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카불의 밤(2)
경찰들처럼 사건을 추적하고 냄새를 맡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707호의 문을 열고 들어선 권총수는 옷을 벗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여름의 끝자락이기 때문에 아직 냉수목욕이 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피로 회복에는 목욕만한 것도 없다.
운기조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피로회복이 있고 자연적인 것을 이용한 회복이 다르다.
운기조식을 한다고 모든 피로가 풀리고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권총수가 다시 호텔을 나올 때는 어둠이 덮인 밤 8시였다.
호텔앞 도로를 건너자 간판 불들이 화려한 골목이 나타났는데 이른바 먹자골목인 듯 보였다.
열린 문을 통해 좌우 식당들을 살폈는데 가게마다 손님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멈칫!
어느 식당으로 들어갈까 주저하며 걸어가던 권총수의 발걸음이 멈췄다.
한국 사람이다.
정장 바지에 반팔 셔츠를 입었고 머리를 단정하게 가르마를 탔다.
일부 한국 기업이 들어오긴 했지만 극소수로 아직은 아프칸 정부와 재건 사업에 관한 의견 교환 정도이다.
권총수는 식당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케피야를 쓴 서른 중반 가량의 주인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권총수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본 뒤 입을 열었다.
“팔라우 주시오.”
아랍식 비빔밥이다.
“네!”
주인이 인사를 하고 돌아가고 권총수는 한국인들이 앉아 있는 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본의 아니게 한국인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들었는데 대사관 직원들이었다.
국민들에게는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하여 관광을 막고 있지만 외교는 또 다른 것이다.
외교는 경제와 한 국가의 양 축이다.
그래서 외교와 경제분야에만 전쟁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외교전쟁, 경제전쟁.
아프카니스탄은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색이라는 라피스 라줄리 최상품이 아프카니스탄에서 생산된다.
그 이외에도 철과 망간 말고도 우라늄 매장이 소스라칠 정도로 많다.
미국이 쉽게 포기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이다.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전쟁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자원의 보고 아프카니스탄에 우리 기업이 진출할 수 있을지를 식사를 하면서 토론했다.
외인부대시절 프랑스 대사관 직원의 불친절함에 해외 대사관 직원들에 대해 부정적 느낌이 컸는데 오늘 보는 이곳 직원들은 틀리다.
그야말로 누가 알아주건 말건 자신들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커다란 접시에 팔라우가 나왔고 권총수는 식사를 시작했다.
대사관 직원 다섯 명이 식사를 끝내고 계산을 위해 섰다.
“계산 끝났습니다.”
아프카니스탄의 대사 이필운이 눈을 찌푸렸다.
“계산이 끝나다뇨. 우리중 누가 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조금전 저쪽 창가에서 식사를 하고 가신 분이 현금 계산했죠.”
모두가 창가 쪽을 보았다.
이미 권총수는 보이지 않았다.
가장 어려 보이는 남자 직원이 말했다.
“아까 들어설 때부터 한국 사람이다 싶었는데.”
“봤어?”
“솔직히 일본, 중국을 놓고 조금 망설였어요. 약간 우리쪽 얼굴과 다른 면이 있어서.”
남자직원이 어색한 표정을 했다.
정확히 단정하지는 못했다는 뜻인데 아무리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대사관 직원이 우리 국민을 알아보지 못했단 것에 쑥쓰러워 한 것이다.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데 고마운 분인데요.”
일행은 주인을 향해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며 나갔다.
“대사관에서 파악된 바로는 국내기업인중 카불에 들어온 사람은 없는 줄 아는데.”
대사 이필운이 중얼 거렸다.
권총수는 툴미우 호텔 1층 커피숍에서 노닥거리며 삼삼오오 앉아 있는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입에서 어떤 얘기가 흘러나올지는 모른다.
짐작컨데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이 미국과 탈레반의 휴전회담에 관한 내용일 확률이 높았다.
맥보란의 말을 빌리면 회담이 자칫 장기화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식은 탈레반의 4대 우두머리에 관한 정보였다.
3대 우두머리인 히바툴라 아쿤드자다는 현재 와병설이 돌고 있었다.
병명이 피부암이라는 설과 당뇨로 시력이 나빠져 글을 읽지 못한다는 두 가지 소문이 떠돈다.
문제는 4대 우두머리 후계자중 탈레반에서도 초강경노선인 피다이 마하즈의 두목 ‘물라 나지불라’를 포함하자는 쪽과 안 된다는 쪽의 의견이 팽팽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내공을 청력에 집중했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있었다.
반박귀진에 오른 사람의 안목은 일반 사람과 다르다.
눈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 내는 심안의 경지에 접근해 있었다.
만나서 필요한 얘기를 나누는지 다른데 신경을 쓰느라 겉도는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10여분 정도 지나면서 권총수는 한 쪽을 자주 응시했다.
두 사내가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주위 다른 사람과 전혀 차이가 없이 자연스럽다.
탈레반이라고 호텔 커피숍에 오지 말란 법은 없다.
그들도 일반인처럼 위장하여 정보활동을 한다고 맥보란이 말해 주었다.
권총수 눈에는 두 사내가 이미 의심스럽게 관측되고 있었다.
쭈욱!
물라 나지불라와 피다이 마하즈를 정리하면 곧바로 멕시코로 갈 것이다.
빚은 갚는 것이 상식이다.
더욱이 피의 빚(血債)은 더욱 그러하다.
강호의 빚은 열배로 갚아주는 걸 원칙으로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공공선사는 손에 자비가 넘쳐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권총수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물라 나지불라와 시날로와 카르텔 두목 살라자르는 반드시 목을 잘라야 한다.
두 사내가 일어났다.
권총수는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두 사람을 따라 나갔다.
두 사람이 호텔을 나서자마자 회색 승용차 한 대가 멈췄고 자연스럽게 뒷문을 열고 올라탔다.
두 사내를 태운 회색 푸조가 조금씩 어두워 오는 카불의 번화가 속으로 사라졌다.
“택시!”
호텔 앞이기 때문에 택시는 많았다.
“저 푸조 따라가시오. 들키지 않게 가면 요금에 10달러를 더 주겠소.”
“앗쌀라 말라이쿰(평화가 당신과 함께)”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부웅!
사내는 자신의 운전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맹렬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편도 3차선이었지만 차선은 낡고 지워져 잘 보이지 않았다.
운전사는 보이지 않은 차선을 정확하게 넘나들며 푸조를 따라갔다.
퇴근 시간이다.
카이로나 리야드와 달리 그다지 붐비지 않아 푸조를 미행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택시 앞으로 작은 트럭이 있고 그 앞에 검정색 승용차, 그리고 세 번째 앞에 푸조가 달린다.
스으윽!
푸조가 깜빡이를 켜며 신호대기선에 멈췄다.
신호가 바뀌자 좌회전을 했는데 길 좌우로 크고 작은 손수레가 늘어서 있었다.
음식을 팔고, 과일 장사도 보인다.
대추와 석류를 가득 쌓아 놓았고, 닭을 팔려는지 발목에 줄을 묶고 나머지 끝은 자신의 발목에 감아 놓은 이도 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푸조는 속도를 내지 못했는데 얼마쯤 가다 멈췄다.
차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는데 모두 셋이었다.
“여깄소.”
권총수는 택시비에 10달러를 얹어 건넸다.
“앗 쌀라 말라이 쿰.”
“오케이!”
권총수는 재빨리 내렸다.
세 사내는 3층짜리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일층은 그릇을 파는 상점이었다.
시끄러운 일층과 달리 2층과 3층은 창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간판도 없어 무엇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층 가게 주인과 스치듯 만났으나 아는 체도 않는 걸 보면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혹시 모를 감시자를 의식해 서로가 모르는 체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이다.
권총수는 계속 따라가 보기로 마음먹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들어섰다.
몸이 가볍게 떠오르며 움직인다.
초상비는 갈수록 정밀해졌고 수위가 높았다.
2층에는 철문이 있었는데 굳게 닫혔고, 3층 역시도 철문 하나가 유일했는데 조용했다.
청각을 끌어 올렸지만 2층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스으으!
3층에서는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으윽!
권총수는 재빨리 1층으로 사라졌는데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3층 문이 열리며 이번에는 두 사람이 더 붙어 모두 다섯 명이 계단을 내려왔다.
사내들은 세워 놓은 푸조를 타고 움직였다.
다행히 복잡한 시장 골목이어서 차는 빨리 달리지를 못했고 권총수는 불영보를 이용해 따라붙었다.
그러면서 주위에 택시가 있는지 빠르게 훑었다.
“택시!”
때마침 손님을 내려준 택시가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재빨리 올라탔다.
“저기 푸조 보이죠. 따라가 주시오.”
그러면서 십 달러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요금과는 별도요.”
별도라는 말에 운전기사는 충격을 받은 듯 움찔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염려 마십시오.”
택시는 골목을 나와 차도로 접어든 푸조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차량이 뜸하다.
푸조는 중심가를 벗어나 카불 외곽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시내를 관통하는 카불강 하류 쪽으로 달렸다.
가뭄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강의 수량은 거의 바닥이었다.
갑자기 저 멀리 육중한 석조건물이 보였다.
다르라만 국립박물관이다.
동서교역의 수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고고학자라면 꼭 한 번 찾아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러나 정정이 불안하여 방문이 쉽지 않은데, 2년전 영국 캠브리지대학 교수 세 명이 찾았다가 탈레반에 붙잡혀 처형당했다.
박물관을 지나자 푸조가 속도를 떨어뜨렸다.
“멈춰 보시오.”
택시 운전사가 차를 한쪽에 세웠다.
푸조는 빨간 석조건물 앞에 섰다.
언뜻 벽돌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철분이 많아 붉게 빛나는 돌로 쌓아진 주택이었고 1미터 정도부터 빨간 벽돌이다.
무척 오래된 것으로 보였는데 지붕이 일반 주택들 보다 높았고 카불에서는 보기 드물게 발코니가 있었다.
더욱 시선이 가는 건 튀어나온 발코니를 기존의 기둥이 덮고 있는 것이 아니라 따로 동판(처마)을 얹었다는 것이다.
건물의 양식도 그렇고 여러 형태가 개인 집으로 지어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그긍!
굳게 닫혀 있던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푸조가 안으로 사라졌고 대문은 다시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때 침묵하고 있던 택시기사가 말했다.
“교회입니다. 오래전 프랑스 선교사들이 지었는데 일부는 허물어지고 지금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죠.”
권총수는 어쩐지 하는 얼굴로 십 달러짜리 한 장을 더 꺼내 주었다.
택시기사는 너무 감동한 듯 권총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는데 금방 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았다.
“앗 쌀라 말라이 쿰(평화가 그대와 함께), 앗 쌀라 말라이 쿰.”
기사는 연신 두 손을 모아 권총수를 축복해 주었다.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기사는 차를 돌려 떠나기 직전 다시 한 번 평화가 그대와 함께를 외치며 사라졌다.
불교가 가장 먼저 들어왔고 이후 이슬람이 들어오면서 불교의 흔적을 많이 지웠다.
교회는 이슬람 이후에 들어왔는데 엄청난 핍박이 있었다.
성당 건물은 대부분 담장이 없다.
있더라도 아주 낮고 지나가는 누구나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건축한다.
그런데 높은 담장을 한 이유는 뭘까.
교회라는 대답을 듣고 나니 이상한 생각이 차고 넘친다.
밑바닥의 붉은 돌은 처음 프랑스 선교사들이 왔을 때 쌓은 것으로 보였고, 나머지 부분은 지금 사는 사람이 필요에 의해 빨간 벽돌로 증축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일반 주택의 담장과 다르게 3미터를 훌쩍 넘기는 높이는 뭘 의미하는 걸까.
그리고 CCTV도 있었다.
CCTV는 인테리어로 설치하는 기계가 아니다.
누군가를 경계하고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방범 기계다.
권총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조금씩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