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30화 (430/651)

제430화: 사라진 여자(1)

원출도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임인삼은 자세한 내용을 말해주었다.

‘끝났다’

원출도는 복도로 걸어 나가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딸칵!

라이터로 불을 붙인 원출도를 보며 지나가는 직원의 눈이 커진다.

사옥은 금연건물이다.

그런데 자기 사무실도 아닌 복도에서 버젓이 담배를 물고 가는 원출도를 보며 놀란 것이다.

‘왜 저러지?’

임원이면서 평직원들로부터 가장 평가가 좋은 원출도였기 때문에 계속 고개를 갸웃 거렸다.

원출도는 화들짝 놀라며 담뱃불을 껐다.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1층 로비다.

어떻게 이곳까지 내려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담배를 피우고 엘리베이터를 내렸습니까?”

“예 이사님!”

보안요원이 대답했다.

원출도는 어이가 없다는 듯 길게 숨을 내쉬며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간다.

“원출도입니다.”

원출도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권악수와 자리를 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만나야 한다.

권총수의 생각을 들어봐야 한다.

블랙잭 사무실 앞에 모범택시 한 대가 멈추고 원출도가 내렸다.

고층빌딩이다.

비록 천왕의 사옥만큼은 안 되지만 강남의 랜드마크의 한 축으로 봐도 무리가 없는 개성있는 빌딩이다.

이 빌딩도 예외 없이 보안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제 국내에도 웬만한 건물이나 회사는 보안직원을 상주시킨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두 명의 사내가 다가와 물었다.

“블랙잭 대표님을 뵙기로 했습니다.”

“기다리시죠.”

한 사내가 로비 안쪽으로 있는 건물 안내 데스크로 걸어가 뭐라고 얘기를 하자 여직원이 재빨리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이어 수화기를 내리고 고개를 끄덕이자 보안요원은 다시 원출도에게 다가왔다.

“저기 3호기를 이용 하십시오.”

원출도는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는데 보안요원이 따라와 버튼을 눌러주며 블랙잭이 있는 9층, 10층, 11층만 다닌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원출도는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11층에 내렸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원출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권총수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어서오세요 이사님!”

권총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가시죠!”

권총수는 원출도를 안내하며 복도를 걸어갔다.

원출도는 침을 삼켰다.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평생을 월급쟁이로 살아온 자신에게는 굉장한 별것이었다.

권총수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릴 줄은 몰랐다.

“잘 지내셨습니까?”

권총수가 물었다.

결코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원출도는 빙긋,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두 사람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대표실이라고 해봤자 특별한 건 없었다.

책상 하나와 회의를 할 수 있는 탁자와 5인용 소파가 전부였다.

“이렇게 만난 것이 얼마만이죠. 엔터프라이즈호 인질사건으로 카이로에서 보았고 이후 처음이니 벌써 2년 지났군요.”

권총수는 손수 커피를 머그컵에 따라 가져왔다.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셨다.

“회장님은 잘 계십니까?”

원출도는 자신을 바라보는 권총수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실소를 지었다.

정말 몰라서 그렇게 묻는 건 아닐 것이다.

“대표님 생각을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어떤 생각을 말입니까?”

“천왕그룹을 노리고 있습니까?”

“난 지금 돈을 벌기 위한 목적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장 애매한 말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돈을 벌기 위해 천왕그룹의 다른 계열사도 얼마든지 M&A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중공업의 재무구조가 나은 편이니 구조 조정을 한 뒤 시세 차익을 남기고 팔수도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회장님이 검찰 출두를 앞두고 있습니다.”

“언젭니까?”

“다음주 월요일이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죠.”

“길이 없을까요?”

권총수가 잔을 내리고 원출도를 바라보았다.

“총수가 구금된다고 하여 당장 회사가 무너지는 건 아니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때에.”

“두 명이나 죽였어요.”

“그들이 대표님과 관계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권총수는 웃음을 지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는 웃음이다.

날 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권악수라는 사람은 내가 잘 안다.

권악수는 골치가 아프면 그냥 밀어 버린다.

한마디로 무대뽀다.

사건의 후유증은 뒷일이고 일단 귀찮은 건 치우고 보는 것이다.

“권악수 회장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지릅니다. 물론 금력과 권력으로 빵빵한 집안에서 컸으니 뭐든지 즉흥적이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며 살았겠죠. 하지만 개인도 아닌 천왕그룹의 리더라면 처리방식이 조금은 달라져야죠.”

“이제는 늦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늦다고 생각할 때는 아직 기회가 있는 것이라고.”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습니까?”

원출도는 진지했다.

“삶이 망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더군요. 늦게라도 깨우치느냐. 아니면 죽는 그날까지 모르고 죽느냐.”

원출도는 답답한 듯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만나자고 하십니다.”

“만나지 못할 건 또 뭡니까?”

“오늘 시간 가능하겠습니까?”

“어군에서 저녁 같이하자고 전해 주시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출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접으며 인사를 했다.

택시 뒷좌석에 앉은 원출도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귓가에는 조금전 권총수가 했던 말이 맴돈다.

‘삶이 망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더군요. 늦게라도 깨우치느냐. 아니면 죽는 그날까지 죽어도 모르고 죽느냐’

그렇다.

권악수는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개인 권악수와 천왕그룹 총수 권악수는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변해야 하는데 그대로인 것이다.

천왕그룹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권악수가 변하는 것 말고는 방법은 없다.

부우웅!

모범택시는 좌회전을 하기 위해 방향 지시등을 켰다.

원출도가 떠나자 오민철이 기다렸다는 듯 들어왔다.

“권악수가 만나재?”

권총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민철이 히죽 웃었다.

“자식 지금 만나 뭘 어쩌자는 거야. 버스 떠난 지가 언젠데 손을 드냐고, 그런데 만날 거야?”

“만나지 못할 이유가 뭐 있어.”

“그건 그래. 오늘 저녁 그놈 상판을 좀 볼까나.”

지이잉!

권총수는 책상 위에 올린 핸드폰을 보더니 눈을 빛냈다.

‘맥’

갑작스런 맥보란의 전화다.

권총수는 재빨리 터치했다.

“어쩐 일입니까?”

권총수는 눈을 빛냈다.

오랜만이지만 반갑다는 것보다는 웬지 거북하다.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맥보란과 마주 앉아 있지는 않지만 뭔가 중대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쁘시죠?”

“바쁘긴 합니다만.”

권총수는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럼 지금 좀 어떨까요?”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2시다.

2시 30분에 간부회의가 있다.

“그러죠. 예 맞춰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권총수는 오민철에게 말했다.

“두 시 반 회의 형이 좀 맡아.”

“한국이래?”

“서울 왔다는데.”

“뭔 일이지? 요즘 국제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사건 사고는 없는 것 같던데.”

맥보란은 CIA 중동책임자다.

부장급이지만 팀장급들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맥보란이 한국을 직접 찾아왔다는 것을 우습게 볼 수는 없다.

남산에 있는 하이트호텔 커피숍이다.

맥보란이 커피를 놓고 앉아있다.

오후의 커피숍은 대부분 4,50대 아주머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부장님!”

고개를 돌리자 권총수가 웃고 서 있다.

맥보란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캡틴!”

둘은 힘차게 악수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사업이 날로 번창 하더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CIA에서 권총수는 블루칼라로 분류되어 있다.

레드칼라는 적색분자이고 블랙칼라는 철저한 아군이다.

즉 블루칼라는 적도 아군도 아닌 중간쯤의 인물로 분류하는데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고 아군도 가능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레드와 블랙보다 블루가 더 CIA의 주시를 받는 건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권총수에 대한 관리는 당연한 일이고 그가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리 없다.

“경영권에 욕심을 가지실 것 같지는 않고?”

천왕중공업을 두고 묻는 말이다.

“글쎄!”

권총수는 분명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때 여직원이 권총수 앞에 커피를 놓고 돌아갔다.

권총수는 커피 잔을 들어올렸다.

맥보란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권총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유난히 여기 커피는 쓰군.”

권총수가 인상을 썼다.

“캡틴!”

맥보란의 눈이 빛난다.

“미 합중국이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권총수의 눈이 좁혀졌다.

말뜻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경제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인 미국이라는 나라가 위태롭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클레어 양이 사라졌습니다.”

클레어는 또 누구냐는 듯 바라보았다.

“백악관.”

“아아!”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권총수가 눈을 빛냈다.

클레어는 현 미국 대통령의 딸이다.

말 그대로 형제가 없는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오래전 미국 대통령의 중동순방 때 맥보란과 같이 테러조직들의 동태를 집중 살피면서 그녀를 한 번 본적이 있다.

가까이서 본 건 아니고 먼 발치였다.

올해 스물여덟으로 하버드 경제학과를 나왔으며 언론인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 까지가 그녀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대통령 딸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 가족은 A(Ace)등급의 경호를 받는다.

대통령 자신은 무지개(rainbow)등급이다.

일곱 가지 색으로 만들어진 무지개처럼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첩첩이 막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움직이면 단순히 경호원들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많은 기관들이 여러 겹 대통령 주위를 차단한다.

“CNN 자연 다큐멘터리 바다 촬영차 바하마를 갔는데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권총수는 여전히 알아듣지 못한 얼굴이었다.

커피를 홀짝 거리며 이마를 찡그렸다.

“다큐멘터리 촬영이면 스텝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요?”

“그렇습니다. 정확히 12명이 움직였습니다. 스텝 열두 명 중 여섯 명이 SS(백악관 비밀경호국)요원들입니다.”

SS(Secret Service), 정식 이름은 미국 비밀경호국(美國秘密警護局, United States Secret Service)으로,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의 미국 연방 정부의 법 집행 기관이다.

이 기관은 대통령 경호, 위조 화폐 방지 수사, 금융과 관련된 사이버 범죄 수사 등을 수행한다.

링컨 대통령이 창설한 재무부 비밀경호국은 원래 위조지 단속을 하는 조직이었으나, 1901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암살 이후, 요인경호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2003년 재무부에서 국토안보부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권총수가 놀란 건 그들의 실력을 알기 때문이다.

한두 명도 아닌 무려 여섯 명이 동행했는데 누구에게 끌려갔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건 충격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