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84화 (384/651)

제384화: 전쟁의 상인(1)

권총수를 바라보았던 당시 어른들의 시선이라면 자신은 지금 절대 이런 사업을 할 수 없다.

지금쯤 극악무도한 죄를 짓고 교도소를 들락거려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보육원 아이들은 하나같이 형편이 없고 이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결국 범죄의 소굴로 빠진다.

단 한 명의 어른도 내 자식이 잘못했다 정식으로 사과한다고 말하는 사람 없었다.

“있다.”

깜짝 놀라는 사람처럼 권총수의 목소리가 컸다.

“누구?”

오민철이 눈을 빛낸다.

“고1때 이두식이라는 녀석이 있었어. 내가 꼴찌였고 녀석이 바로 앞이었지. 그 자식은 내가 이사갈까봐 전전긍긍한 놈이었어.”

“으음!”

오민철이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녀석이 친구 신발을 훔쳤어. 완전범죄가 될 뻔했지만 나한테 들킨거야. 숨긴 곳을 말하라고 해도 죽어도 훔치지 않았다면서 버틴거야. 잘못되면 일이 커진다고 몇 대 쥐어 박았지. 다음 날 등교하는데 웬 아주머니가 교문에서 날 기다리고 있더라고, 녀석의 어머니였는데 날 보자마자 허리가 휘어지는 거야. 우리 두식이를 잘 혼내줬다면서 앞으로도 나쁜 짓을 하면 어제처럼 쥐어박아서라도 착한 아이로 만들어 달라는 거야.”

“멋있다.”

“무조건 날 천하제일악인으로 만들던 부모들 속에서 그날 보여준 두식이 어머니의 행동은 산뜻하더라고.”

닥치고 욕설만 듣다 아들친구에게 허리를 구부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괜찮은 어른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이잉!

아랫주머니가 흔들린다.

핸드폰을 꺼냈는데 훈련소장 벤자민이었다.

“벤자민?”

“캡틴, 어떻게 된거야?”

궁금한 모양이었다.

불안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 계약시 실패로 돌아갔다면 모두가 떠났을지도 모른다.

첫 계약부터 실패한 회사에 참고 기다려 줄 용병들이 아니다.

요즘 오라는 곳 지천이다.

“계약 했습니다.”

“오 마이 갓!”

벤자민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몇 마디 더 주고받고 난 권총수는 전화를 내리고 야자수 나무에 등을 기댔다.

하루 삼 교대 경비 근무다.

투입되는 인원은 120명.

전원무장 경비다.

3억 오천만 달러에 3년 계약에 합의를 봤다.

“현재 인원이 몇 명이지.”

“앞으로 사흘 남았으니까 더 지켜봐야겠지만 출발할 때 151명이 생존했잖아.”

그들 모두가 합격한다고 치고 120명을 파견하고 나면 남는 인원은 3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 병력의 숫자가 일백 명은 되어야 한다.

수시로 결원이 생기고 갑작스런 경비 요청이 들어 올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전에 가까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이나 조금은 덜하지만 아직도 불안한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이나 콩고민주공화국 알제리 라이베리아는 전투가 치열하다.

그런 나라는 수시로 지원요청을 하는데 병력이 부족하면 계약을 할 수가 없다.

“일반 보병도 모집 요강에 넣지 그래?”

“그래야겠는데. 어차피 훈련소에서 모두 걸러질 테니까.”

권총수는 곧바로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채명천이다.

“이사님 모집 요강에 일부 수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반 병력도 지원 가능하다는 문구로 고쳐 주시죠. 계약은 잘됐습니다. 수고 좀 해주십시오.”

지금 한국은 깊은 밤일 텐데 두 번 벨이 울리자 곧바로 받는다.

채명천 역시 오늘 계약건으로 아람코 나세르 대표와 만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블랙잭 직원이라면 하나 같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일단 식사부터 하죠.”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일주일 후

리야드 서북쪽 외곽에 오래된 건축물이 있었다.

디리야 궁전으로 불리는데 18세기에 세워졌다.

궁전 일부를 제외하고 당시 건물들은 거의 무너지거나 흔적만 남아 있지만 사우디 정부에서 발굴과 보존을 잘 해놓았고 얼마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했지만 서류 보강 조건으로 탈락했다.

그 디리야 궁전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단층의 건축물 하나가 보인다.

바로크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건축물인데 무너지고 시커멓게 불탄 흔적이 있었다.

건물은 화강암으로 지어졌으며 전면 중앙으로 아치형 출입구가 있고 좌우로 높이 3미터 가량의 창문 여섯 개가 있으나 유리는 모두 깨지고 없다.

권총수와 이철산은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실내는 이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또한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크다.

이곳 건물은 50년 전까지 사우디에서 가장 화려하고 큰 교회였다.

사갈교회.

하지만 1975년 이슬람 시위로 일어난 군중들이 불을 지르고 당시 목사들과 신도 10여명이 불에 타서 죽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이후 버려진 건물로 내려오다 오년 전 철거를 하려고 했지만 당시 디리야 궁전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는 가급적 주위 환경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판단에서였다.

벽 쪽으로 붙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넓은데.”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괜찮지?”

“응 좋아.”

오민철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1층은 사무실과 보급창고를 사용하고 지하실은 병기고로 계획하고 있다.

2층은 리모델링을 하여 일백 여명이 숙식을 할 수 있는 생활반으로 만들 계획이다.

그때 권총수가 전화를 받았다.

“오우 핫산, 알라후 아크바르.”

인테리어 업자이다.

“내일부터 당장 시작하세요. 빨리 끝날수록 좋습니다. 앗 쌀라 말라이 쿰(평화가 그대와 함께).”

전화를 끊은 권총수는 건물 구석구석을 살폈다.

화강암으로 된 건물이기 때문에 웬만한 총격에는 끄덕 않는다.

유리창이 있던 자리는 석벽돌로 대체하고 창문은 최소화할 생각이다.

기관총 공격까지는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부동산 업자와 시내를 돌아다니다 어제 이 건물을 만났고 오늘 오민철을 데리고 온 것이다.

“좋아. 마음에 든다. 가격도 싸고.”

건물의 소유주가 리야드 시청이었기 때문에 큰 돈 들이지 않고 매입할 수 있었다.

정확히 150명이다.

블랙잭 제1기 용병들이 리야드 공항에 내렸다.

모두가 평상복 차림이었지만 풍기는 기세가 남달랐다.

일행은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에 대기하고 있던 네 대의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용병들을 태우고 공항을 떠났다.

그리고 정확히 1시간 20분이 지나 블랙잭 사우디 지사가 있는 사갈교회에 도착했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건물은 운치가 있었고 차에서 내린 용병들도 모두가 감탄한다.

오민철은 지하 병기고에서 용병들에게 각자의 소총을 나눠주었다.

국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M4다.

뉴저지주 훈련소에서 미리 M4를 지급해 손에 익히도록 했다.

“총기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처음은 회사에서 제공하지만 이후는 개인 구입해야 한다는 걸 명심 하십시오.”

용병들은 소총을 한 자루씩 지급받았다.

생활관으로 돌아온 전상미는 노리쇠를 당겨 보기도 하고 실탄은 없지만 제대로 기능들이 작동하는지 방아쇠도 당겨보고 분해를 하여 부품의 이상유무를 확인했다.

“주목해 주세요.”

총기지급이 끝났다.

용병들은 사갈 교회 건물 앞마당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20여 그루 되는 대추야자나무와 아카시아가 만들어낸 그늘 아래 앉아 있었다.

낮에는 40도를 훌쩍 넘는 더위지만 습기가 거의 없는 관계로 그늘 아래는 그다지 덥지 않다.

“안치웅씨.”

아카시아나무 아래서 조금 전 지급받았던 총을 살피고 있던 안치웅이 일어났다.

뉴저지 훈련소에서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의 직책은 블랙잭 훈련소 1기 팀의 명칭인 블랙 독(Black dog)의 팀장이다.

“오늘 저녁 야간사격 훈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오후에 간단한 전투 사격 훈련을 마치고 곧장 현장에 투입될 것입니다.”

“예!”

오민철이 사무실로 사라졌다.

“들으셨죠. 각 소대는 저녁 식사가 있기 전까지 생활관에서 정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안치웅이 들어가고 하나둘 사람들이 2층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생활관은 모두 여섯 개다.

한 개의 생활관에 스물다섯 명이 수용되는데 유일한 여자인 전상미에 대한 특별공간은 없다.

다만 앞으로 여자들의 비율이 높아질 것을 대비해 어제부터 독립공간이 지어지고 있었다.

전상미는 쉬지 않았다.

탁!

타악!

돌발사태를 대비한 사격자세 훈련이다.

총을 어깨에 메거나 손에 쥐고 이동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적이 나타났을 때를 대비한 사격 훈련이다.

아무리 돌발사태가 발생했다고 하여 막무가내로 방아쇠를 당기면 안된다.

보지 않고 쏘는 총알은 절대 희망을 선사하지 않는다.

백퍼센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총알만 허비할 뿐이다.

휙! 탁!

탁! 휙!

어깨에 메고 이동하면서 재빨리 사격자세를 취하고, 한 손에 총을 들고가다 번개처럼 사격자세를 잡는다.

그뿐 아니다.

이번에는 총소리가 들리는 것을 가장하여 재빨리 땅바닥에 엎드려 사격자세를 취했다.

걸어가는 상태에서 자세를 취하는 서서쏴 자세는 그런대로 할 만 하지만 일어섰다 땅바닥에 엎드렸다를 반복하는 응급 상황 대처 사격은 한 겨울에도 십여 번만 하면 땀이 흐른다.

노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생활관에서 개인 정비를 하는 일테면 휴식을 주었는데도 실내는 텅 비었다.

사무실 앞 공터에서 사격술 훈련을 하거나 턱걸이를 하는 사람, 줄잡고 오르기에 매달린 사람, 심지어 줄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체력이 생존이다’

체력이 갖춰질 때 모든 것이 순조롭다.

사무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던 오민철이 빙긋 웃었다.

자신들도 초창기에는 단 한 시간도 쉬지 않았다.

쉬면 빨리 죽고, 뭔가 하면 늦게 죽는다는 선배 용병들의 모습을 실제로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그거다. 고향땅 밟고 싶으면 훈련에 몰빵하는 것 말고는 없다’

오민철은 돌아서서 의자에 앉았다.

* * *

권총수가 인천공항에 나타났다.

갑자기 한국에 볼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장님!”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채명천이 다가왔다.

“채 이사님!”

채명천이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을 빼앗으려 들자 권총수는 피하면서 괜찮다고 했다.

두 사람은 청사를 빠져나가 주차장으로 향했다.

채명천이 핸들을 잡았다.

조수석의 권총수는 채명천이 가져다 준 서류를 보고 있었는데 한 사람에 관한 내용이었다.

서류는 모두 4장이었는데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읽고 난 권총수는 콘솔박스에 넣어 두었다.

담배를 피워 문 권총수는 차장을 내렸다.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날 만나려는 이유가 뭘까요?”

“전혀 감이 오지 않는 건 아닌데.”

뭔가 아는 듯 한 말에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열흘 전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라는 사람이 회사로 찾아왔다.

대령 이춘석이라면서 명함을 건네주었고 블랙 잭 사장님을 뵙고 싶다고 했다.

국내에 없다고 하자 언제쯤 귀국하느냐고 물었다.

만나려고 하는 이유나 목적을 자세히 밝히지도 않은 채 권총수의 행방만을 추궁하듯 캐묻자 채명천은 짜증이 났다. 하지만 회사 이미지를 생각하여 꾹 참았고 국내로 돌아오면 연락하겠다고서 돌려보냈다.

채명천은 권총수의 눈치를 살폈다.

권총수는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