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임펙트(Impact)1
마침내 해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이 100미터를 5시간 걸려 완주했다고 믿지 않았다.
아니 믿기지 않았다.
한 번 성공에 모두가 경험을 얻었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누구도 100미터가 가깝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뱀이 지나가고, 흰개미가 온몸을 덮고, 모기가 얼굴에 앉아 미친 듯 피를 빨아도 눈꺼풀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마존 정글에 사는 멧돼지였다.
비록 위장이 완벽하다고는 하지만 꽥꽥거리며 새끼들을 데리고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뿐만 아니라 일부 새끼들은 권총수의 몸을 밟았다.
‘저격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격술이 아니라 위장이다’
권총수는 왜 그런 말을 귀가 아프게 들어야 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일단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는 바람처럼, 때로는 햇빛처럼 자연이 되어 접근해야 한다.
미래의 저격수는 단순히 방아쇠만 당기는 것이 아니다.
적진 깊숙하게 침투하여 레이저, 또는 무전 따위를 이용해 폭탄 투하 지점을 알려주는 공정통제사(ROK Air force Combat Control Team: 적진에 침투하여 아군 수송기가 안전하게 병력이나 물자를 운송할 수 있도록 길잡이)역할까지 한다.
인공위성으로도 완벽한 목표지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람이 하는 것만큼 정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격수가 적진으로 들어가 공격목표를 분명하게 짚어주는 것이야말로 백발백중이다.
‘아무리 첨단 무기가 나와도 저격수 만큼은 못하다’
권총수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기다린다는 것.
거기에 길리슈트(Ghillie suit)까지 뒤집어쓰고 땡볕아래 잠복한다는 건 상상을 초월할 고통이었다.
위장망 길리슈트는 다행히 열전도율이 낮다.
적의 열상 장비에도 지열로 달궈진 숲 정도로 밖에 인식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일체 통하지 않아 엄청 덥다.
잠복은 이동하지 않는 정지 상태를 말한다.
그렇게 표적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길리슈트를 뒤집어 쓴 권총수는 TRG 10을 거치한 채 엎드려 있었다.
오전 10시에 나와 잠복한다.
교관의 별도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절대 움직일 수 없다.
담배, 로션, 금속으로 된 물건은 일체 휴대할 수 없다.
담배와 로션은 냄새, 인식표는 소리와 자칫 반사광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테이프로 감는다.
AMPBS10주야간 통합 조준경을 달고 600미터 밖에 있는 표적을 겨누고만 있는 훈련이었다.
저격수에게 가장 필요한 페이션스 트레이닝(patience training: 인내심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흘째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는다.
잠복 훈련에서 가장 많은 탈락자가 나왔다.
하나둘 신체에 마비 증세가 나타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감시하듯 살피는 센서가 반응했다.
“레반스노프 아웃!”
“포지키 아웃!”
“마우디 아웃!”
인정사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가 정글을 울렸다.
권총수는 팔팔했다.
대력금강심법은 사흘 밤낮을 꼬박 샜지만 육신의 피로를 주지 않았다.
* * *
비라도 내리면 조금 시원할 듯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스콜)가 쏟아졌다.
그날, 폭우가 쏟아져 도로가 끊기고 외인부대가 지키고 있는 프랑스 우주발사기지국 일부가 물에 잠겼다는 뉴스가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갈 때.
스나이퍼 스쿨에 들어온지 정확히 5개월째 되던 날 마침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사용되는 총은 TRG 10이다.
무게가 6.4킬로로 일반적으로 저격총들의 무게가 7킬로대 초반에 머무르는 것과 비교하면 가벼운 편이다.
처음은 400미터에 표적을 놓고 쏘았다.
400에 적응이 되자 600, 그리고 800까지 거리를 늘렸다.
본격적인 저격수로서의 사격 훈련이 시작 될 때 남은 인원은 고작 열 명이었다.
소코프 속에 표적이 들어왔다.
그냥 쏘는 것이 아니다.
교관이 무전기로 저격 부위를 지적하면 그곳에 박아야 한다.
‘거리 600미터!’
휴대용 무전기가 울렸다.
‘심장’
권총수는 조준경에 오른쪽 눈을 가져갔다.
“후후.”
길게 숨을 한 번 내쉬며 잠시 조준경에서 눈을 뗐다가 다시 접근시킨다.
죽이는 것이 아니다.
상대와 경기를 벌이는 것이다.
승부인 셈이다.
얼굴에 긴장 따위는 없었다.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길 뿐이다.
삶은 흐름이다.
그건 바람과 같아서 막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도한 흐름을 거역해봤자 힘들어질 뿐이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느끼면 느껴진 대로 바라볼 뿐이다.
권총수는 지금 대력금강심법속의‘상유지심(想有之心)’의 이치를 깨우치고 있었다.
저격에 대력금강심법을 접목한 것이다.
생각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다.
만들면 있지만 지우면 사라진다.
고요(靜)는 곧 움직임(動)이다.
움직이기 위해 잠시 멈추는 것이다.
타탕!
방아쇠가 당겨지고 드넓은 사격장 위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임팩트(Impact:명중)”
무전기가 울린다.
권총수는 옆에 놓인 쌍안경을 집어 들고 600미터 떨어진 곳의 표적을 살폈다.
왼쪽 심장 한가운데 구멍이 뚫렸다.
씨익!
권총수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총을 어깨에 받쳤다.
철컥!
노리쇠를 잡아당겨 조금 전 쏘았던 총알의 탄피를 끌어내고 다시 전진시켰다.
‘머리!’
또다시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투투툭!
오른쪽에 있는 엘리베이션 에저스트맨트(elevation adjustment:상하수직 조절장치)를 만진다.
타앙!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이어 들려오는 소리.
‘임펙트’
권총수는 다시 쌍안경을 들어 자신이 쏜 표적을 살폈는데 미간이 정확하게 뚫렸다.
‘다음은 800 이동표적’
권총수는 쌍안경을 눈에 댔다.
씨익!
쌍안경으로 800미터 지점을 살피던 권총수가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실제 사람 키와 똑같은 체구의 마네킹이 일반인이 걷는 속도로 움직였다.
“마네킹이 정장 차림이란 말이지.”
권총수는 천천히 표적을 따라 총구를 이동시켰다.
이동표적에 대한 승패는 철저한 타이밍이다.
인간의 움직임은 거의 규칙적이다.
규칙적인 운동 흐름에 맞춰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저격수는 부상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죽여야 한다.
타앙!
툭!
마네킹 얼굴이 날아가 버렸다.
‘임펙트’
또다시 무전기에서 교관의 외침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마네킹이 좌측에서 움직였다.
검은 선글라스까지 끼었다.
“구찌가 아니었으면 좋겠군”
가벼운 미소와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탕!
여지없었다.
총알은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