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48화 (48/325)

[48]

"잘 던지긴 하는데 볼 끝의 움직임이 좋지 않다. 회전이 얼마나 받는지 신경 쓰지 말고 최대한 빠른 속도에서 제일 많이 휘도록 해 봐. 스트라이크 존 통과한다 생각하고."

"네."

그의 말에 진혁은 최대한 잡아채서 공을 던졌다.

그러자 확실히 공이 더 휘기는 했다. 하지만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너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음… 그립을 보여줄래?"

"네."

동팔은 진혁이 방금 전에 잡은 그립을 직접 살펴봤다. 하지만 특별히 문제가 될 부분은 보이지 않자 다른 것을 물어 봤다.

"진혁아. 너 따로 손가락 훈련하니? 악력 훈련이라든가."

"그거요? 하기는 하죠."

"어떻게?"

"기구를 이용해서요. 쥐었다 폈다 하는 그거 있잖아요."

"아~ 그거. 그럼 내가 하는 거 한 번이라도 할 수 있니?"

"네?"

"일단 잘 봐. 특히 손가락."

동팔은 그 말을 하고 글러브를 벗었다.

그리고 푸시업을 하는데 손바닥으로 바닥을 집지 않았다. 손바닥을 떼고 양손의 다섯 손가락으로 체중을 지탱한 다음, 푸시업을 했다.

신체의 부위 중에 가장 가느다란 손가락이었지만 동팔의 손가락은 그의 체중을 거뜬히 지탱했다.

그것도 모자라 한 손으로 푸시업을 했다.

그 모습에 바로 옆에 있던 진혁은 물론, 몰래 지켜보고 있던 다른 선수들과 코치들도 놀랐다.

"야~ 동팔이 소림사에서 왔나?"

"당수 맞으면 우리 배 뚫리겠다."

그들의 감탄에 동팔은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일어나 말했다.

"내가 한 거 그대로 할 생각하지 말고 먼저 자세만 잡아."

"네……."

그 말을 하면서도 진혁은 자신이 없었다.

그는 먼저 손바닥으로 푸시업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바닥에서 떼어 손가락만으로 몸을 지탱하려 했지만 몇 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진혁은 동팔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냐. 됐으니까 무리하지 마. 처음부터 무리하면 나중에 손도 못 쓴다."

동팔의 경고에 진혁은 다시 일어났다.

"처음에는 몇 초 동안 자세만 잡다가 끝내. 그리고 더 익숙해지면 시간을 더 늘리면 되는 거고."

"네… 그런데 선배님은 이 훈련을 이전부터 해 오셨나 봐요."

"응. 어깨랑 등 근육이 상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훈련은 이게 전부였거든. 덕분에 악력에 많이 늘어나고 변화구의 제구에 더 편해졌지. 그래서 지금은……."

동팔은 그 말을 하고 공을 쥔 다음 던졌다.

팡.

진혁의 귀에 동팔의 손가락이 공을 강하게 채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옆에 있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진혁은 그 소리를 듣고 그의 공이 위력적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동팔의 공은 진혁의 투구와 달리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그리고 훨씬 더 많이 휘며 날아갔다.

"아, 참고로 악력은 기본적인 요소야. 이후에 이 악력을 바탕으로 열심히. 물론 혹사하거나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훈련을 해야 마음대로 공을 제어할 수 있어."

"아… 그렇군요."

착실하게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가능한 경지.

하지만 그 계단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그럼 선배님, 그 다음에 하는 훈련이 따로 있나요? 재활하셨을 때에?"

"그거? 있기는 있지. 그땐 120을 넘기 어렵던 때라서 제구력에만 전념했거든. 그 전에 기구가 있어야 하는데… 아. 저거면 되겠다. 나 좀 도와줘."

"네."

훈련 중에 잠시 쉬는 타임이었다.

동팔은 선발로서 컨디션 조절만 했고, 진혁은 셋업맨으로 대기하는 중이라 두 사람의 행동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모두 동팔이 어떤 훈련을 해 왔는지 궁금했기에 가만히 보고 있었다.

동팔과 진혁이 만든 것은 원형의 고리와 막대기를 조잡하게 이은 것이다.

"이걸로 어떻게 하신 거예요? 설마 고리에 공이 통과하게 하는 건가요? 처음에는 하나에서 익숙해지면 세 개까지?"

진혁이 그 말을 하면서도 믿지 않았다. 고리가 공에 비해 조금 크긴 하지만 원하는 곳으로 던져 넣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그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동팔은 놀란 눈으로 진혁을 보며 말했다.

"어? 어떻게 알았어? 원하는 변화구 코스로 고리를 설치한 다음 통과하는 거야."

"네?"

본인이 말했지만 동팔이 진담으로 인정할 줄 몰랐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투수들이 다가왔다.

"정말이야?"

"동팔아. 정말 저 고리를 통과한다고?"

투수의 공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하지만 항상 원하는 곳으로 공을 꽂아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도 제구력에 한계가 있었다. 당시 기상 상황과 바람에 따른 변화 그리고 온도에 따른 공기의 밀도 변화와 회전에 따른 양력 형성이 달라진다.

많은 변수가 있으니 정확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속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제구는 더 어렵다.

동팔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는 투수들.

경험이 많은 투수일수록 믿기가 더 어려웠다. 하지만 동팔은 당당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하다 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직접 보여드릴게요."

동팔의 장담에 투수들은 물론 코치들, 말이 잘 통하지 않지만 외국인 용병인 히네신스와 소르스, 호프도 다가와서 보고 있었다.

레슨장처럼 할 수 없기에 후배 투수 세 명이 직접 손으로 고리를 고정했다. 막대기에 고리를 고정했기에 실투해도 그들의 손이 다칠 일은 없었다.

동팔은 고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설정한 후, 바람을 살피다가 공을 던졌다.

슈슈슉.

동팔의 공은 빠르게 날아가면서도 세 고리를 정확하게 통과했다. 그러자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고리를 들고 있던 세 후배 투수들이 놀랐다.

"와우!!"

"잠깐, 정말 통과한 거야? 니들 정확히 봤지?"

한 선배의 물음에 고리를 들고 있던 세 후배들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네. 선배님."

"확실히 통과했습니다."

"직접 바로 앞에서 봤습니다."

그들의 확인에 투수들 그리고 지켜보고 있던 타자들도 전부 동팔을 봤다. 그들의 놀랍다는 시선이 집중되자 동팔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열심히 연습하면 가능합니다. 한… 3년 동안 하니까 120 안에서 이 정도 했습니다."

동팔의 말에 선배들은 물론 후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3년이라, 3년."

"노력하면 가능하다니……."

그 이후로 투수들의 훈련이 바뀌었다.

원래라면 평범하게 공을 던지고, 변화구를 익히는 것에 집중한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게임하며 놀듯이 훈련하고 있었다.

"자. 이번엔 나다… 고리 흔들리면 가만 안 둔다."

선배들을 비롯해, 투수 전원이 동팔이 알려준 훈련을 따라했다. 지금 장비가 없어 후배들이 고리를 들고 있어야 하는 단점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중에 후배가 던질 때, 선배들이 직접 고리를 들어줌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완전히 없는 건 아니었다.

"야, 난 고리에 스치기라도 했다. 엄한 곳으로 가면 트랙 한 바퀴 추가."

"우리 맞추면 알지?"

선배들은 낄낄거리며 고난이도의 코스를 만들었다.

그들도 베테랑 투수였기에 불가능한 코스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감독이 행정 일을 마치고 훈련장에 돌아왔다.

임상훈 감독은 투수들이 동팔을 중심으로 모여서 훈련을 즐기는 모습을 보았다.

'스프링캠프에 처음 만났는데 이렇게 빨리 친해져? 선배들은 물론 후배들도 좋아하고 있고…….'

단순히 혼자 잘난 투수는 질투심을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동팔은 자신의 노하우를 숨기지 않고 잘 가르쳐 주었고 항상 겸손했기에 모두 좋아했다.

험하고 혹독한 재기의 시간을 보내고 완벽하게 진화하여 돌아온 동팔이다.

나이를 떠나, 선수가 아닌 인간으로서 존경심이 안 들 수 없었다.

감독의 입장에서 선수들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면 상당히 골치가 아프다.

특히나 운동선수의 경우, 통이 커 쉽게 넘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한 번 앙금이 쌓이면 안 풀기로 작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감독의 입장에선 동팔을 중심으로 투수들이 뭉쳐지니 절로 웃음이 났다.

그렇다고 상황을 마냥 보고만 있지 않는 임 감독.

그는 모르는 것처럼 일부러 화를 내는 척 호통을 쳤다.

"오늘 시합 있는데 뭘 그렇게 놀고 있어!! 훈련 안 해?"

감독의 호통에 선수들 그리고 동팔도 긴장해서 동작을 멈췄다. 그런 와중에 수석 코치가 와서 모든 전말을 말하자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도 너무 몰입하는 건 안 좋아. 기구는 따로 주문할 거니까 지금은 이전에 훈련하던 대로 해. 알겠어?"

"네!!"

이것으로 투수들의 놀이 겸 훈련 코스가 하나 만들어졌다. 동팔로 인한 RG의 변화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선발과 계투진 그리고 마무리가 아니면 선발투수가 그날 경기의 마운드에 설 일은 없었다.

기본적인 훈련을 마치면 경기에 나올 일이 없는 선수들은 따로 훈련하거나 휴식을 취한다.

이미 뛰어난 구위와 구속을 가진 동팔이지만 그는 휴식을 취하지 않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마침 그 모습을 본 4선발인 윤재국.

주중 3연전에서 선발로 나올 때까지 월요일의 휴식을 포함하여 아직 사흘의 여유가 있었다.

열심히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그와 달리 오늘과 내일 선발 등판하는 2선발투수 소르스와 3선발 호프는 컨디션을 유지하는 쪽으로 훈련을 했다.

그 이외에도 다른 투수들은 계투 요원이거나 마무리로 언제 등판할지 모르기에 힘들게 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었다.

어제 충분히 쉰 동팔은 평상시의 훈련보다 더 많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었다.

벤치 프레스 120kg 15번 1세트를 기준으로 10세트를 했다. 그리고 등 운동과 어깨 운동을 한 이후에 지금은 스쿼트를 하고 있었다.

동팔은 100kg의 바벨을 어깨에 걸치고 15번 1세트 기준으로 지금 7세트 째였다.

동팔의 운동량에 휴식 겸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던 선수들도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다.

'괜히 160을 던질 수 있는 게 아니야.'

'하루 쉬었다지만… 저렇게까지?'

'저렇게 하고 나중에 공 던질 수 있겠어?'

스프링캠프에서 동팔과 같은 방을 쓰면 그의 몸을 본 강중근은 놀라지 않고 있었다.

'동팔이 몸을 봤을 때부터 알았지. 몸이 제대로 알짜배기였으니까…….'

군살이 완전히 없는, 보디빌더와 같은 몸은 아니다.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잔근육도 골고루 발달되었다. 적당히 있는 살은 오히려 따듯함과 부드러움의 매력을 가지게 만들었다.

선수들이 자신이 운동하는 것을 보며 놀라는 사이, 동팔은 어제 있었던 감독님과의 면담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남궁지완이랑 붙게 해 달라?"

"네."

"왜 그러고 싶은데?"

"그건……."

동팔을 말할까 말까 주저했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팔은 간략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애인이었던 혜진과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을 속이고 계속 연인인 상태로 있다가 헤어지게 된 일.

그 모든 과정에 남궁지완이 있다는 것 또한.

동팔의 말에 인생의 선배로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한 임상훈 감독.

"그러냐… 알겠다. 네 심정이야 모르는 바는 아니야. 하지만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넌 두 사람이 밉냐?"

그의 물음에 동팔은 잠시 자신을 돌아본 다음 사실대로 고백했다.

"네. 많이 밉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혜진이의 마음도 이해하기에 마냥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그의 대답에 감독이 말했다.

"네 감정이야 당연히 그렇겠지. 하지만 동팔아. 끝을 내려면 마운드에서 모든 걸 끝내. 완전히 끝난 인연이라면 구차하게 매달려 봐야 무슨 소용이냐. 그리고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그래야지."

감독의 말에 동팔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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