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피의 금고(4)
180센티미터의 키를 가진 남자의 앉은키 평균은 동 서양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동양권은 94센티, 서양 남자 91이다
이슬람권은 서구의 신체조건으로 구분해야 한다.
“이 정도.”
벽에 등을 기댄 채 쭈그리고 앉아 왼손으로 벽을 짚었다.
머리 위에서 5센티 정도 높은 곳에 표시를 하고 일어나 살핀다.
“93센티미터로 계산한다면 앉은키 높이는 138센티미터.”
스으으!
두 눈이 벽을 살피고 곧장 138미터 지점에 멈춘다.
이제 남은 건 호텔 4층의 높이다.
호텔 층과 층 사이를 나누는 바닥이 있는 부위를 조준경을 통해 측정하며 4층에 이르렀다.
“으흠!”
총구의 각도가 잡혔다.
물론 모든 건 스나이퍼 스쿨에서 배운 지식에 기초했다.
그러나 틀릴 수도 있다.
“140.”
상대의 앉은키 높이가 그 정도 되느냐는 질문이다.
대답은 2분 정도 지나 들려왔다.
“오케이”
직접 재어보지 않았으나 건물과 호텔은 거의 비슷한 평지에 지어져 있다.
‘위보다는 아래를 조준하라’
머리 위로는 더 이상 인간의 신체는 없다.
그러나 아래로는 목을 비롯해 가슴이 있어 제대로 맞으면 즉사 할 수 있다.
“사격준비!”
이쪽의 사격 상태를 알려주는 건 한 방에 보내지 못할 경우 안에서 지원하라는 뜻이다.
총소리에 순간적인 혼란이 생기고 그 틈을 놓치지 말라는 얘기였다.
보이지 않는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보긴 처음이다.
스나이퍼 스쿨 교관들도 최고의 저격수는 눈으로 적을 보고 당긴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지금 보이지 않는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고 한다.
이런 상황은 영화에서도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
타아아앙!
강력한 총성이 울렸다.
사내는 자신을 IS의 우두머리 알 바그다디의 심복중 한 명인 알 살류브라고 했다.
알 바그다디와 주변 측근에 대해서는 이미 상당한 정보가 확보 되었고 알 살류브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2015년 130여명이 숨졌던 파리 테러 사건과 관련된 인물로 그동안 프랑스 정부와 CIA의 추격을 받아왔다.
우두머리 알 바그다디의 신임이 깊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본래 모습은 좀체 언론에 등장 한 적이 없었다.
10년 전 사진이 있었지만 가짜라는 설이 퍼지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퍼억!
의자에 앉아 있던 알 살류브가 움찔했다.
드르륵!
거의 같은 순간에 소대장의 HK416이 불을 뿜었다.
알 살류브는 자신이 모든 칼자루를 잡았다는 것에 안심한 듯 1소대 누구에게도 소총을 버리라거나 아니면 바닥에 앉으라는 따위의 명령이 없었다.
자신과 같이 거룩한 신의 집(천국)에 들어가는 걸 영광으로 알라면서 IS가 반드시 세상을 지배할 날이 올 것이라는 일장 연설을 쏟아냈다.
모든 걸 신의 이름, 신의 뜻, 신이 약속한 땅으로 규정하며 떠들다 점점 자기도취에 빠져드는 순간 총알이 날아온 것이다.
다행히 왼쪽 어깨를 파고들어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드드드드!
소대장은 탄창에 있던 21발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툭!
알 살류브 손에 들린 리모컨이 바닥에 떨어졌다.
“대피 햇!”
소대장의 명령에 소대원들이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혹시 몰라 소대원들을 대피시킨 소대장은 천천히 다가가 리모컨을 내려다보았다.
허리를 구부리고 리모컨을 주워든 소대장은 그 자리에서 박살 내버렸다.
빠악!
예민한 전기장치이기 때문에 자칫 오작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리모컨을 산산조각 낸 소대장은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 의자에 앉아 여유를 부리던 알 살류브가 보이지 않는다.
목이 없는 몸뚱이 하나가 의자에 앉아 있다.
HK416 21발이 머리를 날려 버린 것이다.
“제로, 넌 최고다.”
소대장은 권총수에게 무전을 보냈다.
“복귀 하겠습니다.”
“당연하지.”
소대장은 빙긋 웃으며 검정색 금고를 바라보았다.
그때 밖으로 대피했던 소대원들이 하나 둘 들어섰다.
“시간 없다.”
금고를 실어가기 위해 밴이 온 것을 보면 CIA의 정보가 맞다고 봐야 했다.
물론 아직 문을 열어 확인하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높았다.
특히 알 바그다디의 측근중 한 명인 알 살류브가 폭탄 조끼를 입고 동귀어진을 시도 한 걸 보면 기대해 볼만 했다.
“물러서!”
오스카르가 금고 문에 어른 주먹 만 한 회색 덩어리 한 개를 붙이고 선을 늘어 뜨렸다.
콤포지션 폭약이다.
미리 부대에서 준비해온 것으로 TNT와 왁스를 포함해 몇 가지 물질을 추가 혼합하여 제조했다.
모두가 문 밖으로 나왔고 오스카르는 스위치를 눌렀다.
퍼어어!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실내에 먼지가 피어났다.
“오오 맙소사!”
모두가 입을 떠억 벌렸다.
금고 문이 떨어져 나갔는데 백 달러짜리 돈다발이 흩어져 있고 더욱 놀라운 건 1킬로짜리 금괴 수십 여 개가 쏟아졌다.
소대장 역시 놀라는 눈으로 금고를 바라보았는데 눈이 흔들린다.
아직까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이토록 많은 금괴와 현금을 본 적이 없었다.
석유를 팔아 마련된 돈일까.
아니면 이라크와 시리아 부호들을 상대로 강탈한 것일까.
이라크와 시리아의 일부 부호들이 가족과 함께 실종되었다는 뉴스를 듣긴 했다.
“옮겨!”
나카야마가 재빨리 이동식 롤러를 금고 앞으로 놓았다.
밖으로 흘러나온 금괴와 현금을 다시 금고 안에 넣고 떨어져 나간 문짝으로 대충 막는다.
툭!
투투투!
끈으로 금고를 단단히 묶어 문이 열리지 않게 한 뒤 롤러에 실었다.
“경계 위치로.”
혹시 방해자가 있을 걸 대비해 세 명의 대원이 재빨리 복도 밖으로 나갔다.
한편 권총수와 오민철은 각자의 장비를 어깨에 메고 호텔 입구에 섰다.
아직까지 IS 시신들은 치워지지 않은 채 나뒹굴고 있었다.
누굴까.
가장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던 의문이다.
조준경 속에 비췄던 두 사내.
IS지원 병력을 향해 M4를 난사하던 두 사내의 모습은 비록 조준경 속이었지만 오랫동안 총을 잡아 본 사람의 여유가 흘렀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소대원들은 상당히 위험해 질 수 있었다.
“저기!”
호텔 직원으로 보이는 터번을 두른 청년이 다가왔다.
“이것!”
내민 것은 작은 명함이었다.
“어느 분이 두 분이 오시면 건네주라고 했습니다.”
“두 분?”
권총수는 본능적으로 두 남자를 떠올리며 명함을 보았다.
‘KAS(Kilo Alpha Services)’
“킬로 알파 서비스”
어깨너머로 보던 오민철이 더듬거렸다.
“킬로 알파 서비스”
권총수가 고개를 돌렸다.
오민철을 보았는데 목소리에서 뭔가 알고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민간 보안회사야. 영국에서는 가장 크지. SAS 출신이 아니면 입사하지 못해.”
권총수의 눈썹이 모아졌다.
아카데미측에서 접촉이 온 이후 인터넷을 이용해 전 세계에서 제법 명성을 쌓고 있는 민간 보안업체에 대해 알아보았다.
대부분이 미국 회사들이었다.
“학연, 지연, 혈연을 따지듯 킬로 알파 서비스는 철저히 군연(軍連)을 앞세우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얼마만큼 요인 경호, 군사작전, 건물 경비등 보안 업무에서 뛰어나느냐가 곧 그 바닥에서의 회사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지.”
오민철의 민간 보안회사에 대한 지식은 상당했는데 작정하고 공부한 것으로 보였다.
“A급 VIP가 자신의 신변을 경호 하는데 24시간에 얼마 정도 지불 할 것 같아? 아카데미는 2,3만 달러야. 그것도 두 명이 한 개조로 나가는데 말이야. 그러나 그보다 한 급 아래인 ‘마르케스 반체 마르케스(MVM)’는 1만 달러지. 그게 무슨 뜻이겠냐? 아카데미는 실력좋은 특수부대 출신들이 많고 마르케스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지.”
“마르케스도 실력 좋은 특수부대 출신들을 스카웃 하면 되잖아.”
“임마 대기업과 중소기업 연봉이 같냐. 복지는 어떻고? 너 같으면 연봉 적은 회사를 가겠냐 많이 주는 회사를 가겠냐?”
권총수는 다시 손에 들린 명함을 살폈다.
‘의도적이군’
분명 제대 후 자신을 데려갈 의향이 있다는 의사를 이런 식으로 표현 한 것이다.
어쨌든 절대절명의 위험에 처할 뻔 한 소대를 도와주었으므로 기억은 해둬야 할 것 같았다.
한 대의 검정색 밴이 호텔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석대의 PVP가 밴의 앞 뒤를 호위하고 있었다.
PVP 지붕에 7.62밀리 기관총이 설치되었으며 사방이 사막색 철판으로 덮여 있었다.
프랑스군 전투차량 PVP는 사륜구동으로 탑승인원은 4명이다.
석대의 장갑 차량을 타고 있는 사람들은 1소대원들이었다.
락까를 벗어난 검정색 밴은 풀한 포기 자라지 않고 있는 산길을 달렸다.
해발 250미터의 태우릭포 산을 넘어 락까를 떠난지 2시간 만에 이라크 국경에 접근했다.
이미 연락이 된 듯 이라크 군과 미군이 공동 경비를 서고 있는 국경초소에서는 어떤 검문도 받지 않았다.
국경을 넘은 행렬은 30분을 더 달려 조그만 군부대 앞에 멈췄는데 ‘101’이란 글씨가 작은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중무장한 미군 두 명이 차에 타고 있는 소대원들 인원을 체크하더니 ‘패스(pass)’라고 말했다.
부우웅!
차는 다시 움직였고 5분쯤 달려 지하 벙커 앞에 멈췄다.
석 대의 PVP 문이 열리고 소대원들이 내렸다.
M10이 들어 있는 백을 맨 채 내린 권총수는 멈칫 했는데 벙커에서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모래포대를 쌓아 올린 진지 두 개가 있었다.
공중 관측이 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머리 위로 위장그물을 덮었으며 GHU-19 두 정이 설치되어 있었다.
구경 12.7밀리에 99밀리 NATO탄을 사용하는 다 총열 중기관총이다.
1분에 대략 1500에서 2000발을 퍼붓는다.
벙커를 지키는 두 명의 미군 중 한 명이 초소 벽에 걸린 전화기를 들고 뭐라고 보고를 하는 듯 보였다.
한참을 통화하던 미군은 전화기를 내리고 돌아섰다.
“돌아가셔도 좋다고 합니다.”
홱!
소대장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목숨 걸고 탈취한 금고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금고는 지금쯤 27여단 본부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금고를 엘리베이터에 실었을 때 여단본부로부터 무전이 걸려왔다.
‘금고를 미군 101 부대에 인계할 것’
상명하복의 군대에서 상부기관의 명령에 대해 이유를 물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탈취에 성공했고, 더욱이 향후 IS의 운명을 가늠할 자금이다.
그런 결정적인 키를 넘기라는 명령에 따르긴 했지만 불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헌데 그냥 놓고 돌아가라는 말에 참았던 화가 폭발 한 것이다.
“헤이, 프라이 빗 퍼스트 클래스(private|first|class: 일병).”
전화 통화를 했던 미군 일병이 돌아보았다.
“이름이?”
“데이빗입니다.”
“저 안에 뭐가 실렸는지 아나?”
“전 모릅니다.”
“그러겠지.”
소대장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화를 가까스로 참고 있는 것이다.
그때 닫힌 벙커의 철문이 구구궁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이 열리고 세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나타났는데 모두가 정장차림을 하고 있었다.
한 눈에 군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랭글리 자식들 같은데.”
오민철이 중얼 거리듯 말했다.
“형이 어떻게 일아?”
“군부대에서 저렇게 뽀대나게 정장 덮고 다니는 것 보면 뻔하지 뭐. 여기 부대도 그래. 미군 부대 편제에서 101부대라는 건 없어.”
그건 권총수도 알고 있었다.
즉 이곳이 전투를 위한 부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짐작했었다.
“잠깐!”
세 명의 사내가 밴의 뒷문을 열려고 하자 소대장이 막았다.
“당신들은 누구요?”
세 사내가 멈칫했다.
“내 부하들이 죽음을 무릎 쓰고 빼앗은 물건이오. IS의 목줄을 끊을 수 있는 귀중한 건데 상대 신분도 모르고 넘겨준다는 건 좀 그렇지 않소.”
권총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소대장은 지금 시비를 걸고 있었다.
도저히 이런 푸대접을 받고는 그냥 돌아갈 수 없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뭔가 한바탕 거친 드잡이질이라도 하지 않고는 도저히 그냥은 돌아가지 않을 모양이었다.
한 사내가 한걸음 다가왔는데 조금 환한 그레이 톤의 싱글을 걸쳤고 나비가 새겨진 초록색 넥타이를 맸다.
“왜 그러시죠?”
“당신이 알 바그다디 첩자인지도 모르잖소.”
알 바그다디는 IS의 두목이다.
정확한 신분을 알고 싶다는 뜻이다.
사내는 빙긋 웃는다.
“농담 할 시간 없소. 비키시오.”
“나야 말로 농담할 기분 아니오. 당신 신분을 모르고 인계했다 나중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어찌하란 말이오.”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 할 것 없소.”
타탁!
소대장이 권총을 뽑아 노리쇠를 후퇴했다 밀었다.
약실에 한 발이 들어갔다.
당기면 발사된다.
“지금 장난해? 우리 외인부대가 그렇게 허술한 줄 알아?”
동시에 나머지 소대원들 모두가 총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