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20화 (420/651)

제420화: 강호의 칼(1)

권총수는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자네 입으로 지금 말하지 않았나. 검이란 외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고, 그래서 난 야밤에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수련을 한 것인데 자네가 이렇게 숨어 들어와 봤으니 걸어 나갈 생각을 해서는 안되지.”

“중원 무림도 아니고 농담이시겠죠?”

“무사의 칼과 입은 거짓이 없네.”

그건 진짜로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권총수의 미소가 살짝 걷혔다가 다시 번진다.

“정말입니까?”

“건방지군.”

송명파의 눈길이 매섭다.

내가 지금 자네와 장난 하는 줄 아느냐는 호통이다.

“한 가지 질문에 대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뭔가?”

어차피 자기 손에 죽을 것이므로 뭐든지 말해주겠다는 표정이다.

권총수는 품속에서 사진을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사진을 들고 송명파 앞으로 다가갔다.

송명파는 다가오는 권총수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칼을 들고 있는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

죽인다고 호언을 했고 칼까지 들고 있으니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사진을 들고 걸어온다.

척!

면전까지 다가온 권총수가 사진 두 장을 내밀었다.

송명파는 잠시 머뭇거렸다.

배짱인가 아니면 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건가.

송명파가 사진을 받아들자 권총수는 몸을 돌려 걸어간다.

파팟!

송명파의 눈이 빛난다.

등을 보인다.

상대에게 등을 보인다는 건 자살행위다.

‘백치(白癡)거나 백지(白紙)거나’

권총수는 처음 자리에 도착하여 돌아섰다.

송명파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빛이라고는 없는 어둠속인데 사진을 본다.

권총수는 송명파의 내공 수위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사진을 보던 송명파의 눈썹이 꿈틀 거린다.

“으음!”

끝내 신음을 뱉었다.

“어디서 난 건가?”

“맞군요? 일본 검 카케류를 배운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런 상처를 남길 수 없다는 뜻이군요?”

카케류란 말에 송명파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나 카케류를 알고 있지는 않다.

“어디서 난 것이냐고 물었네.”

“그 사진속 두 인물이 나의 부하 직원입니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감감무소식이고 해서 제가 직접 범인을 잡아볼까 하고 나선 것입니다.”

송명파는 이마를 찡그렸다.

자신은 칼을 들고 있다.

그것도 훈련용이 아닌 진짜 칼이다.

면도날 보다 예리하여 허공에 매달린 명주실이 잘려 나간다.

또한 아무리 검도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자신의 수련 모습을 봤다면 충분히 두려워 할만했다.

거기에 죽이겠다고 경고까지 했다.

이쯤이면 겁을 먹거나 아니면 살아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야 한다.

“내가 자네를 잘못 본 것 같군.”

권총수가 미소를 지었다.

“아마 그런 듯 싶습니다. 워낙 칼에 고수이시니까 누구든 아래로 보는 습관이 나쁜 건 아니죠.”

슈우우우!

꽉 쥐고 있었진 않았으나 사진이 손을 떠나 권총수에게로 날아가 버렸다.

“허억!”

송명파는 소스라친다.

이건 검의 세계와는 또 다른 차원이다.

카케류를 완전히 체계화 하여 하나의 법으로 만들었던 7대전인 아키야마가 남긴 도록(刀錄)을 읽다보면 강호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곳이야 말로 무사들의 세상이고 힘이 곧 절대 법으로 작용하는 꿈의 천지라고 했다.

자신도 그곳에 한번 가보길 소원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가보지 않아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 날아가고 백근도 넘는 바위를 비수처럼 날리기도 한다고 했다.

자신도 칼이나 딱딱한 나무 젓가락 정도는 날릴 수 있다.

그러나 남의 수중에 있는 물건을,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고 해도 끌어 당길 능력은 없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 중원 무림 어쩌고 하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카케류 맞습니까?”

“맞네!”

“서울로 대사형을 만나러 갔다던데 누굽니까. 자식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많이 알고 있군.”

“경찰을 대신해 범인을 쫓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사형이면 가장 큰 제자라는 뜻인데?”

송명파가 깊은 눈으로 바라본다.

송명파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다.

그는 결코 돈을 받고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았다.

칼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원하면 언제든지 환영했으나 어느 날부터 찾아오는 관원들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본 검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일본이라고 하면 인상부터 쓴다.

일본 검이라는 소문이 나면서부터 호기심에 배우러 온 이는 몇 명 있었으나 제대로 배워 올바른 무사의 길을 걷겠다는 이는 없었다.

그나마 배우기 위해 찾아 온 이들도 자신을 조롱하고 카케류라는 검법을 야유했다.

가장 송명파를 힘들게 한 건 같은 검도인 들이었다

쪽바리 검, 왜검, 심지어는 명성황후를 살해한 검법이라는 소문까지 내는 바람에 살해 협박까지 받기도 했다.

“내 아버지가 총독부 관료로 있던 야마모토 쇼헤이의 비서로 일한 건 맞네. 성을 나씨에서 소나무 송(松)으로 바꾼 것 또한 인정하지. 일본 사람 밑에서 밥을 먹고 살았으니 친일파라고 하면 이 또한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 않네.”

권총수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남의 집 가정사를 판단하고 끼어들 일은 아니다.

“아무튼 한 청년이 찾아왔네. 스물세 살이라더군. 난 아직까지 그 청년처럼 자질이 뛰어난 사람을 보지 못했네. 그야말로 하나를 가르쳐주면 두 개 세 개를 깨우치고 소화해버렸네.”

“그가 대사형이란 인물인가 보군요?”

“난 그에게 뒤를 물려줄 결심을 했지. 하지만 처음부터 그 청년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날 찾아왔네.”

송명파는 잠시 말을 멈췄다.

착잡한 모양이다.

청년은 성실했다.

또한 부지런한데다 자질까지 뛰어나다 보니 불과 삼 년 만에 카케류의 기본동작과 칼속에 담긴 가치를 이해해 버렸다.

이제 남은 건 그야말로 반복 훈련이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높아졌고 소문을 듣고 일본에서 찾아온 카케류 무사를 스무 합 만에 물리치는 수위를 보였다.

패배한 일본무사는 중얼거렸다.

“지금 당장 일본으로 건너가도 쉽게 패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까지였다.

청년은 그 다음날 사라졌다.

처음에는 일본으로 건너간 줄 알았다.

청년은 유난히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 인지 비교해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같이 수련하는 동료들이 있었는데 훈련용 목도가 아닌 꼭 진검을 갖고 겨뤄보자는 통에 모두가 피했다.

그런 청년이었으니 검의 여러 유파가 있는 일본이야 말로 자신의 실력을 측정해 볼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이름이 뭡니까? 그 청년?”

“지상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서울에 있다는 걸 아는 걸 보면 이제 지상식이라는 사람의 정체도 안다는 것이군요?”

“이번에서야 알았지.”

“누구였소?”

“다온건설 아들이었네.”

“다온건설!”

권총수는 고개를 갸웃 했다.

보안쪽도 아닌 일반 기업은 유명한 재벌들 말고는 아는 이름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건설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면 규모가 제법인 모양이었다.

스윽!

송명파가 한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바야흐로 권총수의 목숨을 거두기 위한 동작에 들어가고 있었다.

“사진속 칼 자국, 지상식이란 사람이 남겼다는 것입니까?”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굉장한 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흉내 낼 수 없네.”

지상식이 아니면 그런 칼자국을 남길 수 없다는 말이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솔직하게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권총수가 잠시 말을 끊었다.

송명파는 무슨 말을 하려는가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씨익!

갑자기 권총수가 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날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무사는 명예라네.”

“나로 인해 청송관의 비사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걸 놔둘 수 없다는 것입니까? 제자가 당신의 뒤를 잇거나 진정으로 카케류를 배우려는 생각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스승을 이용했다는 얘기가 퍼져 나가면 명예스럽지 못한 일임에는 분명하겠군요.”

송명파가 잔잔한 웃음을 머금는다.

죽여야 할 사람을 앞에 두고 웃는다는 건 결코 송명파가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것이면 되겠군.”

주위를 둘러보던 권총수는 한쪽 쓰레기통에서 부러진 목도 하나를 주워 들었다.

길이는 대략 50센티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붕!

부붕!

오른손에 쥐고 공중으로 한 번 휘둘러 보더니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다.

척!

권총수가 오른손에 부러진 목도를 쥐고 섰다.

스으으!

송명파는 옆으로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그냥 서 있었다.

스으으!

송명파가 등 뒤를 돌아간다.

거리는 5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5미터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카케류가 지닌 최적의 공격권이 그 만큼 이라는 뜻이다.

오 미터가 벗어나면 위력이 반감하고, 모자라도 제 위력을 내지 못한다는 걸 권총수는 간파했다.

우리가 주먹을 뻗었을 때 거리에 따라 같은 힘이라도 상대가 느끼는 고통이나 충격이 다른 것과 같다.

너무 가까우면 제대로 힘이 전달되지 않고 멀게되면 전해지는 파워가 약하다.

송명파는 계속 돌았다.

발바닥이 땅을 끄는 건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발바닥이 땅에서 높이 떨어질수록 중심은 흔들리며 또한 가벼워진다.

한 발로 서 있는 사람은 툭 밀어도 넘어지는 이유다.

척!

멈춰선다.

끊임없이 발바닥으로 지면을 끌며 권총수 주위를 돌던 송명파가 마침내 제자리에 선 것이다.

걸치고 있던 흰색의 도복이 완전히 땀에 젖었다.

뿐만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쉬지 않고 뿜어 나왔는데 마치 이백 미터 달리기를 끝낸 선수 같았다.

툭!

들고 있던 날 선 칼이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퍽!

이어 무릎을 꿇더니 피까지 토해냈다.

우욱!

어둠이 사방을 덮고 있지만 핏덩이는 선명하게 보인다.

흔히 말하는 죽은 피, 즉 내상을 입었을 때 토해내는 피였다.

피가 검붉다는 건 칼에 실어 공격으로 쏟아내야 할 내공이 그만 몸속에서 죽어버렸다는 뜻이다.

그럴 때 검붉은 피가 나온다.

내상!

강호의 내상은 무섭다.

기경팔맥에 큰 훼손이 있을 때 피를 토한다.

“도무지!”

떨리는 목소리가 당황한 듯 싶다.

“누군가? 이게 어찌된 일인지 설명을 해줄 수 있는가?”

바라보는 눈빛이 처절하다.

패자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내 입이 무겁네.”

권총수의 눈이 좁혀졌다.

입이 무겁다는 뜻을 권총수는 알아 듣는다.

일본검이라고 소문이 나자 수많은 국내 검객들이 찾아왔을 것이다.

때로는 목검 승부를 했을 테고 어떤 이는 무사답게 진검으로 겨뤄보자고 했음이 분명했다.

다치거나 만에 하나 죽어도 결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썼을 수도 있다.

그렇게 찾아온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자신이 강하다는 건 집 담장 밖으로 내 보내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하니 자신의 오늘 패배도 이 안에서 정리해 달라.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다온 건설이라고 했소?”

“틀림없네.”

권총수는 들고 있던 부러진 목도를 한쪽으로 휙 던져 버렸다.

미우나 고우나 아끼는 제자다.

대제자로 삼을 정도면 그 자질이 어느 정도 였을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너무 사랑했기에 차마 더 자세한 얘기는 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으웩!

송명파는 연이어 피를 토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