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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89화 (289/651)

제289화: 도시 자객(1)

구즈만은 오민철이 건네는 말보로 레드를 떨리는 손으로 받는다.

딸칵!

오민철은 라이터 불까지 켜 주었다.

구즈만은 깊숙하게 담배를 빨아들였는데 완전히 기가 죽어 있었다.

“구즈만!”

“예 팀장님!”

비로소 눈이 빛나고 상체를 똑바로 세운다.

군대에서 상관이 이름을 부를 때 긴장하듯 몸을 바로세우는 동작과 다르지 않았다.

오민철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패야 말을 듣는단 말이야’

구즈만은 제대로 걸린 것이다.

* * *

벤츠 SUV 한 대가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산은 만발한 꽃들과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하는 잎사귀들로 덮였고 자동차 소리에 놀란 듯 사슴 두 마리가 비탈길을 내달렸다.

차는 한참을 달려 커다란 고개 하나를 넘었다.

애팔레치아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일컬어지는 해발 2037미터의 미첼산이다.

고개를 넘은 차는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고 얼마가지 않아 커다란 계곡이 나타났다.

물은 맑았고 수량은 풍부했다.

차가 멈추자 뒷문이 열리며 15세 가량의 소년이 뛰어내렸다.

소년은 재빨리 계곡물 근처로 다가가더니 큰 소리로 외쳐 말했다.

“으와. 오늘 고기 잘 잡힐 것 같은데 아빠.”

소년은 고개를 돌렸다.

그때 운전석과 조수석이 열리며 일남일녀가 내렸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내는 서른 후반 정도 보였는데 그레이 계열의 등산용 바지에 나이키 로고가 찍힌 붉은색 바람막이 자켓을 걸쳤다.

조수석에서 내린 여자 역시 같은 색의 바지와 노랑 자켓을 걸치고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루카스 조심해.”

소년의 엄마인 엘라는 물가에 서 있는 아이를 불러 주의를 환기시켰다.

“아빠 빨리 낚시대 꺼내 주세요.”

루카스라는 소년이 트렁크를 열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약간 검정색 피부에 콧수염을 길렀는데 언뜻 보아 아랍계로 보인다.

그러나 아내는 백인이었고 아들 루카스 역시 노랑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백인의 모습이었다.

아빠 카리미는 트렁크를 열고 낚시 가방을 내렸다.

지퍼를 열자 가방 안에는 많은 낚시대들이 있었는데 능숙한 솜씨로 낚시대 한 개를 꺼내 줄을 연결하고 훅 케이스를 열어 붉은색 새우모양의 미끼를 달았다.

“루카스 오늘 누가 큰 거 잡는지 내기야.”

“물론이지. 기어이 아빠보다는 큰 것을 잡을테니 두고봐.”

소년은 낚시대를 가지고 계곡으로 걸어갔고 아빠 카리미는 아내 것과 자신의 것을 차례대로 준비했다.

“당신은 루카스 옆에서 하는게 좋겠어.”

루카스는 수영을 할줄 알고 있다.

그래도 만약을 몰라 구명조끼를 입혔지만 세상일은 알 수 없다.

“물론이에요.”

아내 엘라는 당연하다는 듯 루카스가 하고 있는 곳으로 걸어가더니 물 색깔을 자세히 살피고 맞은편 웅덩이쪽으로 멋진 오버헤드 캐스팅을 시도했다.

바늘은 정확히 소를 이루고 있는 웅덩이로 잠긴다.

한편 아빠 카리미는 계곡을 따라 상류로 걸어 올라갔다.

대물을 노리기에 적당한 포인트를 찾으며 올라가던 카리미가 멈칫 했다.

상류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노랑 자켓에 베이지 색상의 바지, 그리고 검정색 등산화를 신고 있었는데 캐스팅이나 입질을 했을 때 당기는 자세가 매우 여유로운 것이 베테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더 있었다.

상류 쪽에서 세 팀이 더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개인 플레이어들이다.

플라이 낚시는 혼자 조용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최고 장점이다.

카리미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위로 올라갔다.

낚시를 하던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고개를 꾸벅하며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다.

권총수는 미끼로 마이크로 스푼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미 강력한 손맛을 두 번 봤고, 잡힌 송어의 크기는 40센티가 훌쩍 넘었다.

물론 잡은 고기는 다시 풀어준다.

고기를 먹기 위해서도 아니고 손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이제 이곳 롤리치아 계곡에서 플라이 낚시를 하는 이유가 됐던 표적이 등장한 것이다.

권총수의 낚시능력은 확실히 압도적이었다.

상류와 하류쪽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으나 권총수 만큼 대물을 끌어내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부 낚시객들이 근처로 다가와 권총수의 낚시를 구경하고 어떤이는 배우기 위해 자세히 살피기도 했다.

그중 카리미도 있었는데 그는 권총수의 캐스팅(플라이를 목표지점까지 던지는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나직히 중얼 거린다.

‘완벽한 폼이로군’

폼이란 목적하는 행동이나 종목을 가장 잘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작이다.

직장 생활 15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있었다.

‘폼(form)이 좋아야 한다’

모든 건 폼이다.

사격도 폼이고 격투술도 폼이다.

폼이 좋으면 당연히 결과도 좋다.

실제로 활동중 폼이 좋으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직접 경험했다.

특히 사격은 빈틈없이 정확하게 표적의 심장을 뚫는다.

낚씨도 그렇다

폼이 좋으면 던지고자 하는 목표지점에 분명하게 들어가는 것이다.

또 하나 권총수의 좋은 것이 훅킹(챔질)이었다.

훅킹이 뛰어나기 때문에 한번 걸었다 싶으면 결코 놓치질 않는다.

플라이 낚시 초보자들에게 쉽게 정복되지 않는 부분이 챔질이다.

조금만 타임이 늦거나 자세가 흔들리면 바늘이 빠진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권총수는 유난히 눈을 빛내며 바라보는 카리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캐스팅과 훅킹이 너무 아름답군요.”

“과찬입니다.”

“낚시를 오래 하셨나 봅니다?”

권총수가 따듯하게 응대하자 호감을 느낀 듯 카리미는 본격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배웠죠.”

그러면서 권총수는 흘긋 상류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눈에 보이는 맨 상류쪽 두 사내는 사라졌다.

단 한 명의 남자는 30미터 위쪽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노랑색 자켓에 붉은 색 야구모자를 썼다.

사내는 좀체 입질이 없는 듯 몇 번 투덜거리는 듯 하더니 조금씩 내려온다.

고기를 잘 잡는 권총수쪽으로 오려는 것이다.

아마 자신이 있는 곳은 고기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휘익!

쉬이이이!

사내는 어느새 15미터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가깝다 보니 캐스팅할 때의 낚시 바늘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꾸욱!

입질이 오자 권총수는 힘껏 당겼다.

쉬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낚시대가 활처럼 휘어졌다.

심한 저항에 낚시대는 더욱 휘어지며 꾹꾹하는 소리를 냈다.

권총수는 앞에 크고 작은 돌무더기가 있어 그대로 끄집어 내면 고기가 걸릴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위쪽으로 조심스럽게 고기를 이동시켰다.

그러나 쉽지 않다.

권총수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물속으로 들어갔다.

허리정도까지 잠긴다.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서 낚시대가 느슨해지자 고기는 빠르게 상류쪽으로 치고 올라갔다.

힘차게 도망치는 고개를 챔질하면 당연히 터져 나가기 때문에 고기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때까지 줄을 풀어주거나 아니면 따라가줘야 한다.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위쪽 사내와의 거리가 10여미터 정도로 가까워졌다.

움직임이 지극히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아무도 시선을 주거나 바라보지 않았다.

스윽!

오른쪽 허리에 걸린 칼이 뽑혀 나왔다.

상의 자켓이 가리고 있어 칼 집은 보이지 않았는데 칼이 수면을 따라 이동했다.

연수도파(燕水刀波), 제비가 파도를 치고 올라가는 동작에서 유래한 절정의 암기술이다.

수면을 타고 날아간 칼이 2미터 정도의 거리를 남기고 슈육 튀어 오르더니 사내의 목덜미에 박혔다.

사내는 움찔하는 듯 하더니 그대로 계곡물 속으로 엎어졌다.

떠오르면 안된다.

권총수는 수면을 향해 오른손 장심을 가져다 댔다.

수면장파(水面掌破), 물을 이용해 강력한 내기를 보내는 고도의 수법이다.

마치 검을 쥐고 내공을 주입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인다.

수면장파에 의해 사내의 엎어진 주검은 떠오르지 못하고 흘러갔다.

‘적지에서의 블랙요원은 혼자다. 그러나 활동하지 않을 때는 아군의 보호를 받는다. 워낙 크고 위험한 비밀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적지에서는 어쩔 수 없으나 안전지역에서는 다른 동료들이 은밀하게 보호한다’

MI6 호지슨 부장의 얘기였는데 권총수는 낚시객으로 위장한 사내가 카리미의 보호자라는 걸 간파했다.

권총수는 릴을 감아 낚시줄을 거두었다.

물었던 고기는 이미 빠져 나가버리고 빈 루어만 끌려온다.

권총수는 윗주머니에서 루어 한 개를 꺼내더니 갈아 끼웠다.

권총수는 낚시대를 던지기 위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편 카리미는 입질이 시원찮은 듯 계곡 맞은편 수심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캐스팅을 하고 있었다.

권총수는 침을 삼켰다.

그러더니 흘긋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보았는데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가을도 아닌데 바늘로 쑤시면 푸른물이 쏟아 질 것 같은 하늘을 보며 나직하게 중얼 거렸다.

‘앗쌀라 말라이 쿰’

누군가에게 평화를 기원해주며 낚시대를 던졌다.

취리릭!

투명한 낚시 줄이 빨래 줄 처럼 뻗어 나갔다.

카리미는 20여 미터 앞에서 데드 드리프를 구사하고 있었다.

데드 드리프란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에 플라이를 맡기는 것인데 물살에 의해 이 또한 살아있는 미끼처럼 보인다.

고기가 쉽게 잡히지 않자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쉬익!

쭉 뻗어간 낚시 바늘은 정확히 카리미의 미간에 틀어박혔다.

후욱!

권총수는 강하게 챔질을 했다.

카리미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버텼지만 그럴수록 권총수는 더욱 강하게 릴링을 했다.

드르르르!

처음에는 약간 주춤하며 저항하는가 싶었으나 카리미는 풍덩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투툭!

워낙 무거운 무게 때문에 낚시대가 부러질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드르르르!

낚시대는 활처럼 휘어졌고 권총수는 손잡이를 아랫배에 대고 더욱 빠르게 릴을 감았다.

거대한 짚단 하나가 끌려오듯 계곡 물을 가르며 카리미가 끌려 왔는데 하늘을 보고 누웠다.

바늘은 MC-7051 스트리머로 길이만 14밀리에 이르고 두껍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는 듯 카리미는 물고기처럼 입을 달싹 거리며 물을 삼키고 있었다.

콱!

권총수는 손으로 낚시 줄을 잡아 흐르는 물에 카리미가 떠내려 가지 못하도록 했다.

찰랑거리는 계곡물이 카리미의 얼굴을 덮었다 드러내기를 반복했다.

카리미의 눈동자가 출렁거린다.

“날 알아보겠소?”

권총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사막...흑새!”

“다행이군요. 혹시 모른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권총수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헉헉!

카리미는 헐떡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꿈틀 거렸지만 입안으로 들어간 물들이 거품을 내며 다시 나올 뿐 들리지는 않았다.

카리미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려 했다.

일어나려는 동작이지만 권총수는 덤덤한 표정으로 내려다 볼 뿐이었다.

“너무 걱정 마시오. 당신 아내와 자식은 남겨 드릴테니.”

그 말을 알아 들은 듯 카리미의 얼굴이 잠깐 환해졌다.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물고기 입에서 낚시 바늘을 빼는데 사용하는 니빠를 꺼냈다.

뾰족한 니빠 끝으로 바늘 꽁무니를 집고 안쪽으로 젖혔다.

투툭!

소리가 나며 바늘이 빠져 나왔고 카미리는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잠시 떠내려 가는 카리미를 바라보다 낚시 바늘에 묻은 피를 씻었다.

스르르!

권총수는 닐을 완전히 감아 낚시대를 접었다.

잡을 만큼 잡았으니 더 이상 욕심 내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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