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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76화 (576/651)

제576화: 벗기고 보니(2)

항상 만원이다.

특히 참치 맛을 아는 사람들은 5월 중순이 넘어가면 맛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군은 더욱 미식가들로 붐볐다.

일본 오오마산 참치가 2월 중순이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가장 비싸고 맛있는 참치로 오오마산을 치는데 그것도 한겨울에 잡히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이다.

가끔 2월말에도 잡히긴 하지만 중순이면 참치 조업은 막을 내린다.

냉장기술의 발달로 2월에 잡힌 참치를 4월까지는 맛볼 수 있는데 이곳 어군에서는 아주 살짝 얼린다.

즉 일본 사람들 보다 보관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인데 그래도 겨울 참치 맛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몰려드는 것이다.

그래서 한겨울보다 지금이 훨씬 바쁘다.

예약이 아니면 절대 들어올 수 없을 만큼 어군은 손님들로 꽉 들어찼다.

마석춘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주름살이 하나둘 생기면서 반백이 되었지만 그의 눈은 더욱 빛났다.

입구에 무전기를 들고 있는 종업원 두 명이 도대체 누굴 기다리기에 저렇게 서 있는지 의아한 얼굴들이다.

그때 벤츠가 들어왔다.

끼익!

벤츠는 주차장으로 가지 않고 가게 앞에서 멈추더니 운전석에서 권총수가 내렸다.

“뭘 나와 계십니까? 여기 차 좀 부탁합시다.”

종업원 한 명이 재빨리 알았다면서 권총수의 차를 끌고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오 이사님은?”

“형수님이 아이를 낳는다고 합니다.”

“그래요. 축하할 일입니다. 어디 병원입니까?”

“아무도 오지 말라면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하긴 요즘에는 삼칠일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지키는 곳이 있나봅니다.”

산모가 아이를 낳고 21일 동안은 일체 외부인을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는 무속적 관습이라 할 수 있었다.

태어난 아이는 굉장히 병에 약한 몸이다.

혹시라도 축하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이 나쁜 병원균을 가지고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 보호 차원에서 막는 것이므로 무속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오히려 지혜로운 것이다.

“들어가시죠.”

권총수는 마석춘과 나란히 어깨를 하고 들어갔다.

“왔습니까?”

“지금쯤 불콰할 정도로는 마셨을 시간입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얼굴은 붉었다.

탁자 위에는 빈 소주병 네 개가 있고 다섯 병째 마개가 열려 있었다.

한 명은 쉰 정도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예순 중 후반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자주 웃고 서로의 의견에 격하게 호응하면서 술잔을 비웠다.

“이제 천천히 준비해야 할 거야?”

예순 후반 가량의 사내 이원성이 입을 열었다.

“벌써요?”

“이 사람아 정치가 그렇게 쉬운 건지 알아? 미리 옷을 벗고 지역주민들도 만나고 해야지. 민심이라는 게 무서운 거라고.”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자 들자고.”

두 사람이 채워진 잔을 들어 부딪쳤다.

그리고 각자 입으로 가져가는데 그때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똑똑!

국회의원 이원성은 잔을 비웠지만 최승재 지검장은 잔을 든 채 고개를 뒤로 돌렸다.

드르륵!

여닫이 문이 열리고 마흔 가량의 사내가 서 있었다.

입구 맞은편에 앉은 이원성이 물었다.

“누구신지?”

사내는 들어오란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방으로 스윽 들어서더니 문을 닫았다.

탁!

이원성과 최승재는 눈을 깜빡거렸다.

“우리 지검장님 옷 벗고 여의도 진출한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인가 봅니다. 집권여당의 실세라는 이원성 의원님을 만나 지역구 얘길 나누시나 보죠?”

사내는 측면으로 턱 하니 앉았다.

“한 잔 마셔도 괜찮죠?”

사내는 술잔이 없자 풋고추가 담긴 접시를 가져갔다.

풋고추를 다른 접시에 옮겨 놓고 소주를 따른다.

접시가 움푹하여 잔을 채우는데 제법 많은 소주가 들어간다.

쭈욱!

사내는 가볍게 비우더니 탁자를 살폈다.

참치를 집어 먹기 위해 젓가락 통을 찾는 듯 했는데 보이지 않자 결국 손으로 참치 하나를 주워 입에 넣었다.

“이 집 참치 맛이 좋다고 들었는데.”

그러면서 한 조각을 더 주워 먹는다.

사내의 왼쪽으로 앉은 지검장 최승재가 이마를 찡그렸다.

“나에게 볼일이 있나보군요?”

사내는 참치를 씹으며 최승재를 돌아보았는데 빙긋 웃었다.

“아 잠깐만요!”

사내는 뭔가 잊어버린 것이 있는지 주머니를 뒤척였다.

“일단 보여드릴 것이 있어서.”

그러더니 만년필 한 개를 꺼냈다.

“이게 펜으로 보이겠지만.”

그러면서 손잡이 부분을 눌렀다.

만년필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는 사람 있소? 솜씨 좋은 친구로? 깔끔하고 은밀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 말이오. 타인의 입을 아주 잘 닫게 하는 사람이면 더욱 좋고.’

‘없애는 겁니까?’

‘부탁합니다.’

탁!

갑자기 스위치가 눌러 꺼졌다.

그리고 거꾸로 돌려 다시 한 번 반복하여 들려준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더니 두 번째 들려줄 때 최승재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누구 목소리인지 아시겠죠? 지검장님?”

“누구요?”

“정말 모르십니까? 술기운에 기억을 못하십니까?”

“당신 여기가 어디라고 이 따위 장난이야. 감히.”

그러더니 재빨리 핸드폰을 들더니 112를 누르려한다.

“급하시긴!”

사내는 눈을 빛냈다.

“마지막입니다. 이 목소리 누구 것인지 모르죠? 분명히 대답해야 합니다. 지검장님 인생이 끝장날 수도 있으니까.”

톡!

최승재는 결국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기 어군이오. 난 중앙지검장 최승재이고, 누군가 날 찾아와 협박을 하는군요. 너무 위협적이어서 저항할 수가 없소.”

“알겠습니다. 당장 출동하겠습니다.”

방안이기 때문에 112센터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려왔다.

씨익!

사내는 마주 앉아 있는 국회의원 이원성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모진 사람 옆에 있다 날벼락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원님.”

“으헉!

이원성이 소스라쳤다.

사내가 사라졌는데 걷지 않고 그대로 나가버린 것이다.

“지금 사람이...!”

눈을 비비고 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

문은 분명 닫혀있다.

최승재 역시도 눈을 깜빡 거렸는데 상당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했다.

처음 보는 낯선 인물과 얘기를 나눴는데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것도 문을 열지 않고 귀신처럼 방안에서 사라졌다.

“이것이.”

찰싹!

이원성은 급기야 자신의 뺨을 때린다.

꿈이 아니다.

최승재도 여전히 멍한 얼굴이다.

그때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다.

“최 지검장 당장 전화해 경찰 출동을 막으세요. 와봤자 좋을 것 없어요.”

그러고 보니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 경찰 출동이 좀 더 신속하리란 걸 계산했는데 이원성의 말을 듣고 보니 오히려 악수(惡手)였다.

현직 지검장이 국회의원과 술을 마셨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크다.

최승재는 재빨리 다기 112에 전화를 걸어 출동 취소를 시켰다.

술맛이 떨어졌다.

더 이상 앉아 있을 기분이 아니었으므로 두 사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침 조간으로 배달된 대한신문을 본 최승재는 소스라쳤다.

자신이 112에 긴급 출동 요청을 했다가 철회시킨 기사가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렸기 때문이다.

경악할 일은 자신이 112에 ‘너무 위협적이어서 저항할 수가 없소’라는 통화 녹취가 그대로 보도되었다.

앞뒤 내용은 의도적으로 잘라낸 듯 싶었는데 경찰에서 보도하라고 확인해 줬을리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경찰 112센터에서는 일체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출동했다가 도중에 돌아간 경찰관들과 통화를 했지만 그들도 펄쩍 뛴다.

그 자리에는 집권여당의 실세인 A의원도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는 기사에 검찰청은 물론 여의도까지 발칵 뒤집혔다.

중앙지검장과 여권 실세가 무슨 일로 만났으며 그들 앞에 나타나 위협을 할 수 있는 상대는 누구란 말인가.

112 신고를 한 걸 보면 상당히 두려웠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는 기사에 최승재는 연신 이를 갈았다.

“여보!”

넥타이를 매고 있는데 뒤에 서 있던 아내 서다민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을 통해 아내의 염려어린 얼굴을 보며 최승재는 더욱 어금니를 물었다.

넥타이를 맨 최승재는 아내가 입혀주는 윗도리를 걸치고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별일 아닌 거죠?”

현관 앞까지 따라 나온 서다민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있었다.

“당신은 신경 쓰지마.”

탁!

최승재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아내 서다민은 한참 동안을 현관 앞에 서서 움직일 줄 몰랐다.

승용차 한 대가 길가에 멈췄는데 비상 라이트를 켰다.

이어 운전석 문이 열리고 정장의 사내가 내렸는데 차장검사 정모석이다.

길가에는 작은 공원이 있고 공중 화장실이 보인다.

화장실 오른쪽 공원 벤치에 한 사내가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공원에서는 금연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지만 사내는 전혀 개의치 않고 푸른 담배연기를 기차화통처럼 뿜어낸다.

“어서 오십시오.”

사내는 앉아 다가오는 정모석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다짜고짜 이곳 공원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출근길에 항상 지나가는 동선이기 때문에 어려울 일은 아니지만 요즘 돌아가는 일이 너무 뒤숭숭하여 사내의 약속을 받아 들였다.

벤치에 앉자 사내가 담배를 권했는데 말보로 레드였다.

딸칵!

두 손으로 라이터 불까지 붙여준 사내는 출근하는 차량들로 붐비는 도로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침 신문 보셨습니까? 대한신문?”

“보지 못했습니다.”

스윽!

사내는 깔고 앉아 있던 신문을 꺼내 주었는데 대한신문 오늘자였다.

1면 타이틀 기사를 발견한 정모석은 깜짝 놀라며 신속하게 신문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읽어갈수록 표정이 굳어진다.

그리고 기사에서 눈을 뗐을 때의 정모석의 눈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마음을 안정시킨 뒤 담뱃불을 끈 채 핸드폰을 살피고 있는 사내를 흘긋 보았다.

오랜 검사생활에서 오는 경험이 작동하고 있다.

오자마자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신문을 보여주는 사내의 의도가 뭘까.

그건 신문기사와 사내가 깊은 관련이 있다는 뜻이 분명했다.

즉 어제 밤 이 사건이 일어날 때 자신이 관여했다는 의미가 분명해 보인다.

“아! 하마터면 넘어갈 뻔 했군.”

뭔가 잊을 뻔한 것이 있었다는 듯 주머니를 뒤지더니 만년필을 꺼냈다.

“잘 들어보시죠.”

사내는 밖으로 튀어나온 꼭지를 눌렀다.

그러자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는 사람 있소? 솜씨 좋은 친구로? 깔끔하고 은밀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 입을 닫게 하는 일입니다.’

‘없애는 겁니까?’

‘부탁합니다.’

정모석의 눈이 커졌다.

자기 목소리였다.

어찌나 놀랐는지 정모석은 벤치 아래로 떨어질 뻔 했다.

“한 사람 얘기를 더 들어 보시겠습니까?”

잠시 만년필을 앞뒤로 돌리는가 싶더니 또다시 꼭지를 눌렀다.

“먼저 얘기해 드릴 건 이분은 녹음을 들려줬더니 이런 반응을 보이더군요?”

이어 녹음기 속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구 목소리인지 아시겠죠? 지검장님’

‘누구요?’

‘정말 모르십니까? 술기운에 기억을 못하십니까?’

‘당신 여기가 어디라고 이 따위 장난이야. 감히’

권총수가 해설하듯 말했다.

“그러면서 이때 최지검장이 핸드폰으로 112에 신고를 합니다.”

‘잠깐!’

권총수는 이건 내 목소리입니다 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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