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4화: 신은 죽고(2)
등 뒤 사내는 재빨리 창문으로 다가와 추락하는 권총수를 향해 연속으로 총알을 쏟아 냈다.
두두두두!
죽어가는 사람이 의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권총수는 호신강기를 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총알이 온 몸에 박히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지만 호신강기가 펼쳐진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와는 데미지가 다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추락할 때면 어김없이 들리는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도 없다.
모든 것을 대력금강심법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죽는 그 순간에도 심법 운용을 놓치지 않는다면 생존의 가능성은 있다.
슈우우우!
아직도 속도가 빠르다.
이 상태로 떨어지면 온 몸이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좀 더...좀 더!’
속도를 더 떨어 뜨려야 한다.
도망갈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지금처럼 속도가 붙어서는 안 된다.
‘들숨이 거칠어지면 맥(脈)과 혈(穴)이 흔들리니 서둘지 않고 차분하게’
대력금강심법 구결을 악을 쓰듯 외쳤다.
속도가 느려진다.
그러나 여전히 빨랐고 커다란 충격이 온 몸을 휘어 감았다.
퍼어어, 데구르르!
지면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권총수는 충격을 줄이고자 바닥을 굴렀다.
의식이 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는 것을 보면 살아 있다.
누운 체 고개부터 돌렸는데 조그만 상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이었다.
으웩!
입에서 피를 토했고 온 몸은 피투성이다.
악착같이 호신강기를 펼쳤기 때문에 아직은 살아 있으나 몸에 도대체 몇 개의 총알이 박혔는지 알 수는 없다.
투툭!
벽을 잡고 일어서려는데 그대로 무너진다.
아프다.
눈앞으로 별들이 나타나고 골목이 파도치듯 들썩거린다.
심법...
심법만 운용하면 죽지 않을 수도 있다.
권총수는 피가 나도록 이를 깨물며 심법을 운용하려 했지만 온 몸이 너무 아파 쉽지 않았다.
“으으으”
세상이 캄캄해지려 한다.
어두우면 죽는다.
눈앞이 환해야 한다.
권총수는 일부러 혀를 깨물었다.
팍!
순간 턱 근처로 뜨거운 기운이 퍼지면서 정신이 들었다.
다시 벽을 집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쯤 일어나며 몸을 돌렸는데 본능적으로 떨어진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혹시나 뒤에서 쏜 놈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탈출에는 두 가지가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전략으로 바로 사건현장 가까운 곳에 은신하는 것과 무조건 멀리 가는 것이다.
하지만 두 전략 모두 몸 상태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골절이 있을 때는 움직이지 않고 깊숙이 숨는 것이 좋다.
완벽한 장소라고 판단되는 곳이 있으면 그곳을 비트로 삼아 은신해야 한다.
피를 흘리지 않기 때문에 수색견에 노출될 가능성도 적다.
하지만 피를 흘린다면 그때는 멀리 가는 것 말고는 더 좋은 방법은 없다.
파파팍!
일반인 같았으면 핏자국을 남겼을 것이나 권총수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중요 혈도를 점혈하여 지혈했다.
피부에 묻어 있는 피가 노면이나 외부에 묻을 수는 있으나 흘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떨어지면서 흘러나와 옷에 배어있는 피는 어쩔 수 없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아 피복 밖으로 비치는 건 없었다.
그래서 추락한 곳에서도 핏자국은 발견되지 않았다.
“우욱!”
눈앞으로 별이 떠올랐다.
허리가 끊어진 것 같았다.
단순한 상처로 아픈 것인지 아니면 등 뒤 어디 뼈가 손상된 건지 알 수가 없다.
권총수는 벽을 붙잡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면 살고 멈추면 죽는다.’
척!
한손으로 입을 막았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소리는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꼴이 되므로 어떤 이유에서도 신음을 흘려서는 안된다.
다다다닥!
군홧발 소리다.
아직 20미터도 걷지 못했는데 혁명수비대 병력이 몰려들면 안 된다.
발견되면 이 몸으로는 절대 도망칠 수 없다.
그러나 걷기가 불편할 만큼 등 뒤가 찢어질 듯 했다.
할 수 없이 내공을 사용해야 한다.
남은 내공으로 상처가 악화되는 걸 막고 있는데 그걸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혈을 위해 점혈한 몇몇 혈도를 해혈해야 한다.
혈도가 점혈되면 경락을 타고 흘러야 할 내기가 막혀 버리기 때문이다.
혈도를 해혈하면 피를 흘릴 것이고 추적자가 달라붙을 수밖에 없다.
타타탁!
혈도를 해혈한 권총수는 곧장 불영보를 펼쳤다.
신법이 빠르긴 하지만 내공소모가 많다.
투툭!
골목을 빠져나가는데 핏방울이 떨어진다.
“저건 뭐야?”
“쏴!”
권총수를 발견한 세 명의 사복차림의 사내들이 AK를 갈겼다.
두두두!
파파파팟!
골목 담벼락과 가게 간판으로 총알이 박히면서 권총수의 몸이 휘청거린다.
“쫓아!”
두 사내가 쫓고 맨 뒤에서 뛴 사내가 무전기로 말했다.
“65번지 쪽으로 용의자 도주,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임.”
다다다다!
무전기를 들고 미친 듯이 달린다.
맥보란은 초조했다.
모든 시선이 이란 국영방송 텔레비전에 집중되었다.
일부는 아랍계 방송 알자지라를 보기도 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뉴스 전문채널 CNN를 주시했지만 조용했다.
조금전 테헤란 시내를 찍은 위성사진이 도착했고 판독결과 하메네이가 탄 차량이 궁을 떠나는 것까지 찍혔다.
그의 동선에 대한 더 많은 사진이 오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설혹 사막의 흑새가 박쥐를 충분히 사냥했다고 해도 공식적인 사망 발표가 나오기 전에는 자체적으로 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
“아직 멀었나?”
아담스 국장이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맥보란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주문 할 상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다다닥!
빠르게 몇 글자를 찍고 화면을 바라본다.
아담스가 맥보란의 등 뒤로 다가와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B2 써보신분요?’
맥보란이 B2라는 물건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그러자 10분 정도 지나고 답글이 올라왔다.
‘마음에 듦, 처음에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써본 결과 굉장히 좋음’
맥보란이 설명했다.
“우리쪽 정보원이 보낸 메시지입니다. 굉장히 좋다는 단어는 백퍼센트 성공했다는 사인입니다.”
아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전은 완료되었고 큰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공했습니다.”
맥보란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담스는 한참 동안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이잉!
지이이잉!
진동이지만 방안이다 보니 맥보란의 귀에도 들렸다.
아담스는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보더니 방을 나갔고 잠시 후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탁!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맥보란이 고개를 돌렸다.
방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고 조금 열려 있었기 때문에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방문만 닫고 거실에서 받아도 될텐데 무슨 전화이기에 마당으로 나가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사람들이 북적댄다.
테헤란에서 가장 큰 바자르 시장이다.
수많은 과일들을 쌓아 놓고 파는 시장 골목으로 무장 군 병력이 나타났다.
갑작스런 무장군병력의 등장에 상인들과 시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대위 계급장의 초록 베레모를 쓴 사람이 명령했다.
“2인 일개조로 움직인다. 용의자가 저항하면 사살해도 좋다. 허나 가급적 생포하라.”
오십 여 명의 군인들이 시장골목으로 사라졌다.
지휘관인 대위 비게라는 무전기를 짊어진 통신병과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통신병은 무전기를 등에 짊어진 채 AK를 들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날카로운 눈으로 상인들을 살폈다.
그러면서 가끔은 지면을 보았는데 피를 흘리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저격범이라고 단정하거나 의심할 만한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골목을 따라 걷다보니 사람들 통행이 뜸하다.
가게들도 드문드문 했는데 시장을 거의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만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푸욱!
비게라는 번개처럼 돌아섰다.
뒤를 따라오는 통신병의 목으로 한 자루 칼이 삐죽 삐어 나와 있었다.
통신병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두 눈이 커지더니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멈칫!
어느새 통신병 목에 구멍을 냈던 칼이 이마에 닿아 있었다.
학학학!
사내는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사람 한 명을 무성무기로 죽이는데 이토록 힘든 숨소리를 쏟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서 부상을 입고 도주 중인 저격범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탁!
권총수는 비게라 옆구리에 달린 권총을 뽑았다.
“통신병 시체를 저 가게 안으로 옮기시오.”
비게라는 시키는 대로 통신병의 시신을 빈 가게 안으로 끌어다놓고 문을 닫았다.
탁!
비게라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좀 더 정신을 차리고 바라볼 수 있었는데 한 사내가 있다.
입고 있는 옷은 거의 피에 젖다시피 했는데 부상이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흐흐. 그 몸으로 혁명수비대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다고 보시오?”
“옷 좀 벗어 주시죠.”
권총수는 조용히 명령했다.
비게라는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반쯤 벌렸다가 닫고서 군복을 벗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입고 있는 옷 위에 군복을 걸쳤다.
다행히 비게라 체격이 워낙 당당하여 위에 걸치는데도 헐렁할 만큼 좋았다.
슥!
권총수는 베레모까지 빼앗아 썼다.
순식간에 베레모를 쓴 이란군 장교가 되었다.
슉!
소음권총 글록 18이 속삭였고 비게라는 가게 구석으로 처박혔다.
문을 열고 나간 권총수는 지면을 살폈다.
핏방울 몇 개를 재빨리 발바닥으로 지운 뒤 골목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헤치며 시장 골목을 나오자 조금 한가한 공터에 군용트럭 두 대가 정차해 있었다.
그리고 선두에 있는 작은 지프는 사파이어(Safir)차량으로 이란 육군의 지휘관 및 통신운용차량이다.
권총수는 지체 없이 문을 열고 올라탔는데 잠겨있지 않았다.
하긴 일반 차량도 아닌 군작전 차량을 문이 잠기지 않았다고 훔쳐 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키는 꽂혀 있지 않았으나 시동 거는 것 정도는 어려울 일이 아니었다.
핸들 아래 배선 판 뚜껑을 열고 전기선 몇 가닥을 퓨즈 연결하듯 잇자 금방 시동이 걸렸다.
부르릉!
권총수는 곧장 차를 돌려 시장을 벗어나왔다.
* * *
지구촌이 발칵 뒤집혔다.
테헤란 현지시간 밤 9시50분에 이란정부 대변인이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유고 사실을 발표한 것이다.
저격범이 쏜 두 발의 총탄에 맞아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저격 현장에서 바렛 대물총이 발견되었으며, 이란 정부는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번 사건의 조종자들에게 분명한 보복을 천명한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강력히 암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다.
물론 백악관은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미국은 범인 체포와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누구보다도 이란정부에게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카이로 공항에 아담스가 나타났다.
한밤중인데도 선글라스를 낀 아담스 주위로 랭글리에서부터 그를 경호해온 한 명의 사내가 붙어 있었다.
아담스는 의자에 앉아 공항 텔레비전을 통해 시시각각 보도되고 있는 헤메이네 암살 뉴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무슨 일이죠? 저기 맥이 급히 옵니다.”
아담스가 고개를 돌렸는데 맥보란이 빠른 걸음으로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