 X파일 수사 촉구를 요구하면서 맹렬하게 소리쳤다.
덕분에 수리물리 강의 시간은 어수선했다.
하지만 한상수 담당 교수는 그걸 무시한 채 지난 강의 시간에 진행한 에르밀 함수를 잠깐 복습하면서 오늘 강의에 들어갔다.
-단진동을 양자역학적으로 들어가면서 에르밀 함수가 나오는 것은 지난 강의 시간에 다루었고, 수소원자의 확률밀도 함수에서 라게르 함수가 나타나는 것은 마지막에 언급했습니다.
지루한 라게르 함수와 관련된 수식 전개가 곧 이어졌다.
조민호는 솔직히 교수가 무슨 외계어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묵묵히 강의를 열심히 따라갔다.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수강생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안도했다.
라게르 함수의 지수함수가 시간이 무한대로 접근할 때 0이 되는 특성이 있어서 과도 응답에 무조건 수렴하는 특성이 있다.
조민호도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정작 무림에 있을 때 그 자신이 생존 수단이 된 수학과 물리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강의 도중에는 그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따로 시간 내서 라게르 함수를 정리했고,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라게르 함수가 전자기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알 듯 말 듯한 그 내용에 다소 혼란을 느낀 조민호는 시간이 갈수록 시간이라는 개념을 뒤늦게 깨달았고, 혼원기와 연관시킬 수 있었다.
그가 기존에 무학 이론에 근간으로 쌓은 것은 어디까지나 고전 역학과 그 바탕으로 한 전자기적 몇 가지 특성에 이제 시간을 더했다.
조민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혼원기 특성이 시간에 따라서 가변되는 것은 이미 김미숙 환자를 통해서 경험했다.
‘이게 응용할 수 있을까?’
최영준이 마침 안부 겸 해서 전화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이렇게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네.
-저에게 고객을 소개해주는 분인데,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최영준은 차마 X파일 사건으로 말미암은 스트레스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생긴 우울증 때문에 그 환자의 심장이 나빠졌다는 자세한 사정까지 말하지 않았다.
-아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고맙고, 다름이 아니라 혹시 심장이 좋지 않은 이도 치료할 수 있을까?
-심장이 나쁜 환자라......
그도 간암이면, 딱 간암, 폐암이면 딱 폐암이라면 손을 쓰겠지만 이렇게 애매한 환자는 경험이 없어서 솔직히 뭐라고 확언할 수 없었다.
-역시 지압으로 심장 관련 환자 치료는 어렵겠지?
-아뇨. 아직 저도 경험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 환자를 만나 볼 수 있을까?
-뭐 치료비만 확실하다면 못 만날 이유는 없습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
-네.
***
조민호는 대수롭지 않게 약속 장소를 찾아갔다가 그곳에 최고급 호텔이라는 것을 깨닫자 흠칫했지만,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는 최영준을 만났다.
최영준 차장 안색은 당혹스러운 녹취록 사건과 이제 완전히 안정을 찾은 아내 때문에 지난번과 비교하면 한결 좋아 보였다.
그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이런저런 일로 고맙기도 하고, 친숙한 느낌에 양손으로 조민호 손을 부드럽게 잡으면서 살갑게 웃었다.
“반갑고, 너무 고맙네.”
“이제는 친구 같습니다.”
“친구는 아니지. 내 나이가 있는데.”
“겨우 삼십 대 초반 아닙니까?”
“글쎄.”
그는 굳이 자기 나이를 말하지 않은 채 조민호를 천천히 안내했다.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60평이 훌쩍 넘는 최고급 스위트룸이었고, 그 안에는 이미 몇 사람이 기다렸다. 심지어 환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세팅까지 충분히 되어 있었다.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하는 환자를 대하는 조민호는 처음 접하는 최고급 룸 모습에도 깊은 인상을 받기는 했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도대체 환자가 누굴까 싶어서 룸 안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