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화 (2/651)

제2화: 한방(2)

골목은 조용했다.

얼마나 힘껏 달렸는지 목구멍으로 쓴 물이 올라왔다.

풀썩!

권영감은 담벼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잠시 호흡을 추스른 뒤 남자와 충돌할 당시 삐끗했던 오른쪽 발목을 만졌다.

“억!”

굉장한 통증이 밀려왔다.

접질린 것 같았다.

일흔다섯이란 나이, 그리고 찾아온 수전증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목까지 다쳤다.

언제까지 이 바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한 생각을 떨치듯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예상대로 18케이다.

더욱 기쁜 건 추가 똑같은 18케이로 된 십자가라는 것이었다.

손에 쥐고 무게를 가늠해 본다.

장물이라고 해도 워낙 요즘 금값이 좋기 때문에 7, 80만원은 받아 낼 듯싶었다.

어쨌든 밀린 두 달 방세와 당분간의 생활비는 해결되었다.

* * *

순대국 특 하나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쭈욱!

잔에 소주를 채우고 단숨에 비웠다.

빈속에 소주가 넘어가자 목구멍으로 뜨거운 불길이 퍼진다.

권영감은 순대국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후루룩!

며칠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컵라면으로 해결했는데, 오랜만에 국물에 말린 밥이 들어간 때문일까 위가 당황한 듯 트림이 나온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수전증으로 인해 하마터면 실패할 뻔했다.

표적이 아무리 좋은 물건을 가졌다고 해도 버스가 정류소에 멈추기 직전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혹시라도 표적이 다음 정류소에서 내릴까 봐 서둘러 작업을 했다가 버스에 갇히기라도 하면 그땐 여지없다.

꿀꺽!

잔을 비운다.

불칼의 구역을 침입했으니 지금쯤 자신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닐 것이다.

또르르!

다시 잔에 소주를 채웠다.

산목숨 목구멍에 거미줄 칠 리 없다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절망적이었다.

고아라는 운명은 태어나면서부터 비극적 인생을 예비했고, 한 치의 오차 없이 가는 인생길마다 첩첩산중이었다.

바람 불고, 눈 비 내리는 날로 점철된 75년 인생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이제 몸도 늙어 더 이상 이 바닥 생활은 어렵다.

“빌어먹을!”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출발부터 참혹하리만치 뒤쳐졌으니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삶은 결코 화려할 리 없다는 걸 알지만, 해도해도 너무 버겁다.

살아 온 것이 아니라 버텨온 삶이었다.

“헛헛!”

쭈욱!

헛웃음을 삼키듯 넘어가는 소주가 목구멍을 지진다.

하루가 저물고 인생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술기운이 오르고 옆 테이블에 놓인 스포츠 신문을 펼쳤다. 오랜만에 경마장 구경이나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금요경마 예상평을 참고하기 위해 신문을 넘기던 권영감의 눈이 이글거렸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맨 아래 광고면이었다.

‘작명, 사주, 개명, 상호, 궁합, 회귀전문’

헛것을 봤나? 눈을 비비며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 * *

이튿날 권영감은 걸음을 나섰다.

다친 오른다리 때문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 3층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작명, 사주, 개명, 상호, 궁합, 회귀전문’

권영감의 시선이 멎은 것은 맨 마지막에 쓰인 회귀전문이라는 글씨였다.

한동안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던 권영감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자 1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곧장 열렸고 안으로 들어가 3층 버튼을 누른다.

쨍!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3층에서 내린 권영감은 멈칫했다

왼쪽 문으로 절간의 사천왕중 한 명인 지국천왕을 빼닮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똑똑!

가볍게 노크를 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코끝에 은은한 향기가 맡아졌다.

붉은색 주렴이 쳐져 안쪽이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흐릿하나마 여자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촤르륵!

주렴을 걷고 들어간 권영감은 깜짝 놀랐다.

자칭 설빙공주라는 점 보는 여자가 너무 젊었으며 또한 굉장한 미인이었다.

“쯧쯧! 지랄한다 지랄해.”

권영감의 눈이 커졌다.

새파랗게 어린 여자가, 아무리 신통방통한 점술사라고 해도 70이 넘는 자신에게 대뜸 욕지거리를 하자 욱 하고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그러나 이내 꾹 눌러 참는다.

텔레비전에서 보면 영험한 점술사일수록 말투가 자유분방했다.

“금붙이만 보면 환장을 하는구만. 어쭈구리, 도망치다 다쳤네.”

단번에 자신의 직업을 알아차리는 설빙공주를 보며 권영감은 깜짝 놀랐다.

“앉아 천장 안 무너져.”

권영감은 지팡이를 놓고 양반자세로 앉았다.

“평생을 남의 주머니만 노리며 살았어. 그 덕에 관재수가 세 번 있었군.”

허걱!

소매치기 하다 붙잡혀 세 번 교도소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뭘 원하는데?”

권영감은 찢어온 스포츠신문 한 조각을 내밀었다.

설빙공주가 신문을 펼쳐 들자‘인생 개척자 설빙궁’이란 광고가 보였다.

“우리 거잖아.”

“회귀전문이라고 해서.”

“물론이지.”

“얼마요? 회귀하는데?”

설빙공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빙공주는 야릇한 표정으로 보더니 물었다.

“얼마 있는데?”

권영감은 미리 준비해 온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놓았다.

탁!

백화공주는 손을 뻗어 돈을 쥐더니 익숙한 동작으로 돈을 세기 시작했다.

티티티틱!

은행창구 직원보다 빠른 솜씨에 권영감은 경악하고 말았다.

“틱!”

마지막 장을 튕기더니 설빙공주는 불만스러운 듯 이마를 찡그렸다.

“29만원, 지금 장난쳐?”

“가진 것 전부요.”

“만약 센타 까서 십 원짜리 하나라도 나오면 회귀고 뭐고 없어.”

탁!

권영감은 주머니에서 손때 묻은 버스 카드를 꺼냈다.

“까시오.”

“됐고.”

설빙공주는 짜증스럽게 말을 끊으며 돈을 서랍에 집어넣었다.

“합!”

갑자기 쩌렁한 기합을 지르더니 왼손에 방울을 들고 흔들기 시작했다.

짤랑!짤랑!

“나무벌시, 조도어다, 선수발신, 도남상경, 미시족족.”

설빙공주는 알아듣지 못할 주문을 외웠다.

“아구리 팔팔, 술사 서사 나무타하사 보여주사 기종기옹 따아아블.”

뚝!

거친 괴성을 지르며 방울을 멈췄는데 설빙공주의 두 눈이 이글거렸다.

“왜 그러시오?”

권영감은 깜짝 놀라며 상체를 세웠다.

“운이 좋아.”

“네?”

“차야.”

“차라면?”

“자동차에 뛰어들어.”

“진짭니까?”

“날 뭘로 보고.”

“예! 예!”

“이것 가지고 가야지.”

그러면서 부적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걸 심장에 딱 붙이고 달려오는 차에 있는 힘껏 대가리를 박으란 말이야.”

“예!”

권영감은 주렴을 걷으며 방을 나왔다.

허나 걱정이었다.

죄 없는 사람을 고통 속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아 적당한 사람이 생각났다.

권영감은 전화를 걸었다.

“불칼이냐?”

“안 그래도 죽여주려고 했는데, 제 발로 찾아왔네. 빨리 죽고 싶은가봐?”

“그래, 빨리 와라. 전에 마지막으로 본 곳이야.”

“이 새끼. 기다려라!”

“아, 올 때 꼭 차 가지고 오는 거 잊지 말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영감탱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