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45화 (445/651)

제445화: 암투(1)

수많은 총구가 목숨을 노리고 자신은 완전히 무장 해제되었다.

“당신은 문신이 없군.”

가까이 있는 몇 명의 사내들에게서는 문신이 발견된다.

밤이지만 후텁지근한 날씨에 반팔 차림을 한 이가 적지 않았는데 거의가 빼곡한 거미줄(문신)을 쳤다.

하지만 자신에게 담배를 권한 사내의 목이나 드러난 팔은 깨끗했다.

누운 체 담배를 피우던 타이론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담배를 권한 사내의 정체를 알겠다는 뜻이다.

“하긴 이토록 완벽한 급조폭발물을 설치할 정도면 평범한 부대를 제대해서는 불가능하지.”

그러했다.

사내는 자신처럼 씰 출신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마피아가 뛰어나고 MS-13이 강력하다고 해도 이토록 정확하고 절제된 함정은 만들지 못 한다.

타아앙!

필터까지 담배를 피웠을 때 사내의 손에 들린 AK가 불을 뿜었다.

타이론은 눈을 뜬 상태로 숨을 거두었는데 표정은 조금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철수!”

사내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고 우두머리 또한 가려다 멈췄다.

죽은 타이론의 몸에서 잠깐 빛이 흘러나온 것이다.

사내는 다가와 죽은 타이론의 옷을 뒤지더니 핸드폰 한 개를 꺼낸다.

백악관 대외협력실장 마운트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30분이 지나고 있었다.

공격 시간이 2시다.

정확히 30분이 흘러간 것이다.

워낙 중요한 작전이기 때문에 그쪽에서 연락을 해오기 전에는 통화할 수 없다.

아무리 무음이라고 해도 신호가 가면 전화기는 빛을 내 뿜는다.

어둠을 옷으로 입고 작전을 벌이는 그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들었고 경호원들과 야간 당직을 서는 비서실 근무자들이 나누는 얘기 소리만 들린다.

딸칵!

문을 열고 나가자 야근중이던 근무자들이 바라본다.

마운트는 빙긋 미소를 지어주며 복도로 걸어간 뒤 뒤뜰로 나갔다.

웨스트윙은 백악관 서쪽 건물로 대통령 비서진들이 주로 모여 업무를 보는 공간인데 뒤뜰은 어둠에 잠겼다.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 비밀경호국 요원이 무장한 채 숨어있을 것이다.

딸칵!

담배를 피워 물었다.

길게 한 모금을 빨 때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건장한 체구의 경호요원이 나타났다.

“금연구역입니다. 실장님!”

“아 미안합니다.”

마운트는 재빨리 담뱃불을 껐다.

넓은 백악관에 흡연구역이 딱 한 곳 있지만 그곳까지는 너무 멀다.

경호원은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3시10분.

더이상 기다릴 수 없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세 번 울리면서 상대가 받는다.

“어떻게 된 일이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여보세요?”

“글쎄 난 대충 누굴지 짐작은 가는데 그래도 본인 입으로 말해 보겠소?”

마운트는 소스라쳤다.

타이론의 목소리가 아니다.

‘아아!’

자신도 모르게 절망의 한숨이 나온다.

“백악관이겠지요.”

“당신 누구야?”

“백악관에서 극비리에 용병을 동원해 일을 처리하라고 했다는 얘기가 언론에라도 보도되면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이런 무리수를 두십니까?”

“닥쳐! 허튼소리.”

“타이론씨는 조금 전 떠났소.”

탁!

전화는 끊어졌다.

마운트 표정은 딱딱하다 못해 거의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석상이 된 듯 서 있었는데 창밖으로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아침 7시30분이다.

백악관의 주인은 넥타이를 메고 있었다.

평소 즐겨 차던 붉은색 바탕에 가느다란 흰색 체크무니가 있는 것이었다.

가장 넓은 부분인 대검(넥타이 가장 넓은 부분)자락을 잡아당길 때 전화가 울렸다.

대통령에게는 두 개의 전화기가 있다.

한 개는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사생활용이고 다른 하나는 수행비서가 갖고있는 공적 업무용이다.

지금 탁자위에 올려진 건 사생활용으로 자신이 직접 휴대하고 다닌다.

액정을 보더니 표정이 굳어진다.

“어찌됐나? 그렇잖아도 전화 기다리고 있었네.”

움찔!

대통령이 어깨를 떨었다.

예상못한 결과에 놀란 것이다.

“알겠네!”

한참을 듣고 난 대통령은 핸드폰을 내렸다.

그때 문이 열리고 영부인이 들어섰다.

* * *

권총수와 오민철은 시립 도서관 컴퓨터에 앉아 철지난 뉴스들을 살피고 있었다.

권총수는 뉴욕타임즈를 살폈고 오민철은 CNN기사를 훑었다.

벌써 다섯 시간째 살피고 있었는데 오민철은 눈이 아픈 듯 자꾸 비볐다.

지금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2년 전 그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내정되기까지의 언론 보도를 살피는 것이다.

뚝!

스크롤을 움직이던 권총수의 오른손이 멈췄다.

‘그린우드 공화당 대선후보 확정’

권총수는 나머지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후보 확정 전까지 현재 백악관 주인인 그린우드와 같은 당 맥클레인의 대선후보 경쟁은 뜨거웠다.

여론조사에서도 항상 오차범위내를 유지했고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두 사람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나눠졌는데 숫자가 거의 비슷했다.

모든 면에서 둘 중 누가 공화당 후보가 되어도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 여론이었다.

팽팽한 승부가 되다보니 상대방에 대한 공격도 거칠어졌다.

인신공격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의 사생활까지 들춰내며 치고 받았다.

아니면 말고식의 저질 난투극이 이어지다보니 양 후보 사이의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이러다가는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당 지도부가 진정시키기에 나섰다.

그런 와중에 최종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그린우드로 결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한참동안 기사를 보던 권총수는 눈을 좁혔다.

뭔가 서둘러 봉합된 느낌이다.

정치인 심경은 조석으로 변한다고 해도 이정도로 둘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다면 이겨도 상당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뭔지 모르지만 강요에 의해 봉합된 느낌이다.

권총수는 다시 스크롤을 올렸다.

십여 분 다시 기사를 체크해가던 동작이 다시 멈췄다.

‘맥클레인 성추행 혐의로 FBI조사’

정확히 일 년 전 기사였는데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여직원의 가슴을 만지고 엉덩이를 쓰다듬었다는 내용이었다.

일 년 전이면 그린우드가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으로 들어간지 1년이다

드르르!

다시 부지런히 스크롤을 움직였고 또 한 번 멈췄다.

‘맥클레인 의원 구속’

그리고 4개월전 보석으로 석방되어 남은 재판을 받게 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형 이 기사 한 번 읽어봐.”

오민철이 권총수 자리에 앉아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시립 도서관에서 무려 6시간동안 컴퓨터와 씨름했다.

도서관을 나온 두 사람은 커다란 떡갈나무 아래 있는 벤치에 앉았다.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무슨 생각하는데?”

“켄터키주 가는 비행기 시간 좀 알아봐.”

“거긴 왜 또? 혹시 상원 공화당 원내 대표였던 맥클레인 의원?”

“일단 한번 가보자고.”

권총수는 담뱃불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이빌 공항이다.

쾌청한 날씨였고 권총수와 오민철은 비행기에서 내렸다.

오민철이 코를 벌름거리자 권총수가 돌아본다.

“총수야. 냄새 나지 않아? 음 이 향기?”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아 좋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이름하여 영감님.”

“난 또!”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권총수가 피식 웃었다.

“난 처음에 KFC라고 해서 코리아 프라이드 치킨 뭐 그런 뜻인줄 알았지. 그런데 옆에 서 있는 노인네가 양키더라고, 그래서 그 모든 걸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

두 사람은 게이트를 나가 청사로 들어섰다.

멈칫!

권총수가 눈을 빛냈다.

국제공항이므로 무장 경관들이 있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다르다.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매서웠는데 마치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인근 도로를 검문검색하는 경찰관들의 행동 비슷한 기운이 풍긴 것이다.

느낌은 현실로 나타났다.

MP9기관단총을 엑스자로 맨 두 명의 흑복차림의 경관이 다가왔다.

“신분증 좀 주시죠?”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뭔일 입니까?”

오민철은 왜 백인들은 가만 놔두고 우리만 검문하냐는 뜻이었다.

시끄러워질까봐 권총수는 재빨리 여권을 보여 주었다.

오민철도 어쩔수 없다는 듯 여권을 내밀었는데 두 사람은 한참을 살피더니 돌려주었다.

여권을 받아든 오민철이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살벌한 거요?”

하지만 두 경관은 대답을 않고 돌아서 버렸다.

“건방진 자식들, 어른이 물어보면 대답을 해야지.”

오민철이 한국말로 인상을 썼다.

두 사람의 궁금증은 랜터카 회사에서 풀렸다.

직원이 차량 대여 영수증을 끊어주며 질문을 한 오민철을 보며 대답했다.

“백엘러게니산에서 스무 명이 죽었답니다.”

무슨 소리냐는 듯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사흘전에 일어난 사건인데 죽은 자들이 용병들 같다는 소문도 있고 갱단이라는 말도 있고, 중요한건 그들이 죽은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사람의 별장이 있었다는거죠.”

키를 받아 들고 차를 향해 걸어가던 권총수도 걸음을 세웠다.

“이곳 루이빌 시장 필 포든씨 별장이라는 겁니다.”

“필 포든.”

그때 저 만큼 걸어갔던 권총수가 재빨리 다가왔다.

“약도 좀 그려줄수 있습니까? 별장이 있는 곳 말입니다.”

“블랙버드 계곡에서 가깝다는 것만 알고 있소.”

오민철도 뭔가를 느낀 듯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권총수의 두 눈이 예리해졌다

루이빌에 온 건 맥크레인 상원의원 때문이다.

맥클레인은 성추행사건으로 원내대표 자리는 내려놓긴 했지만 상원의원직은 아직 유지하고 있었다.

권총수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아직 뚜렷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묘한 느낌이 온다.

어느나라든 가끔 벌어지는 일이고 권력을 놓고 벌이는 정치인들의 추악한 거래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렌트한 차량은 포드 익스플로러 검정색이었다.

핸들은 권총수가 잡았다.

부우웅!

차는 시내를 향해 달려갔고 그로부터 2시간 후 검정색 익스플로러는 해발 천 미터 가까운 산 입구를 들어서고 있었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 왼쪽으로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는데 바로 오하이오 강이다.

길은 강을 따라 올라가다 점점 서로가 멀어졌다.

강은 이제 더 이상 볼 수가 없고 중앙선 없이 포장된 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그리고 이제 포장길도 끝나고 비포장이 나타났다.

차량이 다닐 수 있을 만큼의 도로가 닦여 있다는 건 사유지가 있다는 뜻이다.

길은 갈수록 가팔라졌고 노면도 험하다.

덜컹거리며 올라가던중 나무 화살표 하나가 세콰이어 나무에 걸려 있다.

고개를 돌렸다.

사유지이므로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팻말이 입구에 쓰여 있는데 그렇다고 바리케이트 따위로 막아 놓지는 않았다.

그냥 나무로 된 화살표 간판 하나 세워 놓았다.

두 사람은 한쪽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주위를 살폈는데 등산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권총수는 렌터카 업체 사장이 그려준 약도와 주위 산세를 살폈다.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같이 약도를 보던 오민철이 손가락으로 약도를 가리키며 주위를 비교했다.

“형은 여기서 기다려. 차 안에서.”

“너 혼자 간다고?”

“한두 명이 아니야.”

경찰이 있는 것 같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