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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33화 (233/651)

제233화: 카불의 밤(3)

권총수는 주택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 아래 있었다.

시외곽이기 때문에 불빛들도 드문드문 했고 주위는 조용했다.

바라보고 있는 주택에서는 어떤 빛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들어갔는데 이 밤에 불을 켜지 않을 리는 없다.

아마 외부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커텐을 쳤거나 다른 수단을 이용해 막았을 것으로 추측했다.

담배 생각이 났지만 야간에 불빛은 치명적이다.

스으윽!

한 번 도약하여 주택 근처에 도착한 권총수는 곧장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숨어 있던 용이 그 자리에서 하늘로 승천하듯 솟구쳐 오른다는 잠룡승천(潛龍昇天)의 식이다.

CCTV촬영권역을 벗어나 높이 솟구쳐 오른 권총수는 깃털처럼 가볍게 마당으로 내려섰다.

안에는 오래된 건물이라는 흔적을 더 잘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크시대 건축물답게 외벽으로 툭 튀어나오는 폭이 좁고 높이가 긴 타원형의 창문과 그 주위로 벽돌을 쌓았다.

개폐가 불가능한 고정식 창문인데다 크지 않기 때문에 안에서 빛을 가리기도 수월할 듯 보였다.

들어가는 입구는 단순하게 커다란 문 하나였다.

문은 굳게 잠겼다.

권총수는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뒤 내력을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쇠가 붉게 달아오르며 슬며시 잡아당기자 엿가락처럼 손잡이와 잠금장치가 늘어지고 변형되면서 문이 열렸다.

그으으으!

안으로 들어서자 미닫이문이 또 한 개 있었다.

다행히 밖의 철문이 있어 빛 차단을 목적으로 한 커텐을 치지 않아 안쪽 거실이 훤히 들려다 보였다.

일곱 명의 사내들이 장방형이 긴 탁자를 놓고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실 안쪽으로는 주방이다.

권총수의 오른손에는 소음기가 채워진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드르르르!

문이 열리는 소리에 사내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권총수가 움직이지 말라면서 왼손으로 가만 앉아 있을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명령은 통하지 않았다.

네 명의 사내가 구석진 곳에 세워진 AK를 향해 몸을 날렸다.

피육!

슈슈슉!

다소 거친 소음기 소리가 실내를 울리며 네 명의 사내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워낙 빠르고 정확한 사격에 앉아 있던 세 사내는 멍한 얼굴을 했다.

순식간에 방안에는 피비린내가 깔렸다.

정적이 흐른다.

총알 한 방에 두 명을 죽이는 건 봤지만 한 번에 네 명의 상대를 거의 동시에 고꾸라뜨리는 속사라니 믿어지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권총수가 빈 의자 한 개를 끌어당겨 앉았다.

세 사내는 권총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딸칵!

권총수는 말보로 레드를 꺼내 물고 불을 당겼다.

후우!

한숨을 쉬듯 길게 연기를 내 뿜었다.

주도권을 잡고 있는 권총수가 말없이 담배만 피워대니 집안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세 사내는 침도 삼키지 못하며 잔뜩 긴장하여 바라보았는데 권총수가 양 팔꿈치를 두 무릎 위에 올리고 허리를 구부렸다.

뭔가 깊은 고민이 있는 사람처럼 바닥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웠다.

세 사내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잘하면 구석의 총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이미 그들은 권총수에게 완전히 질려 있었다.

한참 동안 상체를 숙인 채 담배를 피우던 권총수가 느릿하게 허릴 폈다.

뭔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표정이 좀 더 밝았다.

“밤이 깊었습니다?”

그건 무슨 얘기를 나누기에 밤이 깊도록 자지 않고 회의를 하고 있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스윽!

권총수는 옆에 놓아둔 권총을 집어 들었다.

권총을 쥐자 세 사내는 바짝 긴장했다.

푸육!

푹!

연이어 소음기가 낮게 으르렁 거리며 두 사내가 의자와 같이 벌렁 뒤로 넘어졌다.

혼자 남은 사내는 사색이 되었다.

권총수는 천천히 걸어가더니 유일한 생존자인 사내 맞은편에 앉았다.

탁!

권총수는 총을 탁자 위에 놓았다.

“여럿을 상대로 대화를 하다보면 집중이 잘되지 않죠. 서로 자신이 잘났다고 떠들다 보면 엉망이 되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솔직한 얘기를 하고 싶어도 눈치가 보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리 했으니 이제 부담 없이 대화를 해보자는 행동이었다.

꿀꺽!

사내는 어떻게 해서라도 당당해 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듯 자꾸 어깨를 꿈틀 거린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순식간에 여섯 명을 죽여 버렸다.

언젠가 알자지라 방송의 기자가 아프카니스탄에서 탈출한 한 소년을 붙잡고 질문을 던졌다.

‘탈레반을 피해 도망쳐 나왔다고 했는데 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악마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할리 없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웠으면 악마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할 수 있단 말인가.

특히 언론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악랄한 집단으로 탈레반의 한 분파를 지목했다.

피다이 마하즈 였다.

단 하루도 피를 보지 않은 적이 없었고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하에 이교도와 자신들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죽였다.

그런데 사내를 보자 가슴이 떨리는 이유는 뭔가.

아직 누군가를 두려워 해 본적이 없는데 등줄기를 따라 찬바람이 불었다.

무서움이란 이런걸까.

쉬지 않고 가슴이 떨리고 호흡이 자꾸 가팔라져 오는 건 틀림없이 공포 때문일 것이다.

사람에게 이토록 서슬퍼런 기운이 풍겨 나올 수 있다는 것에 사내는 입술을 강제로 깨물었다.

팟!

갑자기 사내가 화들짝 놀랐다.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혹시, 사막의 흑새?”

질문은 던져 놓고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사막의 흑새에게 적지 않은 형제들이 당했지만 자신은 절대 믿지 않았다.

원래 세상사라는 것이 유명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따라하는 유사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사막의 흑새를 모방한 어느 미친놈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이 방에 들어와 동료들을 죽이고 자기 앞에 마주 앉은 사내는 그의 기억속의 모습과 일치한다.

“맞소. IS에서 날 그렇게 부르더군요.”

사내의 눈자위가 파르르 떤다.

그럼 그날 페르샤워 분지 폭발에서 사막의 흑새는 빠져 있었단 말인가.

성한 시신은 한 구도 없었다.

얼굴까지도 갈기갈기 조각 나버린 대참사였기 때문에 몇 명이 죽었는지 숫자 파악도 불가능했다.

“압드라보?”

사내가 깜짝 놀란다.

“엘레니가 말하길 오른쪽 귀 뒤에 흉터가 있다고 했소.”

압드라보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흉터로 가져갔다.

3년 전 미군3명과 무성무기를 이용한 전투 때 입은 것이다.

3대1이란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알라의 보살핌에 힘입어 기어코 죽였다.

대신 영광의 훈장처럼 칼을 맞았고 마취제도 없이 서른 두 바늘을 꿰맸다.

“운이라는 게 있소. 한때 난 항상 운 타령을 했지. 난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지지리 운도 없지. 운이 없으려니 원.”

권총수는 책을 읽듯 표정 없이 말했다.

“성장해서도 정말 운이 없었소.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었죠. 그런데 묘하게 내 적성에 맞고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게 뭔 줄 아십니까?”

사내는 약간은 궁금한 얼굴을 했다.

“전쟁이오. 이상하게 총을 쏘고 누군가를 쫓아가 총알을 박는 일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 것이오. 메시가 축구 천재라면 난 아마도 전쟁 천재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으니까. 난 오늘 당신을 만나리라고는 전혀 생각 하지 못했소. 사실 엘레니는 당신에 대한 생김새와 이름만 말해줬을 뿐 어딜 가야 만날 수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소. 그런데 저기 죽은 두 사람을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고 뒤따라 왔더니 이렇게 된 것이오.”

딸칵!

권총수는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상체를 의자에 붙이며 비스듬히 앉는다.

“이 정도면 운이 있다고 해야 하지 않겠소.”

말을 끝낸 권총수가 담뱃불을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재빨리 구석에 있는 AK 한 자루를 집어 들더니 탄창을 꺼내 실탄을 확인했다.

푸욱!

총알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누르자 쏙 들어간다.

재빨리 다른 총의 탄창을 꺼내 부족한 총알을 빼곡히 채워 넣고 총에 다시 끼웠다.

탁!

권총수는 압드라보를 향해 지풍을 날렸다.

수혈이 제압당한 압드라보는 곧장 쓰러져 잠에 빠졌다.

덜컹!

권총수는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는데 칠흙같이 어둡다.

권총수는 잠시 기다렸다.

30여초 시간이 흐르고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두 대’

권총수는 현관에 몸을 숨긴 채 고개를 내밀고 대문을 바라보았다.

라이트가 대문 틈으로 비쳐 들어온다.

그그긍!

육중한 대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대문이 완전히 열리고 두 대의 차가 마당으로 들어섰는데 앞 뒤 차량 모두 랭글러 SUV였다.

앞서 들어온 랭글러 뒷문이 열리고 검정 수염을 길게 들어뜨린 마흔 후반 가량의 사내가 내렸다.

뒤차도 멈췄고 우르르 사내들이 뛰어 내렸는데 앞차에서 내린 사내 옆으로 자연스럽게 붙었다.

경호원으로 보인다.

현관에 숨어 있던 권총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경호원이 있다는 건 검은 수염의 인물이 거물이라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저벅저벅!

사내들이 현관을 향해 걸어오면서 권총수와 거리가 좁혀진다.

휙!

권총수는 번개처럼 튀어나가 걸어오는 사내들을 향해 AK를 난사했다.

두두두두!

누구도 집안에 적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못한 탓일까.

경호원들은 늘어뜨린 총구도 들어 올리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드르륵!

권총수의 총구가 뒤쪽 랭글러를 향해 불을 뿜었다.

콰아앙!

랭글러 뒤에서 한 사내가 응사를 했기 때문인데 연료통을 노려 총알을 퍼붓자 불길이 치솟으며 차가 폭발했다.

육중한 랭글러가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앞 차 지붕으로 떨어졌다.

불은 앞차에게도 옮겨 붙었다.

화르르륵!

어둡던 주택 마당은 두 대의 차량이 피워내는 불빛에 대낮처럼 환해졌다.

권총수는 빠른 눈으로 마당을 훑었다.

생존자는 없다.

그러나 혹시 알 수 없어 다시 한 번 시신들을 확인 한 뒤 추켜세운 총구를 낮췄다.

검은 수염의 사내는 꼼짝 않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음!”

멀리서 다가오는 권총수를 강렬한 눈으로 쏘아보던 사내의 입술이 꿈틀 거렸다.

어떤 말을 하고 싶어서가 아닌 충격에 의한 경련인 셈이었다.

검은 수염의 사내는 이미 권총수가 누군지 알아보는 듯 했다.

권총수는 유일하게 멀쩡한 낡은 푸조의 본네트를 깔고 앉았다.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툭!

투투툭!

차량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타이어가 몸체에서 이탈하며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권총수는 자신을 보는 검은 수염의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왼손으로 윗주머니를 더듬거리더니 작은 수첩 한 권을 꺼냈다.

툭!

수첩에서 사진 한 장이 땅바닥으로 떨어지자 허리를 구부려 주웠다.

검은 수염의 사내 얼굴이 찍힌 사진을 한참 바라보더니 주머니에 넣는다.

“쇼베이르?”

검은 수염의 사내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오늘은 여러 가지로 일이 되는 날이군. 세상사가 오늘 같기만 한다면 살아 볼 만한데, 안에 있는 압드라보도 그렇고 피다이 마하즈 넘버 2를 이렇게 뵙게 되게 되다니.”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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