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106화 (106/116)

# 106

이거 완전 흥행의 신?(1)

“야, 이거 좀 그렇다.”

LS엔터테인먼트에서 멀티플렉스 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임다은 과장은 제작사와 최종 수정을 거쳐 올라온 동영상을 확인하곤 이마를 짚으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 뽑은거 아닌가요?”

예고편 동영상을 최종 마무리지은 정주리 대리는 임다은 과장의 눈치를 보았다.

임다은 과장의 디렉팅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손에서 최종 마무리된 것이기에 잘못되면 욕은 욕대로 먹고 다시 수정할 수밖에 없음을 아는 까닭이다.

욕을 먹는 거야 그렇다 치지만 다시금 수정 작업에 들어가는건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DH미디어가 올린 ‘동네 아저씨’ 봤어?”

“네...”

“그거 보고 느끼는거 없니?”

정주리 대리는 우물쭈물하다 대답했다.

“저도 ‘동네 아저씨’가 잘 나온 거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미 나온 편집본 가지고 더 뽑아낼게...”

“후...”

임다은 과장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여기서 더 잘 나온다는게 어렵다는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예고편을 잘 뽑고 싶어도 본 영화가 잘 나와야 그걸 바탕으로 좋은 예고편을 뽑을 수 있는거 아니겠는가?

사실 ‘트루 러브’의 완성된 편집본을 본 임다은 과장은 영화가 상당히 잘 나왔다고 생각했다.

성공한 로맨틱 코메디의 공식을 충실히 따랐고 추가로 판타지를 과하지 않게 적절히 가미해 역시 유병세 감독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문제는 ‘동네 아저씨’의 예고편이 뜨고 나서부터였다.

생각보다 더 잘나온 것 같은 장동훈 감독의 영화 덕분에 임다은 과장은 이번 영화의 끝이 어째 불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거다.

어쨌든 영화 제작은 끝났고 남은건 마케팅 싸움이다.

그럼 무조건 초반에 주도권을 틀어쥐어야 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거라면 ‘트루 러브’가 일주일 빠르게 개봉한다는 점.

아직 두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 홍보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과연 극장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더 만져볼까요?”

“됐다. 포털 광고 일정 잡혀서 당장 내일 오전에 올라가야 하는데 뭘 더 만져?”

“죄송합니다.”

“됐어. 로코 가지고 예고편 뽑아내는 것도 한계가 있겠지. 유병세 감독은 뭐래? 괜찮대?”

“특별히 어떤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어제 밤에 메일로 예고편 영상 보냈는데 그냥 ‘나쁘지 않네요’라고 답이 왔었습니다.”

“그래? 지금쯤 속이 바짝 타고 있을텐데 의외로 조용하네.”

“유병세 감독님은 자신 있는거 아닐까요?”

임다은 과장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그러겠니? 지금껏 일한게 몇 년인데 아직 감독들 성향을 파악 못해? 아무리 영화가 잘 나왔다고 해도 막상 시사회때 가서 결과가 나와야 안심하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잖아.”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개봉한 뒤에 관객들 평가 받아야 안심하는건 감독이나 우리나 똑같아. 그런데 편집본만 보고 자신 있을거라는건 유병세 감독을 너무 높이 평가한거지. 아니면 네가 상황을 너무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거던지.”

“...”

임다은 과장은 고개를 숙이고 반성 중인 정주리를 보고 말했다.

“메가플렉스랑 OS시네마 편성 미팅 언제지?”

“사흘 뒤 오후 2시입니다.”

“너나 나나 최소한 점유율 40%는 잡아야 하는거 알지?”

“네...”

“이 영화 초반에 40% 못 잡으면 대책 안 선다. 잘못하다가는 관객들 유입도 못 시키고 일주일 넘기는 수가 있어. 그 이후에는 말 안해도 알지? 내가 이사님 방에 불려가고 그 이사님이 대표님 방에 불려가면, 하... 상상하기 싫어진다.”

“알고 있습니다.”

임다은 팀장은 구둣발로 책상을 톡톡 두들기다가 물었다.

“메가플렉스 편성팀장이 뭘 좋아했지?”

“뮤지컬 좋아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다. 그랬지. 이번에 내한하는 레미제라블 티켓 좀 구해 봐. 지원팀에 요청하면 구해 줄 거야. 최고 좋은 자리로.”

“알겠습니다. OS시네마 팀장은 딱히 취미생활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떡할까요?”

“그 새끼 여자 좋아해. 미팅 끝나고 룸싸롱에서 구워 삶아야 하니까 그날 저녁 약속 잡지마.”

정주리 대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 알겠습니다.”

“왜? 그런 자리 싫어?”

“아닙니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정주리 대리의 얼굴은 누가 봐도 거짓임을 했다는걸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야, 나도 싫어. 내가 너한테 그 새끼 술시중 들라고 했니? 그냥 적당히 장단 맞춰주기만 하는 거야. 알겠니?”

“네.”

정주리 대리가 우울한 얼굴로 멀어져가는 걸 본 임다은 과장은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DH미디어한테 또 밟히겠네.”

*

[송혜진 작가의 ‘그녀는 카라멜 마키아또’, 충격의 1%대 시청률]

[진부한 설정과 억지스러운 캐릭터가 빚어낸 환장의 콜라보]

[이번작도 실패한 양준기. 국밥의 신으로 등극하나?]

“크크크큭...”

김우진은 기사를 보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우진을 보며 이시은이 스트레이트 잔을 한 번에 털어 마시곤 입을 열었다.

“내가 오빠를 본 이래 지금처럼 좋아하는건 처음 보는것 같네?”

“크크큭... 그러냐? 솔직히 졸라 기분 좋거든.”

“그래도 너무 좋아하는거 아니야? 준기 오빠 속상하겠다.”

“야, 걔는 ‘한강의 괴물’ 망했으면 더 좋아했을걸? 아마 영화가 내려가는 그날 여기서 골든벨 존나게 때렸겠지. 씨발, 개 쪼개면서.”

우진은 팔을 흔들며 허공에 있는 벨을 때리는 시늉을 해댔다.

“설마...”

“얘가 아직도 양준기를 모르네. 걘 그러고도 남아.”

“준기 오빠가 우진 오빠한테는 좀 경쟁심이 있기는 해. 그래도 다른 사람한테는 그러지 않더라.”

“다 지 눈 아래로 보이니까 그러겠지.”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양준기가 들이닥쳤다.

양준기는 우진의 옆, 이시은의 맞은편에 털썩 앉으며 앞에 놓인 컵에 양주를 따랐다.

“내 욕하고 있었지?”

“욕이라기보다는 현 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라고 할까?”

“지랄... 졸라 쌤통이라고 했겠지 뭐. 맞지?”

양준기가 양주를 마시며 이시은에게 물어보자 그녀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돌리고 술을 입으로 가져갔다.

두 사람의 자존심 싸움이야 일상이나 다를바 없어 대수롭지 않았지만 어느 누구 하나의 편도 들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양준기는 시은이 답을 회피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과일 하나를 집어들고 말했다.

“장동훈 감독 예고편 동영상 봤어?”

“어, 당연히 봤지.”

“장 감독 액션영화는 처음이지 않아?”

“처음은 아니지. 어떻게 보면 계속 액션영화를 찍었잖아. ‘6급 공무원’도 액션장면이 있었고 ‘악질형사’도 액션장면이 꽤 있었지.”

“아, 그렇구나. 난 왜 액션영화를 안 찍었다고 생각했지?”

“정통 액션영화는 아니었으니까.”

양준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런데 액션장면이나 이런게 뭐라고 해야 하나...”

“다르지.”

“그래, 많이 다르더라. 꼴랑 2분 좀 넘는 예고편인데도 느낌이 기존 액션영화들이랑은 완전히 다르던데. 확실히 장 감독이 기존 감독들이랑은 뭔가 다르긴 해.”

김우진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 너 말이 졸라 달라졌다. 전에는 잘 모르겠다며? 작품 두 개 성공한거 가지고 너무 띄워주는거 아니냐고 하지 않았냐?”

양준기는 똥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강의 괴물’ 천만 터지고 그 얘기는 내 실수였다고 했던거 같은데? 지난 얘기를 왜 또 꺼내냐?”

“아니, 웃겨서.”

“씨발 존나 흑여사 만들어졌네. 어쨌든 그런데 존나 의외이긴 했다.”

“뭐가?”

“난 다음 영화 주연은 너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씨발 어디서 생전 듣도보도 못한 놈을 주연으로 앉혀 놨다길래 어떤 놈인가 했는데, 마스크 죽이던데?”

김우진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어, 그렇더라.”

“존나 잘 생겼더라고. 와... 눈빛이 그냥... 그런데 너도 그 정도는 되지 않냐?”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니 그냥... 장동훈 감독이 널 왜 주연으로 꽂지 않았나 궁금해서 그랬지.”

“그냥 그 새끼가 마음에 들었나 보지.”

“뭐... 그럴수도 있겠네.”

고개를 끄덕이던 양준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또 우진의 성질을 건들었다.

“하긴 내가 딱 봐도 우진이 너보단 액션이 좀 더 좋아 보이긴 하더라. 네가 원래 액션이 좀 약점이었잖아.”

“너 아주 신났다?”

“신난게 아니라 재밌어서 그러지. 너도 나 보면서 웃긴게 있는 것처럼 나도 걔 보니까 그냥 이 상황이 졸라 재밌더라고.”

“몰랐네. 이 상황이 그렇게 재밌는 거였는지.”

양준기는 씨익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 잘 마셨다.”

“벌써 가게?”

“나 요즘 늦게까지 술 안 마신다. 우리 여친님께서 하도 걱정을 하셔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어.”

“그래? 그럼 애초부터 그냥 집에서 처 주무시지 기어코 여기까지 오시나.”

“그래도 둘이서 재미없게 술 마실거 뻔한데 얼굴 한번 안 비출수는 없잖아. 의리가 있지. 안 그래? 그럼 나 간다.”

양준기는 손을 흔들어 준 뒤 문을 열고 나갔다.

이시은은 둘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애들처럼 왜들 그래? 꼭 그렇게 서로의 속을 긁어야 하겠어?”

우진이 버럭 했다.

“야! 우진이 저 새끼가 먼저 그런거야.”

“누가 먼저 했든 좀 그냥 유치한 싸움 좀 그만해라. 내 앞에서 그러고 싶어?”

“네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으휴... 이 꼴 보고 마누라 되고 싶은 마음이 있던 여자도 다 질려버릴걸?”

“나도 사람 가려가면서 행동해. 어쨌든 저 새끼는 저거 왜 왔나 했더니 내 속 긁을거 찾아내서 온 거였어. 와... 씨발 그걸 보고 어떻게 그 생각을 해서 온 거지? 저 새끼도 진짜 신기하다.”

“그러게, 그 와중에 그걸 발견하네. 대단한 집념이다, 진짜...”

우진은 서비스로 나온 마른오징어 하나를 집어 들어 강하게 물어 뜯고는 꼭 누구를 연상하는 표정으로 질겅질겅 씹었다.

그리고 시은에게 물었다.

“너 윤종빈이 어떻게 DH미디어랑 계약했는지 알아?”

“윤종빈? 아... ‘동네 아저씨’ 주연 윤종빈? 이름도 알고 있었어?”

“너도 아는데 난 알면 안 되냐?”

“나야 유심히 봤으니까 기억하고 있지.”

“왜? 잘 생겨서?”

“솔직히 잘 생기긴 했잖아. 되게 섹시하던데.”

“씨발, 이제 김우진 다 죽었네.”

“하하핫! 아니야. 오빠 지금도 멋있어. 대한민국 최고 스타는 누가 뭐래도 김우진이지.”

“띄워줄거 없어. 어쨌든 걔가 어떻게 DH미디어랑 계약했는지 알아?”

“나도 모르겠는데? 생각해보니까 이상하긴 하다. 보통 예고편 영상 뜨기 전에 주연배우에 대해서 뭐라도 기사를 냈을텐데 그런게 없었네?”

“신비주의 뭐 그런건가?”

“요즘에 무슨 신비주의 컨셉을 해?”

“그치? 그런데 왜 기사를 안 내지? 하여튼 모른다는거네?”

“응, 모르지.”

“됐다 그럼...”

이시은은 아쉬워하는 우진을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진짜 아쉬운가보네?”

“이런 말하긴 그런데, 솔직히 당연히 나한테 먼저 시나리오를 보냈어야 하는거 아니냐?”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오빠 비싸잖아.”

“비싸긴 한데... 아니 씨발 뭐 흥정이라도 해볼수 있는거 아냐? 비싸면 비싸다고 하고... 어? 그럼 좀 깍아줄 수도 있고 그런거지... 아... 졸라 짜증나네.”

우진은 스트레이트 잔을 한입에 털어 넣고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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