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맞짱(2)
사격이다.
영점 사격과 거리사격이 아닌 실전을 가장한 실거리 전투 사격이 시작된 것이다.
실거리라 하면 적과 소총으로 교전하는 거리, 대개 50미터에서 70미터를 지칭한다.
개인 화기는 프랑스 육군과 같은 파머스(FAMAS)F1이었다.
정식명칭은(Fusil d' Assaut de la Manufacture d'Armes de Saint-Étienne)다.
우리말로 하면‘생테티엔 조병창에서 만든 돌격소총’이란 뜻이다.
1962년 처음 만들어 놓고 보니 반동이 워낙 강했다.
자동에 놓고 방아쇠를 당길 때 총기 제어가 만만찮을 정도로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구조도 복잡하고 정확도가 스스로 라이벌로 여기는 M4계열의 소총에 비해 떨어졌다.
프랑스란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자니 군의 전투력이 떨어지고, 병사들 사이에서도 ‘왕창 쏟아붓는 데는 이만한 총도 없다’는 비아냥이 만연했다.
결국 프랑스 육군은 2014년 5월부터 세계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소총들을 가져다 테스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데 또다시 국산화 운운하며 머리 싸매고 개발하는 것 보다는 수입하는 것이 싸게 먹힌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H&K HK416, SIG SG516(AR-15 계열), FN SCAR-L, HS VHS, 베레타 ARX-160 등의 소총들을 떼거리로 들여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테스트했다.
그해 8월에 파머스를 대체할 차기 제식소총으로 FN SCAR와의 경합 끝에 HK416F가 선정되었다.
그러나 아직 일반 부대까지 배급력이 미치지는 못하고 대부분 파머스로 훈련하고 있었다.
사격은 철저히 실전처럼 진행되었다.
특히 훈련병이 자신의 실력향상을 위해 더 쏘고 싶다는 의향을 보이면 얼마든지 쏴도 좋다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군인의 가치는 사격이다’
라고 오민철이 사격장에 들어올 때 말했다.
얼마 전 실시했던 영점과 거리 사격은 이곳 교관들까지도 당황하게 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특히 오민철의 자세를 극찬했다.
좋은 자세에서 뛰어난 명중률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요즘 전쟁은 거의가 시가전이다.
서서쏴와 쭈그려 쏴, 그리고 무릎쏴도 훈련했지만 서서쏴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탕!
타타탕!
상체를 약간 숙인 채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인 권총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사격은 소총과 권총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졌다.
소총으로 적과 교전을 벌이다 탄알이 떨어졌을 때 곧바로 권총을 뽑아 응사할 수 있는 신속성을 끌어 올리려는 것이었다.
툭!
탄알이 떨어지자 권총수는 빈 탄창을 떨어뜨리고 허리에 달린 탄띠에서 30발들이 탄창 한 개를 꺼내 끼웠다.
탁!
이어 곧바로 방아쇠를 당기며 40미터 전방에 걸린 십여 개의 표적에 총알을 쑤셔 박았다.
교관은 쌍안경을 끼고 표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첫날은 탄흔이 군집을 이루지 못하고 갈기갈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하루하루 지나면서 흩어지는 탄흔을 모으기 시작하더니 닷새째인 오늘은 거의 한가운데 구멍에 쑤셔 박는다.
개인면담에서 한국 군대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외인부대 지원병 중 약 80프로가 군 출신이다.
이미 자국에서 어떤 형태로든 군사 훈련을 받았고 사격에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권총수는 처음 해보는 사격인데도 군사 훈련을 받은 것처럼 안정되고 특히 감정절제가 굉장히 뛰어나다.
‘사격하는 사수의 감정절제가 뛰어나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능력이다’
1999-2009년까지 미군 역사상 최다 저격 기록을 세운 전설의 스나이퍼‘크리스 카일’이 남긴 말이다.
‘저격수가 실패하는 건 방아쇠를 잘못 당겨서도 아니고 조준경 작동 미스도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다. 감정을 통제 못 하면 절대 총을 길들일 수 없다’
오죽 뛰어났으면 그의 일대기가 영화로까지 제작되었을까.
그가 남긴 수많은 저격에 관한 저서는 세계 각군의 교범이 되고 저격수라면 반드시 습득해야 할 지식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저 놈인가.”
한 명의 백인이 나타났는데 까피탄(Capitaine: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이번 기수 훈련을 총괄하는 중대장 가브리엘 대위였다.
가브리엘은 사격교관 손에 들린 쌍안경을 가져가더니 표적을 살폈다.
오밀조밀 한군데 뭉친 표적속의 탄흔을 바라보는 가브리엘의 얼굴이 굳어진다.
“몇 개 짼가?”
“다섯 개, 마지막입니다.”
30발들이 탄창 다섯 개를 지금 비우고 있다는 얘기였다.
“보고서에 보니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녀석이라던데?”
“그렇습니다.”
딱!
하는 소리가 들리며 사격이 끝나자 권총수는 곧바로 총을 등에 가로로 멘 뒤 권총을 뽑아 들었다.
권총 사격으로 바뀌면서 표적이 앞으로 이동했다.
권총표적 20미터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탕!
다섯 개의 표적을 향해 총구가 자동차 와이퍼처럼 오른쪽으로 쏘아가다 다시 왼쪽으로 돌아온다.
가브리엘 대위는 다시 쌍안경을 눈으로 가져갔다.
가끔은 중심을 벗어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표적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가장 사격 성적이 좋은 녀석은 누구지?”
“2소대 오민철입니다. 같은 한국 출신입니다.”
“아, 그 707인가 하는 한국 특수부대 나왔다는 친구?”
“다르더군요.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압도적입니다. 체력, 사격, 전술전투(각개전투), 경계전술, 구급법 어느 하나 빠지지 않습니다.”
“이번 기수 자원들이 괜찮군.”
가브리엘 대위가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다.
권총수가 사격을 마치고 노리쇠를 당겨 약실을 확인하더니 공중을 향해 연거푸 방아쇠를 당긴다.
이상 없다는 것을 신고하는 동작이었다.
사격은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았다.
고정표적과 이동표적을 놓고 끊임없이 반복 사격이 이뤄졌다.
이동표적은 걷는 속도와 달리는 속도 두 가지 형태로 이뤄졌다.
대부분 걷는 속도의 이동표적은 잘 맞추었지만 달리듯 빠르게 지나가버린 표적은 빗나가기도 하고 탄흔이 중구난방이었다.
드르르륵!
탕탕탕!
머리에 쥐가 날 만큼 하루 종일 총소리와 싸워야 했다.
초번 불침번 세르게이 눈이 빛났다.
하루 이틀 목격한 건 아니지만 오늘도 권총수는 결가부좌하고 있었다.
아시아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는 것은 권총수의 지금 자세가 불가의 스님들이 하는 동작과 같다는 것 정도다.
무엇을 하는 것일까.
취침 전과 기상 직전에 일어나 명상하듯 20여 분간 앉아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어둠속이지만 머리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