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03화 (203/651)

제203화: 황금의 초승달(3)

라슈카르가 시청 공무원 무왈리드의 눈이 커졌다.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두 사내를 휴게실로 불러들였는데 무려 미화 일천달러가 든 봉투를 내 놓은 것이다.

무왈리드의 직책은 라슈카르가시 소속 화물자동차 관리계장이다.

지금까지 많은 뒷돈을 받아왔다.

대부분이 자동차 가짜 검사필증을 원하거나 배기가스 위반, 또는 운행 년한 연장이었다.

가난한 차주들이다 보니 수명 년한을 두 배씩이나 넘기면서 사용하는 차주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차주들이 검사기간이 다가오면 슬쩍 봉투를 내밀며 부탁하는데 거의 50달러 내외에 필증 하나가 거래됐다.

20년을 몸 담았지만 천달러를 받아 보긴 처음이다.

봉투를 집는 무왈리드의 손이 떨린다.

힘겹게 주머니속에 챙겨 넣은 무활리드는 뛰는 심장을 주체하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뭘 알고 싶소?”

“알고 싶은 게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화물자동차 있죠. 단순히 짐을 싣는 트럭 말고 이삿짐을 옮기거나 아니면 전기공사, 또는 가끔 가로수를 자를 때 사용하는 스카이 트럭 말입니다.”

“있죠.”

“시청 소유가 아닌 개인 소유가 몇 대나 되는지 그것만 가르쳐 주면 오늘 저희 민원은 끝납니다.”

“가다리시오.”

무왈리드는 두 사람을 휴게소에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는데 사무실로 가는 모양이었다.

오 분도 되지 않아 다시 나타난 무왈리드 손에는 작은 종이 한 장이 접혀 있었다.

“다섯 명이오.”

건네준 종이에는 라슈카르가시에서 스카이 차량을 개인 소유한 차주 명단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명단을 훑어 본 권총수가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앗 쌀라 말라이 쿰(평화가 그대와 함께)”

“알 쌀라 말라이 쿰.”

무왈리드 역시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음 날부터 두 사람은 다섯 명의 차주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전화가 있었지만 권총수는 직접 찾아보자고 했다.

전화는 자칫 상대가 눈치를 챌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사람은 알 샬루부라는 노인이었는데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역시 돈 많은 부호의 집으로 보이는 곳에서 차량의 박스에 올라 하늘 높이 자란 히말라야시다 나뭇가지를 전지하고 있었고, 세 번째는 전기 가설 공사에 동원되고 있었는데 권총수는 돌아섰다.

“아니야.”

권총수가 워낙 자신있게 말했기 때문에 오민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스카이 차량 박스에 들어가 이층 주택 외벽에 판넬 공사를 하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의 사내는 땅바닥에서 사다리 작동을 하면서 판넬공사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입가에 담배를 물고 있다.

한눈에 기계를 작동하고,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내가 스카이차량 주인인 알자삼 인 듯 보였다.

서류에 적힌 대로 나이 또한 서른 중반정도 되었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차안에서 사내를 유심히 살피며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땅거미가 밀려오고 있었다.

일을 마무리 한 알자삼과 직원 마다니는 근처 식당에서 콩과 여러 채소로 요리한 쿠스쿠를 먹기 시작했다.

식당 맞은편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감시하는 오민철은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훤히 알겠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뻔하지. 우리나라 막노동판에서 현장 끝나면 오야지가 한 잔 사는 것 말이야. 여긴 술이 없으니까 밥을 사는 걸 것이고.”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유병칠이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가 있었다.

어디서 먹고 오느냐고 물으면 오야지가 함빠에서 한 잔 사더라고 했다.

오야지가 술과 저녁을 사는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앞으로 일 좀 잘해달라는 부탁이자 격려인 것이다.

마다니는 일용직이다.

알자삼은 오랜만에 성실한 일꾼을 만난 것에 기분이 좋아 저녁을 사는 것이었다.

스카이 트럭 한 대가 골목에 멈췄다.

운전석 문이 열리며 알자삼이 내렸다.

알자삼은 다시 한 번 차문을 당기며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하고 돌아섰다.

헉!

몸을 돌린 알자삼이 기겁했는데 바로 등 뒤에 권총수가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다.

“머, 뭐요?”

아무소리도 없이 등 뒤에 바짝 붙어 있는 것에 너무 놀란 듯 알자삼은 더듬거렸다.

“그제 새벽 어딜 그렇게 일찍 일을 나가셨죠? 일했던 현장 좀 가르쳐 주시죠.”

권총수는 틈을 주지 않고 따지듯 파고들었다.

“그제 새벽 어딜 그렇게 일찍 나가셨냐고 물었습니다. 이봐요 알자삼씨 일했던 현장이 어디였는지 묻잖아요.”

“그...그건 왜 알려고 하는 것이오?”

뒤로 주춤 한 걸음 물러난 알자삼의 오른손이 슬며시 등 뒤로 돌아간다.

권총수의 시선은 그걸 놓치지 않고 있었다.

휙!

알자삼의 손이 전광석화와 같이 움직였다.

탁!

권총수의 금나수가 더 빨랐다.

어느 새 알자삼의 오른손목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욱!

알자삼은 비명을 질렀는데 온 몸에 힘이 쭈욱 빠지면서 땅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슥!

권총수는 알자삼의 등 뒤에 숨겨진 권총을 뽑았다.

그때 골목 맞은편 작은 집 대문이 열리더니 오민철이 걸어나왔다.

“별 것 없는데.”

오민철은 알자삼의 집을 수색하러 들어간 것이다.

“어이 알자삼씨 방 좀 치우고 사쇼. 그게 뭐요. 돼지우리도 아니고. 벗어 놓은 양말, 팬티 어후 더러워.”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지이이!

그때 진동으로 해 놓은 알자삼의 핸드폰이 울렸다.

알자삼은 권총수를 살폈는데 전화 온 걸 모르는 듯 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조직에서 무슨일인가 싶어 확인을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 버티면 희망이 있다.

하지만 알자삼의 얼굴에 잠깐 피어났던 희망은 금세 꺼졌다.

권총수는 자신의 것인양 알자삼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보았다.

찍힌 번호 한 개를 보더니 알자삼에게 건네주었다.

“받아 보시오.”

권총수는 핸드폰을 건네주고 알자삼에게서 빼앗은 권총을 관자노리에 들이댔다.

“말씀 잘하셔야 된다는 것 쯤은 아실 테고?”

권총수는 빨리 통화하라는 재촉을 했다.

“여보세요. 응.”

알자삼은 더듬거렸다.

한편 권총수는 전화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정확한 나이 판단은 어렵지만 약간 저음이었는데 굉장히 예민했다.

알자삼의 목소리에서 뭔가 분위기를 감지한 듯 상대가 물었다.

“전화를 왜 그렇게 늦게 받는건가. 어디야?”

그 순간 전화기를 대지 않고 있는 알자삼의 오른쪽 귀속을 파고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있는 그대로 말하시오. 지금 당신 집 앞에 있다고.”

알자삼은 기겁하며 권총수를 올려다보더니 더듬거렸다.

“집 앞인데 왜?”

“어디 아파? 오늘따라 목소리에 힘이 없군.”

“피곤해서.”

“그럼 쉬어 나중에 전화하지.”

상대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듯 재빨리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알자삼은 관자노리에 붙어 있는 권총에 두려움을 느낀 듯 부들부들 떨었다.

“차라리 두 놈이 날 위협하고 있다고 소리치지 그랬어 임마. 그렇게 버벅대며 통화하는데 눈치 못채는 놈이 어딨어.”

오민철이 눈을 부라렸다.

권총수는 총을 거두어 들였다.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더니 흘긋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초저녁인데도 하늘에는 많은 별들이 보였다.

권총수는 갑자기 윗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종이 한 장을 부욱 찢어 뭐라고 쓰기 시작했다.

“곁에 놔두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메모된 종이 한 장을 알자삼의 주머니에 찔러주고 걸어갔다.

“어딜 가는 거야?”

오민철이 소리쳤다.

“그냥 가는거야?”

오민철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알자삼을 한 번 바라본 뒤 재빨리 권총수에게 다가갔다.

“뭐하는 거야 지금, 저 자식을 어떻게 잡았는데, 당장 두들겨 패서라도 쉴튼을 죽인 놈들과 연관이 있는지를 알아내야지?”

탁!

권총수는 타고 온 혼다 SUV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빨리 운전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오민철은 운전석에 올랐고 차는 골목을 빠져 나갔다.

알자삼은 혼다 SUV가 사라지자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무엇하는 사람들일까.

그제 새벽 일찍 어딜 갔느냐고 묻는 질문에서 쉴튼 사건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경찰은 아니다.

제일 의심이 가는 곳은 다인코프 용병들일 가능성이었다.

알자삼이 이해를 못하는 건 경찰이 됐든 다인코프 용병이든 어떻게 자신이 그날 아침 사건과 연루됐다는 걸 알고 있느냐였다.

근처에 범행 장면을 찍을 만한 CCTV도 없고 미국 용병을 죽였는데 현장을 목격했다고 경찰에 찾아갈 아프카니스탄인은 절대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첩보위성에서 시체 한 구 매다는 광경을 찍었을 리는 더욱 없다.

알자삼은 땅바닥에서 일어났는데 휘청 거렸다.

저승에서 돌아온 기분이었다.

낮에도 흘리지 않았던 땀이 등에 흥건했다.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데 거친 엔진소리가 들리더니 낡은 트럭 한 대가 골목으로 들어선다.

끼이익!

트럭이 멈추고 화물을 싣는 짐칸에서 십여 명의 사내들이 뛰어 내렸는데 하나 같이 AK-47을 들고 있었다.

알자삼은 한눈에 아는 얼굴이 있어 반갑게 이름을 부르며 나가려다 멈칫하여 재빨리 오른쪽으로 반쯤 열려 있는 남의 집 대문으로 들어가 숨었다.

콰앙!

사내들은 나무로 된 자신의 집 대문을 걷어 차며 뛰어들었다.

선한 목적으로 왔다면 같은 목표와 의지를 갖고 활동하는 동료의 집 대문을 부서뜨리지는 않는다.

알자삼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사내들은 한참 후에 나왔는데 자신의 차를 발견하고 개머리판으로 유리를 모조리 깨버렸다.

그것도 모자란 듯 차 바퀴에 칼을 박아 모조리 펑크까지 내버렸다.

꿀꺽!

대문 뒤에 숨어 있던 알자삼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제야 왜 권총수가 자신을 내버려 두고 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한 것이다.

평소와 다른 자신의 통화 목소리에서 동료들은 의심을 할 것이며 직접 확인하기 위해 달려오리라는 걸 읽은 것이다.

적의 손에서 살아 난 것도 분명한 설명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처형감이 되는 조직이 탈레반이라는 곳이다.

사내들은 거의 새차값이 들어야 고칠 수 있을 만큼 부셔놓고 타고왔던 트럭으로 돌아갔다.

알자삼은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온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는데 벽에 매직으로 쓴 글씨가 보였다.

‘배신자는 지옥으로’

알자삼은 배신자는 지옥으로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배신자.

이슬람에서 배교자와 동급의 의미를 지닌다.

배교자는 절대 용서할 수 없고 반드시 죽여야 한다.

배신자 역시 땅 끝까지라도 쫓아가 기어이 죽여 없애는 것이 원칙이다.

이제는 틀렸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이렇게까지 일이 깊어져 버리면 자신은 진짜 배신자인 것이다.

알자삼은 윗주머니에 들어 있는 쪽지를 꺼냈다.

그곳에는 전화번호 한 개가 적혀 있었다.

이 전화번호를 가지고 조직을 찾아갈까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은 살려줄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런 행동을 하면 주저 않고 죽일 것이다.

신뢰할 수 없는 동료를 곁에 두고 생활한다는 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라고 여길 것이다.

도망쳐야 한다.

어쩌면 감시자를 보내 자신의 집을 지켜볼지 모른다.

알자삼은 곧바로 집을 나섰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