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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88화 (288/651)

제288화: 플라이 낚시(2)

권총수는 벚꽃이 만연한 브룩공원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호텔이 아닌 모텔이다.

별을 달고 있는 호텔중 흡연 가능한 곳이 없어 어쩔수 없이 이곳 모텔에 투숙한 것이다.

모텔이지만 생각보다 시설도 좋았다.

7층 맨 꼭대기 끝방 710호에 투숙했다.

‘알리 카리미!’

상대는 프로중의 프로다.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건 결코 자신이 죽였다는 걸 어떤 과학적 상식을 들이대도 모르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 뿐이다.

과학을 흐트러뜨리려면 비과학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는 마흔 후반의 동양계 얼굴이었지만 모텔에 투숙할 때는 육십 가량의 초라한 노인이었다.

담뱃불을 끈 권총수는 샤워실로 들어가 몸을 씻고 곧장 침대에 누웠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때는 창밖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남색 정장 싱글에 넥타이 없는 검정색 와이셔츠를 걸쳤다.

다시 한 번 거울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 방을 나섰다.

1층 로비를 나온 권총수는 버스를 이용해 근처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이제 막 문을 닫고 있었는데 권총수는 칼을 파는 가게로 들어섰다.

진열된 여러 종류의 칼들을 정리하던 주인이 허리를 세웠다.

“어떤 칼을 찾으십니까?”

노인인 걸 알고 몹시 공손하게 묻는다.

권총수는 싱긋 웃으며 진열된 칼을 휘둘러 보았다.

천천히 진열된 칼들을 살피며 걸어가던 권총수 발걸음이 한곳에 멈췄다.

“제페니스 슬라이싱 나이프(Japanese slicing knife)”

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시미 칼이다.

생선의 살점을 발라내는데 사용하기 때문에 이보다 더 예리한 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시미칼의 기원은 에도시대 당시 자객으로 이름을 떨친 닌자들의 칼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은밀한 침투와 암살을 전문적으로 하다보니 길다란 칼은 부담이었다.

길이를 최대한 줄여 품속에 넣고 다녔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결국 자객이면서 칼을 휴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줄이고 또 줄였다.

칼이 작은 대신 예리하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오늘 날 사시미 칼로 불리는 회칼은 그렇게 흘러온 것이다.

“이것 한 자루 주시오?”

“할아버지 이 칼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너무 날카로워 자칫하면 베일수가 있죠.”

“알겠소. 혹시 이 근처에 그 칼이 들어갈 만한 칼집을 만들 수 있는 가게는 없소?”

“칼집을 파는 곳은 없지만 가죽으로 크고 작은 생활도구를 만드는 집은 있습니다. 저기 골목 보이시죠. 거기서 좌측으로 가시면 가죽 가게가 나옵니다. 저녁 10시까지 영업을 하니까 아마 지금 있을 것입니다.”

“고맙소. 복받으시오.”

“감사합니다 영감님!”

권총수는 빙긋 웃으려다 재빨리 다물었다.

이를 보면 이상하게 여길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공공선사의 말을 빌리면 변체환용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 이(齒)라고 했다.

변성도 되며 신체의 모든 기관을 바꿀수 있으나 이 만큼은 방법이 없다고 했다.

골목을 나와 주인이 가르쳐준 방향으로 걸어가자 가죽 공방이 있었다.

건장한 체구의 두 백인이 앉아 지갑에서부터 벨트, 가방, 카우보이 모자등 온갖 물건을 만들고 있었다.

권총수가 들어서자 둘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권총수는 종이에 싼 칼을 내밀었다.

“이 칼이 들어갈 만한 집을 하나 만들어 주시오. 군용 대검처럼 허리띠에 메달수 있도록 말이오.”

그러면서 백 달러짜리 지폐 다섯 장을 내 놓았다.

두 사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곧바로 하던일을 멈추고 칼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권총수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물었다.

* * *

40여명의 사내들이 트럭에서 내렸다.

각양각색의 복장을 했는데 공통점은 모두가 손에 M4를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앗!”

비명소리가 들린다.

두 사내가 다리를 절뚝거렸는데 허벅지와 무릎 근처에 피가 낭자하다.

한눈에 관통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민철과 비렌드라 나카야마는 트럭에서 내리는 사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인코프 소속 용병들이다.

옷차림들이 엉망인 것이 어디선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온 모양이었다.

시나이반도에는 수니파 무장세력(IS)들의 하부 조직중 하나인 ‘윌라야트 시나이’가 활개를 치며 무차별 폭탄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궤멸되다시피 한 IS의 잔존세력이 몰려들면서 점점 세를 불리고 있다.

다인코프는 이집트 정부와 계약을 맺고 그들과 전쟁중이다.

시나이반도는 성경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산이 있는 곳이었다.

즉 성지순례나 관광을 위해 많은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의 발길이 잦는데 이들이 바로 테러의 표적이 되는 것이었다.

이집트 군이 강력한 토벌을 감행했지만 산악지대인 탓에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알카에다 및 IS와 연계된 무장단체만 15개 안팎이 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인 것이다.

저벅저벅!

한 사내가 담배를 물고 다가오고 있었다.

왼손에 M4를 들고 있었는데 미군의 사막화를 신고 있다.

“누가 오민철이오.”

사내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민철이 짧게 대답했다.

“자네가 구즈만인가.”

구즈만이라는 사내가 씨익 웃었다.

그건 맞다는 뜻이었는데 오민철이 계속 물었다.

“버홀터 지사장이 뭐라고 하던가?”

“당신과 잘 지내라고 했소.”

“그것이 전부인가? 내 명령을 따르고 내 지시를 어기면 안된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단 말인가?”

버홀터는 오민철에게 이곳 다인코프 병력을 총 지휘할 수 있는 팀장 역할을 맡겼다.

이곳 알파팀과 50여킬로 떨어진 성 카타리나 수도원 인근에서 활동하는 부라보 팀 지휘권을 준 것이다.

군부대 편제와 거의 비슷하게 맞춰 가는데 알파팀과 브라보 팀을 독립된 2개 소대로 구분했다.

즉 오민철은 두 개의 소대병력을 거느리는 중대장 정도의 위치인 것이다.

“왜 대답이 없나? 구즈만 버홀터가 그런말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묻고 있네.”

히죽!

구즈만이 다시 웃더니 말했다.

“없었소.”

빠악!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민철의 뒷차기가 구즈만의 면상에 작렬했다.

벼락같은 동작이었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며 구즈만이 바닥으로 엎어졌는데 기절한 듯 꼼짝하지 않았다.

“싸움이다!”

누군가 크게 외쳐 말했고 사내들이 몰려들었다.

세상에서 싸움보다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없다.

삽시간에 사내들이 몰려왔다.

“엇, 구즈만 아냐.”

사내들은 눈을 크게 떴다.

“구즈만! 구즈만!”

한 사내가 기절한 구즈만을 흔들며 깨워 보려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오늘부터 너희들을 지휘할 오민철이다. 내 지휘를 받기 싫은 사람은 옆으로 빠지도록!”

오민철이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사내들은 서로 눈치를 보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하나둘 옆으로 빠져나오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자신들은 구즈만을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오민철의 지시를 받겠다는 사내들 숫자가 더 많았다.

구즈만은 씰 출신인데다 북미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이다.

큰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긴 했으나 현역시절 그의 보디체크는 상대 공격수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오민철은 사내들을 훑어 본 뒤 천천히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나카야마와 비렌드라가 따랐는데 구즈만이 깨어난 듯 사내들이 이름을 부르며 부축했다.

“정신 차려!”

구즈만은 눈을 떴으나 초점이 없었다.

누운채 좌우로 고개를 돌렸는데 입가에 침을 흘린다.

“구즈만, 어떻게 된 거야?”

그와 동기이자 단짝인 세바스찬이 목뒤로 손을 넣어 상체를 일으켰다.

“정신차려 임마, 나 누군지 알겠어?"

구즈만은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더듬 거렸다.

“세...세바스찬.”

“어떻게 된거야?”

“여기 어디야?”

구즈만이 주위를 살폈다.

자신을 내려다 보는 많은 사내들을 올려다 보더니 재차 물었다.

“모술이야?”

“이라크 모술은 무슨 모술이야. 시나이 반도 멜탈이지.”

현역 때 이라크 모술에서 오랫동안 전장을 누볐는데 그곳인줄로 착각 하는 모양이었다.

“어!”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듯 눈이 커진다.

“가만!”

그제야 상황이 기억난 듯 자리에서 일어난 구즈만이 막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막사는 웬만한 폭격에도 견딜수 있을 만큼 단단한 시멘트 건물로 지어졌다.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소금 창고로 사용하던 건물을 증축하고 수리하였는데 군대 막사처럼 내부를 개조했다.

그 옆으로 단층짜리 건물 두 개가 있었다.

한곳은 식당이고 마지막 건물은 의무실이다.

“어디 가는데?”

세바스찬이 소리치는데도 구즈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1층 막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켜보던 사내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용병이지만 회사의 내규에 의해 상당한 위계질서가 있다.

그러나 군대와 차이라면 군인은 규칙을 어기면 군법에 의해 처벌을 받지만 용병은 죄가 무거울 경우 사표로 끝낸다는 차이가 있다.

그마저 요즘 민간 보안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고급 인력(특수부대 출신자들)이 부족하여 이 회사에서 쫓겨나도 얼마든지 다른 회사에 대접 받으며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이 규칙의 권위를 반감 시키고 있었다.

당연히 항명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그만 두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식이다보니 회사들마다 골치를 썩이고 그야말로 주먹이 센 사람이 아니면 통제가 어렵다.

보안업체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고를 저지르고 나온 용병은 절대 받아주지 말 것을 약속했는데 어디까지나 메이저급 회사들의 연합전선일 뿐이었다.

사람이 당장 필요한 신생 보안업체들은 과거를 묻지 않고 채용하기에 바빴다.

물론 대우는 메이저 보안업체들 만큼은 안 되지만 일자리를 잃은 것이 아닌 만큼 용병들 간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꽈앙!

출입문이 떨어져 나갈 듯 열리더니 구즈만이 종잇장처럼 날아와 처박혔다.

사내들은 또다시 놀랐다.

“허걱!”

구즈만은 다시 기절한 듯 꼼짝하지 않았다.

저벅저벅!

그때 막사에서 오민철이 걸어나왔다.

옷을 갈아 입던 중 구즈만이 달려드는 바람에 오민철은 상체를 벗고 있었다.

오민철의 상체는 차라리 조각상이었다.

잘 발달된 근육은 팽팽하게 살아 꿈틀거렸다.

파팍!

오민철은 구즈만의 뒤통수 두군데를 손가락으로 쳤다.

권총수에게 배운 점혈법이다.

구즈만이 깨어났는데 오민철은 왼손으로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구즈만은 축 늘어져 오민철의 손에 매달리듯 서 있었다.

“이봐 구즈만.”

구즈만의 눈동자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흐릿했다.

“한 번 더 엉기면 그때는 죽여버린다.”

휘익!

거칠게 밀어버리자 구즈만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구즈만은 일어나기는 커녕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사람처럼 멍하니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다.

의무실 문이 열렸다.

오민철이 들어서자 환자들을 치료하던 가운을 걸친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사내는 진짜 의사다.

다인코프에서 스카웃하여 데리고 온 정통의대 졸업자인 것이다.

올해 마흔두 살로 조셉이란 외과의사였다.

아무래도 외상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보안업계 특성상 그를 고용했는데 꼭 꿰매고 상처만 치료하는 건 아니다.

내과진료도 함께 본다.

“어떻습니까?”

조금 전 실려온 두 명의 부상자가 침대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었다.

“수류탄을 맞았는데 파편 빼내느라 고생좀 했습니다. 한 달 정도는 누워 있어야 할겁니다.”

오민철은 누워 있는 두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알라후 아크바르!”

오민철은 두 사람의 손을 가만 잡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모두 안전하게 집으로 가야 합니다”

다치지 않고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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