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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위험한(?) 보스턴에서 직접 관람하기보다 중계를 통해 경기를 보는 양키즈 팬들은 지고 있어도 기분이 좋았다.
"팍팍 꽂히니 통쾌하네!!"
"연속 삼구삼진?"
"이러다 세번 연속 당하면 보스턴 입장에선 이겨도 이긴게 아니잖아?"
역사가 깊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퍼펙트 이닝은 쉽게 나오지 않는 진귀한 기록이다. 반면 경기의 승패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비록 경기에 지더라도 다음 경기에 이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진귀한 기록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은 이기더라도 사양하고 싶은 것이 사실.
그나마 보스턴이 나은 점이 있었다.
"그래도 지고 있는 상황에 퍼펙트 이닝을 당하는 것보다 낫지 뭘."
지완이 생각한 복수는 완벽한 구위로 보스턴 타선을 찍어 누르는 것. 그 첫 시작은 삼구 삼자범퇴의 유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운이 좋았다. 그리고 방금 전에 2번 연속 삼구삼진을 잡은 것도 운이 좋았다. 이번에도 운이 좋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완은 지금 느낌이 좋았다.
'의식할 필요 없어. 나보다 타자가 더 의식할 테니까…….'
분명히 자신은 마운드에서 상대 타선을 방어하는 입장. 하지만 지금은 타자가 지완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타자가 방어하는 것은 지완에게 삼구삼진을 당하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든 지완의 타구를 치던가, 4개 이상의 공을 던지게 해야 했다.
'욕심이 나겠지. 퍼펙트 이닝을 달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제일 뛰어난 피칭을 보여준 동팔도 지난 시즌에 달성하지 못한 것이 퍼펙트 이닝이다. 그리고 한국 리그에서도 상대의 틈을 파고들지 않았다면 쉽게 달성하지 못하는 기록이다.
그 기록이 눈앞에 있다면 누구든지 욕심이 날 것이다. 그래서 타자는 생각했다.
'어떻게 되든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할 거야. 그걸 노리면 충분히 가능해.'
그 생각을 하고 위기가 다가오는 상황에도 차분하게 대응하려 했다. 거기에 어떤 궤도로 날아와도 스트라이크 존에 걸친다면 예측 가능한 범위도 그만큼 줄어든다.
그리고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으니 기다리려 생각했고, 마침 지완이 공을 던지자 방금 전과 달리 강속구가 아니었다.
'빙고!!'
대략 시속 80마일로 보이는 구속. 그렇다면 그의 예상은 다름 아닌 체인지업이었다. 방금 전의 강속구와 달리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배트를 휘두를 수 있었다.
타자는 성급하지 않고,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공은 예상한 체인지업이 아니었다.
시속 80마일로 날아오는 공이었지만, 갑자기 아래로 급격히 떨어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휭~.
체인지업의 궤도를 예상하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타자가 예상한 공의 변화보다 더 크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타자는 헛스윙을 하면서 방금 날아오다 떨어진 구종을 깨달았다.
'맞다…. 포크볼…….'
포크볼은 날아오다가 홈 플레이트 근방에 오면 바닥으로 급격히 떨어진다. 구속이 빠르고 급격한 변화가 홈 플레이트에서 얼마나 가까운 지점에서 일어나는지에 따라 포크볼의 질이 결정된다.
현존하는 최고의 포크볼을 던지는 선수는 오타니. 그가 던지는 포크볼의 구속은 시속 140킬로미터에 달한다.
한국에선 평균적인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으로 포크볼이 날아온다는 것이다.
지완의 포크볼이 그에 비교하면 조금 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거의 시속 130킬로미터로 날아오는 포크볼을 예상하고 친다는 것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도 버겁다.
겉으로 보면 느린공에 헛스윙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강력한 투수를 상대하는 타자로선 일상인 일이었다.
'젠장… 또 볼 없이 2스트라이크…….'
한 이닝에서 공 8개에 전부 스트라이크가 나왔다. 그리고 전부 강속구만 던지는 것도 아니고, 상대의 의표를 찔러 들어오는 변화구까지 던졌다.
하지만 지금 타자의 입장에서 환장할 것은 따로 있었다.
'방금 전에 포크볼을 던졌으니 언제라도 강속구가 가능. 스트라이크 존에 얽매지이 않았다는 것은 퍼펙트 이닝에 집착하지 않는 다는 의미…….'
자신이 예상해야 할 구종이 확연히 늘었다.
동팔만큼은 아니지만, 던질 수 있는 구종과 예상할 수 있는 궤도도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아직 던지지 않았지만, 범타를 유도하는 너클볼도 가능했다.
머리가 한참 복잡하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주심이 경고했다.
"시간 끌지 마."
타자의 입장에서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흐른 시간은 20초가 넘어갔다.
아직 예상과 예측도 못한 상황에서, 삼구삼진의 압박도 모자라 주심과 시간의 압박까지 느꼈다.
혼란스럽지만, 계속 준비만 할 수 없으니 타석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방금 전에 포크볼을 던졌지만, 그 전에 강속구를 많이 던졌어. 그러니 강속구보다 변화구로 헛스윙을 유도할 가능성이 조금 더…….'
하지만 그는 방금 전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지 못했다. 지완이 어떤 공을 던질지 몰라 고민하는 시간에 생각보다 지완이 체력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할 시간을 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혼란스러워 하는 상대에게 제일 잘 먹히는 공이 무엇인지 지완은 알고 있었다.
쉭~ 퍽!!
모든 타자들이 제일 치기 껄끄럽다는 몸 쪽 아래 스트라이크 존. 그곳을 향해 지완의 빠른 공이 찔러 들어왔다.
타자는 자신이 반응하기에 이미 늦었으니 공이 빠지길 바랐다. 하지만, 주심의 판정은 정확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결국 그 마저도 삼구삼진으로 물러났고, 보스턴의 공격은 지완의 퍼펙트 이닝 달성으로 끝났다.
이기고 있는 보스턴을 상대로 지금 줄 수 있는 최대의 굴욕적인 기록을 선사한 지완. 하지만 지완은 특별히 보스턴이나 팬들을 자극시키지 않고 담담하게 동료들과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보스턴의 팬들은 들어오는 지완을 향해 야유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믿을 수 없는 치욕적인 기록에 할 말을 잃었다.
# 치열한 접전 끝에 온 가을
9회초.
지완이 7회말을 삼구 삼자범퇴로, 8회말을 퍼펙트 이닝으로 막아버리자 보스턴의 흐름은 바닥을 향해 하고 있었다.
보스턴의 희망은 오직 지금 벌어놓은 2점 차이를 유지하거나 실점을 하더라도 1점만 잃어 승리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대로 양키즈가 점수를 2점 이상 얻지 못하면 9회말을 할 필요 없이 보스턴의 승리로 이번 경기는 마무리된다.
흐름이 끊어졌을 뿐이지, 점수가 바뀐 건 아니다. 결국 승리를 결정하는 것은 점수.
1점 차이가 되던지, 10점 이상의 차이가 되던지 더 높은 점수를 내는 팀이 승리한다.
이왕 좋은 흐름을 타게 된 이상, 양키즈도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따악~.
첫 타석에 오른 타자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지만, 범타로 물러났다.
보스턴 역시 승리를 양키즈에게 내줄 수 없었다.
'삼구 삼자범퇴는 그렇다 쳐도 퍼펙트 이닝까지 당한 마당에 패배까지 당할 수는 없어…….'
안 그러면 얼마 전만 해도 자신들을 향하던 응원이 사라진다. 그리고 양키즈를 향하던 야유가 자신들을 향하게 될 것이다.
그 절박함이 보스턴의 투수로 하여금 투지를 태우게 만들었고, 이는 저절로 구위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첫 타자를 어떻게든 보내지 않고 아웃카운트를 올리게 만들자 한결 여유가 생긴 보스턴의 투수.
'이제 두 명만 더 잡으면…….'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양키즈 더그아웃 주변에 있는 관중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뭔가 웅성거리자 투수도 다음 타자가 타격을 준비하는 곳을 보았다.
'어? 동팔선수가 왜?'
오늘 선발도 아니었고, 지명타자제인 아메리칸 리그에서 투수가 타석에 나설 일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아직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고, 2점 정도야 한 이닝만 남아도 어떻게든 노려볼 만한 점수다.
그런데 그걸 포기한 듯이 투수인 동팔이 배트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지금 놀리는 건가? 질 가능성이 높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이미 두 개의 치욕적인 기록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기록의 희생이 될 생각은 없었다.
비록 공식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투수가 안타나 홈런을 치는 것을 허용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리그에서 루시의 일로 홈런을 친 적이 있으니 방심할 생각도 없었다.
'강동팔을 상대하기 전에 주자가 나가는 것부터 막는다. 그것이 우선…….'
어쩌면 이것도 상대의 도발일 가능성이 있었다. 투수는 그것을 의식하여 지금 당장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보스턴의 팬들은 그럴 수 없었다.
"그냥 순순히 질 것이지 구차하게 이럴 필요 있냐!!"
"타자를 내보내야지 왜 투수를 내보내!!"
그들은 투수인 동팔이 인터리그나 월드시리즈도 아닌데 타석에 선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그런데 중계를 보는 양키즈 팬도 그들과 비슷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지금 어떻게든 이길 생각을 해야지, 도발만 할 생각이야?"
"흐름이 우리한테 넘어 왔으니 어떻게든 이겨야 할 것 아냐!!"
동팔이 타석에 선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이길 가능성을 낮추는 행동이었다. 어떻게든 이번 타자가 진루를 하고, 이어서 대타 카드를 쓴 다음 루상에 주자를 더 쌓거나 점수를 얻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동점이 되지 않는다면 남은 공격 기회가 이번 밖에 없다.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남아 있더라도 9회 2아웃 상태에서 역전할 수 있는 것이 야구다. 물론 그것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양키즈 팬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그 순간마다 깊게 각인되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찌되었건 동팔이 타석에 서는 것은 보스턴 레드삭스나 뉴욕 양키즈 둘 다 좋아하지 않고 있었다.
반면 그 사실을 알 수 없는 동팔은 배트링을 끼고 익숙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훈련을 매일 하긴 하지만, 쉽진 않겠지. 사실 감독님도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니고, 난리를 치는 보스턴 팬들을 약 올리기 위해 보내는 거니까.'
동팔이 말한대로 존 지라디 감독은 동팔이 무언가 해줄 것을 기대하고 타석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자신들을 극도로 도발하는 보스턴의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제일 확실한 복수는 승리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존 지라디 감독도 9회초가 시작되었을 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첫 타자가 범타로 물러나자 차선책으로 다른 도발을 시도했다.
바로 동팔이 타석에 오르는 것이다. 명단에 들어오면 누구를 대타로 세울지는 오직 감독의 권한이다.
투수로 이름이 올라왔지만, 대타로 세우더라도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나 감독이 지게 되지만.
어찌되었든 보스턴에게 건 도발은 확실히 먹혔다. 제일 먼저 관중들이 반응을 보였고, 더그아웃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보였다.
애초에 도발을 위해 올려 보낸 것이니 감독도 동팔에게 아주 중요한 주의사항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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