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괜히 잘못해서 코가 꿰이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 중 하나였다. 그리고 친구가 해준 말대로, 김대리가 해준 조언대로 한인교회를 찾아오자 어떻게 연결이 된 사람이 친절하게 다가왔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 것. 그리고 이미 어제 동팔에게 허락을 받은 것이 있었다.
"차는 어떤 걸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건…여기서 사용할 거니까 튼튼하고 힘이 좋은 게 좋겠죠?"
"하긴 여기 땅이 보통 넓어야지. 한국 시골에서도 차 없으면 불편한데 미국은 어떻겠어요. 시내를 돌아다닐 정도면 작은 차가 좋겠지만, 확실히 이런 곳이면 지금 타고 있는 이것도 나름 괜찮아요. 가격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나요?"
"아주 비싸거나 고급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했어요."
"어머, 남편분이 돈 많이 버나 보네. 그리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갈 때, 중고차로 다시 파는 것도 괜찮으니 튼튼한 걸로 생각하면 되겠어요."
"네… 그런데 편히 말씀하세요. 제가 많이 어린데요."
"그럴까? 어려 보이는 아가씨인데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이제 스물여섯이요."
민희의 말에 아주머니는 깜짝 놀랐다.
"정말? 어려보인다고 생각은 했지만 스물여섯에 결혼한 거야? 그럼 남편은?"
"저보다 한 살 더 많아요."
"스물일곱에 미국 출장을 오다니… 남편 되는 분이 많이 유능한가보다."
유능한 것을 넘어 투수의 관점에서 보면 만능이었다.
"네, 인정을 받으니 좋죠."
"그래도 너무 빨리 결혼하지 않았나 후회하지 않아요? 스무살 중반이면 둘 다 좋을 때인데."
보통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동팔과 민희의 상황은 보통이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두 사람이 가능한 오래 같이 있기 위해선 이른 결혼이 아니면 다른 길이 없었다.
그래도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이 사람이다 싶으면 처음부터 같이 사는 것도 좋잖아요.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헤매다가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요."
"젊은 사람이 생각보다 보수적이랄까… 아니면 반듯하다고 해야 할까. 하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빨리 하는 것이 어떻고, 늦게 하는 건 또 어때. 사람 사는 것이 어디 다 똑같나."
자신의 젊었을 적의 생각. 그리고 그때부터 살아온 인생의 경험에 의해 그 생각도 바뀌게 된다.
살아온 시간이 길면 길수록,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어지는 이야기도 많아진다.
"잘 나가는 남편을 둔 친구를 부러워해도 나중에 그 친구가 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날 때도 있었고, 반대로 어떻게 저런 인간이랑 빨리 결혼해서 고생하던 친구가 지금은 잘 되는 걸 볼 때도 있었어.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하는 말이 왜 그런지 세월이 지나가면 더 많이 보게 된다니까. 좋은 때 이런 말해서 뭐 하지만, 항상 이 말을 기억해. 어차피 모든 것은 흘러가게 되어 있어. 좋은 때도, 나쁜 때도.
"
그 이후로 시내에 도착할 때까지 아주머니의 걱정과 관심이 어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시내에 도착하자 아주머니가 말했다.
"내가 새댁한데 너무 잔소리했네. 미안해."
"아니에요. 좋은 말씀해주신 걸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그래서 차를 주문하는 것부터 해야지? 그리고 그 다음에 어디 갈 거야? 이왕 여기에 온 것 살 거 있으면 다 사는 게 좋아. 한 몫에 많이 사고, 창고에 보관한 다음 두고두고 써야 해. 아, 그리고 물 아껴 쓰고. 가스비나 기름은 한국보다 싸지만, 여기 수도세는 엄청 비싸. 혹시 식기세척기 있어?"
"아뇨, 지금은 한국에서처럼 설거지 하고 있어요."
민희의 말에 아주머니가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아이고! 큰일 날 사람이네. 이사온지 얼마나 됐어?"
갑작스럽게 야단을 맞자 민희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사실대로 말했다.
"한 이틀 됐어요."
"그래? 휴~ 그럼 다행이고. 여긴 한국에서 설거지 하듯이 하면 안 돼. 이참에 집에 가면서 살림하는 법 나한테 다 배워. 한국 방식이 있지만, 미국에선 미국 방식대로 해야 아끼고 살 수 있어."
틀림없이 한국에서 엄마에게 살림을 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부 소용없는 것이 된다는 사실이 못내 억울한 민희.
그러자 아주머니가 말했다.
"지금 심정 다 알아. 살림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다르니까 배우자~ 그 말이지. 나도 미국 처음 왔을 때, 먼저 온 언니들에게 그 말 들었을 때 얼마나 야속하고 속이 상했는지 몰라.
하지만 막상 이야기 듣고 배우다보니 고맙더라고. 안 그랬으면 세금폭탄 맞을 뻔 했어. 그럼 식기세척기도 사야겠네. 다른 거 더 살 것 없어? 식료품도 사야 하는데 싸고 많이 살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거기로 가면 될 거야.
"
아주머니의 정신없는 말에 민희는 바로 어제, 동팔과 통화하면서 부탁받은 것을 떠올렸다.
'내일 마트에 갈 때, 야구공크기 만한 쇠로 된 공을 몇 개 사줘. 그리고 폐타이어는 아니더라도 강하게 맞아도 괜찮을 단단한 완충제도. 혹시 사람이 필요하면 부르고.'
무거운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 확실히 사람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갑자기 사람을 부르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고, 혼자 사는 중이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
주문한 차가 도착할 때까지 사용할 식재료와 물품, 그리고 아주머니가 말씀하신대로 식기세척기 및 동팔이 말한 것만 산다면 사람을 부를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빠가 부탁한 것이 있어요."
"그럼 그것도 같이 하면 되겠네. 그럼 가자."
"네."
아주머니와 같이 가면서 민희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왜 갑자기 사달라고 한 거지? 뭐에 쓰려고?'
그리고 민희의 의문이 풀리는 건 그리 멀지 않은, 아주 가까운 미래였다.
***
민희와 아주머니의 쇼핑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옷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식료품과 공구, 동팔이 부탁한 것과 자동차였다. 차의 경우는 가기 전에 이미 알아본 모델이 있어서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었다.
차가 바로 오는 것도 아니고, 신고를 거쳐야 하니 아주머니의 차량으로 나머지 구할 것을 구했다.
"제가 들게요."
"아니, 됐어. 혼자 옮기면 시간 많이 잡아먹잖아. 빨리 가서 문 열어 놓으면 돼."
민희의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이 많은 짐을 내리던 때는 늦은 오후.
그리고 옆집의 2층에선 두 사람이 짐을 내려놓는 것을 보는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쉽게 보지 못했던 동양인을 보자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층에 계시던 소년의 어머니가 소리쳤다.
"지미!! 어디 있니!!"
"저 방에 있어요!!"
"숙제 다 했어?"
"아뇨, 곧 할 거예요."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 했니. 숙제를 먼저 하고 놀라고 했어, 안 했어!!"
쿵쾅거리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지미는 창밖을 보던 것을 그만두고 책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재빨리 책을 폈다.
똑, 똑.
아이라도 자신의 방이 있는 이상, 한 인격체에 대한 존중으로 노크를 하는 엄마. 노크 소리가 들리자 지미는 바로 말했다.
"들어오세요."
탈칵.
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그리고 책이 펼쳐진 것을 보자 그녀의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지미."
"네, 엄마."
"책이 거꾸로 구나."
후다닥.
엄마의 지적에 지미는 서둘러 책을 뒤집었다. 그리고 책을 보자 오히려 책이 뒤집혀 있었다.
"어? 뒤집혀 있었다면서요?"
지미의 물음에 엄마가 되물었다.
"책 방금 폈지? 이미 보고 있었다면 뒤집기 전에 아니라고 말 했을 거야. 안 그러니?"
엄마의 지적에 지미는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엄마는 지미가 방금 전에 책을 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야단을 치지 않았다.
"숙제가 뭔지 알고 있으니까 한 시간 안으로 해놓으렴. 게임이랑 공놀이는 그 다음에."
엄마의 말에 지미가 따졌다.
"게임은 밤이라도 할 수 있지만, 야구는 밤에 못해요."
"그래도 캐치볼 정도는 할 수 있잖니. 정 야구를 하고 싶으면 학교 야구팀에 들어가서 하면 되는데 왜 안 들어가고 있어?"
"그건…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요."
"또 말할 수 없는 사정. 혹시 로키랑 어울리느라 그러는 거니?"
엄마의 물음에 지미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그 아이가 슬럼가에 널 데려가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어울리지 마렴."
"하지만 로키는 착한 아이에요."
지미의 반론에 엄마가 답했다.
"그 아이가 착한 아이인 건 알지만, 주변까지 믿을 수는 없어."
하지만 지미는 지고 싶지 않았는지. 그리고 친구를 끝까지 변호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지미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자 다른 말로 관심을 돌렸다.
"그런데 계속 이러면 숙제 못한다. 숙제 못하면 못 나가는 거 알지?"
결국 승자는 지미도, 엄마도 아니었고 학교에서 내준 숙제가 승자였다.
***
한편, 스프링캠프를 마무리하고 뉴욕으로 돌아오기로 한 날.
이날은 여유가 있기에 지예가 동팔과 공식적인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감독님께 듣기로는 양키즈의 제 3선발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해? 실력으로 따지면 제 1선발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실력만으로 설 수 있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투수마다 던지는 유형이 다르니 직접 비교는 할 수 없죠."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어디까지나 독자들과 팬들이 궁금해 할 것을 추려서 하는 거거든. 굴러온 돌이 갑자기 1선발이 되는게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어."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데려온 투수라도 바로 선발로 내세우는 것에는 검증이 필요하다. 그래도 WBC에서 메이저리그 타자에게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3선발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지예의 말대로 방금 팀에 들어온 투수가 1선발이 된다는 것은 미묘한 문제였다. 두 사람 다 한국 사람이었고, 주변에 한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없어 두 사람은 이 부분에 있어서 눈치를 보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감독님 입장에서 팀 전체 분위기를 생각하셨겠지. 실력으로 보면 1선발이 돼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래도 에이스 중에 에이스라는 1선발의 무게가 있으니까. 그런 자리를 처음 온 너에게 맡기면 투수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미묘하게 흐를 거야.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 쌓이는 긴장과 함께."
뛰어나다고 무조건 칭찬과 경외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 못지않게 시기와 질투 또한 받는다. 하지만 동팔이 1선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동팔도, 지예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계속 변함없이 뛰어난 구위를 보여주면 동료들도 납득하겠지.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버티고 또 버텨주면 그들도 널 받아들일 거고. 아마 중반 이후엔 네가 1선발이 되어도 시기할 사람은 없을 거야.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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