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12화 (212/325)

[212]

제약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없다면 굳이 힘들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법.

그 범주에 헤럴드도 예외가 아닐 거라고 예상했고,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휙~!!

헤럴드가 전력으로 던졌다고 생각하지만, 100마일 161키로에 해당하는 속도에 못 미치는 구속이었다.

그래도 평상시 헤럴드가 던지는 140대의 구속이 아닌, 150키로에 해당하는 구속이었다.

물론 그 정도도 충분히 빠른 공이긴 하다. 하지만 동욱에겐 한 없이 느린 공이었다.

'볼.'

이미 궤적을 파악한 동욱은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헤럴드의 투구는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났다.

하지만 심판의 판정은 달랐다.

"스트~ 라이크!!"

"뭐?"

분명히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이었다. 약간이긴 해도 벗어난 것은 확실했다. 물론 심판의 시점에 따라 스트라이크라고 선언될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전 이닝에서 같은 코스의 공을 볼로 선언한 것을 생각하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설마 나한테만 인색하게 부르는 건가? 이거 다시 상정해야 하잖아?'

의외로 메이저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은 한국 프로 리그보다 더 유동적이다.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을 하는 주심이 있기도 하고, 특정 선수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존을 적용하는 주심도 있다.

당연히 주심도 사람이니 실수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규 시즌이 아니다.

한 경기, 한 이닝, 한 타석이 중요한 포스트시즌이다. 이전이라면 가볍게 더그아웃에서 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끝났을 일이지만, 중요한 경기라서 감독의 지시를 받은 코치가 올라와 주심에게 항의했다.

"전에는 볼이었는데 갑자기 이번에 스트라이크라고 한 이유가 뭡니까?"

주심이 지닌 권한은 막강하다.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감독이라도 퇴장을 당한다. 그러니 화가 나도 최대한 정중하게 말을 했지만, 주심은 뻔뻔하게 말을 했다.

"그쪽에서 보면 같을지 몰라도, 내 쪽에서 보면 분명히 스트라이크였어. 시간 끌지 말고 그만 가봐."

순간적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한 코치였지만, 그래도 최대한 참으며 말했다.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오심이 나오면 사무국에 이의를 제기할 겁니다. 챔피언십이니 인종차별 한다는 말이 안 나오도록 하셨으면 합니다. 미국만 아니라 세계에서 지켜보는 중이란 걸 명심하세요."

코치가 할 수 있는 경고는 여기까지다. 이미 미국의 공개적인 장소와 문화는 인종차별을 혐오하는 수준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무시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코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압박을 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주심의 판정. 특히 스트라이크와 볼의 판정에 있어선 절대적이다.

도저히 칠 수 없는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부르지 않는 이상. 한 가운데로 들어온 공을 볼이라고 하지 않는 이상 주심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번복되지 않는다.

결국 미심쩍은 판전으로 동욱에게 불리하게 흘러갔지만, 동욱은 개의치 않았다.

'정규 시즌에 종종 당했던 건데 뭘 새삼스럽게…….'

전에는 나오지 않았던 감독과 코치들이지만, 챔피언십의 무게가 나오게 만들었다.

그래서 동욱은 안다.

저들은 자신을 생각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서 나왔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헤럴드를 상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다.

'클리블랜드는 내년까지만 있어야겠어. 내후년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뉴욕 양키즈도 나쁘진 않지.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아무리 뉴욕 양키즈가 자금력이 좋아도 나까지 영입할 자금이 있을지…….'

***

한편, 민희는 지금 뉴욕 양키즈 관계자들과 만나 로비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로비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한국에서 로비는 경쟁사보다 질이 떨어지는 자신의 제품을 팔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다.

보통은 향응제공과 주머니에 상당한 돈을 꽂아 넣는 것이고, 때론 현금다발을 박스에 담아 보내주기도 한다.

미국의 로비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 로비는 자신의 제품을 설명하기 위해 자리를 만드는 의미가 더 컸다.

일종의 사적인 제품 설명회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이 항상 바빠 시간이 나지 않는 최고 결정권자와 만나야 한다. 그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사적인 시간을 이용해야 한다.

당연히 자신들의 휴식 시간을 손해 보는 것이니 그 손해를 매울 무언가를 로비스트가 제공해야 한다.

그 의미로 로비스트가 최고 결정권자에게 향응을 제공하거나, 설명회에 온 참여자에게 일정 수준의 참여비를 주는 의미였다.

민희도 한국에서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로비스트처럼 행동하는 것은 무리였다.

본인의 외모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몸을 상품처럼 취급당하는 것은 싫다.

자신은 뛰어난 유망주와 재기하여 앞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칠 선수를 그들에게 소개시켜주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그녀에겐 동팔이라는 든든한 인맥이 남편으로 있었다.

민희가 만나는 사람은 최고 결정권자가 아닌 그에게 보고하는 분석담당관이었다.

"그러니까 마크라는 선수를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문제는 수술이……."

대부분의 에이전트가 마크를 거부한 이유가 바로 무릎 수술 경력이었다. 이것은 구단 자체에서 경력을 보고 데려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것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뉴욕 양키즈는 물론 다른 모든 구단에서도 마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으니 민희가 직접 나서는 것이다.

"수술 결과도 좋고, 지금 기량을 보면 더 성장할 여지가 있어요. 단순히 수많은 유망주 중에 하나가 아니라, 그들 중에서도 좋은 기량을 보이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실 텐데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우리는 기량만이 아니라 부상의 위험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마크의 경우 부상 이후도 그렇지만, 부상을 당하게 된 계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무리는 유망주만 아니라 선수들도 다 하는 거예요. 그때는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에요. 오히려 수술 이후에 회복이 뛰어나다는게 증명된 것입니다."

담당자가 생각하니 그것도 그렇게 보였다.

'하긴 부상도 부상이지만, 그 이후 회복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민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양키즈는 뛰어난 외야수를 구하고 있잖아요. 그 외야수가 바로 마크에요.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지닌 선수죠. 이미 경기에서 보살능력을 보면 탑 수준이란 걸 기록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알고 있다. 이미 뛰어난 유망주들의 기록은 전부 파악되어 분석이 끝났다. 그리고 마크의 보살능력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동팔 오빠가 그렇게 잘 가르쳤는데, 다른 팀으로 가면 안 돼.'

투수출신인 외야수의 어깨가 강한 건 그만큼 공을 던지는데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비록 마크가 투수 출신은 아니지만, 투수인 동팔에게 개인적인 과외를 받으면서 투구 실력을 높여 놓았다.

덕분에 빠른 발로 수비를 잘하는 것만 아니라 상대 팀이 점수 내는 것을 막을 견제능력까지 얻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릎 수술 경력으로 인해 모든 구단의 외면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자꾸 무릎 수술 때문에 주저하시는 것 같은데,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아직 완전히 성장한 건 아니지만, 다른 구단이 신경쓰지 않을 때 좋은 선수를 싼 가격에 영입할 좋은 기회입니다."

"으음……."

방금 전과 달리 완강한 반대는 없었다. 자신의 설명과 설득이 먹혀들어갔음을 안 민희는 계속 설득에 박차를 가했다.

"이건 금액의 문제가 아닌 기회의 문제에요. 그리고 어차피 시작은 루키 리그니까 더욱 그렇죠. 나중에 상위 리그로 올라갈 때마다 계약을 갱신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건 담당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도 그런 말을 한 것은 다시 한번 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서.

마크의 경우, 재정적 부담감도 없고, 무릎 수술이라는 꼬리표가 있지만, 그 이외에는 무난한 유망주였다.

실제로 유망주 중에서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꼬리표 때문에 모든 구단이 보지 않는 선수였다.

하지만 계속된 설득 끝에 담당자도 일단 마음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된다는 단정을 할 수 없지만, 이번 지명에서 추천 명단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최고 결정권자에게 정보를 주는 사람이지, 결정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건 민희도 알고 있었으니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을 받아야 했다.

"확실히 제대로 전해주셔야 합니다. 이건 꽤 중요한 일이거든요."

민희의 말에 담당자가 물었다.

"중요한 일인 것은 알고 있는데 꽤 중요하다니요. 그럼 정말 중요한 일이 따로 있습니까?"

그의 물음에 민희가 답했다.

"네, 아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

민희의 회심의 미소를 본 담당자는 절로 궁금증이 일었다. 그리고 민희는 곧 이적기간을 준비하느라 바쁠 그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소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빨리 말했다.

"캔자스시티의 남궁지완 선수를 아시죠?"

"당연히 알다마다요. 당신의 남편인 동팔에 준하는 투수 아닙니까?"

체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구위는 구속을 제외하고 동팔에 준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그리고 당연히 그와 계약을 한 캔자스시티는 동팔을 데려온 뉴욕 양키즈보다 더 큰 대박을 터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정규시즌 동안의 이야기. 포스트시즌의 시작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상으로 인해 부축을 받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다음 시즌이 불투명하고, 어쩌면 최악의 상황도 고려하는 상황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구단의 입장에서 남궁지완이 이적시장에 나오면 의심부터 해야 되는 상황이다.

뭐가 아쉬워서 캔자스시티가 1선발 급인 지완을 내놓을까. 분명히 지난번 보인 모습이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다고 캔자스시티 입장에선 더 이상 공을 못 덜질 지완을 계속 두기에도 부담스러웠다.

재활을 하는 것도 구단의 돈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재활을 통해 재기를 한다는 보장이 있다면 모를까, 전혀 불가능한 상황임을 알기에 재활시킬 마음조차 사라진다.

내놓으면 싼 값이 될 것이 뻔했고, 안 내놓을 수도 없는 것이 캔자스시티의 상황.

하지만 민희는 알고 있다.

'지완 오빠의 몸은 이미 의학적으로 재기 불가능. 당연히 그들은 언제든 내놓을 수밖에 없어. 이미 뿌린 것을 조금이라도 더 거두려면 반드시 내놓겠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