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81화 (181/651)

제181화: 공중납치(1)

에미레이트 367편이 런던 공항에 도착했고 마테르는 평소와 다름없이 조종사가 묵는 호텔 숙소로 향했다.

저녁에 잠깐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 말고는 다음 날 오후 비행시간까지 호텔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있다’

마테르가 묵고 있는 호텔 커피숍에 앉은 권총수의 눈이 가라앉는다.

‘어떤 거대한 사건이 미치도록 밀려오고 있음을 온 몸의 감각이 말하고 있다’

‘뭘까. 궁금하다. 알아야 대책을 세울 텐데’

마테르는 분명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마테르는 상당시간 침묵했는데 그건 고민이 컸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기에 곧바로 하겠다는 말을 못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뜸을 들였을까.

조종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조종사가’

떠오르는 것이 없다.

사건이 진행중인 것은 틀림없는데 떠오르는 것이 없다.

다음 날 제복을 걸친 한 사내가 로비를 가로질러 호텔을 나가고 있었다.

에미레이트 조종사 제복을 입고 가는 마테르였다.

오후 3시30분 비행기다.

물론 권총수는 그 비행기에 탑승할 것이다.

승객 250명을 태운 에미레이트 항공 558편이 런던 공항을 이륙했다.

비행기는 오늘따라 스모그가 극심한 런던의 하늘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권총수는 창가에 앉았는데 바로 옆에는 백인여자가 노트북을 꺼내 놓고 서류작업을 하고 있었다.

기내서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상냥한 미소로 승객들이 원하는 음료와 먹을 것을 제공하는 승무원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오민철이다.

“어디야?”

“비행기!”

“별일 없지?”

“거긴 별일 있어요?”

“맥보란이 회사를 찾아왔어.”

핸드폰을 창문 쪽 오른 귀로 바꿔 대면서 옆의 여자를 흘긋 바라보았다.

백인 여자는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널 찾더라고? 당연히 모른다고 했지. 그런데 말이야 쪽바리 녀석이 대뜸 당신이 뭔데 우리 캡틴의 행방을 묻느냐면서 하마터면 싸울 뻔 했다.”

권총수는 빙그레 웃었다.

“뭔가 벌어지는 눈치야. 엉아가 누구냐? 딱 보니까 약간 초조해 보이더라고.”

“초조?”

“제 딴에는 덤덤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는데 냄새가 나. 엉아 눈은 못 속여.”

“알아봐. 눈치로 때려 짚지 말고, 날 찾아온 것도 심심해서 온 건 아닐거야.”

“당근이지. CIA 중동팀장이 우리 숙소에 놀러 올 만큼 한가한 자리냐. 걱정 마. 언제쯤 도착하냐?”

“이제 막 떴으니까 너댓시간 지나야겠지.”

오민철은 카이로에서 보자면서 전화를 끊었다.

권총수는 다시 한 번 비행기 안을 스윽 둘러 본 뒤 눈을 감았고, 옆에 앉은 백인 여자의 타이핑 소리가 가물가물하게 울려 퍼졌다.

한참 잠에 빠져 있던 권총수가 눈을 떴다.

노트북을 두들기던 백인여자도 피곤한 듯 의자에 등을 붙인 채 잠들어 있었다.

비행기 안은 조용했지만 공기가 묘하다.

처음 탈 때와 기내 공기의 흐름이 다르다.

두 명의 여 승무원이 총총걸음으로 걸어갔고, 사무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기장실과 통하는 인터폰을 붙들고 얘길하고 있는데 동일한 입모양이 반복된다.

권총수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기장님, 기장님, 항로이탈입니다. 항로이탈입니다.”

사무장은 혹시라도 승객들 귀에 들릴 걸 우려한 듯 등을 돌리고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항로이탈’

모든 비행기는 정해진 길이 있다.

관제탑에서 지정해준 고도로 날아가야 하고 항로 또한 국제법이 정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같은 런던 카이로를 운행하는 비행기라도 가는 것, 오는 것 모두 고도가 다르다.

팟!

권총의 눈이 빛났다.

한 가지 특이점이 또 눈에 띈다.

승무원 모두 남녀를 불문하고 하나같이 핸드폰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총수는 이마를 찌푸리며 그들의 통화내용을 듣기 시작했고 점점 눈이 커졌다.

‘하이재킹!’

비행기 공중 납치라는 말에 기내 어딜 봐도 테러범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승무원들도 아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조종실 문을 열수 없다.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데 테러범이 승무원 목에 총구라도 붙인다면 얘긴 달라진다.

그때였다. 핸드폰이 울렸고 에반이라는 이름이 찍힌다.

“에반!”

“558편에 타고 있나?”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듯한데.”

“조종사가 기수를 테헤란으로 돌리고 있네. 관제탑에서 계속 정식 항로로 복귀하라고 해도 듣지 않아.”

테헤란이라는 말에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MI6에 의하면 며칠 전부터 카이로와 테헤란 모처 사이에 유무선 통화가 이뤄졌다는 거야.”

“내용은 뭡니까?”

“놀랍게도 전부 암호야. 아들이 부모에게 전하는 평범한 안부인사였어.”

“혹시 카이로의 전화 발신지 중 한 곳이 고물상 아닙니까?”

“헉!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나?”

“그만 끊습니다.”

전화를 끊은 권총수는 옆 좌석의 백인 여자를 슬쩍 내려다 본 뒤 그대로 떠올랐다.

비켜 가자면 깰 듯 싶었다.

가볍게 떠올라 통로에 내려섰지만 모두가 잠을 자고 있기도 했으며 워낙 빨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권총수는 통로를 걸어 승무원실로 걸어갔다.

쳐진 커텐을 걷자 두 명의 여 승무원이 고개를 돌려 보며 깜짝 놀란다.

오른쪽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권총수는 노크 없이 열고 들어갔다.

사무장 압둘라가 고개를 돌렸다.

“뭡니까. 여긴 통제구역입니다. 승객들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이 비행기 테헤란으로 가고 있는 것 맞소?”

“엇!”

사무장뿐만 아니라 뒤따라 들어온 두 명의 여승무원도 소스라쳤다.

“무...무슨 소립니까? 이 비행기는 카이로에 도착합니다.”

권총수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사실대로 빨리 말하세요. 이란 영공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때는 대책 없으니까.”

“누구신데.”

“대답부터 하세요. 맞습니까?”

사무장이 여 승무원들을 보았다.

여 승무원들도 얼른 입을 떼지 못하고 안절부절 했다.

“조종사 마테르씨 독단적인 납치군요.”

조종사 이름까지 거침없이 흘러나오자 모두가 놀란다.

권총수는 사무실을 나가 조종실로 걸어갔다.

콱!

조종실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단단히 잠긴 듯 꼼짝 않는다.

조종실이 소란스럽지 않다.

기장의 독단적인 항로이탈이면 부기장과 몸싸움이 아니면 말싸움이라도 벌어지면서 시끄러워져야 한다.

기계소리 말고는 조용한 것이 한편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처음부터 같은 조직원이었는지 아니면 지상에 있는 마테르 동료들이 부기장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조종실은 기장에 의해 완전 장악되었음이 분명했다.

차악!

권총수는 손잡이 근처에 손바닥을 댔다.

그리고 내공을 바짝 끌어올렸는데 손잡이 근처가 점점 뜨거워졌고 일분 정도 흐르면서 붉게 달아올랐다.

“허걱!”

“오마이 갓!”

극성의 삼매진화(三昧眞火)였다.

권총수의 내공은 이미 노화순청(爐火純靑), 화롯불이 모아져 푸른 청색이 되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아직 몸속에 절반 정도의 공청석유가 본신진기와 합일되지 않았다.

공공선사는 완전한 흡수가 이뤄진다면 반반귀진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으허헉!”

안쪽에서 놀라는 소리가 들렸고 툭! 하는 소음이 울리며 가장 먼저 손잡이가 떨어졌고 잠금장치 근처가 녹아 흘러내린다.

퍼억!

권총수는 거칠게 문을 걷어찼다.

방화, 방음 기능을 갖춘 두꺼운 조종실 문이 쓰러졌다.

문이 앞으로 쏟아지며 권총수가 들어서자 기장 마테르와 부기장 호스니는 너무 놀란 듯 눈만 깜빡 거렸다.

웬만한 폭탄에도 조종실 문은 꼼짝 않는다.

테러방지를 위해 신중하게 제작하고 만들어진 금고 문에 버금갈 만큼의 장치인데 폭탄 터지는 소리도 없이 떨어진 현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테르씨.”

권총수는 확인하듯 이름을 불렀다.

“좋습니다. 해보죠. 이건 무슨 뜻입니까? 카이로 툴라 고물상에서 당신이 뱉어낸 말입니다.”

화악!

툴라 고물상이라는 말에 마테르의 눈이 커졌다.

그 자리에는 단 네 명 만이 참석했고 외부인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나누는 대화가 흘러나갈 일은 없다.

“그곳에 네 명이 모였죠. 마테르 당신을 포함해 여자 한 명 남자 셋.”

파르르!

조종간을 잡고 있는 마테르의 손이 떨렸다.

“난 20일 넘게 당신을 따라다녔죠. 런던에서와 카이로에서의 행적은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우선 이탈한 항로부터 정상으로 돌리고 얘길 나누죠.”

“그렇게 할 수는 없소. 신은 위대합니다. 알라는 우리에게 피를 흘리며 싸울 것을 요구했습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많은 양보를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죠. 비행기를 원래 항로로 돌리시죠.”

“차라리 날 죽이시오.”

파파팍!

다섯 가닥의 지풍이 마테르 기장의 몸을 파고들었고 헉! 하는 신음을 흘렸다.

“끄어억!”

마테르 기장이 온몸을 비틀며 신음을 흘렸다.

“크아악!”

눈이 탁구공처럼 뛰어 나오고, 관자놀이에 불거진 힘줄이 금방이라도 살갗을 뚫고 나올 듯 했다.

우드득!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깨문 듯 부러진 조각들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아우우욱!”

목이 완전히 옆으로 꺾였고 투툭! 하는 소리가 들리며 관절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분근착골.

이보다 더 잔인한 고문술은 존재 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악의 고문술로 강호의 절정 고수라고 해도 일각을 견디지 못한다.

“말하겠...소!”

파파팟!

다시 지풍이 날아갔고 제압된 다섯 곳의 혈도가 풀렸다.

“어어어!”

마테르 기장은 축 늘어졌다.

물에 젖은 미역처럼 완전히 풀어진 것이다.

“자...잠깐!”

권총수의 시선에 부기장 호스니가 깜짝 놀랐다.

“난 기장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가족들이 잡혀 있어.”

묻지도 않았는데 재빨리 대답했다.

권총수의 예측대로 호스니 가족들은 지금 마테르 기장과 같은 테러범들에게 붙들려 있다고 했다.

“당신이 일단 기장석에 앉아 항로를 복귀시키시죠?”

권총수의 오른손이 마테르 기장의 어깨를 잡아 가볍게 들어올렸다.

화아악!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압둘라 사무장의 눈이 커졌다.

권총수가 마테르 기장을 가벼운 물건처럼 들어 올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 사이 부기장 호스니가 자리를 바꿨다.

부기장 호스니는 능숙한 동작으로 복잡한 조종실 기계를 조작하더니 10분 정도 지나 카이로 공항 관제사의 무전이 날아왔다.

“558편 지금의 항로를 지켜주길 바란다. 이상.”

“오케이 그렇게 하겠다.”

“사무장! 기장을 사무실로 데리고 오시죠.”

권총수는 조종실을 벗어났다.

사무장의 부축을 받으며 마테르 기장이 들어섰다.

사무장은 의자에 조심히 앉혔는데 마테르 기장의 눈은 아직도 초점이 없었다.

딱!

권총수는 사무실에 있는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수 한 개를 따서 건네준다.

캔 쥬스를 받아든 마테르 기장의 오른손이 수전증 걸린 사람처럼 심하게 떤다.

목이 타는지 떨면서도 끝까지 입으로 가져가 마셨다.

권총수는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마테르 기장을 보며 말했다.

“기장님, 지금부터 내 질문에 빠르고 정확히 대답을 해야 합니다. 같이 모였던 네 사람은 누굽니까?”

마테르 기장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동료들입니다.”

“그 여자 말입니다. 얼굴을 볼 수 없도록 히잡을 깊게 썼던데 화이트 위도우, 사만다 루스웨스트 아니오?”

“이름은 모르지만 거물이라는 것 정도는 눈치 챘습니다.”

“거물!”

“모두가 그녀 앞에서는 예의를 갖췄소.”

“그럼 같이 어울렸던 사람들이 소말리아 이슬람 반군단체 알샤바브란 얘깁니까?”

알샤바브 같지는 않다는 의미였다.

권총수는 비록 화이트 위도우가 캐냐 나이로비 쇼핑몰 테러에 관여 했다고 하여 알샤바브 소속으로 보지는 않았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들은 서로가 통한다.

필요에 의해 잠시 동행은 했을지 몰라도 무자헤딘 쪽에 가깝다고 보았다.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소. 난 지금까지 그들과 몇 번 만났고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은 같았지만 정확한 속사정까지는 모릅니다.”

권총수는 마테르 기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마테르가 움찔했다.

“믿어주시오.”

“난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소.”

권총수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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