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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63화 (263/651)

제263화: 신은 죽고(1)

어제 밤 누구의 시선도 닫지 않을 캄캄한 밤에 출입구가 아닌 창문을 통해 올라왔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는 완벽하게 묻혔다.

쯥!

권총수는 입맛을 다셨다.

담배 생각이 난다.

그건 긴장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는데, 그야 말로 자신은 지금 사지(死地)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불현듯 공공선사가 언급한 금강불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공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사람의 몸이 무쇠처럼 웬만한 충격에는 끄덕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신체가 쇳덩이처럼 딱딱해지는 건 아니고 호신강기 필요 없이 강한 내공이 몸을 지킨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과연 공공선사는 70센티 두께의 강한 장갑도 뚫어 버리는 대전차 무기라는 것이 나타날 줄 알았을까.

아무리 신법이 빨라도 결코 비교 할 수 없는 음속의 몇 배가 되는 전투기가 날아다닌다는 걸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천하제일고수라고 해도 총알이 쏟아지는 곳에서 살아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적지 않은 경험을 한 탓에 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민해져 있었다.

권총수는 조용한 도로를 내려다보며 잠시 일어나 앉았다.

대력금강심법을 운용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로 했다.

오늘따라 카이로의 하늘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날씨가 흐린 것이 아니라 기압이 낮은데다 강한 스모그가 발생하여 대낮인데도 도시는 완전 음울한 회색연기에 덮여 있었다.

어제 밤 잠을 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근무자를 제외하고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으나 모두가 한 사람을 떠올리며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을 것이다.

사막의 흑새.

살아 돌아 올 수 없다고 모두가 믿을 만큼 절망적인 곳에서 걸어 나오는 사내지만 덩그러니 혼자 이란 혁명수비대가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는 지옥을 걸어 나올 수 있을까.

“커피 한 잔 하시겠습니까?”

맥보란은 이른 새벽인데도 깨끗한 셔츠 차림에 넥타이를 맨 아담스를 향해 말했다.

“한 잔 주겠나.”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아담스는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아직 동이 터오지 않은 카이로의 회색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담스는 양 주먹을 슬그머니 쥐더니 급기야는 양팔이 떨리도록 힘을 주었다.

‘성공해야 한다’

오랫동안 계산기를 수없이 튕겨 보고 난 뒤에 결정된 일이었다.

거사가 끝나면, 이란 정부와 국민들이 흥분하며 처음에는 미사일을 이스라엘을 향해 쏟겠지만 그것이 전부일 것이다.

이스라엘은 당연히 미사일이 날아오면 반격할 것이다.

절대 누구에게 한 대 맞고 가만있을 나라가 아니다.

잠시 동안 두 나라는 미사일 펀치를 교환하며 난타전을 벌이겠지만 결코 이것이 전쟁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미국방 연구소는 중동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10퍼센트 이하라고 단언했다.

정치인들이 나라를 사랑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들은 절대 국민의 목숨이 안타까워 전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미래가 두렵기 때문에 자제하는 것일 뿐이다.

하메네이가 사망하면 금방이라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듯 강대국들의 말 폭탄이 쏟아진다. 인류 종말의 시간이 제로에 다다를 것처럼 각국은 군병력을 이동시키고 국가 최고 권력자는 연일 회의를 주재하면서 한층 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보여주기 위한 수순일 뿐 수면 아래에서는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진다.

미국은 가장 먼저 중국정부와 사우디 정부에게 입장을 설명한다.

중국을 먼저 선택하는 건 당신들이 분명한 넘버 2라는 것을 인식시켜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것이고 사우디는 중동의 민심을 안정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드시죠.”

맥보란이 커피 잔을 가져다주었다.

“고맙네!”

맥보란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날씨가 너무 좋지 않군.”

아담스의 말에 맥보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함부로 창문을 열지 못할 만큼 카이로의 스모그는 심하다.

“그곳은 더 한다지?”

그곳이란 테헤란을 말한다.

“예! 거긴 굴뚝이라는 표현을 하더군요. 해발 평균 고도 삼 천 미터인 엘부르즈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바람의 소통까지 더딘 탓에 굉장하다고 합니다.”

“으음!”

아담스의 입술을 비집고 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맥보란은 고개를 돌렸다.

대화의 맥을 보건데 지금 저토록 무겁고도 답답한 비명 같은 신음을 흘릴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맥보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암살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같이 고조되는 긴장을 참지 못해 뱉어내는 신음이 아니었다.

뭔지 모를 이상한 기운이 등골을 적신다.

경찰 오토바이가 선도하는 일단의 차량이 도로에 나타났다.

길가에는 단 한 대의 차량도 다니지 않았고 미처 피하지 못한 승용차들은 차를 세우고 시동을 꺼야 했다.

두두두!

육중한 오토바이 부대가 앞장을 섰고 뒤이어 두 대의 경호차량이 나타났다.

두 대의 승용차 뒤로 하메네이가 탄 무게 4톤짜리 벤틀리가 자리하고 맨 뒤에는 역시 경호원들이 탑승한 밴이 따른다.

권총수는 조준경을 맨 선두 차량에 맞췄다.

대물 저격을 할 때는 조준경을 앞쪽에서부터 훑어 나간다.

사람을 향해 쏠 때는 위에서부터 천천히 총구를 내리며 조준하는 것이 정석이다.

첫 번째 경호차량을 지나쳐 보냈다.

이어 두 번째 승용차를 지난 조준경이 하메네이가 탄 벤틀리에 멎었다.

검정색 선팅은 안에 누가 탔는지 도저히 알아 볼 수 없었지만 권총수는 모든 내력을 눈에 집중했다.

승용차와 거리는 정확히 982미터이다.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소림의 미륵안(彌勒眼)이다.

같은 내공을 지녔어도 미륵안을 터득하면 훨씬 깊고 멀리 볼 수 있었다.

권총수의 눈이 평소의 두 배 이상 커지더니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변했다.

‘맙소사’

차량의 탑승자가 보였다.

그런데 오른쪽 창문 쪽에 앉은 사람이 조금 이상했다.

검정색 카프탄(겉옷 위에 걸치는 장삼)과 검정색 모자 아바야를 썼고 길게 수염을 늘어뜨린 것 까지는 분명 하메네이다.

하지만 턱선이 틀렸다.

조수석으로 슬쩍 조준경을 움직였는데 수행비서 마렘이 앉아 있다.

뒷좌석에 두 명의 하메네이가 앉아 있는 것이다.

대물저격총이기 때문에 두 명을 동시에 날려 버릴 수도 있지만 백 프로 확신할 수는 없다.

외인부대 시절 IS 진지로 155밀리 포탄이 정확하게 떨어졌다.

그런데 다섯 중 네 명은 즉사했지만 한 명은 믿을 수 없게도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 도망친 것을 본 적이 있다.

수류탄의 파편이 옆으로 퍼진다고 해서 근처에 있는 사람을 모조리 쓸고 가지는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결국 속사뿐이군!’

이런 작전에서는 절대 운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운이 따라와 주면 좋지만 철저히 실력과 분명함으로 승부해야 한다.

시속 80킬로 속도로 달리는 차량에 연거푸 같은 지점에 두 발을 쏟아 넣을 수가 있을까.

속사는 자신 있지만 문제는 차량의 속도였다.

아무리 빨리 두 번의 방아쇠를 당긴다고 해도 차량의 이동속도를 계산하면 두 번째는 총구를 움직여줘야 했다.

과연 어느 정도 움직이면 80킬로로 달리는 승용차에 탄 사람의 몸에 연거푸 박아 넣을 수 있을까

어쨌든 두 번째 총알이 실패할 것을 대비해 첫 발 만큼은 둘 중 누굴 표적으로 하든 분명하게 잡아야 한다.

‘오는군!’

아직까지는 10여 초의 여유가 있다.

10여 초의 여유란 차량이 982미터의 거리를 유지하며 달리는 거리를 말한다.

그 다음은 길이 휘어진다.

982미터를 벗어나버리는 것이다.

‘후우!’

다시 한 번 길게 호흡을 가다듬은 권총수는 조준경에 눈을 슬며시 밀착했다.

차량의 뒷좌석에 똑같은 행색의 하메네이.

평소처럼 오른쪽 문 쪽에 앉은 사람이 진짜일까 아니면 반대쪽에 앉은 사람이 먼저일까.

아직까지 표적 혼자 승차하거나 헬기에 타고 있는 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셋’

속으로 템포를 맞추기 위해 숫자를 셌다.

‘둘’

내려쉬던 숨이 조용히 멎는다.

‘하나’

차량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스코프가 정한 982미터 사정권에 들어왔다.

방아쇠에 걸린 오른손 검지에 힘이 들어갔으며 차량은 빠르게 좌측에서 우측으로 달렸다.

타탕!

동시에 두 발이 총구를 떠났고 달리는 승용차 뒷문이 박살나며 구멍이 뚫렸다.

강력한 파괴력에 4킬로짜리 승용차가 휘청 거리더니 방향을 틀어 오른쪽 건물로 돌진했다.

콰쾅!

차량이 상가 안으로 깊이 틀어박혔다.

끼기긱!

경호 차량들이 달려왔다.

우르르르!

차량에서 내린 경호원들이 상가 안으로 뛰어들었고 일부는 주위를 막아섰다.

경호실장이 재빨리 뒷문을 열어 젖혔다.

움찔!

차안을 확인한 경호 실장의 눈이 커졌다.

두 명의 하메이네는 피범벅이 되어 엎어져 있었는데 재빨리 왼쪽에 앉은 사람의 턱밑 동맥에 손가락을 댔다.

희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삐뽀삐뽀!

그때 엠브런스가 달려왔는데 하메네이가 연로하여 항상 어딜 가든 뒤를 따라다닌다.

“빨리! 빨리.”

경호실장이 피를 토하듯 소릴 질렀다.

구급요원들은 피를 흘리는 하메네이 머리에 붕대를 감더니 쇼크사를 방지하기 위해 몰핀부터 팔뚝에 꽂았다.

퍼억!

앞에 걸리적거리는 가짜 하메네이는 사정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버리고 하메네이를 꺼냈다.

재빨리 이동 들것에 싣고 엠블런스로 달려가더니 싸이렌을 울리며 구급차는 사라졌다.

길거리를 살피고 있던 무장 혁명수비군이 10층 건물을 향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여기저기 깔려 있던 군복차림과 사복차림을 한 혁명수비대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20여명으로 불어났다.

권총수는 모든 걸 그 상태로 놓고 몸을 일으켰다.

이제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다.

그때였다.

움찔!

저격에 모든 내공과 감각을 집중하느라 미처 몰랐는데 갑자기 등 뒤로부터 강력한 살기가 쏘아져 오고 있었다.

살기의 예리함이 누군가 총을 겨누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공공선사는 살기도 여러 가지 모양을 갖고 있다고 했다.

강호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병기인 검이나 도는 예리함이 실 낱 같다고 했다.

살기가 가늘다고 하여 약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가늘고 뾰족할수록 파고드는 힘은 강하다.

그런데 지금의 살기는 가늘기는 하지만 뭉텅한 느낌인데 이런 기운은 여러 차례 경험했기에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혁명수비대가 강호의 절정 고수일리는 없고.”

방아쇠를 당기고 상가에 쳐 박히며 엠블런스에 실려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일어났다.

그 시간은 결코 20초가 넘지 않았는데 등 뒤에 암살자가 나타났다면 육지비행술 정도는 펼쳐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돌아서려고 하자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대로 있으시오.”

사내는 목소리를 무척 깔았는데 변성을 위해서인 듯 보였다.

권총수는 모든 내공을 끌어 올려 호신강기를 펼쳤다.

권총이라면 해볼 만한데 등에 닿는 살기의 모양새가 백 프로 자동소총이다.

팟!

권총수는 바렛 총구가 나가 있는 작은 창문을 향해 그대로 몸을 날렸다.

무조건 죽는다.

그럴 바에는 이 방법 말고 더 좋은 전략은 없다.

두두두두!

‘빌어먹을’

AK 자동소총이다.

마음속으로 권총이길 바랬는데 역시나다.

와장창!

창문이 깨지며 권총수의 몸이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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