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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02화 (202/651)

제202화: 황금의 초승달(2)

브레이크를 밝았다.

오른쪽 길가에 탱크 한 대가 주저앉아 있었다.

“에이 브럼은 아니고?”

오민철이 미군 탱크는 아니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탱크로 다가갔는데 무척 오래 된 듯 녹이 슬고 한쪽 궤도는 끊어져 있었다.

“T-72 인데.”

“뭐야 그럼 소련 전차란 말이야?”

“기억 안나? 외인부대 기갑전술 시간에 배웠잖아.”

“외인부대 제대 한 지가 언젠데 그때 배운 것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어?”

“오늘날 러시아의 제5세대 탱크 기본형이라고 배웠잖아. 당시 아프카니스탄 침공 때 당한 걸 거야.”

“뭐야, 그럼 거의 40년 가까이 여기서 이러고 있단 말이야?”

권총수는 탱크를 돌아가며 살피며 중얼거렸다.

“이런 가공할 탱크로 무장한 소련군을 소총 하나로 무장한 텔레반이 쫓아내다니, 정말 대단한 전사들임에는 분명해.”

타앙!

바로 그때 총소리가 들렸고 권총수는 본능적으로 탱크 뒤로 몸을 숨겼다.

“어디야?”

바닥에 바짝 엎드린 오민철이 주위를 살폈다.

두두두두!

탱크 뒷면으로 수십 발의 총알이 박혔다.

처음 한 발은 저격용으로 쐈다.

빗나가자 자동으로 놓고 집중 사격을 가한 것이다.

“저기야.”

권총수가 한쪽 눈을 빛냈다.

“어디?”

오민철이 눈을 부릅떴다.

삼백 여 미터 떨어진 계곡 맞은편에 희끄무레한 그림자 몇 개가 움직인다.

복장은 평범했다.

일반적으로 텔레반의 복장은 군복을 걸친 사람도 있지만, 거의가 터번을 머리에 감고 다니는 일상복들이다.

“농민인가?”

복장을 봐서는 정확한 신분을 규정하기 어렵지만 AK-47을 갈긴다.

“텔레반은 아니야. 그들은 저렇게 멀리 떨어져서 공격하지 않지. 정확한 사정권까지 접근해 들어와 갈긴다고.”

“이 깊은 산속에 민간인이라면 양귀비 재배 농민?”

덜컹!

권총수는 재빨리 SUV로 다가가 M4 소총을 꺼냈다.

오민철에게도 총을 던져주고 곧장 세 명의 농민이 있는 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다르르륵!

자동으로 놓고 20여발을 갈기자 재빨리 계곡 안으로 도망치더니 자취를 감춰 버렸다.

권총수는 M4소리를 듣고서 적이 나타날 수 있었으므로 주위를 살폈다.

부르릉!

차로 돌아온 권총수는 자신이 핸들을 잡았다.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산속으로 들어가자 오민철이 놀랐다.

“위험한데?”

“우린 항상 위험 했어.”

단호하게 오민철의 말을 잘라 버린다.

오민철은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 듯 숨을 들이 쉬었다가 이내 어금니를 지그시 문다.

권총수는 리더다.

군대로 말하면 지휘관이고 소대장인 것이다.

민간 용병이라고 체계가 허술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리더의 보고서 한 장이 그 용병의 연봉을 좌우하고 해고는 더 쉽다.

20여분 정도 산길을 따라 달리던 차가 멈췄다.

권총수는 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폈다.

AK 총알이 날아왔던 산 아래였다.

화전처럼 일궈놓은 크고 작은 밭이 있는데 초록색 작물이 30여센티 정도 높이로 자라고 있었고 일부는 꽃을 피우기 위해 봉우리가 맺혔다.

“양귀비닷.”

이미 이라크에서 IS를 쫓아 들어갔다 신자르 산맥에서 본 터라 오민철은 금세 알아봤다.

봄에 파종한 것들로 보였는데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일제히 꽃을 피울 것 같았다.

“엄청나군!”

온통 양귀비였다.

양귀비는 건조한 아프카니스탄에 꿰어 맞추듯 잘 맞는 식물이다.

또한 해충에 강하여 큰 노력들이지 않고 수확이 가능하고 가장 결정적인 건 수고한 것에 비해 훨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가 불안하고 끝없는 전쟁에 시달리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가장 간단히 배를 채울 수 있는 농사가 양귀비 재배인 것이다.

“철수!”

권총수는 총알이 날아온 산중턱 쪽을 몇 번 살피더니 차를 돌려 산을 내려왔다.

호텔로 돌아온 권총수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커피숍에 앉았는데도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으므로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한 오민철이 물었다.

“나한테 말해봐.”

뭐든지 해결해 줄 듯 한 표정이었다.

권총수는 피식 웃었는데 오민철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너 지금 나 무시한 거지? 보자보자 하니까 야 권총수, 너 많이 컸다.”

“골치 아프겠는데.”

“어떤 골치?”

“미군도 처음에는 직접 작전하듯 찾아다니며 단속을 하다 항공기를 이용한 고엽제로 전략을 바꿨어. 고엽제 살포는 양귀비만 말려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물에까지 심각한 피해를 주거든, 흙과 돌만 빼고 식물은 모조리 말리는데 문제는 토양의 질까지 바꿔버린다는 거야.”

“우리 아버지가 농사꾼 아니냐. 제초제는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더라고.”

“엄청나게 쏟았다는데, 양귀비만 아니었다면 그린피스가 결코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어. 아편이 가져오는 엄청난 부작용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현장단속을 하면서 너무 많은 미군이 희생됐기 때문이지.”

“하긴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꽃일지 몰라도 여기 농민들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지.”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미군은 국제여론을 고려하여 농민들에게 사정을 둘 수밖에 없지. 그러나 우린 그럴 수 없어.”

권총수가 표정 없이 말했다.

그렇다고 강경하게 나갈 수만은 없다.

농민들에 대한 살상이 커지면 국제사회의 시선이 미군을 향한 것과는 다르다.

민간 용병들이기 때문에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도 있다.

미국정부는 당연히 모른 체 할 것이고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요령만이 살길인데.”

권총수는 조금은 답답하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요령껏! 어떻게 해야 요령껏 하는 게 되지. 상대가 방아쇠를 당기면 요령껏 피한다? 총알이 우리의 마음을 알아줄까?”

“글쎄 말입니다.”

자위권 차원에서 응사하거나 죽이는 건 인정된다.

자위권을 인정받으려면 이쪽에서 방어적, 소극적으로밖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고 그건 적지 않은 인명피해를 가져올 수 있었다.

허나 최고의 걱정거리는 농민인지 텔레반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이잉!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버홀터라는 글씨가 보였다.

“예 지사장님!”

“당장 라슈카르가 경찰서로 가보게. 급히 가보게.”

“뭔 일 있습니까?”

“빌어먹을 용병이라는 작자들은 자신들이 천하무적인 줄 아나봐.”

전화기속에서 버홀터의 격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권총수는 라슈카르가 경찰서에 들어섰다.

다인코프에서 왔다고 하자 자신을 강력계 주임이라고 밝힌 ‘사에드'란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안내했다.

이슬람국가에서 미국을 대신해 총을 잡고 있는 용병에게 친절을 보인 다는 건 다인코프로부터 적지 않은 돈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쪽으로!”

사에드는 지하실로 데려가더니 작은 문을 하나 열었다.

안으로부터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났는데 벽에 붙은 스위치를 올렸다.

멈칫!

권총수는 눈을 좁혔다.

긴 탁자 위에 시신 한 구가 검정색 천에 덮여 있었다.

사에드가 다가가 검정색 천을 가슴까지 열어 주었다.

흡칫!

오민철은 소스라쳤다.

목이 잘렸다.

몸통에 최대한 붙여 놓는 듯 했지만 눈에 띄게 어긋나 있었다.

“여기 가슴에 AK를 쑤셔 박고 대검으로 목을 자른 듯합니다.”

“누구 짓입니까?”

“이곳에 용병들 들어오는 걸 가장 싫어할 인간들이 누구겠습니까?”

“마약 조직이란 말이오?”

“마약조직이 텔레반이고, 텔레반이 곧 라슈카르가를 장악하고 있는 최대 마약집단입니다.”

슥!

탁자 한쪽에 있는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권총수에게 내밀었다.

‘환영한다. 다인코프’

사에드는 시체의 가슴에 붙여 놨더라고 했다.

죽은 사내는 백인이다.

권총수는 검은 천을 완전히 벗겼다.

시신은 알몸인데 굉장한 고문을 당한 듯 성한 곳이 거의 없었고 손가락 세 개가 잘려나갔다.

버홀터 지사장의 말에 의하면 죽은 사내는 쉴튼이란 사내로 올해 33살이다.

델타포스 출신으로 작년에 중사로 제대했고 다인코프에 입사하여 첫 근무지로 오다 변을 당한 것이다

“형 준비 좀 해 줘.”

“오케이!”

오민철이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권총수는 조용한 눈빛으로 시신을 바라보았다. 신참 용병들을 겁주기 위해 일부러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목을 베거나 온 몸에 폭탄을 주렁주렁 매달아 보내는 일이 있다.

델타포스나 네이비 씰, 또는 기타 각국에서 제법 이름이 있다는 특수부대 출신들 중 가끔은 텔레반이나 이슬람 민병대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한 가지가 있다.

이들이야 말로 지구상 어떤 군인들 보다 전쟁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장비가 낙후하고 단순 소총 싸움이어서 그렇지 하다못해 탱크 한 대라도 지원이 된다면 전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문이 열리고 나갔던 오민철이 들어왔다.

시신 호송을 위해 시청 관계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백달러 집어주자 일사천리던데, 오늘 국내선 비행기 한 대가 뜬대. 그 편에 싣기로 했어.”

라슈카르가 남쪽으로 보스트 공항이 있는데 텔레반의 잦은 공격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 밖에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

시신을 카불로 보내면 경찰팀 데이비스가 알아서 할 것이다.

잠시 후 장의사가 관을 가져왔다.

두 명의 장의사는 쉴튼의 시신을 검정색 천에 둘둘 말아 넣었다.

운반도중 시신이 움직이지 않도록 헝겊 뭉치를 넣어 고정한 뒤 뚜껑을 닫았다.

타악!

권총수는 백 달러 지폐 한 장씩을 건네주었다.

“잘 부탁합니다."

두 사람은 허리가 휘어지도록 인사하고 관을 메고 나갔다.

완전한 이슬람 복장을 갖춘 두 사람은 쉴튼의 시신이 걸려 있었다는 신호등을 찾아갔다.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에 설치된 차선 신호등의 높이는 4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오민철은 이마를 찡그렸다.

신호등은 한국의 것과 다를 바 없이 튼튼하게 생겼다.

즉 사람을 매달아도 휘어지거나 부러질 일은 없어 보였는데 과연 어떻게 저기에 매달수가 있었을까.

울퉁불퉁한 나무도 아닌 미끈한 쇠기둥을 오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목격자가 없다고 했지?”

“새벽 시간에 달리는 운전자가 발견하고 신고했대.”

낮에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해가 떨어지면 거리는 차량까지 통행하는 걸 보기 힘들 만큼 조용해진다.

밤이 되면 텔레반이나 반군들 세상이 되는 것이다.

괜히 어슬렁 거렸다가 그들에게 발각 될 경우 자칫 자신들을 위협하는 미군이나 용병들 끄나풀로 판단하고 방아쇠를 당겨 버린다.

“기둥을 타고 오른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권총수는 신호등 기둥을 쓰다듬었다.

“한 가지 방법뿐이야.”

주위를 살피던 권총수가 입을 열었다.

“차량을 이용했어.”

“차량을? 무슨 차, 버스라면 지붕 위로 올라가 일을 벌일 수 있겠지만.”

그건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80킬로가 넘는 거구의 미국인이야. 더욱이 죽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무겁지.”

오민철의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너 상여 안 메봤지? 군 시절 휴가 나왔다가 아버지 대신 상여를 멘 적이 있었는데 그거 장난 아니다. 신기하게도 똑같이 무거워. 여덟 명이 메는데도 가볍지 않다니까.”

“스카이 차량.”

오민철은 그게 무슨 자동차냐는 시선으로 보았다.

“전기 공사 할 때 사다리가 쭉 나가고 끝에 박스 달린 차량 말이야.”

“이사 차.”

“아무튼 끝에 박스가 달린 스카이 차량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제일 높아.”

스카이 차량이라면 매우 쉽게 매달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능성 높아.”

박스 안에 시신을 싣고 높이를 맞춰 올려주면 손쉽게 매달 것이다.

두 사람이 합동으로 작업했다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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