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선수는 한 번 크게 다치면 만회할 방법이 없다. 반면, 동팔은 부상을 심각하게 입더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
동팔이 회복의 능력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 이해를 했다. 당시 동팔은 악마의 힘이라도 빌리지 않으면 절대로 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의 회복을 요구하고 자신이나 동욱과 같이 새로운 능력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패착이라 생각했다.
동욱과 자신처럼 이전의 한계를 벗어난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고작 회복만 선택한 동팔에게 그럴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잠깐, 그럼 대체 그 구위는 어떻게 얻은 거야?'
능력을 새로 얻은 것이 아니다. 힘이 강해진 것도 아니고, 속도가 빨라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팔의 구위는 압도적으로 성장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또 다른 능력을 얻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지완은 아니었다.
'틀림없이 끊임없는 노력을 했겠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쉬지 않고 몸에 무리가 가더라도 계속!!'
이전이라면 혹사에 의한 부상으로 다시 좌절했을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미련한 행동. 그러나 지금 동팔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혹사로 인해 몸이 망가지더라도 다시 회복했다. 다시 일어나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그 전에는 주변에 있는 건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의 동팔을 있게 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 사실을 지완이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항상 주의하고 있다는 지완의 말에 감독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럼 됐네. 성인이 되기 전부터 라이벌이라는 말을 들어서 혹시 긴장했나 싶었거든."
"그건 사실입니다만,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도 동팔이가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바라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동경이었다.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프로 선수 못지않은 구위를 선보이는 동팔이 멋져 보였다.
자신은 중학교 때 남들보다 조금 뛰어나다는 말을 들은 게 고작이었다. 동팔은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압도적이었다.
질투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동팔의 구위를 조금이라도 따라잡기 위해 노력을 더 많이 하게 되었고, 결국 전국에서 알아주는 투수가 되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때에 동팔의 라이벌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들어보기는 했을 것이다.
마침내 동팔과 같은 날에 마운드에 서게 되었다. 같은 경기에 서로 다른 팀에서 선발투수로 올라온 것이다.
시합을 하기 전에 서로를 향해 인사를 했다.
바로 앞에는 그토록 따라잡고 싶었으며, 닮고 싶었던 동년배의 영웅이 있었다.
인사를 한 지완은 들뜬 표정을 숨기지 않고 동팔에게 말했다.
'저기… 동팔이지? 나는 남궁지완이야. 네 얘기 많이 들었어. 오늘 잘 해 보자.'
솔직히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완이 기대한 대답은 '지완이? 이야기는 들었어' 정도면 충분했다.
잘 던진다는 말보다 자신을 알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동팔의 대답은 지완의 기대를 산산이 부쉈다.
'응. 잘해보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설마 라이벌이라는 말에 경계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눈빛을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동팔의 눈에는 지완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주변에서 라이벌이니 뭐니 떠든다고 한들 동팔은 오직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자신만의 공을 던진다.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지완은 오히려 무시를 당하는 것보다 기분이 더 나빴다.
무시를 했다면 적어도 자신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차원이 아니라 동팔의 머릿속엔 정말로 지완이라는 존재가 없었다.
그토록 동경했던 이는 무시하는 것보다 더 심한 모욕감을 주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지완이 동경했을 정도였는데 동팔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조차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동경을 증오로 바꾸어 놓은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반드시 꺾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렇다고 동팔에게 몹쓸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꺾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실력으로, 프로에서 증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팔이 부상으로 방출되면서 목표도 허무하게 사라졌다.
전력으로 달리기도 전에 상대가 쓰러졌다. 그로 인해 생긴 공허함으로 지완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엉뚱하게 동팔의 애인이었던 혜진에게 화살이 향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전혀 의외의 상황으로 인해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혜진과의 결혼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혜진은 유능했고, 아름다웠으며, 건강한 데다 착했다. 이런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자신은 큰 행운아라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혜진과 사귀게 되었을 때에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이 있었다. 지완은 동팔이 프로에 복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허무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동팔이 더 완벽하게 부활하여 압도적인 구위를 선보이자 지완은 생각했다.
'언젠가 반드시 네 앞에 서 주겠어. 다시는 나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없게!!'
***
한편, 동팔도 곧 있을 코리안더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는 훈련이었다.
'지완이라… 이전에는 우리가 라이벌로 불렸지만 직접 만나기 전까지 신경 쓴 적이 없었지?'
동팔이 지완을 본격적으로 인식한 사유는 간단했다.
혜진과 헤어진 후, 그녀의 프로필 사진에 지완과 같이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봤다.
이전에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혜진이 그에 대해 이야기한 기억은 남아 있었다. 그때 이야기했던 지완의 느낌은 '재수 없어'였다.
그 재수 없다던 남자와 결국 결혼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인생사가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일이다.
그 전에는 정말 단 한 번도 신경 써 본 적 없는, 인식하거나 의식한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아무리 라이벌이라 치켜세워도 어차피 일부 언론에서 만들어낸 인식이었다. 항상 1위의 라이벌이 2위라는 인식을 이용한 짜집기였다.
순수하게 실력으로 보면 한 수 아래였기에 동팔은 일부 언론과 주변 사람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혜진과 결혼한 것도 있지만, 확실히 자신과 비견되는 몇 안 되는 투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많이 성장했어. 어떻게 계약했는지 몰라도 능력 그 자체만으로…….'
최고 구속은 자신보다 조금 못한 정도. 구종의 종류는 더 많지만, 각 변화구의 제구력은 미세하게 자신이 우위였다. 하지만 너클볼에 있어선 지완이 한 수 위였다.
물론 체력이나 회복력에 의한 컨디션 유지는 동팔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자신의 능력이 아닌, 악마의 힘으로 얻은 능력이라 비교에서 제외했다.
전반적으로 따지면 자신의 구위가 더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동팔이 본 지완의 모습 중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단 하나가 있었다.
'적어도… 승부욕 하나만큼은 진짜야… 동욱이가 왜 지완의 공을 창이나 칼에 비유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동팔은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만큼, 감각과 구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훈련과 노력을 한다.
반면, 지완은 동팔이보다 던질 수 있는 구종이 적다. 그러나 그만큼 집중하여 제구력을 끌어올린다.
만약 회복의 능력이 없었다면 제구력은 오히려 지완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더 좋았을 것이다.
혹사하듯이 훈련을 해도 회복할 수 없었다면 그만한 훈련량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지난번, WBC에서 직접 본 지완의 구종은 특별했다.
'평상시 던지는 공도 좋지만 특히 승부를 걸어야 할 때의 공은 더 위력적이야. 한순간이지만 적어도 그때만큼은 나보다 더 뛰어나. 그만큼 집중력이 뛰어나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 집중력의 근본은… 승부욕이고.'
중요한 순간에 송곳처럼 꽂히는 지완의 공을 보며 과연 자신은 과연 저런 결정구를 던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두루두루 잘 던지는 자신과 달리 특정한 구종을 결정구로 하여 칼을 갈아둔 쪽은 지완이다. 그러니 그 순간에 지완이 던지는 공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팔은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완이에게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선발이 아니라 불펜이었다면 거의 무적이었을지도 몰라.'
모든 투수의 기본적인 요건은 뛰어난 구위다. 하지만 선발투수의 구위가 너무 뛰어나면 이어서 올라오는 불펜이 부담스러워 한다.
앞서 던진 선발만큼 잘 던지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여 두들겨 맞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동팔도 웬만하면 자신이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내려간다. 그 대부분이 9이닝이긴 하지만, 뒤를 맡기고 가면 솔직한 말로 불안했다.
지완이 자신의 뒤에 올라와 책임을 져주면 그렇지 않았다.
지완의 구위는 전반적으로 보면 자신과 비교해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강하고, 승부욕이 강해 아무리 강한 타자가 올라와도 기가 죽지 않았다.
구위 자체에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다른 의미로 강하기 때문에 타자들은 새로운 투수에 적응해야 했다.
'지완이 마무리나 중간계투라면 확실히 맡기고 내려갈 수 있겠지만… 그건 불가능하겠지. 누가 선발에서 불펜이 되고 싶어 하겠어?'
대부분의 투수들은 계투진보다 팀의 승리를 크게 책임지는 선발을 원한다. 연봉도 연봉이지만, 인정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당연했다.
그런데 에이스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는 투수가 불펜으로 간다? 이건 제의할 생각도 하지 못할 말이었고, 싸움을 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확실히 에이스 선발급이 중간과 뒷문을 지키면 든든하다. 그러나 그럴 정도의 투수 자원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그런 것은 메이저리그의 구단이라도 꿈에서나 가능한 막대한 자금을 털어 넣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런 건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이기는 것에 집중하자. 그렇지 않아도 마크 회복시키느라 훈련에 집중하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마크를 회복시켜준 만큼, 동팔이 지하훈련실에서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기 마련.
평상시에도 구단에서 하는 훈련이 있지만 따로 못한 만큼 정체되었다. 그래도 마크를 치료한 걸 후회하지 않았다.
"그래도 약간의 시간과 고통으로 한 사람을 구한 거니까 나쁘지 않잖아."
***
민희와 혜진은 예은이가 곤히 잠들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서로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물론 미국에 와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순간도 빠질 수 없었다.
"역시 미국에 와서 살게 되면 한인교회를 갈 수밖에 없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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