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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19화 (419/651)

제419화: 칸케류(陰流)(3)

식당 벽에 걸린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50년 전통의 국밥’

오십년이라고 하면 서빙을 하는 할아버지가 칠십 정도로 보였으니 10대 후반 최소한 20대 초반부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때 노인이 카트에 국밥 두 그릇을 싣고 다가왔다.

김이 펄펄 나는 국밥을 두 사람 앞에 놓고 맛있게 먹으라며 웃는다.

“어르신 말씀 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오.”

노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위에 있는 한옥집 말입니다. 청송관이라고 쓰였던데 무엇하는 곳입니까?”

“검도 배우러 왔어요?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죠. 서울에서도 오고, 전라도 광주에서도 오고 자주는 아니지만 소문을 듣고 오는 것 같아요.”

“아주 오래 되었습니까?”

“이 식당을 내가 돌아가신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건데 그때도 있었어요. 물론 당시에는 주인이 지금 송씨 아버지 였고.”

노인이 옆 의자에 앉았는데 청송관에 대해 할 말이 적지 않는 듯 보였다

“송씨 집안의 칼은 아주 유명해요. 우리 어렸을 때는 무서워 저 집 근처에도 가지 못했어요.”

“칼이 우리나라 검도와는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이더군요.”

“당연하지. 왜놈들 검이니까?”

“왜놈들 검이라면?”

오민철이 숟가락을 놓고 묻는다.

“칸케류(陰流)라고 알아요? 우리말로는 어둠의 검이라고 해야 옳겠군.”

처음 듣는다.

노인은 자신이 들은 한옥집 송씨의 검도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칸케류(陰流)는 일본 검술의 3대 원류 중 하나이다.

아이스 히사타다(愛洲久忠)가 일본 전국을 돌고 중국 명나라에까지 다녀와서 창시했다.

과거 조선시대 한반도 남해안에 상륙해 사람을 죽이고 곡식을 강탈하며 무자비한 노략질을 하던 왜구들이 사용하던 검으로 역사만을 놓고 보면 아주 오래된 것이다.

명나라 시절 절강성에 부임한 척계광 장군은 왜구들에게 검술을 얻어 부하들에게 교습할 만큼 공격성이 강한 검이다.

칸케류를 가장 빛낸 사람은 야규신칸케류이다.

야규신칸케류는 오노파 일도류와 함께 도쿠가와 막부의 장군 검술사범으로 채용되어 정치 부문에도 깊게 관여한다.

일본의 여러 검파가 있지만 그중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역사를 갖고 있는 검파가 칸케류다.

“성씨가 송인데 어디 송씨인줄 아시오. 일본의 성씨 마쓰모토(松本)에서 바꾼 것이오. 그래서 우리가 주로 쓰는 송나라 송(宋)이 아니라 소나무 송(松)을 쓰지요.”

“일본 사람이란 말입니까?”

“한국 사람이죠. 일제 때 송씨 아버지가 칸케류 검법에 뛰어난 총독부 간부중 한 명인 일본인 야마모토 다로의 비서로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해방이 되면서 본국으로 돌아가던 야마모토 다로가 자신의 성을 같이 써도 된다는, 일테면 성씨를 하사한 것이지요.”

“아니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덥석 받는단 말입니까?”

듣고 있던 오민철이 한마디 던졌다.

“그렇지 않아요. 해방이 됐어도 일본인 성씨 그대로 따라 사용하여 오늘날 본관을 가진 사람들 의외로 많습니다. 또한 일본인으로 살다 한국인으로 주저앉아 새로운 본관을 만든 사람들도 많고.”

노인은 청송관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냈다.

“가족은 어떻게 됩니까?”

“자식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사람 괜찮아요. 길을 가다가도 만나면 아는 체 하고 가끔 우리 집에서 국밥도 먹고, 관장 이름이 송명파라던가.”

‘송명파’

청송관 관장의 이름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두 사람은 사흘을 경주에서 머무르며 청송관을 살폈다.

서울 갔다던 송명파가 돌아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저기!”

청송관은 경주 외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한 대의 택시가 멈추고 정장을 한 일흔 초 중반 정도 될 것 같은 노인이 내렸다.

택시가 떠나고 오른손에 여행가방 한 개를 들고 가는 노인의 걸음걸이를 지켜보던 권총수가 눈을 빛냈다.

“좋군!”

오민철이 돌아보았는데 뭐가 좋다는 것이냐는 질문이다.

권총수는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사람의 걸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어. 첫째 상하난보(上下亂步), 두 번째가 상하이보(上下異步), 마지막으로 상하일보(上下一步).”

“걸음에도 종류가 있다고?”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상하난보는 상체와 하체가 서로 엉키듯 걷는 무질서한 걸음으로 흔히 술이 취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걷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다.

또한 대부분 몸이 허약한 사람들이 상하난보를 보인다.

상하이보는 하체인 다리와 상체가 따로 움직이는 것인데 가장 보편적인 걸음이다.

“저 사람은?”

서로 말은 않고 있으나 이미 마음속으로는 송명파라고 짐작한다.

“상하일보!”

“상하체가 같이 움직인다?”

“얼핏 뻣뻣한 그림을 떠올리겠지만 보다시피 얼마나 부드럽고 여유가 있어?”

그런 걸음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걸음에서부터 송명파의 칼이 몹시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민철은 뭔가 찾아내겠다는 듯 송명파의 걸음을 자세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간 원출도 이사는 한통의 등기서류를 받았다.

그건 미국에서 날아온 서류였는데 보낸 이는 제임스 더글러스였다.

서류 내용은 임시 주총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으며 대상은 천왕중공업이었다.

그리고 제임스 더글러스를 대리할 사람의 신분증과 위임장 사본을 동봉했다.

스윽!

한참 동안 꼼꼼하게 등기서류를 확인한 원출도 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블론’

월가의 조그만 투자신탁 회사다.

그러나 한 꺼풀 더 벗겨보면 그들 뒤에는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 헤지펀드가 있다.

갑작스럽게 차석준이 사망하는 바람에 주주총회가 무기한 연기되었는데 다시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천왕중공업에 대한 헤지펀드의 공격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레블론이 가장 적극적이다.

헤지펀드는 한 국가를 흔들기도 한다.

저 유명한 퀀텀펀드의 전 대표로 있던 조지 소로스는 영국의 파운드화를 공매도 하여 중앙은행인 영국은행으로부터 백기투항을 받아냈고, 동남아 외환위기를 불러왔던 말레이시아 시장에 개입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모았다.

마하티리 말레이시아 총리는 소로스를 향해 ‘악마’라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전 세계 하루 외환 거래액은 4조 달러가 넘는다.

그중 99퍼센트가 핫머니, 즉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 자금들이다.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회사들이 핫머니에 걸려들어 막대한 손해를 본 일들이 적지 않다.

“으음!”

원출도가 염려하는 건 핫머니가 아닌 권악수였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정부를 상대로 도박을 하고 있었다.

내년 봄 대통령 선거가 있다.

뼈대인 천왕전자는 아니다.

그러나 국내재계서열 1위 기업이 고꾸라지면 대한민국 경제에 엄청난 파도가 밀려 올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지원은 나온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큰일이다’

무모하다.

권력에 고초를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여론이 내 편이 된다.

여론, 즉 표로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게 여론보다 더 무서운 압력은 없다.

신호가 간다.

일단 전화는 해야 할 일이다.

“주주총회 소집 요청서가 미국에서 왔습니다. 또한 공개매수를 진행하겠다는군요.”

“뭐야. 공개적으로 한 번 붙어보자는 건가.”

권악수의 목소리가 싸늘하다.

“감히 나를 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똑똑히 보여줘야 할 것 같군.”

“회장님!”

“원이사는 위임장을 포함해 우호주 확보에 신경쓰세요. 나머지는 내가 모두 알아서 할테니까.”

“알겠습니다.”

원출도는 전화기를 내렸지만 표정은 밝지 않았다.

뭘 알아서 하겠다는 건가.

회사의 자금 사정은 자신이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권철악이 죽고 권악수가 전권을 휘두르면서 천왕그룹은 계속 하향세를 타고 있었다.

국내도 그렇지만 외국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권악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었다.

얼마든지 치고 올라간다고 큰 소리 치고 있다.

하지만 원출도가 보기에 너무 떨어졌다.

그때와 지금의 시가총액을 비교하면 정확히 반토막이 난 것이다.

생살을 찢는 기분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부실 계열사를 정리해야 한다.

그렇게 얻어지는 자금으로 천왕전자를 비롯하여 주력기업인 천왕물산 천왕SDI 천왕중공업등 알짜기업을 더욱 강하게 키워내야 한다.

모조리 잡으려다 모조리 잃는 수가 있다

권악수는 맞불작전으로 나가라고 하지만 누가 그럴 줄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천왕중공업 지키자고 그다지 여유도 없는 자금 쏟아 부었다가 다른 계열사를 공격 해버리면 속수무책이다.

더욱이 아직 경기장에 들어오지는 않고 있지만 수많은 헤지펀드들이 언제든지 투입될 채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

“흐음!”

원출도의 한숨은 깊어간다.

라이트를 켠 차량 한 대가 멈췄다.

불이 꺼지고 엔진도 멈췄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권총수가 내렸다.

“같이 가?”

오민철이 유리를 내리고 물었다.

권총수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이며 청송관을 향해 걸어갔다.

육중한 나무 대문이 굳게 잠겨 있다.

잠시 대문을 올려다보던 권총수의 몸이 풍선처럼 떠올라 담장을 넘어갔다.

모두가 잠이 든 듯 집안은 조용했다.

그러나 권총수는 안쪽 담장을 향해 걸어갔다.

뒷마당에서 기척이 있다.

바람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불어오며 내는 소리가 아니라 뭔가 날카로운 것을 잘라낼 때 나는 소리다.

쉭!

쉬쉬쉬!

웬만한 솜씨 가지고는 저렇듯 명쾌한 소리를 낼 수 없다.

처음 왔던 날 수련하던 제자들 중에서 저런 소리를 낼 만큼 뛰어난 이는 없었다.

결국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스으으!

권총수의 몸이 땅에서 한자 가까이 뜬 체 걸어가고 있었다.

초상비를 보법으로 바꾼 걸음인데 얼핏 허공답보처럼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허공답보는 말 그대로 높은 공중에서 걷는 걸음이지만 이렇게 지면에서 한 자 높이로 뜬 체 걷는 건 어공비보(馭空飛步)라고 부른다.

뒷마당에 들어섰다.

권총수는 어공비보를 거두어 땅을 밟고 있었지만 오는 발걸음 소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칼을 휘두르고 있는 사내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송명파였다.

‘걸음이 좋다’

다시 봐도 좋은 송명파의 걸음이다.

송명파의 걸음은 빠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검의 기본은 걸음이다.

걸음이 좋지 않으면 절대 위력적인 식을 펼쳐 내지 못한다.

중국 선종의 시조이자 소림에 일흔두 가지 무공을 남긴 달마대사는 검은 발이 7할이라고 했다.

적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검이 빨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걸음이 좋아야 한다.

마지막 공격은 칼이다.

생사는 칼이 끊는 것이다.

그러나 적의 목숨을 끊기 위해 다가가고 날 지키기 위해 후퇴하는 건 걸음이다.

송명파는 달마대사의 가르침을 직접 받기라도 한 듯 그대로 이행하고 있었으며 매우 완숙했다.

본기지만(本基之滿)이라고 했다.

기초가 제대로 갖춰지면 나중은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어디서 왔는가?”

송명파는 검을 거두며 돌아섰다.

이미 권총수의 등장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원래 검이란 외인에게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건데 전혀 거리낌이 없군요?”

송명파가 움찔했다.

권총수의 말이 맞다.

이름하여 자기 문파의 진산절기이기 때문에 수련하는 과정을 함부로 노출 시키지 않는다.

권총수가 적이라면 자신의 패(覇)를 완전히 드러내는 꼴이 되는 것이다.

“설마 그것 좀 훔쳐봤다고 하여 살인멸구(殺人滅口: 죽여 입을 막는 것)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송명파는 미소를 지었다.

“살고 싶은가보군?”

“정말 죽이겠다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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