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
동팔의 칭찬에 그는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열심히 뛰긴 했지……."
따악~!!
그리고 한 번 균형이 무너지자, 보스턴의 마운드와 수비도 같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4회말에 뉴욕 양키즈는 모두 3점을 추가하였고, 마크도 첫 타점과 동시에 첫 득점을 기록하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 * *
5회초. 동팔은 이제 3대 0이 된 점수판을 보며 마운드에 올라왔다. 이번에도 오른손에 글러브를 낀 모습을 보자 사람들은 알았다.
"또 계속 좌완으로 던지는 거야?"
"계속 얻어맞고 있으니 우완으로 바꿔야 할 텐데."
이는 관중만 아니라 중계진에서도 지적하고 있었다.
"강동팔 선수의 좌완이 신기하고 흥미를 끄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아주 빼어난 것은 아니에요. 물론 우완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좌완의 구위도 에이스급에 준합니다."
"그런데도 계속 좌완으로 던지는군요. 왜 그럴까요?"
"그야 이번에 3점 여유 있는 것도 이유가 되겠습니다만, 그 전에 제일 위험한 타순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보스턴의 클린업 트리오는 5번 타자가 전부죠. 그만 넘어가면 상대하는 것이 쉽습니다. 지금 5회초이니 6회초까지 여유가 있을 거예요. 문제는 7회초에도 지금처럼 좌완으로 던질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체력문제도 생각해야 하거든요."
"체력이 떨어지면 구위도 떨어지기 마련인데요. 그걸 알면서도 지금도 계속 좌완으로 던지고 있습니다. 존 지라디 감독도 제지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요?"
사람들이 궁금해 할 질문에 대한 답은 동팔이 알고 있었다.
동팔은 마운드에 오르기 전 감독에게 직접 들었다.
'이번 일로 선발 순번을 바꿀 생각이야. 오늘 던지고 내일 쉰 다음, 그 다음날 선발 등판한다. 그때는 우완으로 던져야 할 거야.'
적어도 보스턴이 플래툰 시스템을 사용하여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좌타자로 구성하지 않았다면 이런 모험을 시도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 시즌의 시작인 개막전에 상대가 좌완에 대한 난이도를 스스로 낮춰주니 좌완 투구를 실전에서 연습할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오른팔로 던질 때보다 떨어지는 구위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존 지라디 감독은 동팔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쉽겠지만, 이제부터 좌완은 불펜으로 던지자. 상대 타선에 좌타자가 나오면 던지는 것으로.'
결국 좌완으로 선발 출전은 이 개막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의미였다. 감독의 말에 동팔도 동의했다.
'지금은 승리를 먼저 생각할 때. 내 좌완 투구가 생각보다 떨어진다면 그에 맞추어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야. 불펜으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해. 그리고…실력도 계속…….'
지금 동팔은 자신의 좌완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른다.
우완도 모자라 좌완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통하는 구위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만족하지 않다니.
그러나 이번 시즌이 마지막 시즌이 될지 모르는 동팔에게 있어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해야 했다.
동팔은 착실하게 이번 이닝에서의 목표와 계획을 즉각 세웠다.
'5번 타자는 승부를 보는 것보다 유인하는 방향으로. 설령 볼넷이라도 상관없어. 그리고 그 이후의 6번부터 9번타자까지는 어떻게든 전부 잡는다. 삼진이든 아니든.'
우완으로 던졌을 때보다 낮은 목표였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다.
한편, 여전히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고 자신을 상대하는 동팔이 마음에 들지 않는 보스턴의 5번 타자.
'계속 좌완으로? 우리가 우습게 보이는 건가?'
기분은 나쁘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기분 나쁘다는 것으로 생각을 끝내지 않았다.
'동팔의 우완에 대처하기 위해 일부러 좌타자를 끌어 모았어. 실제 타격 능력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넘어가고. 상성도 좋지 않은데 일반적인 선발 라인업에 비해 타격 능력이 약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
그도 지금 상황이 어떤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감독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선수의 선발과 교체는 오직 감독의 판단이었고, 조언을 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코치에 한정된다. 그리고 선수는 자신의 컨디션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전략이나 교체 및 선발에 대해선 가볍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감독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걸 포기했다.
'나중에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끝까지 가도 모르면 결국 그게 한계인 거고.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감독도 아니야.'
같은 팀이라고 항상 분위기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도 보스턴의 클린업 트리오 중 말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동안 세 번 정도 팀을 옮긴 과거가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팀의 분위기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감각이 생겼다. 그런 그의 경험과 감각이 말해주고 있는 보스턴 분위기의 경우는 이것이었다.
'선수들은 편한 사람끼리 붙어 있고, 감독은 감독대로 아끼는 선수가 따로. 편애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차없이 내려보내지. 이런 좌불안석이 없어.'
컨디션이 떨어져도 끝까지 믿다가 팀이 연패의 수렁에 빠지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매 시즌이 끝나고 시작될 때마다 선수 중 상당수가 바뀐다.
그리고 바뀐 선수와 기존에 있는 선수가 다시 호흡을 맞추는 과정은 스프링캠프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메이저리거이지만, 한계가 있는 인간이니 실수하거나 잠깐 안 좋은 때가 오기 마련.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이너로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그로인해 생기는 전력의 공백을 타자는 알고 있다.
'언제 회복될지 알 수 없고, 설령 회복되더라도 확인을 위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 올려 보내. 그러니 컨디션이 올라올 때의 절반을 마이너에서 보내고, 나머지 절반은 메이저에서 보내지. 그것만이 아니야. 실수를 조금 더 하게 되면 바로 로스터에 이름이 빠지니 절로 긴장하게 되고, 그럼으로 인해 오히려 실책이 더 많아져.'
플레툰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내부 경쟁을 유도하는 체계다. 당연히 같은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의 유대감이 좋아야 하지만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오히려 더 서먹했다.
이것은 그가 2년 동안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있으면서 느낀 경험이었다. 그러니 지금 있는 감독을 좋아하지 않는 제일 중요한 이유였다.
'바짝 긴장하게 해서 안주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 이유겠지만… 지금은 득보다 실이 더 많아. 최하위를 피할 수는 있겠지만, 우승까지 치고 가는 것은 어려워. 오히려 작년처럼 와일드카드에 진출한 것이 기적에 가깝지.'
그의 말을 증명하듯 보스턴의 더그아웃에선 절로 긴장감이 느껴졌다. 지고 있으니 화기애애할 수 없겠지만, 그런 것치고 너무 굳어 있었다.
반대편에 있는 뉴욕 양키즈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3점 차이로 이기고 있으니 화기애애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는 것은 단순히 승리의 여유로 인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건 지금 승리의 분위기를 모든 선수들이, 코치들이, 감독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느 한 선수가 따로 떨어지지 않았고, 각자의 위치에 따라 선을 긋지 않고 있었다.
고참과 신참의 차이도, 각자 포지션에 따른 차이도 없었다. 정말로 야구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타자는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
'부러워하고 있어? 내가?'
그렇다. 부러웠다. 경쟁만 아니라, 순수하게 야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에 느끼지 못했던 순수한 감정.
그것을 지금 상대팀을 통해서 느끼고 있었다.
'우리를 응원해 주는 팬들을 위해서 승리하는 것은 당연. 나는 프로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자신도 즐기고 싶다. 하지만 그는 안다. 지금 보스턴 레드삭스의 상황에서는 아무리 강동팔이라도 순수하게 야구를 즐기면서 할 수 없다.
꽈득.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가는 주마등과 같이 짧게 지나갔다. 자기 팀도 아니고 상대팀을 보니 오래 전에 멈추었던 또 다른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마음에 안 들어. 고작 이것 가지고…흥분을 하는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미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가 더그아웃에서 타석에 들어서는 사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동팔은 여전히 보스턴의 타선을 농락하듯 왼손으로 투구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자신의 타격 능력도 갑자기 상승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고, 말할 수 없는 고양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후우……."
그는 호흡을 조절하며 몸 상태도 같이 조절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언제부터 양키즈가 이런 팀이 되었지?'
분명히 몇년 전의 양키즈는 이렇지 않았다. 왕조의 부활을 꿈꾸며 바락바락 독기를 품었던 팀이 양키즈였다.
하지만 지금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것도 아닌데, 이미 우승을 한 것처럼 편하고 자연스러웠으며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감독도 그대로, 코치들도 그대로. 선수가 좀 바뀌긴 했지? 누가 왔었더라? 혹시 강동팔? 에이 설마… 그 한 사람으로 팀이 바뀌겠어?'
쉽게 믿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타석에 선 이상, 좌완으로 능력이 떨어졌다고 한들 여전히 뛰어난 투수인 동팔을 상대로 타격에 성공해야 했다.
양키즈의 분위기에 전염된 것인지 몰라도, 양키즈와 상대하는 타자 또한 모든 것을 잊고 오직 타격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타석에서 동팔의 공을 통타하여 2루타를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따악~!!
이것으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보스턴 레드삭스에 생겼다. 하지만 이후에 이어진 6, 7, 8번 타자가 삼진과 범타로 물러나는 바람에 기대는 그냥 기대로 끝났다.
하지만 후속 타선의 불발로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5번 타자의 표정은 무언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이전에 잃었던 아주 소중한 무언가를 다시 찾은 것처럼.
# 제 0선발
뉴욕 양키즈와 보스턴 개막전의 6회초. 이번에도 동팔이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자 보스턴에서 발끈했다.
"설마 끝까지 가겠다는 건 아니겠지?"
다들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보스턴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차리라 끝까지 가는 것이 더 나아. 만약 이번에 올라온 타자를 잡고 내려가면 그때가 더 최악이야."
"네?"
감독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마침, 동팔은 보스턴의 9번 타자를 가볍게 돌려세운 후,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지금 점수는 3대 0. 그리고 5.1이닝을 던졌으니 승리투수의 자격을 얻었다.
"왜 내리는 거지? 우완으로 계속 던질 수 있을 텐데."
어느 한 선수의 의문이 아니라 보스턴의 선수들, 그리고 지켜보는 모든 관중의 공통된 의문이었다. 하지만 보스턴의 감독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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