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92화 (292/325)

[292]

"후우… 진정하고… 호흡을 천천히……."

지금 자신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본래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첫 타석에선 다른 누가 보더라도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 마크는 평정심을 회복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평정심이 알아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관중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겉으로는 대기 타석에서 배트를 익숙하게 휘두르고 있지만, 온몸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피가 잘 도는 것 같지 않아 피부가 저릿했다.

'젠장. 어떻게든 동팔이 형한테 도움이 되려고 했는데. 그리고 지금 상대하는 투수의 공도 동팔이 형에 비하면 상대하는 것이 편한데…….'

수많은 관중의 시선에 압박을 받으니 몸도 마음도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마크의 귀에 익숙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할 수 있어!!!"

"잘 한다, 내 아들!!!"

그건 가족들의 목소리였다.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성과 응원소리에 묻혀있지만, 선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규정상 관중과 아는 척을 할 수 없지만, 마크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자신을 향해 응원하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들의 모습이 멀리 있어도 선명하게 보였다.

동팔은 마크가 보는 곳을 같이 보자 누가 있는지 알았다. 그래서 마크에게 말했다.

"마크."

"네?"

"잠깐 이리로."

"네."

동팔이 부르자 마크는 더그아웃에서 살짝 나와있는 동팔에게 갔다.

"지금 첫 경기라 많이 떨릴 거야. 어쩔 수 없어. 이건 통과의례니까. 그렇다고 사람들의 시선에 눌릴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그렇죠.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알아. 그래서 좋은 방법을 알려주려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의식되기 마련이야. 그러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해."

"어떤 방법인데요?"

"다른 곳에 집중하는 거야. 네가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할 사람들. 그리고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을."

동팔은 마크의 어깨를 툭 치며 이어 말했다.

"내가 말한 것도 쉬운 방법이 아닌 걸 알아. 하지만 소용없는 방법에 매달리는 것보다 나을 거다. 그럼 가봐. 이왕이면 첫 경기에서 안타를 치면 더 좋잖아."

"네!"

마크가 동팔의 조언을 듣고 다시 예비 타석에 들어서서 준비를 했다. 몇 번 휘두르기도 전 타석에 있던 타자가 볼넷으로 출루하는데 성공했다.

분명히 좋은 상황이었지만, 이건 역으로 마크에게 부담을 주고 있었다.

'이거 내가 잘못 치면 병살로 이닝이 끝날지도 몰라. 어떻게 하지?'

그 생각을 하자 손에 힘이 더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됐어. 생각하지 마.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출루하는 것. 내가 오늘 선발로 출전한 이유는 메이저리그 무대의 적응을 위해서. 그리고 외야수비를 위해서야. 타격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 아무리 뛰어난 타자라도 병살타를 종종 치잖아? 나 정도야 뭐… 상관없겠지.'

그리고 마크는 방금 전에 동팔이 말해준 조언을 떠올렸다.

'가족들이 보고 있어. 그동안 날 지탱해주고 도와준 가족들이. 아, 물론 모데스 때문에 좀 고생을 했지만, 그것도 날 걱정해서 일어난 소동이니까.'

그러자 방금 전의 수많은 관중들로 인한 압박이 줄어들었다. 압박이 사라진건 아니지만, 오히려 적당한 압박과 긴장은 집중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개막전 투수이니 보스턴에서도 1선발. 그리고 제구가 되는 강속구와 이를 이용한 체인지업. 그리고 매끄럽게 빠지는 슬라이더가 강점.'

거기에 이전 타석에서 직접 상대했다. 확실히 메이저리그의 1선발답게 뛰어난 구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크가 겁을 먹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동팔이 형의 공에 비하면 상대할만 해. 형에게 들은 바로는 체력의 안배를 위해서 계속 강속구를 던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어'

보스턴의 입장에선 0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동팔이 익숙하지 않은 좌완으로 던지고 있으니 노릴 틈이 있었다.

그러니 선발투수도 가능한 체력을 아끼며 던지기 마련. 그리고 지금은 4회말이니 체력을 아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마크가 선택한 것은 이것이었다.

'최대한 지켜보는 방향으로 간다. 그럼 기회는 와. 반드시.'

결정을 내린 마크는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보스턴의 투수도 자세를 잡더니 공을 뿌렸다.

휭~ 퍽!!

"스트~ 라이크!!"

빠르게 날아온 공은 신인인 마크를 놀리듯 한 가운데로 꽂혔다.

투수는 포수에게 공을 다시 받으며 생각했다.

'신고식이야. 신입이라고 봐 주는 건 없어.'

그렇다고 방심하지도 않는다.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는 것만으로 이미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건 투수도 잘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농락하듯 한 가운데 던진 공에도 마크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까워 보이지만 속도가 빨랐어. 각오를 하고 때리지 않으면 오히려 밀렸을 거야.'

이미 지나간 공에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공이 오기까지 최대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휙~퍽.

두 번째와 세 번째 투구는 배트를 유인하는 공. 하지만 동팔과 훈련을 하면서 성장한 선구안으로 인해 마크의 배트는 나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성급하지 않다? 아니면 그냥 지켜보는 작전? 그렇다면…….'

볼카운트가 투수인 자신에게 조금 불리해진 이상, 다시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빠른 공을 던졌다.

휙~ 타악!!

처음 봤을 때처럼 빠른 공이 한 가운데로 들어오자 마크는 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처음과 달리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한 타석에서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을 계속 놓치면 기세에 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칠 수 있든 없든 배트를 휘둘렀고, 결과는 파울이었다.

이것으로 볼카운트는 스트라이크와 볼이 두 개씩 되었다. 투수에게 유인구를 던질 기회가 한 번 있지만, 타자인 마크에게 남은 기회는 없었다.

'긴장하지 마. 어차피 이번 타석에서 아웃되어도 병살만 아니면 돼. 그리고 다음 타석에서 기회가 또 있어.'

세 번의 타수에서 한 번이라도 안타를 때리면 강타자로 평가받는다. 그러니 마크는 안타의 욕심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했다.

'방금 전에 강속구를 던졌고, 체력의 안배를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느린 공이 될 가능성이 높아. 슬라이더나 체인지업. 아니 체인지업으로 생각하고 휘두르자.'

변화구라 해도 슬라이더는 빠르게 날아오는 공이다. 그리고 마침 방금 전에 강속구가 날아왔다.

흔한 패턴이라 해도 이후에 체인지업이 날아올 가능성은 높았다. 어차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마크는 오직 체인지업을 노리기로 했다.

'되든 안 되든 확률은 절반. 정확하게 절반인가? 아냐, 그냥 절반이라고 생각하자.'

마크가 어떤 공을 노리는지 몰라도, 투수도 그냥 있지 않았다.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여 던질 구종을 선택한 다음, 힘차게 팔을 휘둘러 공을 뿌렸다.

휙~.

역동적이고 힘찬 동작과 달리 공은 힘을 잘 받지 않아 상대적으로 느리게 날아왔다. 투수와 포수가 이번에 결정한 구종은 체인지업.

바로 마크가 노리고 있던 공이었다.

노리고 있던 공이 날아왔을 때, 맞추지 못하면 더 이상 메이저리거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마크는 외야수비의 능력을 인정받아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그렇다고 한들, 마크가 타격 능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원하는 공이 오자, 그동안 노력하고 훈련받은 대로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휘익~ 따악!!

한 가운데 맞은 타구에 힘이 제대로 실려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2루수가 손을 뻗었지만, 마크의 타구는 글러브를 벗어나 외야에 떨어졌다.

"뛰어, 뛰어, 뛰어!!"

주루코치는 마크의 타구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장타임을 알았다. 그리고 빠르게 달리는 1루 주자에게 팔을 크게 휘두르며 속도를 높이라고 주문했다.

1루 주자도 주루코치의 외침과 동작에 있는 힘껏 달리며 빠르게 2루를 지나 3루 베이스를 밟았다.

그러는 사이, 마크의 타구는 펜스에 부딪쳤고, 보스턴의 우익수가 빠르게 달려가 잡았다. 그리고 바로 있는 힘껏 홈으로 송구했다.

주루코치가 선택한 것은 과감한 승부. 이미 주자가 속도를 높인 상태라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주자를 홈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가, 가, 가!!"

후다다다닥.

주루코치의 지시에 주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뒤를 보는 것조차 사치인 순간. 그리고 홈으로 향해 달리며 방향이 바뀌자 시야도 같이 바뀌었다.

바뀐 시야에서 보이는 것은 홈을 향하여 공을 던지는 우익수의 모습. 그러자 주자는 더 이상 그곳을 보지 않고, 오직 홈에서 승부를 보는 것에 집중했다.

촤악~.

주자는 몸을 던져 발이 아닌 손이 먼저 나가는 슬라이딩을 했다. 그리고 포수의 태그를 피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휙.

공을 받은 포수가 태그하기 위해 미트를 휘둘렀다. 그러나 한 끝 차이로 주자의 몸에 닿지 않았다. 반면 주자의 손은 홈플레이트를 스쳐지나갔다.

"세이프!!"

홈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주심의 판정에 열심히 달린 주자는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바로 일어나 환호했다.

"와우!!! 예!!!!"

타자로서 안타나 홈런을 치는 순간도 좋다. 하지만 이렇게 아슬아슬한 승부에서 이기는 것에 비할 수 있을까.

그것도 0의 균형을 깨는 득점을 자신이 하게 되었다면 더욱 짜릿했다.

포수의 태그를 피하고, 자신의 손바닥이 홈플레이트를 스치는 순간의 통쾌한 쾌감을 느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집으로 돌아온 그를 다른 선수들이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잘 했어."

"겁나 빠르던데."

"이제 다리 후들거려서 달릴 수 있겠냐?"

헬멧과 어깨와 등을 두드리며 축하하니 그도 처음에는 좋았다. 그런데 앉아서 쉬려고 할 때도 두드리니 참다못해 성질을 냈다.

"야! 쫌!!"

그의 반응에 축하하던 선수들은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 장난기 어린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격한 축하를 받은 그도 마저 화를 내지 못하고 제풀에 지쳐 주저앉았다. 그러자 이번엔 두들기지 않고 어깨에 팔을 걸치며 축하했다.

"너 방금 전에 나 칠뻔 했다."

"축하해 주는 것이 그렇게 싫어?"

"네가 영웅이 되었으니까 특별히 그렇게 한 거지."

이대로 상대 타선을 봉쇄하면 그는 결승득점의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그는 안다.

"영웅은 무슨. 어차피 타점을 얻은 마크가 영웅이 되겠지. 덤으로 첫 좌완으로 타석을 막은 동팔이도."

그러자 동팔이 와서 말한다.

"네가 전력으로 달리지 않았다면 이번 득점은 불가능했어. 고맙다. 덕분에 더 편하게 던질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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