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99화 (99/325)

[99]

"나중에 경찰서에서 얼굴 보는 것보다 집에서 보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그만하고 가셔야 합니다. 선배님."

후배의 말에 민희의 아빠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가 이를 갈자 조폭들이 했던 것처럼 후배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현역 때는 최소한의 선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없잖아. 전역한 상황에 뭐가 두렵겠어.'

'거기에 딸이 그 꼴을 당하는 걸 참으며 봤던 게 터졌으니…….'

분명히 자신들은 넷이었지만 혼자인 민희의 아빠를 막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조폭과 달리 후배들의 말에 민희 아빠는 화를 참으며 발길질을 멈추었다.

"그렇지… 그 말이 맞아."

그들은 호텔 문을 다시 세워서 막았다.

물론 뜯어진 상태라 세워놓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2분 뒤, 그들이 말한 대로 십여 명의 경찰들이 도착했다.

"여기 맞지? 신고 들어온 곳이."

"맞습니다."

"그런데 문은 왜 박살이 나 있냐?"

그냥 걸쳐진 문에 불과했지만 경찰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기 위해 말했다.

"경찰입니다. 신고 받고 왔는데… 계십니까?"

하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마침 1층 로비에서 확인한 경찰관이 올라왔다.

"체크아웃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사람이 있다는 건데… 그럼 정말로 불법 도박하는 놈들이 있어서 그런가?"

그 말을 하면서 경찰은 슬쩍 문을 잡고 들어서 조금 옮긴 뒤 생긴 틈을 이용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헉!! 지금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전부 쓰러져 있습니다!"

"뭐?! 정말?"

부하의 보고에 상관은 즉시 문을 치웠다.

그러자 부하의 보고대로 기절해서 쓰러진 조폭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은 즉시 119에 전화를 하여 구급차를 부르는 한편, 쓰러진 조폭들의 상태를 보며 중얼거렸다.

"사람을 걸레로 만들어놨네… 걸레로 만들었어."

경찰들도 지금 깨워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여기 저기 돌아보고 있었다.

"여기 노트북 있습니다. 기록 좀 뒤지면 꽤 나오겠는데요?"

"계좌번호도 알아냈습니다. 자금 추적하면 여기 말고 다른 곳에도 다른 놈들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후임들의 말에 이들을 인솔하는 경찰관은 만족했다.

"알아낼 수 있는 건 전부 알아내."

그는 그들에게 말하지 못할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청장님은 여기를 어떻게 아시고 작전을 지시하신 거지? 역시 청장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건가?'

한편,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증거를 수집하며 구급대원들이 쓰러진 조폭들을 싣고 나왔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얼마 전, 조폭을 습격한 민희 아빠와 후배들이었다.

"지금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후배의 말에 옆에 있던 민희 아빠가 말했다.

"작전 종료. 수고했다."

그의 말에 후배들이 답했다.

"저희가 무슨 수고입니까. 전부 선배님께서 하신 거지."

"그때… 정말 잘 참으셨습니다. 저라면 바로 뛰쳐나갔을 텐데……."

그들은 민희가 풀려나기 전부터 그 주변에 있었다.

조를 나누어 내부를 살피고, 벽에 도청장치를 붙여 어떤 상황인지 바로 바로 알았다.

이미 도착했어도 민희를 구출하지 않은 이유는 있었다.

"그러면 오히려 좋지 않아. 놈들이 우리 민희를 인질로 삼을 수 있어."

방금 본 것처럼 민희 아빠 혼자서 폭력 조직 하나를 지웠다.

하지만 단순히 무력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법.

그래서 민희 아빠는 민희가 안전해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어차피 놈들은 돈이 목적이야. 민희를 죽이면 오히려 손해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주 유명한 선수의 애인이 도박 조작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러면 국민적인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경찰에서도 전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니까. 그러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오래 못 버텨. 오히려 숨어 다니는 데 돈이 더 많이 들 거다."

이미 그는 민희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설령 정말로 위험해질 경우라면 바로 움직일 준비를 끝냈다.

"그런데… 위치는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그건 친구를 통해서. 내가 인맥이 좀 넓잖아. 친구 중에 소방 준감이 있어서 휴대전화 위치추적 부탁했어. 경찰은 신청해도 바로 되지 않지만 119는 요청하자마자 바로 위치를 알려주거든."

"아, 그러셨군요."

그래서 동팔이 납치 사실을 알려주었을 때 확인을 요청한 것 중 하나가 민희의 번호로 전화가 왔는지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을 것이니 상관없었다.

한 단계가 더 추가될 뿐, 결과는 바꿀 수 없었다.

민희 아빠는 모든 것이 정리된 것을 보다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걸려온 통화는 없었다.

민희 아빠는 깨끗한 핸드폰 화면을 보며 말했다.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아빠한테 전화도 안 하고 애인하테 안겨 있겠다… 그 말인가?"

가족들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테니 안전하다는 전화라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아직 민희가 동팔을 만나기 전, 만나러 가는 중)도 여전히 민희에게 전화가 오지 않고 있었다.

그의 말에 후배가 말했다.

"딸자식만 아니라 아들놈도 키워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래도 딸은 늙어서 말벗이라도 해준다던데… 아들은 그것도 아니니……."

결국 아들이든 딸이든 부모 하기 나름인 법.

딸의 행동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자신이 해 왔던 것이 있기에 화를 내지 않았다.

"우리가 어쩌겠냐. 장교는 2년 이상 한 부대에 있을 수 없는데… 애들 얼굴 보고 싶어도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잖아."

군인 가족의 어려움이 한두 가지는 아니었지만 그중에 장교 가족의 경우 힘든 것이 바로 잦은 이사였다.

장교는 2년 이내에 부대를 옮겨야 했는데, 한 지역에서 돌면 모르겠지만 보통은 전국구 단위로 부대가 바뀌었다.

그러니 군인 가족의 아이는 이러한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전학을 반복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더 이상 이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학업을 위해서라도 가족들은 따로 살고, 본인은 관사나 군인 아파트에서 출퇴근하게 됐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군인 아빠는 자식들의 얼굴을 보기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관계가 서먹해졌다.

민희도 그것 때문에 아빠와 많이 싸우고, 가출을 반복해 왔다.

아빠도 민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의 사정에 의해 친구를 오래 사귈 수 없게 되는 건 아이들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문제임은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끝났으니 가볼까? 내가 쏘지. 어디 가고 싶어?"

그 말을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

"응? 누구……."

발신자를 확인한 그가 즉시 전화를 받았다.

"민희야! 괜찮아? 사위한테 이야기 들으니 안 좋은 일 당했다면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민희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아니… 좀 안 좋은 일은 안 좋은 일인데… 오빠 보고 사위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전에는 두고 보자고 했지 인정한 건 아니라며?

"아니. 이번에 보니 사람이 확실히 믿을 수 있겠더라고. 몸은 괜찮니? 아픈데 없어?"

―없어. 괜찮아. 그냥 걱정할까 봐 전화했어.

"그래… 그래도 엄마는 잘 모르고 있으니까 말하지 마. 알겠어?"

―응. 알았어. 그런데 나 먼저 오빠한테 가볼게. 지금 굉장히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서. 안심시키려면 직접 봐야 될 것 같아.

"그러도록 해라. 지금 굉장히 걱정할 텐데……."

통화는 길지 않았다.

"집에서 보자. 딸."

―갑자기 무슨 말투가 그래. 징그럽게… 알았어.

하지만 통화가 끝나도 민희 아빠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핸드폰을 품에 넣고 가만히 있었고, 어깨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민희 아빠의 후배들이 물었다.

"선배님… 혹시 우십니까?"

"아냐. 울기는 누가 울어. 인마……."

그렇게 말은 했지만 이미 그의 말에는 축축한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좋은 장난감을 발견한 눈빛을 한 후배들이 말했다.

"에이… 우시는 거 맞는데요?"

"운다! 운다! 선배님 우신다!"

"천하의 악귀도 딸에겐 어쩔 수 없는 아빠……."

쾅!!!

하지만 그들이 놀림도 민희 아빠가 발로 벽을 강하게 치자 알아서 멈췄다.

벽을 찼지만 건물이 흔들렸다.

덕분에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혼비백산해서 건물을 나왔다.

"뭐야, 뭐!!"

"지진이야?"

사람들이 놀라는 사이, 민희 아빠가 후배들에게 말했다.

"뒤지기 싫으면 주둥아리 닫아."

방금 전과 달리, 이번 말에는 살의가 어려 있었다.

후배들은 즉시 입을 닫았다.

'씨바… 놀리지도 못하고…….'

'전역해도 저건 어째 약해지지 않냐…….'

'오히려 더 강해졌잖아.'

콧등을 누르며 울음을 참은 민희 아빠가 몸을 돌려 후배들에게 말했다.

"가자. 내가 산다."

방금 전에 놀린 건 넘어가겠다는 그의 말에 후배들은 즉시 받았다. 그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네. 선배님."

시간이 지나 민희는 동팔과 만났다.

그리고 안도하는 선수들과 코치, 감독은 즉시 민희에게 응급조치를 하기 위해 의무실로 가게 했다.

그곳에서 소독을 하고, 얼음 팩으로 찜질을 하기 시작한 민희. 그녀의 옆에선 동팔이 얼음 팩으로 직접 찜질을 해주고 있었다.

동팔의 찜질을 받으면서 민희는 동팔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땐 정신이 없어 몰랐지만… 오빠한테 소리쳤다니…….'

분명히 자신은 납치를 당한 상황에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조폭들이 협박을 가하기 위해 맞기까지 했다.

이대로 있으면 동팔이 흔들려 불법 도박에 연루될 것이라 걱정한 민희는 극약처방으로 나갔다.

볼넷을 던져 도박에 얽히느니 어느 한 사람이라도 살기 위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둘 다 죽을 것인지. 아니면 둘 중 하나나 둘 모두 살 것인지.

죽기 직전의 자신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사고를 친 것.

효과는 좋았다.

동팔은 볼넷 차원이 아니라 무결점 이닝을 하나 세우기까지 했다.

그런데 자세한 건 알 수 없었지만 조폭들은 무언가 돈을 벌은 것이 확실했고, 그래서 자신을 풀어주었다.

풀려나서 다행이긴 했지만 오면서 걱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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