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5화: 전쟁의 상인(2)
택시 한 대가 멈추고 정장을 한 사내가 내렸다.
사내의 오른손에는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는데 호텔 로비로 들어서더니 왼쪽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누군가를 찾는 듯 입구에 서서 살피던 사내가 한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권총수와 채명천이 커피를 마시며 얘길 나누고 있었다.
“대령님 어서 오십시오.”
채명천이 일어나 대령 이춘석을 맞이했다.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이춘석에게 양보하고 채명천은 권총수 옆으로 앉았다.
“저희 사장님이십니다.”
채명천의 소개에 권총수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명함 한 장을 건네 주었다.
이춘석 역시도 명함을 건네 주었는데 권총수는 자세히 읽어보고 있었다.
명함을 읽고 난 권총수가 고개를 들었다.
“날 보자 했다고 들었습니다?”
“곧바로 용건을 말하죠. 지금 우리 군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권총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특히 병사 한 명 한 명에게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자되고 있는 특전사를 포함한 UDT 병력의 전역 신청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죠.”
“우리 회사 때문이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보안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군 지원 자격을 대폭 강화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국방부의 생각입니다.”
“어떤식으로 강화하죠?”
“그 문제는 사장님께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만 한국군 출신은 아주 소규모로 선발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권총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니면 계급 정년제 같은 것을 도입해도 괜찮고요.”
“계급 정년제는 또 뭡니까?”
“특수부대 출신자들에게 최소한 중사 10호봉 이상이 되지 않고 제대한 사람은 자격 미달로 분류하는 거죠.”
“대략 군복무 칠 년 이하 전역자는 받지 마라.”
“그러면 좋죠.”
권총수는 이춘석을 보며 웃었다.
“제가 아는 형이 있습니다. 707을 나와 지금 사우디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그 형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군인 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다.”
이춘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고급인력인 특수부대의 유출을 막기 위한국방부 차원의 대책이 고작 그것입니까? 처우문제로 전역한다는 걸 알면 개선할 생각을 해야지 사회진출의 길을 막아 억지로 전역자를 줄이겠다니 개그콘서트에 나와야 할 일입니다.”
“우리 군으로서는.”
“이 대령님, 지금 전역하시면 한 달에 받는 군인연금이 얼마나 됩니까? 자료에 보니 복무기간도 짧지 않던데 대령으로 예편하면 한 달 생활비는 충분하게 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의무복부 기간이 끝나는 하사 전역자는 연금이 없죠. 중사라고 해봤자 목구멍에 거미줄 닦기에도 급급할 것이고.”
“우리는.”
“자꾸 우리 우리 하는데 지금 하신 말씀이 국방부의 뜻입니까 아니면 상부에서 자꾸 전력 누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보라는 독촉에 날 찾아와 말도 안되는 얘길 하시는 겁니까?”
이춘석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전역 후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그들에게 양질의 직장을 제공하면 국방부 입장에서는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령님의 얘기는 앞으로 회사 경영에 참고는 하겠습니다. 그럼.”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커피숍을 나가고 한참이 지나도 이춘석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권총수의 말은 하나도 틀린게 없었다.
자신은 올 연말이면 진급 제한에 걸려 전역을 해야 한다.
그러던 차에 내려온 공문이 하나 있었다.
전력누수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을 세워 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능력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 볼 목적으로 특수부대에 지원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래가 불안하다는 걸 느낀다.
한 살이라도 덜 먹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하나둘 떠나는 것이다.
대책은 있다.
처우개선이다.
사실 직업군인에 대한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20년 전부터 흘러나왔다.
월급이라고 해봤자 가뭄에 콩 나듯 찔끔 씩 올랐다.
현재 우리나라 모든 공무원들중 가장 아래에 있는 봉급 군(群)들이 군(軍)이다.
거기에서도 하사관급 들이다.
사실 전역을 앞둔 이춘석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진급을 못해 제대하는 자신에게 그런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복지대책을 세워보라니 웃기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전혀 노력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여 권총수를 찾아왔는데 준비되지 않은 유감표명이 얼마나 개망신으로 돌아오는지를 지금 체험한 것이다.
“정말 빌어먹을이군!”
속이탄다.
자신은 커피를 시키지도 않았다.
그래서 맞은편에 채명천이 남기고 간 커피를 훌러덩 마셨다.
권총수는 사무실로 돌아와 채명천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일반 보병 지원자들까지도 받으라는 말에 채명천이 눈을 크게 떴다.
“병력이 턱 없이 모자라는 건 알지만 생각 좀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어차피 훈련소에서 모두 걸러집니다. 모든 건 훈련소 기준이지 출신 부대가 통과 기준이 될수는 없죠.”
“하긴!”
“훈련소에 들어가 있는 2기 병력이 몇 명이죠?”
“195명, 해병대 제대자들까지 받은 숫자야.”
딸칵!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현재 남은 예비 병력이 단 두 명입니다. 이번에 돌아가면 아프카니스탄 진출을 타진해 볼 계획인데 일이 성사되면 그곳은 일,이백 명가지고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아프카니스탄.”
채명천이 놀란 표정이다.
“왜 놀라세요?”
권총수가 웃으며 말했다.
“거긴 완전히 전쟁터 아냐?”
“맞습니다. 아카데미 다인코프 모두 평균 일 년에 2,30명씩 전사자가 나오죠.”
아프카니스탄 탈레반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그들이야 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실전 경험을 지녔으며 게릴라전에 완벽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백전노장인 것이다.
미군이 서둘러 철수하려는 이유는 밑 깨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국방비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정치적 발표용일 뿐이고 속사정은 다르다.
미군의 피해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폭탄을 쏟아 붓고, 대규모 공격을 가해도 탈레반은 줄어들지 않는다.
거기다 아프카니스탄은 평균 해발 고도 3,000미터에서 5,000미터에 이르는 끝없는 고산절봉들로 이뤄졌다.
헬기조차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지천이며 공중공격은 더욱 불가하다.
웬만해야 하는데 험준한 산악지역이기 때문에 당연히 탱크나, 험비는 물론 병력조차도 들어갈 수 없다.
그런 환경에서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에 미군병사는 끝없이 희생되고 있었다.
“지금 그 자리를 빅 쓰리인 아카데미와 다인코프, 마르케스 반체 마르케스, 말고도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KBR), 이리니스, 영국의 KAS까지 치열하게 매달리고 있습니다.”
꿀꺽!
채명천이 눈을 빛냈다.
권총수는 그들과 한 번 겨뤄보고 싶은 모양이다.
한국군의 능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그곳에 쏟아 놓으면 금방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물론 아프카니스탄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첫째 이유는 위험지역인 만큼 CIA나 미국무부의 베팅이 크기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돈이 되는 것이다.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죠.”
권총수는 자신에 찬 얼굴이다.
“어차피 그들과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남미의 돈많은 부호의 딸이나 지키든가, 아니면 아랍 부호의 운전사들을 열심히 배출하는 삼류 업체로 전락하겠죠.”
권총수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안되는게 어딨어’
그때 책상 위 전화벨이 울렸다.
쇼파에 앉아 있던 채명천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블랙잭입니다. 민철씨, 잠깐!”
전화기를 들고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핸드폰을 안받아 혹시나 하고 사무실로 해본다는군.”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화기를 받았다.
“어 나야. 형!”
“좀 와봐야겠는데.”
“뭔 일인데?”
“시리아 사건 말이야. 뭔가 이상해.”
“말해봐.”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일단 와서 얘기해. 그 문제로 맥보란 서기관도 다녀갔어.”
맥보란까지 다녀갔다는 말에 권총수는 눈을 좁혔다.
수많은 전쟁을 경험하고 깊숙이 관계한 사람이 왔다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알았어.”
권총수는 전화를 내렸다.
채명천이 무슨 전화인가 싶어 바라본다.
“가미카제라는 용병회사에서 일으킨 쿠르드족 학살한 사건 아시죠?”
“난리던데요.”
“뭔가 있나봅니다. 그게 뭔지 나도 아직 모르지만, 식사하러 가죠.”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을 먹고 난 블랙잭 뉴저지주 훈련교관 벤자민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십여 분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었다.
야외 휴게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사격교관 말론이 다가왔다.
말론 역시 앉자마자 담배를 물었는데 엔터프라이즈호 선원구출 때 알파 팀으로 활약 했었다.
“어때요?”
둘 모두 씰출신들로 벤자민이 선배였다.
말론의 질문에 벤자민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담배를 두어 번 더 빨고 난 벤자민이 말했다.
“이상한 친구들이야.”
“그렇죠 선배님!”
말론이 눈을 반짝 거린다.
“달라, 확실히 달라.”
뭔가에 놀란 듯 벤자민의 목소리는 가늘게 흔들렸다.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살의를 갖고 있어.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랫동안 죽여야 할 분명한 대상을 놓고 훈련하지 않으면 그런 눈빛을 보일 수가 없지.”
1기 훈련생도 그렇고 2기도 특별했다.
스스로를 학대하듯 훈련에 매달리고 휴식시간에 편하게 쉬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달리고, 또 달리면서 체력을 쌓았다.
입소한지 이제 2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몸은 근육질로 바뀌고 눈에서는 새파란 독기가 뿜어 나온다.
웃고 떠드는 사람이 없고, 온 몸을 던져 훈련에 임했다.
단순히 돈을 벌고 싶다는 의지에서 나오는 훈련이 아니다.
보면 안다.
이들은 자신들과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증오 아닐까요?”
말론의 얘기에 벤자민이 돌아보았다.
“오랫동안 구별지어지고 차별받고, 모욕당하고, 대립하는 사회에서 성장하면 어른이 되어 세상을 향한 증오를 발산할 위험이 커진다는 심리학자도 있습니다.”
“그런 현상은 정치적인 것이잖아.”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잖아요. 좋을수도 나쁠수도 있다는 중간자적 사고는, 줏대 없고 언제든지 돌아설 사람이라 보는 위험한 시선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글을 본적 있습니다. 흑이냐 백이냐, 아군이냐 적이냐의 이분법적 사고로 지배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지배까지는 몰라도 한국출신들을 만나보면 유난히 정치적인 면에서는 날카롭고 양보를 하려고 들지 않더군. 아무튼 그런 환경이어서인지 몰라도 굉장히 공격적인 친구들임은 분명해.”
벤자민은 권총수를 떠올렸다.
권총수에게서도 그런 사고가 간간히 보인다.
너 아니면 나로 분류 하려 든다.
내 편 아니면 적이다.
“분단국가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체제의 우월성을 교육시키고, 상대를 용서 할 수 없는 악으로 보는 세상에서 컸다면 야수가 되는 건 쉽죠.”
말론이 한숨을 쉬었다.
“전쟁을 오래 겪은 병사가 짐승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른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폭발하죠. 히틀러의 독일이 그랬고 일본이 그랬고.”
벤자민은 담배를 끄고 일어났다.
“오늘 비상 훈련 있나?”
말론이 웃었다.
“날씨 좋지 않습니까?”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는 말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비상훈련은 악천후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