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한방(1)
2070년...
너덜거리는 샌드백이었다.
퍼퍼퍼퍽!
다섯 명의 사내가 한 명의 노인을 개 패듯 패고 있었다.
노인의 얼굴은 걸레처럼 찢겨졌다.
태어날 때 갖고 나온 이목구비는 사내들이 휘두르는 주먹에 맞아 제 모습을 잃은 지 오래였다.
빠악!
강력한 주먹 하나가 노인의 코에 틀어박혔다.
와직!
코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노인은 멀리 나동그라졌다.
죽은 듯 꼼짝도 않고 쓰러져 있던 노인이 푸후! 하며 입으로 숨을 토해냈다.
“아 씨발 간 줄 알았잖아.”
척!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쭈그리고 앉더니 노인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노인은 코로 숨을 쉴 수 없자 입을 벌렸는데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커럭, 커럭!
“그러게 스승님! 정말 왜 이러십니까?”
“살려줘. 이제 안 그럴게. 진짜야.”
“그냥 콱!”
솥뚜껑만 한 주먹을 쥐고 때릴 듯하던 사내가 매서운 눈으로 말했다.
“한 번만 더 우리 손에 걸리면 그때 끝이야. 왜 대답이 없어, 씨이발?”
주먹으로 한 대 때릴 듯 오른 주먹을 쳐들자 노인이 대답했다.
“그...그래 알았어”
“스승님, 정신 차리라고.”
“그래, 그래!”
사내는 느릿하게 일어섰다.
잠시 길게 숨을 내쉬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어 금목걸이 한 개를 꺼냈다.
가로등 빛이 있는데도 광채가 별로 없는 것을 보면 순금이다.
“앞으로 내 구역에서 사냥하다 걸리면 진짜 죽어. 대답 안 해?”
사내가 오른발로 들어 올리자 노인은 재빨리 더듬거렸다.
“그럼, 그럼.”
퉤!
노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사내는 돌아섰다.
“유식아! 이거 김 사장님 찾아가서 돈으로 좀 바꿔 와라.”
“예 형님!”
부하로 보이는 사내가 금목걸이를 받아들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 * *
찢어진 입 안 상처가 라면 국물에 젖어들자 바늘로 쑤시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권영감은 최대한 조심하여 라면을 삼켰다.
뚝!
문득 라면 가닥 몇 개를 집어 올리던 권영감은 젓가락을 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덜덜덜!
오른손이 떨리면서 젓가락에 잡힌 라면가닥이 기타 줄처럼 흔들린다.
수전증(手顫症:손 떨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하긴 나이 일흔 다섯이면 수전증이 올 때도 되긴 했다.
수전증은 더 이상 소매치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젊었을 때만 해도 오로지 안창따기였다.
남자들 양복 안주머니에 들어있는 지갑을 빼내는 것인데 소매치기 기술 중에서는 최고의 경지로 꼽는다.
하지만 신용사회가 되면서 지갑이 얇아졌고 현금 대신 카드가 자리를 꿰찼다.
많은 현금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소매치기의 수법도 어쩔 수 없이 변해야 했다.
현금이 없는 사회에서 소매치기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 뿐이었다.
굴레따기.
일명 동전치기로도 불리는데 수법은 간단했다.
표적 주위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을 떨어뜨린다.
백 원짜리 동전도 있는데 왜 굳이 500원짜리 동전이냐면 이유는 간단했다.
백 원짜리는 웬만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500원짜리 정도 되면 10명 중 8명은 관심을 보이고 슬며시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인다는 것이다.
표적이 허리를 숙이는 그 순간 차고 있는 목걸이를 따는 것이다.
여자들 목걸이는 두껍지도 않다.
더구나 금이라는 금속은 질기지 못해 쉽게 끊어진다.
떨리는 손, 수전증이 걸리면 굴레따기 마저도 구사할 수 없다.
순간적으로 낚아채야 하는데 떨리는 손이 빠를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한 번에 목걸이를 잡지 못하고 더듬거리면 아무리 감각이 둔한 사람도 금방 알아차린다.
피식!
갑자기 실소가 흘러 나왔다.
은퇴라는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영감!”
그때 반 지하 단칸방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영감 있는 것 다 알아.”
권영감은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나이키 로고가 찍힌 후드티를 입은 학생이 서 있었다.
“뭔데?”
“아빠가 방세 달래. 두 달이나 밀렸다던데?”
주인 집 아들로 올해 고3인 김금철이다.
“저녁에 줄게.”
“지금 받아 오래. 아빠가.”
“저녁에 준다니까?”
탁!
권영감은 거칠게 문을 닫아 버렸다
“씨바 저녁에 안 주기만 해봐.”
김금철이 악다구니를 쏟고 사라졌다.
다음 날 오후, 권영감은 1711번 버스에 올랐다.
상처 입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대형 마스크로 코까지 깊숙이 덮었다.
누가 봐도 한 번 더 돌아볼 행색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퇴근길 버스 안은 몸 돌림 틈도 없을 만큼 승객들로 가득했다.
당장 방세가 필요했다.
더구나 이 구역은 어제 두들겨 맞았던 자신의 제자 불칼 구역이다.
만약 또다시 잡히면 어쩌면 손을 가져갈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건 1711번 버스가 물이 좋기 때문이었다.
작업은 같은 만원 버스라고 해도 출근 때보다는 퇴근길이 좋다.
출근길은 예민하지만 퇴근길 사람들은 하루 업무에 지쳐 감각이 무뎌져 있기 때문이다.
권영감은 사람들을 비집고 뒷문 근처로 다가갔다.
작업 후 열린 문을 이용해 곧바로 버스를 빠져나가기 위해 미리 통로 근처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20세 후반쯤 되는 여자가 이어폰을 꽂고 있다.
모자란 영어공부를 하는지 아니면 음악을 듣는지 알 수 없지만 소매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표적은 없다.
아쉬움이라면 목걸이가 18케이로 보였는데 앞쪽의 추가 무엇인지 아직 알 수는 없다.
가장 흔한 것이 십자가인데 금목걸이 일 경우 추는 거의가 금이 아닌 다른 보석을 건다.
“이번 정류소는 광화문입니다. 다음 정류소는 경복궁역입니다.
툭!
일부러 하이힐 신은 여자의 발등으로 500원짜리 동전을 떨어뜨렸다.
여자가 고개를 숙이더니 발밑에 떨어진 500원짜리 동전을 발견하고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주울까 말까 갈등이다.
그러더니 주위를 슬쩍 살핀다.
그건 줍기로 결정을 내렸다는 증거였다.
여자가 동전을 줍기 위해 슬며시 허리를 숙였다.
슥!
바로 그 순간 권영감은 여자 목걸이를 잡아당겼다.
투툭!
한 번에 끊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 수전증으로 기어이 일이 터졌다.
손이 여자의 목을 더듬어버린 것이다.
여자는 빨랐다.
본능적으로 왼손을 목에 대더니 때마침 정류장에 멈춘 버스에서 내리는 권영감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소매치기야.”
차에서 내린 권영감은 달리기 시작했다.
남의 시선에는 보잘 것 없는 속도겠지만 70중반의 나이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쏟아냈다.
퍼억!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남자를 피하지 못하고 부딪혔다.
쿠웅!
평소 같았다면 나자빠지며 사람 살리라고 소릴 질렀을 것이다.
이쪽이 잘못했더라도 노인이 넘어졌으니 무조건 피해자가 된다.
차분하게 계산하고 병원을 출입하면서 합의를 보면 대개의 경우 50만원 전후는 손에 쥔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권영감은 용수철 마냥 튕겨 일어나 달렸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부딪힌 남자가 놀라 돌아볼 때 권영감은 절뚝거리며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