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80화 (180/325)

[180]

그래서 악마는 자신이 계약자의 마음을 풀어놓게 하려고 온갖 감언이설은 물론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며 치켜세운다.

다만 그 잠재력은 어디까지나 잠재하고 있을 뿐인 능력. 노력하지 않으면 구현되지 않는 부질없는 것이었다.

물론 설령 진출하더라도 그들이 해방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악마는 그것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걸 말하면 누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갈까.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 상대가 잘못 짐작하게 만드는 것으로 악마들은 계약을 제시한다.

하지만 악마들의 노력을 하지 않게 하려는 속삭임에 속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면 거의 대부분은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게 된다.

바로 이들처럼.

그러니 이 두 사람은 악마 계약자들을 볼 때, 기본적으로 무시했다.

"그런 놈들이야 뭘 해도 여기에 올라올 수 없으니 신경쓸 거 없어. 세상 사는 것을 쉽게 생각한 대가. 그리고 노력도 하지 않고 성과를 얻으려는 이기적인 놈들이야."

그들은 자신과 같이 악마와 계약을 한 사람들을 경멸했다. 하지만 반면 그들이 사람을 무조건 경멸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계약을 하지 않고, 여기에 온 친구들은 정말 대단한 친구들이야. 존경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악마에게 능력을 받고, 이것을 이용하여 이 자리에 왔다. 이미 두 사람은 투수와 타자로서 팀내 최고 위치에 왔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겪었기에 최고의 자리가 아니라더도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25인 로스터가 아니라 40인 로스터 명단에 들어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단 강동팔이라는 친구가 생각보다 유능한 것 같아. 능력은 어떤지 짐작이 가?"

"아니, 모르겠어. 분명히 구위는 좋아. 하지만 다른 녀석들처럼 이질적인 느낌은 없어. 이번에 한국에서 온 녀석들 전부 다."

이미 그들은 동팔은 물론 동욱과 지완에 대한 조사를 자체적으로 했다.

같은 팀이라면 몰라도 다른 팀에 있는 이상, 최소한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리고 제일 가까운 동팔은 최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할 경쟁자였다. 적어도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이번 시즌밖에 없는 이상, 동팔은 그들에게 적(敵)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또한 동팔은 다른 두 사람과 달리 메츠의 두 사람에게 특히 중요했다.

"이번에 있을 인터리그에서 맞붙기 전에 파악해야 해. 그래야만 공략이 가능할거야."

"그렇지. 동욱이나 지완이 있는 구단은 리그 자체가 달라서 붙을 일이 없지만, 동팔은 아니지."

메이저리그는 두 개의 리그로 구성이 된다. 그 중에 동팔이 있는 뉴욕 양키즈는 아메리칸 리그. 같은 지역이지만 뉴욕 메츠는 내셔널 리그에 속해 있다.

보통 메이저리그 경기가 같은 지역끼리 76경기. 같은 리그 내, 다른 지역끼리는 66경기가 치러진다. 그리고 이벤트와 같이 다른 리그끼리 경기를 치르는데 이것은 총 20경기를 치른다.

그래서 한 시즌에 총 162경기를 치르는데 인터리그는 보통 같은 지역 안에 있는, 다른 리그끼리 붙는 라이벌전 격인 경기였다.

당연히 지역 라이벌끼리 붙는 만큼 팬들의 관심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 중에 같은 뉴욕에 있는 양키즈와 메츠의 인터리그는 서브웨이 시리즈라 불리고 있었다.

두 팀이 지하철로 오갈 수 있을 만큼 가깝기에 생긴 별칭이었다.

다른 선수가 있는 구단과 다르게 직접 승패의 영향을 주게 되는 만큼, 동팔을 신경쓰는 것이 당연했다.

적어도 뉴욕 양키즈가 포스트시즌에 입성하지 않으면, 강력한 경쟁자 하나를 떨어트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만큼 자신들이 조건을 만족시켜 계약으로부터 해방될 확률도 높아진다.

무엇보다 이들은 절박했다.

"올해… 반드시 이번 시즌 안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야 해. 안 그러면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이번이 좋은 기회야. 지난 시즌엔 우리가 서로 경쟁을 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잖아."

그나마 특급 투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은 저스틴 워커가 뉴욕 메츠로 들어왔다.

그러기위해 지난 시즌에서 일부러 부진한척 하고, 가망이 없어 보이는 모험을 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

자신의 의지로 구단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둘이 힘을 합치면 월드시리즈 우승 확률은 확연히 늘어나게 된다.

그 덕분에 지금 뉴욕 메츠는 내셔널 리그 동부지역 1위를 수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양키즈와 동팔에 대한 정보를 다 확인하자 보고 있던 패드를 껐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지금 당장 붙는 것은 아니잖아. 조만간 만나겠지만, 그 때를 기다리자."

"물론. 이 바닥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원숭이 새끼에게 확실히 각인시켜 줘야지."

***

동팔과 같이 팀 내 3선발인 지완은 시차가 조금 있어서 그렇지 동팔과 같이 오늘 선발 등판했다. 그리고 그는 돌아오면서 혜진의 마중을 받았다.

"예은이 자?"

"응. 볼래?"

아빠가 갓 태어난 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비록 몸은 선발등판으로 피곤하지만, 잠든 딸의 얼굴을 보면 피로도 사라진다.

그나마 지금 대부분의 육아를 혜진이 담당하고 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는 육아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 제대로 겪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는 건 아니다.

홈경기가 있을 때엔, 아침에 일어나 육아와 집안일로 지친 혜진을 대신한다. 다만 절반이 원정이고, 이동 시간을 감안하면 앞으로 절반 이상은 도와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딸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아빠라는 말을 늦게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완은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주고 있었다.

그러니 지완은 알고 있다.

자고 있는 아기가 제일 착한 아기라는 사실을.

평범한 말로 집에 들어왔지만, 지완은 이 순간이야 말로 전투임을 알고 있었다.

아기가 깨지 않게 얼굴을 보느냐. 아니면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아기가 깨어나느냐의 전투.

지완이 승리하면 귀여운 딸의 얼굴을 보며 아빠미소를 짓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아기가 깨어나면 다독이며 다시 잠을 자도록 해야 했다.

이미 깨어나 잠이 달아난 아기를 다시 재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지완은 자신의 움직임을 철저히 통제했다.

지완은 한 밤 중에 자고 있는 예은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특수부대원이 보면 감탄할 정도로 은밀하고 기척조차 없이.

하지만 아기의 예민한 감각은 특수부대원보다 뛰어난 것 같다.

"우웅……."

"……."

예은이 뒤척이자 다가가던 지완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더불어 뒤에서 보고 있던 혜진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더 이상 반응이 없자 지완은 안도했다.

'휴~ 그냥 잠에서 뒤척이는 거였나?'

그 생각이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언제라도 깰 수 있을지 모르니 조명의 변화는 최소한으로, 그리고 소리는 없어야 한다.

아빠와 엄마의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예은이는 잠시 뒤척이다 멈추었다. 겨우 안도하려는 찰나, 위험은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에도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야!!! 날 무시해?"

"꺼져!! 내가 왜 너 같은 거랑 만나서 이 고생이야!!"

바로 옆집에서 오가는 고성. 덕분에 편안한 잠을 자던 예은이 깜짝 놀라 깨고 말았다.

"으앵~!!"

사이렌 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우는 예은이. 비록 아기가 안 깨어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그대로 볼 수 없다.

"예은아, 무서웠어? 괜찮아, 아빠 여기 있어. 엄마도 같이 있어."

옆집 부부싸움으로 인해 유탄을 맞아 피해를 본 지완과 혜진, 그리고 예은이. 지완과 혜진은 갑작스러운 고성에 놀라 무서워하는 딸을 다독인다.

딸이 무서워하며 자신에게 안기는 것을 느끼는 지완.

자신의 분신이자, 아주 작고 따듯한 생명이 기대는 느낌은 직접 겪지 않고선 표현할 방법이 없다.

작고 여린 손으로 이제 막 돌아온 유니폼을 꽉 움켜쥔다. 그리고 왼쪽 가슴 위로 닿은 얼굴에선 뜨거운 눈물이 나와 조금씩 적시고 있다.

지완은 여전히 울고 있는 예은이의 등을 다독인다. 그러면서 아주 작은 후회가 스쳐지나갔다.

계약 조건을 완수하지 않는 이상,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봐야 2년 반이 전부.

그 시간이라면 안고 있는 아기가 제대로 뛸 수 있기 시작할 때, 그리고 아빠를 인식하고 한참 자신의 고집이 생겨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할 때.

미운 3살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그것도 못 보고 갈 수 있었다.

지완은 그런 딸을 두고 떠나야 한다. 가족 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슴 속에 묻은 상태로.

물론 자신과 결혼한 혜진도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지금은 여전히 작고 어린, 딸이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완은 떨어지지 않는 딸을 안으면서 결의를 다졌다.

'질 수 없어… 절대로…….'

처음에는 동팔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아주 단순한 집착이었다. 목표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동팔보다 먼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완수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지금 자신의 품에 안기며 응석을 부리는 딸을 위해서라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뜨거우며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이유가.

# 비수, 보이지 않는 예리한 칼

어제 옆집의 부부싸움 덕분에 예은이가 깼다. 다시 어르고 달래며 잠을 재운 그 다음날.

지완과 혜진은 아침부터 옆집의 사과를 받았다.

"어제 죄송했습니다. 너무 울컥하는 바람에 소리를 질러서……."

"애가 많이 놀랐었죠? 미안해요."

그들도 아기를 키운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자신들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동시에 지완과 혜진은 예은이로 인해 민망했다.

'설마 울음소리가 거기까지 들렸나?'

'부부싸움 하면서도 들릴 정도면 대체…….'

또한 이외의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모로서 내 자식이 천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피할 수 없었다.

'예은이 목청이 크다고 느낀 게 착각이 아니었어?'

'목이 좋으니 나중에 가수 시켜 볼까?'

덕분에 앞으로 자중하겠다는, 솔직히 믿을 수 없는 약속과 진심어린 사과를 받았다.

지완은 출근하기 전, 혜진을 대신해 예은이를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간단히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미안한데, 오늘부터 원정이라서 못 올 거야."

"괜찮아. 한두 번도 아니고, 프로야구선수라면 어쩔 수 없지."

일주일에 절반을 외박해야 한다. 어쩌면 이혼사유가 될지 모를 상황이지만, 이미 결혼하면서 알고 있었던 일.

그래서 혜진은 이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뭐해? 심심하지 않아?"

"예은이 덕분에 심심할 일이 있을까. 그리고 자료 보는 재미도 있고."

"아… 그거?"

투수는 마운드에서 공을 던진다. 그것도 타자가 제대로 치지 못할 공을 던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타자에 맞는 볼배합을 생각해야 한다.

당연히 상대해야 할 타자에 대한 분석은 필수. 그나마 투수라면 모든 경기에 뛰는 건 아니라서 포수보다 상대적으로 분석을 덜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하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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