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56화 (156/325)

[156]

강속구가 일반적인 메이저리그에선 타자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예상해야 투수의 공을 칠 수 있다.

그래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구종의 숫자가 많을수록 타자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물론 이럴 필요가 없는 타자가 한 명 있기는 하다.

강속구라도 보고 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좌우지간 양키즈의 선수들은 동팔의 구위에 토머스를 포함한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헛스윙을 하며 삼진당하는 것을 봤다.

그의 공에 미심쩍은 생각을 가지던 선수들도 이젠 그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마냥 좋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초반에 인식의 차이를 이용해서 승리할 기회가 있었는데……."

리그 초반에는 신인에 대한 분석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때로는 신인이 의외의 활약을 하며 돌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신인은 다른 팀에 있는 분석관들에 의해 철저히 파해쳐 진다. 그리고 약점을 발견하면 구위가 떨어지지 않아도 성적이 떨어지는 상황이 오기 마련.

그러니 뛰어난 신인 투수가 들어왔다면 그 타이밍을 잘 이용하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최상이라는 것이지 모든 신인 투수가 돌풍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메이저리그는 노력하는 야구천재들도 버티기 어려운 곳.

어설픈 실력으로는 돌풍을 일으키기도 전에 아침안개보다 더 빠르게 사라진다.

그런데 좋은 기회를 맞이하기도 전에 WBC에서 너무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니 생각보다 다른 팀에서 동팔에 대한 분석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았다.

동팔을 영입하기 전에도 분석을 했겠지만, 당시에 하던 분석보다 더 강도 높은 분석일 것이 뻔했다.

하지만 현재 양키즈 감독으로 있는 존 지라디는 확신하고 있었다. 동팔은 반드시 메이저리그에 돌풍을 넘어 폭풍을 일으킬 선수라고.

그리고 그는 동팔이 잘 할 것을 확신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헤이, 캉. 하와이는 어땠어? 가 볼만 해? 난 미국 살면서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신혼여행이라 그런지 편하게 있다가 왔어."

"하와이에 사는 양키즈 팬이 벌써 트위터에 사진 올려왔더라. 그거 정말 너야? 올린 사람 이름이 필립이라고 했어."

"아~ 필립. 그분 덕분에 편하고 알차게 갔다 왔지."

올해 들어온 신입답지 않게 벌써부터 다른 선수들과 친해졌다. 이게 가능한 것은 그가 이전부터 영어회화에 집중하여 공부한 덕분.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니 안 친해질 수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팀에 녹아들지 못하면 계속 쓰는 것도 고민이 된다.

하지만 동팔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감독으로선 외국인 투수가 왔을 때의 제일 큰 걱정을 덜었다. 거기에 통역도 필요 없으니 그에 대한 사소한 지출도 없어서 재정적으로도 약간 도움이 된다.

훈련의 시작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

처음에는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달리기와 같이 유산소 운동으로 체력을 키운다. 덤으로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급격한 움직임에 몸이 놀라지 않도록 한다.

이후에는 각자의 위치에 맞는 훈련을 한다.

리그가 진행 중인 것이 아니라 훈련은 무리하지 않을 범위로 강하게 한다. 그 중에 동팔이 하고 있는 것은 강속구의 구속을 끌어올리는 것.

스윽~ 휙!!

빠르게 휘둘러진 팔에서 쏘아지는 공은 시속 100마일에 걸치고 있었다. 동팔이 던지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던 투수코치가 동팔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100마일도 메이저리그에선 빠른 공이야. 그래도 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올리고 싶어?"

그는 동팔의 진정한 가치는 빠른 공이 아닌, 투구가 완벽하게 제어가 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강속구의 투수가 인기몰이를 하는 반면, 제구력이 좋고 변화구의 움직임이 좋은 투수는 팀에 승리를 안겨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릴 수 있다면 103마일(약 165킬로미터)까진 올리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글쎄……."

빠른 속도는 순간적으로 얼마나 강한 힘을 공에 전달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힘은 어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얼마나 빨라지는지(F=ma)로 수치화 할 수 있다. 무언가 묻지 않는 이상, 야구공의 질량이 바뀔 일은 없으니 강한 힘을 주면 그만큼 가속도가 높아진다.

가속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손에서 공이 떠났을 때 최종 속도도 높아진다는 것.

바꿔 말해 공을 던지는 [짧은 순간]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강한 힘]을 싣는지가 관건이다. 단순히 힘이 강하다고 공이 빠르지 않은 이유는 [짧은 순간]에 탄력적으로 던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캉의 동작은 거의 완벽해. 괜히 수정했다간 오히려 흐트러질 거야."

코치의 말을 듣자 동팔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럼…결국 힘을 높여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하지만 이건 선천적으로 타고나거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해야 가능한 거니 빠른 시간에 올릴 생각은 하지 마. 조급하게 구속을 끌어올리려다가 몸이 상하니까."

"알고 있습니다. 이미 한 번 겪어 봤거든요."

동팔의 말에 코치는 웃으며 말한다.

"아, 그랬었지. 코리안 피닉스. 하하하."

그들도 동팔이 어떻게 프로에 복귀했는지 들어서 알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른 선수들을 통해서 많이 봤었다.

재능과 운도 있어야 하지만, 본인의 의지가 강하고 끈기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할 수 없는 것이 재활과 재기였다.

한 두 해의 재활도 쉽지 않아 선수생활을 접는 경우가 꽤 많다. 하지만 1년의 재활기간에 전혀 나아지지 못해서 방출이 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3년의 시간을 더 버텼다.

그리고 결국 프로에 다시 입단하게 되었고, 지금은 메이저리그에서도 강팀인 양키즈의 에이스 투수로 들어왔다.

아직 동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모르는 이야기. 그리고 동팔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도 자세히 모르는 이야기였다.

지금 미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몰라도, 팀의 선수들과 코치들 및 감독. 그리고 필립과 같이 열성 팬들 중에선 약간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 동팔의 별명은 코치가 말 한대로 한국에서 온 불사조, 코리안 피닉스였다.

코치의 말에 동팔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무리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역시나 힘인가? 단번에 힘을 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전, 산속에서 했던 혹독한 수련이었다. 손가락과 팔의 인대가 실제로 끊어지도록 돌로 된 공을 던진다.

그리고 새벽에 끊어진 인대와 파열된 근육이 다시 회복되면서 차라리 죽고만 싶었던 순간.

확실히 훈련은 효과가 있어서 시속 155에 있던 구속이 단번에 160까지 치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 같은 훈련을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그것만으로도 한국 리그를 충분히 씹어 먹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다시 그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걸 알면서도 동팔은 그와 같은 훈련을 다시 할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만든 이유는 있었다.

'WBC에서 미국 타자를 상대할 때, 안타를 몇 개 허용했어. 한국이라면 동욱이만 쳤을 구종이었는데…….'

이것은 미국의 타자들이 동욱이와 비견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의 타자보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타자들의 수준이 더 높다는 의미였다.

'메이저에서도 160의 속도는 강속구에 속해. 분명히 빨라. 하지만 그 정도 공을 던지는 투수는 한국보다 훨씬 더 많아. 그러니 아무리 전력으로 던져도 간파하고 칠 수 있었던 거지.'

100마일. 정확히 161키로의 속도로는 메이저에서 강력한 것을 넘어 압도적인 강속구는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타자들이 감히 노리지 못할 구속이라면 적어도 165. 아니면 뱅가너와 같이 170에 달하는 구속이어야 했다.

하지만 체구가 좋고, 키가 크며, 근육양이 선천적으로 많은 서구인에 비해 동양인은 강속구를 던지기에 불리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건 없다. 동팔에겐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힘이 있으니까.

'지금은 그럴 수 없어. 하지만 캠프가 끝나고… 집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해.'

아무리 심한 부상이라도 하루 만에 다 낫는다. 그리고 고통이 너무 극심하더라도 사흘로 분산시켜 회복되는 능력이 있다.

그로인해 따라오는 고통이 두렵다. 하지만 지금의 동팔은 다른 것이 더 두려웠다.

'다만…민희가 많이 슬퍼하겠지만…….'

#다시 한 번 극한을 향해

민희는 지금 처음 만난 아주머니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비싼 값을 할 외제차였지만, 미국에선 국산차로 바뀐다.

거기에 한국 자동차보다 수입차가 더 좋은 것은 해당 국가에서 적용하는 법적인 기준이 다르기 때문.

그러니 같은 회사에 같은 메이커라도 어느 나라에 판매되느냐에 따라 품질과 가격이 바뀐다.

우스운 건, 한국 회사에서 만든 차량이라도 미국에서 파는 차량에 비해 국산판매 차량이 더 비싸면서 품질이 낮다.

그렇다면 보통 수입용 차량을 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한국 자동차 업계는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수입용 차량을 구하려고 하면 쉽지 않거니와, 사고가 날 경우 보험 적용이 안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건 한국에서 할 걱정이지 미국에서 할 걱정은 아니었다. 지금 민희가 타고 있는 차량은 한국에서 몰던 아기자기한 차가 아니라 4륜구동의 오프로드 차량이었다.

차에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도록 부피가 크고, 엔진의 힘도 좋아 언덕도 쉽게 올라가는 SUV차량.

그리고 운전을 하는 아주머니가 민희에게 물어봤다.

"목사님께 들었는데 얼마 전에 이사왔다면서요? 한국에서 바로 온 건가요?"

"네… 김명희 집사님……."

"집사님은 무슨. 교회 처음 오셨으면 그 말이 입에 잘 붙을 테니 편하게 말해요. 어떻게 부를지 모르겠으면 그냥 이모님이라고 해. 그나저나 젊어 보이는데 혼자 오셨어요? 아니면 가족?"

"오빠랑, 아니 남편이랑 같이 왔어요."

"아~ 그럼 신혼부부구나. 신혼이면서 바로 미국에 오는 것이 쉬운 건 아니었을 텐데. 혹시 출장인가요?"

"네… 오빠가 한 2년 정도 미국 출장에 가야 해서요."

한국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것도 넓게 보면 미국 출장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구나. 그래도 비지니스 쪽이면 비자 받는 것이 그나마 낫긴 하지. 10년 전에는 미국 비자 한 번 받으려면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주머니의 말에 민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맞아요. 저도 아빠한테 그렇게 들었어요. 저희는 회사에서 알아서 처리해 줬으니 망정이니, 혼자 했으면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민희는 남편이 한국 최고의 투수인 강동팔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동팔의 얼굴이야 많이 알려졌지만, 민희는 가끔 중계화면에 잡히는 정도가 전부라 그 반대였다.

민희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친구의 조언 때문이었다.

'유명인이 되면 여러 가지로 피곤해지니까 처음부터 말하진 마. 알겠지? 그 교회가 정말로 좋은 교회인지 아닌지. 그리고 거기 교회 사람들의 성향이 어떤지 파악하기 전까지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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