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2화 (22/651)

제22화: 방아쇠(1)

휘!

휙휘휙!

일행이 일제히 머리를 처박았다.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저항군이 이쪽을 바라본 것이다.

뭔가를 발견해서 보는 눈빛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살피는 것이었지만 워낙 경험이 많은 교관들인 만큼 호흡까지 멈췄다.

세르게이가 오른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그건 너도밤나무에 올라가 있는 권총수에게 내리는 저격 명령이었다.

적외선 조준경으로 이쪽을 살피고 있던 권총수는 세르게이의 오른손을 발견했다.

권총수는 분대원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경계병 머리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그 순간, 동시에 세르게이와 대원들이 일어나 사격을 했고 뒤에서 치고 들어온 2분대 역시 경계병들을 향해 총을 갈겼다.

드르륵!

드륵!

공포탄이지만 워낙 근접거리까지 접근했고 쏟아내는 총소리에 어둠이 찢어졌다.

경계병 역할을 하던 교관들 모두 땅바닥으로 엎어졌다.

“2분대 사주경계.”

2분대원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져 엎드렸다.

“1분대는 나와 같이 집안을 수색한다.”

혹시 숨어 있을지 모를 적을 찾아내기 위해 집안 곳곳을 뒤지며 살폈다.

“부엌 이상무!”

“화장실 이상무!”

분대원들의 외침이 이곳저곳에서 울렸다.

스륵!

세르게이는 안방 문을 열었다.

방 가운데 의자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위에 1미터 크기의 모형 미사일 1기가 올려져 있었다.

세르게이는 입구에 서 있는 무전병 나카야마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무전기에 대고 이곳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표적 Y 제거, 아군 피해 없고 적 다섯 명 전원 사살. 반복한다. 표적 제거 성공.”

* * *

치열했던 150킬로 전술행군이 끝났다.

하지만 숨 돌림 틈이 없었다.

그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날부터 사격, 화생방, 눈 가리고 총기 분해 조립, 8km 군장(20kg)구보, 수류탄 투척, 운전 교육 등 지난 3개월 보름 동안 배웠던 20개 병과에 대한 종합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권총수는 눈 가리고 총기 분해 조립에 1분 57초를 기록하여 1등을 기록했다.

동기들 중 2위와는 약 5초 차이가 있었다.

8km군장구보 역시 1등이다.

실내 사격장에서 사격이 실시되었다.

40미터 20발 속사에서 스무 발 모두를 둥근 원에 집어넣었고, 40미터 이동 사격은 19발을 넣고 한 발 놓쳤다.

수류탄 투척은 정확히 5초를 맞춰 지면에 닿는 순간 터지는 기염을 토했다.

대부분의 대원들은 안전핀을 뽑자마자 곧장 던져 버린다.

가끔 영화 속에서 터지지 않는 수류탄을 다시 이쪽으로 집어 던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혀 불가능한 경우는 아니었다.

그럴 경우 누군가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는 희생을 치르지 재차 던질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차이는 있다.

테스트 20과목에서 전투장애물 통과와 40미터 이동사격 2과목에서만 만점을 받지 못한 권총수를 보며 가장 놀라는 사람은 오민철이었다.

군대 문턱에도 가보지 않는 맹탕이 4개월 만에 기라성같은 경험자들을 제치고 가장 뛰어난 전투력을 보여준 것이다.

부대 공기가 불편하다.

마침내 모두가 가장 두려워하던 그날이 오고야 만 것이었다.

4개월 동안 틈틈이 교육받고 공부했던 불어 시험이다.

어쨌든 외인부대 4개월 훈련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대단한 실력들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부는 또 다르다.

지금까지는 몸으로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검증받았다면 이제는 머리로써 외인부대원임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시험은 두 가지로 이뤄졌다.

서술 위주, 그리고 그림을 보고 맞는 단어와 상황을 선택하거나 설명하는 방법이었다.

점수는 1등급부터 시작하는데 6등급이 제일 높다.

프랑스 현지인도 6등급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할 만큼 외인부대의 시험은 상상 이상이었다.

시험은 당일 바로 점수가 발표되었다.

모두가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인다.

“설마 불어 좀 부족하다고 낙방시킬까? 안 시키겠지?”

오민철이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떨어뜨릴걸요.”

“진짜?”

“나 같으면 떨어뜨립니다. 전쟁 중에 전우와 의사소통이 안 되면 그게 말이 됩니까? 생각해 보세요. 소대장이 공격 앞으로 했는데 안 가고 가만있으면 피곤하잖아요.”

“그 정도는 눈치로 알아 때리지.”

“형은 알아 때리는데 다른 놈들은 못 때린다니까요.”

오민철이 이마를 찡그렸다.

“너 지금 말속에 은근히 내가 떨어졌으면 하는 눈치가 보인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어떻게 같은 동포가 동포 떨어지기를 바란단 말입니까. 형이나 나나 서로 잘되어야 합니다.”

“그건 그렇지.”

돌아서는 오민철을 보며 권총수는 히죽 웃었다.

오민철이 눈치는 빠른데 가끔 단순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심심찮게 슬쩍 놀려먹는 것이다.

4등급이 나왔다.

그 정도면 현지인들과 어렵지 않게 의사소통 정도는 가능하다.

프랑스 사람도 어렵다는 6등급이 나왔는데 바로 세르게이였다.

나중에 세르게이 입을 통해 듣게 되었는데 외인부대 시험을 보기 위해 무려 2년 동안 불어 공부에 매달렸다는 얘기에 권총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흐흐!”

오민철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형 합격했구나. 몇 등급 받았어?”

“투!”

커트라인이 2등급이다.

오민철은 가까스로 턱걸이 한 것이다.

“넌?”

“4등급!”

허걱!

단발마의 비명 같은 신음을 토했다.

“도대체 넌 못하는 게 뭐냐?”

갑자기 권총수 표정이 변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넌 커서 뭐가 되려고 맨날 쌈질이냐’라던가‘너 어깨 위에 올려진 물건은 아무리 봐도 머리가 아니라 돌멩이 같애’라는 모욕적인 말만 들어왔지‘못하는 게 뭐냐?’라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말은 오늘 처음이었다.

돌멩이로 낙인찍힌 자신이 외인부대에 들어와 졸지에 못하는 것이 없는 천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천재가 된 원인의 첫째는 대력금강심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4주 전 네팔에서 온 비렌드라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었다.

비렌드라는 구르카(Gurkha)족이다.

구르카족은 네팔 중서부 산악지대에 사는 몽골계 소수 부족으로 흔히‘히말라야 눈 사나이’로 불린다.

1814년 영국군이 네팔을 침공했을 때 구르카족은‘쿠크리(khukri)’라는 구부러진 단검으로 이들을 대적했다.

쿠크리는 한쪽 날이 구부러져 있는 외날 검으로 당시 영국군은 최신 무기로 무장했지만 쿠크리를 지닌 구르카족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들의 놀라운 전투력을 본 영국정부는 나중 평화협정을 맺으며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구르카 용병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끈기 있는 브랜드가 되어 굉장한 몸값으로 전장을 누비고 있다.

그런 비렌드라에게 소림사에 대해 무심결에 물었는데 자세한 설명을 해준 것이다.

티베트에 있는 포탈라궁과 함께 불교의 꽃을 피웠고 특히 달마대사가 창안한 일흔두 가지의 무술은 비록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몇 개 남지 않았지만 굉장하다고 했다.

또한 공공선사는 달마 이후 소림이 낳은 최고의 선승이자 무승으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무상의 경지에 올라섰다가 우화등선 했다고 한다.

권총수는 그 공공선사와 자신과 인연을 맺은 공공선사가 동일인인지는 묻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그 옛날 소림사 승려들이 연마하던 무공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했다.

* * *

마침내 최종합격자 30명에게 외인부대의 상징인 캐피블랑(둥근 흰색의 모자:일명 깡통모자)이 씌워졌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자 촛불이 켜졌다.

1831년 3월 10일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가 외인부대 창설에 관한 칙서를 공표했다.

바로 그 칙서를 또티 사령관이 낭독한 뒤 중대장 가브리엘에게 전달한다.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다.

칙서를 받아 든 가브리엘 중대장이 뒤로 돌아서서 도열한 30명의 대원들을 향해 주먹을 쥐고 우렁차게 외쳤다.

“외인부대는 명예로 프랑스에 충성을 하고, 국적과 종교 인종을 초월한 형제이며 전우들이다”

“외인부대는 명예로 프랑스에 충성을 하고, 국적과 종교 인종을 초월한 형제이며 전우들이다”

30명 전원이 합창했다.

“죽어도 자랑스럽다.”

“죽어도 자랑스럽다!”

“우린 평화를 위해 주저하지 않는다.”

“우린 평화를 위해 주저하지 않는다.”

이어 또티 사령관이 한 명 한 명 수료자들에게 캐피블랑을 씌워주기 시작했다.

흰색과 검정색 짧은 챙으로 된 외인부대를 상징하는 모자를 씌워주며 악수를 나눈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어떤 이는 감개가 무량한 듯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렇게 뜨거웠던 그해 겨울은 서서히 떠나가고 있었다.

권총수 나이 스물한 살.

전장을 향해 떠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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