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흥행의 신-16화 (16/116)

# 16

영화 개봉(2)

[‘6급 공무원’ 코믹, 로맨스 두 마리의 토끼를 조준하다]

[추석엔 ‘역적’밖에 볼 게 없다고? 다크호스 ‘6급 공무원’의 습격!]

[신인감독 장동훈, 첫 타석부터 안타? 아니면 홈런?]

“됐어! 됐다고!”

박만구 대표는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질렀다.

“진짜 다행입니다. 촬영이 한달 가까이 당겨질 땐 정말 회사 망하는 줄 알고...”

급기야 오 상무는 말을 잊지 못하고 울먹인다.

“오 상무도 고생 많았어. 우리 유 팀장도 고생했고. 다들 고생 많았어.”

“고생은요.”

“장 감독이 제일 고생 많았어요. 편집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하나하나 전부 직접 챙겼으니까요.”

유 팀장은 벌게진 눈으로 떨어진 한줄기 눈물을 훔치며 동훈을 추켜세웠다.

“알지, 우리 장 감독이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유 팀장 통해서 많이 들었잖아. 내가 다 알고 있어. 일단 이번 작품으로 우리 회사 숨 좀 쉬어야 할 텐데 말이야. 얼마나 들어와야 해?”

오 상무가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일단 2백만 정도는 들어와야 급한 돈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걸로 투자금 제외하고 상당 부분의 원금 이자를 상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손익분기점 겨우 넘긴 수준인가?”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만족하긴 하는데 만약 백만 정도만 더 나와 주면 회사 부채 대부분 처리 가능할 겁니다.”

“3백만이라... 가능하겠어?”

유지은 팀장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역적’쪽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찍을 땐 거의 천만 분위기였는데 막상 편집 끝나고 나서 별다른 말이 안 돌았거든요. 개봉 시기를 조율할때도 배급사에서 소란떨지도 않았구요.”

“배급사에서 받아 보니 생각보다 별로였나 보네? 지금까지는 그저 우리 영화 잘 나와 주기만 바래서 그쪽 분위기 신경도 안 썼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까 이거 우리가 이기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겠어?”

“언론시사회까지는 나와봐야 알 것 같아요. 예고편이 다라는 말도 간혹 들리고... 괜찮게 나왔으면 분명 무슨 말이 돌아야 하는데 그런게 없으니까 합리적 의심? 이런 게 안들수가 없어요.”

말로는 합리적 의심이라고 하지만 유 팀장은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거 우리가 추석 시즌을 ‘아르가디아의 전설, 기억’과 나눠먹는 거 아니야?”

박 대표가 설마 하면서 꺼낸 ‘아르가디아의 전설, 기억편’은 추석 시즌에 개봉을 앞둔 애니매이션으로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네티즌 들 역시 이번 추석 연휴 흥행 선두를 구가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언론시사회에서 기자가 현주에게 ‘역적’만 물어본 건 ‘아르가디아의 전설, 기억편’이 영화가 아닌 애니매이션이기도 하고 압도적으로 최고 성적을 달성할거라 예상하고 있었기에 아예 논외로 쳤던 거였다.

“설마 그 정도까지 되겠습니까?”

“너무 기대하시다가 실망하시는 거 아닐까요, 대표님?”

박 대표도 자신이 너무 들떴다고 생각했는지 재빨리 수긍했다.

“그렇긴 하지? 어쨌든 오 상무는 배급사 쪽 인사들 술좀 먹이고 개봉관 최대한 확보해. 너무 비싼 곳 말고 적당한 룸싸롱 있잖아?”

“그럼요. 알콜 영업은 또 저 아닙니까?”

“그래, 내가 우리 오 상무 그쪽은 믿고 있지. 유 팀장은 배급사 들어가서 우리가 마케팅 쪽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최대한 지원해주라고. 그쪽도 예상 밖으로 잘 나와서 ‘역적’ 누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럼요. 안 그래도 메이킹 영상이랑 인터뷰 영상 보내줬습니다.”

“그래, 잘했어. 그럼 난 이제 기도나 할까?”

박 대표는 내일도 관악산 연주암에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영화 ‘6급 공무원’ 개봉 하루 전.

생각지도 못하게 한범석 감독이 입봉식을 한다며 동훈을 쭈꾸미집으로 불러냈다.

한범석 감독은 동훈이 이 바닥에 들어올 수 있게 처음 조감독으로 받아준 감독이다.

당시 동훈이 30분짜리 단편영화를 찍고 무수한 제작사의 문을 두드리며 헤메고 있을 때 동훈의 작품을 좋게 보고 자신의 작품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당시 얼마나 기뻤던지 지금도 그 때의 기쁨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였다.

운이 좋았던 것도 있었던 게 한범석 감독이 거의 은퇴를 앞두고 노익장을 불태울 시기였기에 젊은 후학을 양성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영화학과도 나오지 않은 동훈에게 기회가 돌아온 측면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가 아니었다면 결코 자신이 상업영화를 연출할 기회가 없었던 건 확실했다.

당연히 한범석 감독이 부르는 자리에는 참석해야 하는 게 도리였다.

문제는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다수 모여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저 재수없는 강석호 감독과 그와 죽이 맞는 감독 몇몇이 보였고 놀랍게도 배우 이진혁과 송수연까지 자리해 있었다.

이진혁과 송수연은 임현주급 톱스타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했지만 드라마로 보면 미니 주연급 정도로 어딜 가든 스타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안녕하셨습니까, 감독님.”

“아이고, 우리 동훈이. 아니다, 이제 장동훈 감독이라고 불러야지?”

한범석 감독은 예전보다 더 늙어 이제는 머리 뿐만이 아니라 입 주위의 수염까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마치 산속에서 도를 닦는 도인처럼 선기를 풍기고 있다.

“여기 우리 동훈이랑 작품 해 본 사람 좀 있지?”

“당연하죠. 우리 동훈이 내 밑에서 빡세게 배우더니 이번에 불쌍한 제작사 하나 엮어서 운 좋게 이번에 입봉 했네요.”

강석호 감독은 자신의 덕이라는 양 동훈의 어깨에 팔을 올리곤 으스댔다.

동훈은 그런 강 감독이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웃으며 한범석 감독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 무슨 날입니까?”

“너 임마, 이번에 입봉해놓고 약주 한 번 안 사냐?”

“하하, 아이고 감독님 당연히 자리 준비하려고 했죠. 그런데 아직 성적도 안 나오고... 제정신이 아니라서요.”

“하긴 성적 나오기 전에 피말리는 느낌 여기서 누가 안 겪어 봤겠냐? 오늘 만난 건 다름 아니고 우리 딸이 여기 가게 오픈했거든. 그래서 다들 모였다. 모인 김에 너 내일 개봉 앞두고 달달달 떨고 있을 거 뻔해서 나오라고 했다. 괜찮지?”

알고보니 여기 쭈꾸미 집이 감독님 따님의 가게였나보다.

“아유, 그럼요. 당연히 불러주셔야죠. 안 그래도 집에서 술먹고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흐흐,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니까? 너 원래부터 간이 작았잖아. 하하하!”

“제가 이 바닥에서 소심한 걸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럽지 않습니까? 하하하!”

한범석 감독의 농담은 악의가 없었다.

그런데 강석호 감독은 달랐다.

“소심하기만 한가? 센스도 없지, 가장 중요한 건 기본을 몰라. 기본을... 제가 우리 한 감독님 존경하는게 이런 거라니까요. 어떻게 이런 놈을 데리고 가르치셨는지 정말 존경해.”

저 말을 듣고 화가 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거다.

하지만 영화계 큰 어른이자 자신을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양반이니 이 양반 앞에서 같은 동료와 다툼을 벌일 수 없는 일이다.

단전에서부터 끌어오르는 열을 억지로 내리누르곤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저도 그래서 존경하고 있습니다. 감독님 덕분에 제가 이번에 이름 좀 날리게 됐으니 특별히 한턱 쏘도록 하겠습니다.”

일부러 세게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성질 급한 강석호 감독이 덥썩 물었다.

“야, 이거 건방진 놈일세. 여기 네 앞에 선배가 몇 명인데 이름을 날려? 개념이 없네, 이거?”

이때 한범석 감독이 굳은 얼굴로 강 감독을 나무랐다.

“자네 말이 심하네. 아무리 동훈이가 후배라고는 해도 그런 식의 비난은 심한 거야.”

“아, 그냥 장난이었어요. 동훈이도 장난인거 압니다.”

“장난이라고 해도 그런 심한 말은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빠. 선배로서 정도를 지켜야지. 안 그래?”

“죄송합니다.”

강 감독이 이를 악물고 사과할 때 동훈이 끼어들었다.

“아니에요. 감독님. 강 감독이 농담한 거 알고 있습니다.”

“가, 강 감독?”

강 감독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때 재차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까 한 말은 진짭니다. 저 이번에 잘될 것 같아요.”

“오호. 자신감이 대단한데?”

“하하하! 제가 감독님한테 배울땐 새가슴이었는데 이번에 제가 연출봉을 잡게 되면서 간이 좀 커졌습니다. 이번에 흥행 성공하고 바로 새 작품 들어가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실 강석호 감독과 같이 연출한 작품이 아직 배급사를 못 잡고 개봉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유는 별다를 게 없었다.

엄청나게 재밌지도 않고 배급사들이 개봉 시기를 조율하면서 제작사 힘에서 밀려 배급사에 영화를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만들어놓은 영화를 개봉하지 못하고 마음만 졸이던 판국에 자신이 나중에 촬영한 작품은 바로 배급사를 잡고 추석에 개봉 들어갔으니 눈꼴시게 볼 만 하긴 했다.

그래서 이쯤 놀리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뜬금없이 강 감독 옆에 앉아있던 여배우 송수연이 끼어들었다.

“어머, 이번에 장동훈 감독님 작품 잘 나왔다는 말은 들었어요, 잘하면 대박 날 수도 있다고 하던데?”

“네? 아니 뭐...”

“현주 언니가 4백만 돌파하면 걸그룹 동영상 찍을 거라고 공약까지 걸었다던데, 어떻게 생각해요?”

여기서 안 될 것 같다고 할 수 없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와, 그럼 강석호 감독님 기록보다 백만이나 더 넘긴 기록인데요? 와...”

이 불여우가 지금 강 감독을 멕이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싸움 구경이 보고 싶은 걸까?

역시나 강 감독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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