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그렇겠지. 특별히 뛰어난 기록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럴 정도면 이전부터 영입이 되었을 거니까."
"그렇죠. 사실 다른 에이전트에서 거부할 건 알고 있었죠. 그래서 포기하고 연락이 올까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왔네요."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어느 정신 나간 에이전트가 마크의 기록만 살피고 수술기록을 보지 않는 허접한 곳에서 허락하는 것은 아닌가 조마조마하긴 했다.
그래도 민희가 믿는 것은 마크의 의리 그리고 그의 수술 경력이었다.
"혹시 수술 경력을 말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상태에서 가입했다간 사기 치는 것이랑 다를 바가 없어서 나중에 엄청 곤란해지니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거고……."
"어쨌건 다행히 잘 되었다는 거겠네?"
"그렇죠. 이걸로 아직 개화하지 못한 유능한 유망주 하나 얻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무릎 수술은 회복되어도 다시 다칠 가능성이 높잖아. 완전히 회복했다는 보장도 없고."
혜진의 말에 민희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다.
'사실 얼마 전에 완전히 회복했어요. 고생을 많이 했지만…….'
완전한 회복하면서 마크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다시는 다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회복이 되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도 몰랐던 마크였다.
그는 회복하면서 너무 강한 고통에 올 때마다 갈등을 했다.
그래도 가족들과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동팔을 생각해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은 완전히 회복을 한 상태였다. 솔직히 말해 언제 부상을 입어도 회복시켜줄 사람이 있으니 마음이 놓일 만도 했다.
그러나 마크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회복하면서 자신이 겪는 고통도 싫었지만, 아무런 이득도 없이 같이 아파하는 동팔의 얼굴을 보면 더욱 그럴 생각이 사라졌다.
자신을 위해서도, 동팔을 위해서도 다시는 부상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부상을 당하고 싶어 당하는 선수야 있겠느냐만, 마크의 그 각오가 더 강해졌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부상이라… 몸이 전부인 선수에게 부상은 모든 것을 잃는 거랑 같으니까……."
두 사람 다 동팔을 통해 부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약간의 오차가 결과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소한 부상이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마라톤이나 철인 삼종경기처럼 순위보다 개인 기록에 중점을 두거나, 개인 스포츠라면 그나마 낫다.
야구는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부상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절대로 피해야 한다.
동팔은 완벽히 재기하기 전, 팔과 어깨, 등의 근육의 파열로 인해 선수로서 모든 것을 잃었다.
겨우 다시 회복해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본 민희와 혜진으로선 부상이 선수를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완 오빠 몸은 어때요? 지금 기록이나 구위를 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지금이야 괜찮지. 가끔 체력 문제로 실투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유지하고 있어."
"아직은…인 거죠……."
혜진과 많은 통화를 했으니 민희는 지완의 상황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미 몸은 한계 직전의 상태였다. 지금 이상으로 무리하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거기에 부하(負荷)가 가해진 곳은 투수로서 치명적인 팔과 어깨, 등이었다. 동팔이 당했던 부상과 거의 일치할 정도로 같은 부위였다.
표현하지 않고 있을 뿐, 혜진은 지금 아주 많이 불안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설마 나랑 사귀는 사람은 전부 부상을 당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고……."
그 말을 하는 혜진의 얼굴이 어두웠다. 그래도 딸인 예은이가 돌아보면 금방 괜찮은 것처럼 표정을 바꾸었다.
이전에 한 번 걱정하고 있다가 자신의 어두운 얼굴을 예은이가 보곤 크게 울었다. 그 이후로는 주의하고 있었다.
"아이~ 그건 아니죠. 언니가 사귄 사람이 전부 프로급이거나 프로인 투수였으니 그런 부상은 항상 주의해야 하는 사람인 거죠. 동팔 오빠는 자기 잘난 맛에 몸이 어떤지도 모르고 마구 던져서 그렇게 되었고, 아직 지완 오빠는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니에요. 미리 조심하고 있으니까요."
민희는 혜진이 괜한 마음에 더 우울해질까봐 그렇게 말했다.
"그런 생각도 했는데… 역시 애를 낳고부터 우울증이 더 심해진 것 같아."
"아… 설마 임신 후유증인가요?"
민희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전부터 묻고 싶었는데요. 지완 오빠의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신 거예요?"
이미 흘러간 문제라도 어려운 상황에 있던 동팔을 찼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사귄 이유보다 결혼한 이유를 물어본 민희였다.
"그거? 솔직히 말하면 지완이는 첫 인상은 별로였잖아. 동팔이는 신경도 쓰지 않는데 자기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고."
"뭐… 그렇긴 했죠……."
둘 다 동팔과 사귄 경험 덕분에 지완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같은 입장에 있었기에 느끼는 점도 비슷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민희는 그것으로 끝이었고, 혜진은 그 이상으로 알게 되었다.
"나도 처음에는 왜 그런가 이상하게 생각했거든. 그렇잖아. 괜히 라이벌 의식에 불타서 이기지 못한 분풀이를 하는 건 좀 꼴불견이었으니까."
"아… 네……."
이젠 그의 아내가 된 혜진의 말에 민희는 과연 동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사이 혜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다는 게. 그것도 자존심에 똘똘 뭉친 사람이 말이야."
"저는… 그냥 1등을 하지 못한 2등의 열등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요."
"응. 아니니까 내가 결혼까지 한 거잖니."
"아~"
혜진의 말에 민희는 이전에 아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셨지. 자기 멋대로 착각하고, 잘못된 판단을 옳다고 믿고, 상황을 핑계로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역사적으로 학살을 자행한 독재자도 가정에서는 따뜻한 가장이었다. 아담 후세인도 그러했다.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는 동물을 보호하는 법령을 현대국가 중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완 오빠가 동팔 오빠를 의식하게 된 이유는 뭐예요?"
"그거? 말하면 넌 말도 안 된다고 할걸."
"아니에요. 안 웃을 테니까 말해줘요. 언니."
"그건……."
대충 민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이 가는 혜진. 그래도 여기까지 말한 이상 말해야 했다.
"바로 동경이야."
"네? 말도 안 돼."
민희는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 나왔다. 방금 전에 혜진이 왜 말도 안 된다는 말이 나올 거라고 했는지 저절로 경험하게 되었다.
"아, 실수. 그런데 정말요? 그게 사실이에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혜진이 한 말이라면 웃으며 넘길 수 없다.
그녀라면 지완 자신도 모르는 부분을 바로 옆에서 보며 알고 있을 유일한 사람일 테니까.
"믿기 어렵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
이렇게 자신 없어 하는 말을 해도 그녀의 분석은 진짜다. 이미 그 결과가 메이저리그의 승률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직접적으로는 캔자스시티의 승률에서부터 간접적으론 아메리칸 중부 리그 전체까지.
그런 혜진이 내린 판단이니 많은 부분에서 신용할 수 있었다.
"자세히 말하면 애증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 지완이가 처음 동팔이를 봤을 땐 자기보다 뛰어난 모습에 신기하게 생각했고, 영웅처럼 동경했을 거야. 하지만… 너도 알고 있지? 동팔이가 어떤 사람인지."
이는 동팔이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것은 동팔과 사귀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의 옆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모습이었다.
"알죠… 자신이 집중하는 것이 아니면 주변을 살피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잖아요.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혹사를 했고. 그건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나마 방출 당하고 아마리그에 뛰면서부터 많이 나아졌지만."
"맞아. 동팔이는 경주마처럼 한 방향을 보고 주변을 살피지 않아. 그러니 자신을 향해 동경의 눈빛을 보내는 동년배의 친구가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지. 그리고 이 오해가… 생각보다 큰 틈을 만들어 버렸어."
민희는 혜진이 방금 한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아… 그래서 애증이라고 하신 거군요. 동경에서 시작되었지만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되는 행동에 상처를 받아 집착하게 된……."
"응.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지. 그랬는데 갑자기 동팔이가 부상으로 방출되니 잠시 마음이 겉돌아서 날 꼬신 거야."
혜진의 말에 민희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민희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예은이를 고쳐 안으면서 말했다.
"네? 그걸 알면서도 넘어가 준 거예요?"
"응. 솔직히 말하면 날 노리는 이유가 기분 나빠서 계속 찼거든. 그래도 나중에 정신을 조금씩 차리고 제대로 달려들었지."
"그럼 그때부터?"
"아니. 그때까지도 별로 생각은 없었어. 다만… 그때 나는 동팔이에게 필요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어. 지완이에게는 내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조금씩 마음이 갔을 뿐이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자신의 행복을 채우는 혜진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의리와 마음을 지켜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옆에 있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동팔의 말을 들어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힘들 때 부르는 지완을 도와줄 때마다 점점 마음이 움직였다.
결국에는 서로를 위해 헤어지자는 말을 했지만, 그때 동팔이 겪었을 절망을 모르지 않았다.
미안하긴 하지만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이 동팔에게 더 안 좋다는 걸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면서 지완이에 대해 알게 된 거지. 자신이 한 일에 확실히 책임을 지는 성격이라 어느 정도는 믿고 갈 수 있다 생각해서 결혼한 거고."
전부는 아니지만, 이번 이야기를 통해서 민희는 혜진이 지완과 결혼하게 된 이유를 대략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지완이는 자신의 본심을 잘 몰라. 아마 말하면 네가 한 말을 그대로 할걸."
"음… 그건 저도 인정할게요. 솔직히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어요. 언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무슨 헛소리냐며 무시했을 걸요."
***
한편, 오늘도 여전히 구단 전용 훈련장에 온 지완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었다.
휙~ 퍽!!
곧 있을 선발등판을 대비해 전력보다 상태를 체크하는 정도였다. 공을 가볍게 여러 번 던진 후, 그에게 감독이 다가왔다.
"몸은 어때?"
"괜찮습니다. 평상시와 같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잘 알고 있겠지만 무리하지 마."
"항상 주의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지긋지긋한 잔소리였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지완도 자신의 몸 상태 정도는 항상 파악하고 있다.
'잠재력을 끌어올렸을 뿐이지 회복이 빠른 건 아니야. 그건 동팔이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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