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많은 프로야구의 팬들의 시선이 동팔에게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만 집중하지 않는다.
동팔이 등판하지 않는 날에도 프로야구 경기는 있고 그 경기에서 자신의 팀을 응원한다.
어제 동팔에게 당한 오성은 자신의 홈구장인 라이온즈 파크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는 CT와 주말 3연전을 시작했다.
시구를 비롯한 간단한 행사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성이 홈이었기에 먼저 공격하는 쪽은 CT였다.
하지만 1회 초의 공격은 삼자범퇴로 마무리되고 오성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오성의 선수들은 더그아웃에 앉아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2승 1패로 분명히 우리가 RG한테 위닝시리즈를 거뒀는데 어째 우리가 스윕 당한 기분은 뭐지?"
"너만 그러냐? 나도 그렇다."
RG와 아슬아슬하게 2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동팔의 위력적인 공에 눌려 완봉패를 당했다. 그것도 노히트노런으로. 그나마 이승협이 아니었다면, 당시 중견수의 실책이 아니었다면 프로야구 역사상 첫 퍼펙트게임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
"자자. 정신 차리고. 다음 타자 준비해라. 해민이가 어제 이후로 칼을 갈고 있더만. 그리고 동팔이도 아니고 어제보다 만만하니까 집중 제대로 해."
이승협의 말에 선수들은 수긍하면서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말했다.
"동팔이 상대하는 것보다 낫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상대는 CT의 1선발입니다. 속구로 150대 나오고 변화구도 결정구가 두 종류라 만만치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타자들은 불펜에서 배트를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오성의 1번 타자인 신해민은 공을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지금 투수가 던진 공은 신해민의 약점인 몸쪽의 빠른 공. 볼 카운트는 원 볼 투 스트라이크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헛스윙하면 그대로 아웃이다.
따악!
다행히 해민의 배트는 공을 때렸다. 하지만 빗맞아서 뒤로 높이 날아가며 파울이 되었다.
해민은 다시 자세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바로 옆에서 해민의 독백을 들은 포수는 생각했다.
'이상해? 잘 안 맞나? 하긴 어제 동팔이에게 당했으니 그럴 수도…….'
그러나 이것은 포수의 착각이었다. 해민은 방금 전에 투수가 던진 공을 떠올렸다.
'공이 너무 잘 보여. 분명히 작년보다 큰 차이가 없는 공인데 왜 그렇지?'
아무리 약체팀이라도 1선발은 강하다.
아무리 CT의 프론트가 행동이 느려도 강한 투수 한 명은 들여온다. 그리고 작년에도 자주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해민의 생각대로 상대 투수의 구위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방금 전에 던진 공의 구속은 150킬로.
그가 전력으로 던진 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프로리그에선 빠른 공에 속했다.
하지만 느낌이 달랐다. 같은 구속이지만 전보다 더 느리게 보이자 이상했던 것이다. 해민은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뭔 상관이야. 잘 보이면 좋은 거지.'
해민은 이어서 들어오는 슬라이더를 골라낸 다음, 몸쪽으로 오는 강속구를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공은 배트에 정확히 맞았다.
타격했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충격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배트 끝에서 한 뼘이 되지 않는 곳인 스위트스폿에 맞았을 때의 감각이다. 그리고 야구공의 중심에서 조금 아래를 때려 역회전이 걸렸다.
맞는 순간 장타임을 직감한 해민은 배트를 놓고 빨리 1루를 향해 달려갔다. 해민의 타구는 그의 느낌대로 쭉쭉 뻗어나가더니 펜스에 맞고 떨어졌다. 신해민은 빠른 발로 1루를 돌아 2루를 거쳐 3루까지 달려갔다.
촤악~ 턱.
한 끗 차이로 해민은 3루에 안착했다. CT에서 합의 판정을 신청했지만 결과는 해민의 세이프였다.
CT는 합의 판정의 기회만 날리고 말았다.
그날 오성과 CT의 결과는 14대 0.
어제와 달리 타선이 폭발한 오성의 대승이었다.
그 결과에 대한 분석은 오성이 약한 팀을 만나서 된 거라 생각하며 가볍게 넘어갔다.
같은 시각, 지아와 엑센의 경기에선 또 다른 대결이 관심을 부르고 있었다.
중계석의 캐스터와 해설위원은 작년의 기록을 가지고 두 선수를 비교하고 있었다.
[폭발적인 타선으로 유명한 엑센과 지아의 경기입니다. 그중에 중심이 되는 두 타자가 있는데 두 선수 전혀 다른 타입이죠.]
[그렇습니다. 엑센의 민호준 선수는 파워 슬러거입니다. 일단 걸리면 날아간다고 보면 됩니다. 장타율이 자그마치 0.893이에요.
쳤다 하면 열에 아홉이 최소 2루타 이상이라는 겁니다. 다만 타율이 낮다는 것이 유일한 문제입니다. 작년 타율은 0.264죠. 네 번 중 한 번 맞췄다는 겁니다. 낮은 건 아니지만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더 아쉬워할 거예요. 그리고 출루율도 그리 높진 않습니다. 0.314예요.]
[하지만 한동욱 선수는 그와 다른 타입이죠. 파워 슬러거는 아니지만 뛰어난 선구안을 가지고 있어서 볼넷 비율이 높습니다. 또한 타율도 높아서 작년에 4할에 가까운 타율을 보여주었습니다. 민호준 선수만큼은 아니지만 장타율이 5할을 넘습니다.]
[OPS를 보면 민호준 선수가 1.207이고 한동욱 선수는 1.214입니다. 거의 비슷하네요.]
캐스터의 말에 해설위원이 보충해서 설명했다.
[말씀하신 대로 OPS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승리 기여를 따지면 그리고 감독의 입장에서 보면 한동욱 선수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어요. 한 방이 있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꾸준함이거든요. 또한 한동욱 선수는 실책이 없습니다. 팀이 위험할 때, 뛰어난 수비로 투수를 도와주죠. 하지만 제가 점수를 주고 싶은 기록은 따로 있습니다.]
[네? 그게 뭔가요? 이미 말씀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난 것이 보이는데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작년 기록까지 보면 150타석 넘게 삼진이 없습니다. 한동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볼넷으로 걸어 나가든가, 안타나 홈런을 치든가. 그것도 아니면 외야 플라이나 땅볼로 아웃입니다. 삼진으로 돌려세워지는 건 작년 후반기 이후로 없습니다. 투수 입장에서 엄청 까다로운 타자입니다.]
해설위원의 말에 캐스터가 이어서 말했다.
[어제 강동팔 선수의 완봉승. 거기에 노히트노런도 좋은 볼거리였지만 역시 타격도 무시할 수 없죠? 더군다나 타선이 강하기로 유명한 두 팀이 맞붙는 이상, 화려한 볼거리가 많을 것 같습니다.]
캐스터의 말은 단순히 그랬으면 좋겠다는 예상 중 하나였다.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민호준 타자 앞에 주자가 쌓이면 안 좋습니다. 타율은 낮아도 한 방 맞으면 그대로 그게 점수로 이어지는… 맞혔습니다!!! 큽니다!!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 홈런!! 엑센의 역전 쓰리런 홈런!!! 점수는 5대 4!!]
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자 엑센의 팬들은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엑센의 공격이 끝나고 지아의 공격이 되자 전세는 다시 뒤집어졌다.
[이번에는 지아의 한동욱 선수의 타석. 전 이닝에서 그림 같은 수비로 안타를 지웠습니다.]
[글러브로 빠르고 불규칙한 타구를 받은 것도 대단합니다. 그 상태에서 글러브에 있는 공을 손에 쥐지 않고 바로 2루를 향해 토스하듯이 보냈고 그것으로 병살타를 만들어 냈습니다. 1루 주자의 스타트가 빨랐지만 민첩하고 영리한 한동욱 선수의 플레이로 아웃되었습니다.]
[유격수인데 공도 참 잘 쳐요. 이런 유격수가 또 있을까요?]
[없습니다. 공수의 밸런스가 잘 맞으니 감독이 선발로 안 내보낼 수가 없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1루에 주자가 나가 있습니다. 역전 타자가 된 한동욱. 그리고 그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환호성이 되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해설위원이 말에 캐스터가 물었다.
[그 표현 어디서 들으셨나요?]
[네? 제가 창작했다고 생각 안 하신 겁니까?]
[제가 해설위원님을 아는데 그럴 생각이 나겠습니까?]
[하하하. 캐스터님이 저를 너무 잘 아네요. 우연찮게 본 소설에서 인상이 남아 썼습니다.]
이렇게 가볍게 이야기를 할 때, 한동욱은 투수가 던진 공을 받아쳤다.
[오~ 큽니다. 우중간, 우중간, 우중간을 향해 날아가는 큼지막한 타구~ 홈런!!! 역전 투런 홈런. 지아와 엑센, 엑센과 지아는 한동욱과 민호준의 홈런 대결로 가고 있습니다!!]
투수의 강속구만큼 관중을 끌어모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타자의 시원한 홈런이다. 경쟁하듯이 홈런을 치는 두 타자의 화끈한 대결은 시즌이 시작하기 전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었다.
덕분에 좋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구단주들을 비롯한 야구 협회의 사람들이었다.
관심을 받는 만큼 관중이 온다. 하지만 구장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구단의 수입은 관중에만 있지 않다. 중계권을 포함한 방송 미디어, 특히 광고 수입은 무시할 수 없는 막대한 수입원이었다. 야구팬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광고 효과가 더 좋기에 중계권료는 물론 광고 및 후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시즌 초반부터 예정된 흥행과 동팔로 인한 예상외의 흥행으로 인해 구단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선발로 인해 어제 하루를 쉰 동팔. 그는 어제 더그아웃에서 같은 팀 선수의 경기를 보기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마냥 쉰 것은 아니었다.
완전히 회복되었기에 집에서 따로 훈련하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훈련장에 오자마자 동팔은 투구 감각과 변화구의 더욱 정교한 제구 및 동작에 대한 코치를 받았다.
무리한 훈련보다 과외를 받는 느낌으로 훈련을 받다가 쉬던 중, 동팔에게 앳되어 보이는 한 사람이 다가왔다.
"저기… 동팔이 형……."
"어, 진혁아. 왜?"
그는 동팔보다 2년 먼저 입단했지만 4살 어린 선수였다.
"다른 게 아니라요. 형한테 변화구 배우고 싶어서요.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진혁은 조마조마했다.
'내가 괜히 와서 동팔이 형 시간을 빼앗은 건 아닐까?'
혹독한 시간을 홀로 버티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거물급의 투수가 된 동팔. 그에 비해 1군에 겨우 붙어 있는 자신이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동팔이 거부해도 진혁은 그와 말을 붙였다는 것에 만족해하며 물러날 수 있었다.
그러나 동팔은 진혁의 부탁을 쉽게 받아주었다.
그는 매몰차거나 딱딱하게 말하지 않고 부드럽게 그리고 따듯하게 말했다.
"변화구? 내가 던질 수 있는 건 커브랑 체인지업 그리고 슬라이더 정도가 전부인데 어떤 걸 알고 싶은 거야?"
동팔의 말에 진혁은 긴장해 딱딱해졌던 마음이 풀어져 방금 전보다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변화구 구종도 그렇지만 제일 먼저 제구가 잘되었으면 해서요. 코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지만 생각보다 잘 안 되어서 그렇거든요."
강속구도 강속구지만 모든 구종의 제구를 제일 잘하는 사람도 동팔이었다.
코치들도 한때 날고 기는 투수 출신이었지만 아무리 전성기라도 동팔에 비하면 모자랐다.
자신보다 선배도 아니고 나이도 어렸기에 진혁은 쉽게 다가와서 가르침을 요청했다. 동팔도 처음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라 자신 없었지만 후배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내가 한 거랑 같은 걸 한다고 해서 잘되는 건 아니라 장담할 수 없어. 하지만 그 전에 공은 어떻게 던져? 직접 던져 봐."
"네."
동팔의 말에 진혁은 최선을 다해 공을 던졌다. 그의 구위를 보고 동팔은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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